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내 안을 자극하던 손가락이 겨우 빠져나가고, 나는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뒤로 넘어갈 뻔했으나 내 허리를 받치고 있던 팔에 의해 오히려 앞으로 고꾸라지듯 단단한 가슴에 기댄 포즈가 되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짜증이 섞인 투로 녀석들을 탓했다.
“하아, 내가, 하아, 쌀 것, 쌀 것 같다고 말했는데 왜...!”
“괜찮아. 괜찮아. 기분 좋으면 쌀 수도 있는 거지. 그러라고 예뻐해 준 건데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예, 예뻐해 주긴 뭐, 뭘! 남궁후는 날 달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이겠지만, 오히려 그 말 때문에 더 확 얼굴에 열이 올랐다. 능글능글 웃는 그 얼굴이 너무 얄미워서 충동적으로 주먹을 말아쥐고 녀석의 어깨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녀석에게 타격을 주긴커녕, 턱 하니 잡혀 훅, 녀석 쪽을 향해 끌어당겨졌다. 결국 남궁호의 품에서 남궁후의 품으로 옮겨진 꼴이 되었다.
“야! 애 막 다루지 말라고!”
그래! 막 다루지 말라잖아! 나는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한 것을 가슴으로 받은 남궁후를 확 째려보면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후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피식 웃더니, 엉거주춤 기대있는 내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자기 다리 위에 비스듬히 앉혔다.
그리고 녀석을 올려다보는 내 얼굴에 남아있던 물기들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닦아 주면서, 장난기 섞인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곰돌이라 그런 건, 네가 곰돌이 인형만큼 귀여워서 그런 거야. 눈동자는 반질반질하고, 눈매는 동글동글하면서, 시무룩해질 때마다 팔자가 되는 눈썹이랑, 반들반들한 갈색 피부가 부들부들 말랑말랑 한 게 꼭 곰돌이 인형 같아서. 그게 예뻐서 곰돌아, 곰돌아 했던 거야.”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남궁후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잘생긴 얼굴에 드리워진 미소가 참 청량해 보였다. 내가 뭔가를 말하길 기다리는 듯한 눈빛에도 나는 할 말을 잃고 눈만 껌벅였다.
내가 생각하던 나와는 맞지 않는 묘사들이 많았던 남궁후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곰돌이라면 인형의 대표주자인데 방금까지 인형으로 대해지는 것이 싫다고 울음까지 터트려 놓고 이렇게 듣고 보니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나는 할 말은 없었지만 뭐든 말하고 싶은 충동에 입을 벌리려다, 눈치도 없이 흘러나오는 콧물에 반사적으로 코를 먹었다.
“훌쩍.”
급하게 들이켰더니 조용한 방에 훌쩍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분위기에 금이 쩌적 가는 것이 눈에 선했다.
더 문제인 것은 눈치 없는 콧물 새끼는 계속 흐르려는 점이다. 손을 들어 닦기엔 더러워 보일 것 같고, 들이마시기엔 정적에 울리는 훌쩍이는 소리가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렇다고 갑자기 휴지를 달라고 할 분위기도 아니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중으로라도 콧구멍을 막기 위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흐르는 걸 늦추려고 그 상태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가 남궁후랑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 콧물에 너무 집중해서 이렇게 하면 쟤 얼굴이 보인다는 사실을 잊었네. 남궁후는 그런 나를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더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내 입술과 코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어 조금 흐른 콧물을 쓱 닦아주더니, 잡아당긴 시트를 코에 얹고 말했다.
“흥, 해. 흥!”
“...아니 그럴 정도는 아닌….”
“흥!”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거부를 해봤지만 녀석은 단호했다. 나는 얼떨결에 놈을 따라 흥 소리를 내며 시트에 코를 풀었다. 남궁후는 시트로 내 코 주변까지 야무지게 닦고 나서 시트를 저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를 들어 무릎으로 서 있게끔 자세를 잡아주더니, 다리 사이로 쑥 손을 집어넣었다.
“아, 왜, 왜 다시잇...!”
“응, 괜찮아, 진호야. 아까처럼은 안 할게, 이제.”
남궁후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너머로 턱짓했다. 어느새 좁아진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받아내느라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남궁호에게 뭔가 뜻을 전한 것 같았다. 뭘 말한 건지 딱히 알고 싶지 않았으나, 잠시 후 엉덩이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알아 버렸다.
“싫, 싫어허, 아, 아아!”
“이렇게 안 하면 다칠까 봐 그래. 우리 진호 구멍 찢어지면 안 되잖아.”
입구에 살짝 들어온 플라스틱이 서늘했다. 그곳을 통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차가운 젤의 감각이 서늘했다. 남궁후의 어깨를 짚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몇 번의 관계로 인해 이 젤의 의미를 학습했기에, 어떻게든 한 통이 들어오기 전에 벗어나 보고자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 반항도 잠시, 남궁후가 큰 손으로 내 엉덩이를 잡고 활짝 벌림과 동시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해버렸다. 나는 이제 콧물이 흐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녀석들에게 애원했다.
“안 돼요. 그거, 그거 싫어요. 제발, 제발요.”
안 그래도 기분이 좋아서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리는데, 둘이 동시에 들어오는 감각은 온몸의 신경을 다 태워버리는 것처럼 강렬해서 무서웠다. 이러다가 정말 망가질 것 같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그 모든 걸 잊게 할 만큼 강한 쾌감이 뒤섞여 내가 마치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기어코 한 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가느다란 젤의 입구는 내 안에서 빠져나가 텅-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던져졌다. 앞으로 다가올 일에 겁에 질려 덜덜 떨리는 몸이 뒤집어지고, 나는 내 뒤에 있던 남궁호를 마주 보는 상태가 되었다. 내 등을 지그시 누르는 힘으로 인해 앞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그만큼 뒤로 내밀어진 골반을 커다란 손이 틀어쥐었다.
상체가 침대에 고꾸라지지 않게 받쳐주고 있는 남궁호의 팔에 기대 돌아보니, 남궁후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자신의 것을 내 엉덩이 사이에 맞추고 있었다.
“안, 아흐으읏!”
굵고 기다란 것이 천천히 내벽을 밀고 들어오는 느낌은 몇 번을 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부들거리며 어떻게든 그 감각에 저항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뭉툭한 선단이 내가 느끼는 지점을 뭉근히 누를 때는, 고개를 젖히고 신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후는 드러난 내 목을 손으로 감싸 자기 가슴에 빈틈없이 기대게 한 후, 천천히 천장을 보고 누웠다. 나도 자연스레 남궁후의 것을 품은 채 다리를 활짝 벌리고 천장을 향해 누운 자세가 되었다. 자세를 바꾸는 동안 내 안을 휘젓는 녀석의 것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신음을 참고 있었다.
그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호가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쥐는 느낌에, 나는 퍼뜩 고개를 들고 애원했다.
“안돼, 또, 그런, 이런 거 시, 히이잇...!”
“후- 진호야. 조금만 힘 빼자, 응? 너무, 좁, 잖아.”
그럼 빼. 빼라고. 그 말이 간절히 하고 싶었으나 입안에서만 맴돌 뿐 뱉어지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가는 소리라곤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신음이 전부였다. 나는 빠듯하게 벌어지는 내부를 느끼고 겁에 질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틈을 타 집요하게도 비집고 들어오는 남궁호의 것을 덜덜 떨며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이미 다른 것으로 눌리고 있던 전립선에 그에 지지 않는 두께의 단단한 것이 거듭 누르는 자극은, 차마 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히, 히익.”
“진호야, 숨. 숨 쉬어야지.”
그만, 제발 그만. 다물어지지 않는 입가로 타액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가쁜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눈앞이 번쩍일 때마다 보이는 남궁호가 숨을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온몸을 태울 것 같이 작렬하는 쾌감에 내 몸은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움찔거리고 튀어 올랐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눈앞에 흔들리는 남궁호의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데, 유두가 강하게 집어 올려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는 아릿한 쾌감에 나는 손가락이 올라가는 대로 가슴을 내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히, 자, 자까, 주, 주거여엇.”
“아니야. 안 죽어. 괜찮아. 기분 좋은 거야. 너무 좋아서 그래.”
아냐,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뒤에서 속삭여지는 말에 토를 달기 위해 어물거리자마자 짓궂은 손가락이 유두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전립선을 쉴 새 없이 괴롭혀 사정 직전까지 간 내 것을 잡아 싸지 못하게 막은 손은 엄지로 내 선단을 문지르고 있었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흐, 히이, 아, 아흐읏.”
“진, 호야. 기분 좋아? 응?”
싸게 해줘. 놔 줘. 남궁호가 날 보며 뭐라고 하는 것 같으나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마다 숨,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 겨우 산소를 들이켤 만큼,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려고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어도, 결국 또다시 흐려지는 시야를 어쩌지 못하고 전신을 바르작대며 신음만 뱉었다.
얼마간이나 그렇게 있었을까, 완급을 조절하며 박아대던 남궁호의 허릿짓이 점점 빨라지고 깊어졌다. 동시에 내 기둥을 훑어 자극하는 녀석의 팔을 있는 힘껏 잡고 나는 거의 소리 지르듯 신음했다.
“아아아- 안대엣, 흐익, 힛!”
“돼. 돼, 진호야. 같이 가는 거야. 응? 같, 이!”
“싸, 쌀 거엇, 흐아아아앗...!”
마지막엔 내 골반을 잡고 아래에 있는 남궁후까지 움직이는 바람에 내 내벽은 두 개의 페니스로 인해 엉망으로 짓눌리고 자극당했다. 온 사방이 하얘지고 귀가 멍해지면서, 몸이 붕 뜨기라도 한 것마냥 감각이 없어졌다.
나는 내 안에 따뜻한 것이 가득 들어차는 것을 느끼며 움찔움찔 몸을 경련했다. 힘없이 옆으로 떨궈진 고개로 인해 보게 된 아래에선, 울컥울컥 백탁액이 섞인 묽은 액체를 쏟아내고 있었다. 눈물 탓에 흐려진 시야로 그걸 멍하니 보고 있으니, 곧 커다란 손이 턱과 볼을 한꺼번에 잡고 고개를 바로 했다. 그리고 시야에 가득 들어온 남궁호가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잘했어, 진호야. 예뻐. 너무 예뻐.”
가까이서 말하고 있음에도 마치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웅웅거리듯 들렸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 고여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덕분에 시야는 맑아졌지만 나는 그걸 채 느끼기도 전에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고, 정신이 점점 이지러졌다.
힘들어. 이제 아무것도 못 해. 내 배를 쓰는 손길과 땀에 젖은 이마를 쓸어주는 손길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까무룩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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