224화
정신을 잃었나 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 문장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살았을까, 죽었을까. 나는 빙글빙글 도는 세상 한가운데 앉아 눈앞을 스치고 가는 장면들을 쳐다봤다. 회귀 전과 회귀 후 내 모습이 뒤죽박죽 섞여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회귀 전과 알게 모르게 채워지고 있었던 회귀 후. 두 삶은 이렇게 단편적인 장면들을 보고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극명하게 비교되었다. 한 장면에는 온통 나 혼자뿐이었고, 다른 장면에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혼란스럽게 오가는 그 장면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어느 쪽이 과거고 어느 쪽이 현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래엔 저 행복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마저 싹텄다.
그래, 사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회귀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순간 어쩌면 나는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내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쪽이 더 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회귀 후라고 생각했던 내 삶은 그저 나의 희망과 기억들이 자아낸 상상인 걸까. 그럴듯한 추측은 생각할수록 불안을 키워 갔다.
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게 친구는 여전히 예령이 하나고, 아빠는 만난 적 없이 하늘로 갔고, 날 미련 없이 버리고 갔던 형들이 있다는 건데. 눈을 뜨면 병원이긴 할까? 병원이라면 치료는 제대로 받았으려나. 혹시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건가.
나는 현실적이지만 지독하게 불행한 추측을 이어 가며 날 향해 웃는 얼굴들을 피해 눈을 감았다. 날 향해 웃는 그 얼굴들이, 상상이 얼마나 정교한지 정말 있었던 일 같아서 마주하기 괴로워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런 걸 바랐었구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복수와 나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친구들,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풀어낼 기회와 언제나 날 먼저 생각해주는 가족.
무엇보다 분명하고 흘러넘치는, 내가 계속 머뭇거리고 의심하며 거부하더라도 흔들림 없는 애정을 바랐구나, 나는.
‘하하.’
너무 허탈하니 웃음이 나왔다. 작게 뱉은 헛웃음은 큰 메아리가 되어 날 비웃었다. 하하, 하하, 하하. 웃음소리는 저 먼 벽을 맞고 돌아와 귀에 박혔다.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슬픔으로, 슬픔은 허탈로, 허탈은 이내 무감으로 형태를 바꿨다.
나는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여전히 허공에 떠다니는 내 기억들과 상상이라고 결론지어 버린 기억이었던 것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했다.
‘아, 이대로 그냥 녹아 없어져 버렸으면.’
눈을 떠 여전히 외톨이인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내 정신이 나약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내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닿아있는 곳부터 서서히 액체가 되어 가는 몸은 어딘지 모르는 공간에 동화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흔적도 없이 없어질 것 같았다.
응, 이게 나아. 이게 나은 거야. 죽어 감을 느끼면서도 어떠한 절망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덤덤했다.
그러나 그때, 허공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호야.’
한 명인 것 같기도, 여러 명의 목소리 같기도 한 소리는 알 듯 말 듯 했다.
누구야. 누가 나를 부르는 거야.
‘김진호.’
두근. 다시 한번 불리는 이름에 잠잠했던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근. 천천히 그러나 몸이 울릴 정도로 크게 뛰는 심장이 없어지던 내 형체를 잡아주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는 불림은 흩어져 버린 정신도 그러모았다.
‘진호야, 일어나.’
가지 마, 일어나. 날 향해 뻗어지는 손 같은 말 한마디에 드디어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어두웠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뭐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제법 큰 사건인 것 같지만,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놀랍지 않았다기보단 그냥 정신이 멍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어둡다는 생각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있던 내게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병원… 여러 명… 나가.”
“…제라면 다 빌릴게.”
처음엔 웅얼거리던 말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선명해졌다. 그리고 선명해질수록 들리는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병원이지 호텔이냐?”
우선 방금 짜증을 낸 건 조금 헷갈리지만, 아마도 남궁호.
“특실은 호텔처럼 쓰는 거 아니었어? 얼마 전에도 모 기업 회장님께서 푹 쉬시다 가셨다는 얘기 들었는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막말하는 민선우.
“흉터…. 후…. 음, 커플이라면…?”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대는 건 누가 봐도 정새빈.
“흉터 안 생기게 할 거니까 그런 되지도 않는 말로 위로할 생각하지 마라, 이 또라이야.”
남궁호랑 똑같은 목소리지만 약간 더 시니컬한 말투의 남궁후.
“다 시끄러워. 병실인 거 잊었나?”
지독한 저음의 명령조 최태혁까지.
정말 익숙한,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너무 오랜만에 듣는 것 같은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당장에라도 나 많이 아팠다고, 무서웠다고 그들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왜 그렇게 늦게 왔냐고. 아니, 지켜 주겠다고 했으면서 왜 내가 납치당하게 두었냐고.
나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지금껏 감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눈을 떴다. 오랫동안 눈을 뜨지 못해 뻐근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빛이 들어왔다.
몇 번의 깜박임으로 어스름한 빛에 금방 적응한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 최태혁이었다. 녀석은 말을 하면서도 나를 보고 있었는지 내가 그를 보는 것만으로 눈이 마주쳤다. 휘둥그레진 눈, 흔들리는 동공. 보기 드문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녀석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김진호.”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것은 내 이름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불리자마자 병실은 거짓말같이 조용해졌다. 나는 힘겹게 눈동자만 굴려 병실 안을 확인했다. 나머지 넷도 내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내 몸을 살펴보고 있던 정새빈과 남궁후, 창가에서 마주 보고 얘기하던 민선우와 남궁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웃었다.
“진호야!”
“나비야.”
“쫑쫑아!”
“김진호!”
각자 내 이름과 제멋대로 붙여 준 애칭을 부르며 바로 내 머리맡에 앉아 있던 최태혁의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반가움과 안도, 미안함과 속상함. 그 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섞인 복잡한 얼굴을 한 그들은 그러함에도 미소를 띠고 있었다.
헷갈릴 수 없을 만큼 너무도 확실한 다섯 명의 표정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자꾸 눈앞을 뿌옇게 만드는 눈물을 흐트러트리기 위해서였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눈꼬리를 벗어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그 한 방울을 필두로, 그들의 목소리를 인식했을 때부터 차올랐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귓가가 금방 축축해졌다.
“왜, 아니 어디 아파? 많이 아파 진호야?”
“어디야. 어디가 제일 아파? 응? 진호야, 형한테 말하면 바로 봐 줄게. 어디가 아파서 그래?”
눈을 뜨자마자 우는 내가 당황스러웠는지 쌍둥이가 동시에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별안간 옷을 들치고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아픈 애 다그치지 말고 알아서 찾아내.”
민선우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부드러운 수건으로 내 눈가를 닦아 주며 부산스러운 쌍둥이에게 차갑게 일갈했다. 내가 코를 훌쩍이며 올려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다정하게 웃어 주었다.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진호야. 무리하지 마.”
눈물을 닦던 수건과 다른 수건을 코에 대고 흥, 하고 어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민선우가 시키는 대로 흥, 하고 코를 푸는 대신 훌쩍 들이마시며 민선우를 밀치고 얼굴을 들이미는 정새빈을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쫑, 아니 진호야, 잘 견뎠어. 이제 아픈 거 끝났어. 이제 널 아프게 하는 사람은 없어.”
괜찮아, 진호야. 이제 괜찮아. 정새빈은 손등으로 내 볼을 살살 쓸며 어른스럽게 웃었다. 그걸 듣고 있자니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또 울기 싫어서 눈에 힘을 주고 입을 오므렸다.
그래도 자꾸 터지려는 울음에 입을 비죽이며 더 힘을 줘 보는데, 손이 위로 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정새빈을 보느라 치켜올렸던 눈을 조금 내렸다. 그곳에는 최태혁이 내 손을 쥐고 조심스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진호, 김진호. 내 강아지. 더 빨리 가지 못해 미안해. 이렇게 아프도록 놔둬서 미안하다.”
내 손등에 닿아 있는 최태혁의 입술을 통해 녀석의 떨림이 전해졌다. 아, 글렀다. 나는 나에게 꽂힌 다섯 쌍의 따뜻한 눈길을 뒤로한 채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흐어어엉-”
아아, 나는 정말 살았다. 그것도 그냥 운이 좋아서 산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자 뻗어진 손에 의해 구해졌다.
이번 납치가 회귀 전 그날의 다른 버전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건이었던 건지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내게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나를 지켜 주고자 하는 사람이,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과 같이 구하러 와 줄 사람이 다섯이나 있었다. 비참하게 죽기 싫었던 내 상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너무 안심되고 행복해서, 나는 한참 동안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