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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121화 (121/234)

121화

“아니, 왜 그러고 있어....”

눈을 내리깔고 바닥만 보면서 울고 있는 모습이 퍽 애처로워 보였다. 녀석은 콧물이 더 많이 났었던 나와는 달리 눈물만 예쁘게 방울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모습 위로 쓰레기장에서 울던 내가 겹쳐 보였다.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버려져 있는 기분, 끝없는 탈력감, 공허함, 좌절감. 그런 나를 따뜻하게 안아 올렸던 것은 정새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목을 턱 막고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쩔 줄 모르겠는 심정으로 날 막고 있는 쌍둥이들의 손을 밀쳐내고 얼른 녀석의 앞으로 갔다.

“아파? 아파서 그래? 아까 세게 졸리는 것 같긴 하더라. 어디 봐봐, 응?”

“응, 아파. 나 아파, 쫑쫑아. 너무 아파.”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살피는 나에게 녀석은 보란 듯이 고개를 들어 보였다. 아까 남궁후에게 눌렸던 부분이 붉다 못해 피가 비쳤다. 전에 병원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쉽게 병원 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울기까지 하는 걸 보면 약은 발라야 할 것 같았다.

“살이 좀 까져서 따갑겠지만 그래도 연고 발라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 약 있어?”

나는 아까 세게 잡혀서 그런지 엉망으로 늘어나 버린 티셔츠를 아래로 살짝만 당겨 상처 부위를 꼼꼼히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정새빈이 고개를 저으며 훌쩍이는 소리를 내더니, 눈물이라도 닦아주려고 올린 내 손에 살며시 볼을 기대왔다.

“진호야.”

“어, 어. 왜 그래. 아파? 우울해? 안, 안아줄까?”

나보다 아주 약간 위에 있는 녀석의 눈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쳐다보면서 말했지만, 정새빈은 끝까지 고집스레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연회장에서 느꼈던 기분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울부짖었던 그 장면이 오버랩되어 조금씩 숨이 가빠져 왔다. 분명 다친 건 정새빈이고 나는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점점 덜덜 떨리는 손 위로 정새빈의 손을 겹쳐왔다. 녀석은 고개까지 기울여서 내 손에 얼굴을 완전히 묻더니 눈을 감은 채 조그맣게 속삭였다.

“가지 마.”

“...응?”

워낙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이는 바람에 다시 물었을 때, 드디어 눈을 뜬 정새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가지 마, 진호야.”

깊은 절망이 담긴 눈동자엔 어느새 울고 있는 내가 담겨있었다. 발개진 눈가와 차가운 손이 못내 안타까워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픈 건 하지 마. 생각도 하지 마. 다 잊고 기분 좋아지자, 진호야.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어둡고 아늑한 곳에서 내내 들었던 속살거림이 귓가에 울렸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그것보다 더 뜨거운 행위를 하면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도, 아픈 것도, 불안한 것도 모두 다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아프고 싶지 않아. 머릿속에 울리는 말들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결심한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응, 지랄은 이제 그마안.”

쌍둥이 중 한 명의 목소리였다.

“갈수록 더 가관이라 못 봐주겠네, 진짜. 이게 어디서 연기를 하고 있어. 영화 현장 들락거리다 보면 연기도 배워오나 봐?”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손인 것 같았다. 더듬더듬 확인하니 기다랗고 단단한 손이 부드럽지만 빈틈 없이 내 얼굴의 반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떼어내기 위해 힘을 주며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손의 주인을 타박했다.

“혀, 형. 비켜봐요. 정새빈 울고 있잖아요. 왜 우는 사람한테 그래요.”

“하아, 우리 고미는 이렇게 순수하고 마음이 여려서 어떻게 해. 응? 밖에서 정새빈 같은 미친 새끼들한테 등쳐먹힐까 봐 나도 집에 꽁꽁 가둬놓고 싶어지네.”

한숨까지 섞어가며 정말 걱정된다는 듯이 말한 녀석은 팔로 내 허리를 감싸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심한 소리를 들었는데도 정새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걱정되는 마음과 나를 멋대로 묶어두는 손에 대한 반항심에 놓아달라 말하며 이리저리 몸을 뒤트는데, 그런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네 놈 눈물 헤픈 거 우리는 알지만, 우리 곰돌이는 적잖이 놀란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하지? 아까 이런 김진호가 나아 보이냐고 물은 건 너야, 정새빈. 우리한테 위선 떨지 말라면서 지껄이던 것도 너고. 우리한테 그렇게까지 해놓고, 꼭 그렇게 애 자극해서 기어코 울려야겠어?”

“머리 똑바로 굴려, 정새빈. 너도 김진호 이대로 두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을 거 아니야. 우리가 데려가는 게 미칠 듯이 싫은 건 알겠는데, 이대로 계속 헛짓거리하면서 붙잡아두려고 쇼하면 우린 그냥 힘써서 데려갈 거야. 네가 아무리 힘이 세도 우리 둘은 못 이겨, 너.”

늘어난 손의 개수에 잠시 멈칫하는 사이, 쌍둥이는 정새빈을 더 몰아붙였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쏟아지는 비난에도 소리죽여 울고 있을 정새빈이 걱정되어 더 심하게 몸부림쳤다.

“아니 그러니까, 안 그래도 슬프고 힘든 사람한테 그런 얘길 하면, 그러면 더 힘들어진다고요! 아, 잠깐 이것 좀 놔봐요, 좀!”

“너야말로 장난감 갖고 싶어서 발악하는 놈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진짜 적당히 해라. 엿같이 굴어서 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지 말고.”

사람이 말을 하는데 전혀 들어먹지 않는 쌍둥이가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하지 말라니까 기어코 또 힐난을 퍼붓는 두 사람에 참지 못하고 팔꿈치로 날 잡고 있는 놈을 치려고 자세를 잡던 나는, 직전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 몸을 굳혔다.

“쯧, 짜증 나.”

혀를 차는 소리 뒤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정새빈이었다. 그것도 끊어질 듯 애처롭고 물기 어린 목소리가 아니라, 평소 정새빈 특유의 염세적인 어조가 두드러지는 나른한 목소리.

“정, 정새빈...?”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황망함을 그대로 담아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밝아지는 시야에 찡그리며 눈을 뜨자, 정새빈은 무감정한 눈동자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뭐야. 진짜 연기였어...?

“진호야, 저 새끼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야. 원하면 자동으로 콸콸 흐른다고, 저거. 그러니까 속으면 안 돼.”

어이구,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눈물 범벅됐네. 내가 멍하니 정새빈을 보고 있는 동안 머리 위에 있던 손이 내려와 축축해진 얼굴을 분주히 닦았다.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은 우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함인지 내 배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 신경은 모조리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정새빈에게 향했다.

“연기, 진짜 연기였어? 정말? 아프, 아프다는 것도?”

나는 참지 못하고 토해내듯 그렇게 물었다. 그제서야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정새빈의 눈이 나를 담았다.

“아니. 진짜였어.”

“적당히 하라고 했다.”

“근데 그날의 너처럼 그러진 않았어.”

저게 무슨 말이야. 진짜긴 한데, 근데 내가 힘들었던 것만큼 힘든 일은 아니었다고 하는 건가? 그런 말인 거야?

“알아듣게,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좀 해. 답답하게 네 맘대로 잘라먹지 말고.”

녀석이 나처럼 아픈 것 같아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공감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 당장 상황을 유리하게 하려는 연기에 휘둘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황당하고 화가 났다. 물론 정새빈은 울고 있었을 뿐 그때의 나를 멋대로 대입한 건 나인 걸 알면서도, 배신감이 들었다.

“진호야, 아프고 힘든 건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진짜야. 나는 항상 아파. 정도가 덜하고 더할 뿐, 안 아픈 날은 없어. 하지만 방금의 눈물은, 네가 날 불쌍히 여기고 가지 못하게 묶어두기 위해 흘렸던 게 맞아. 난 이제 아픈 것 따위에 눈물이 나진 않거든. 그런 시기는 옛날에 지났어.”

정새빈은 뭔가를 회상하는 사람처럼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쫑쫑이가 이렇게까지 아파해줄 줄은 몰랐.... 아니, 알았는데 또 막상 보니 별로 길게 보고 싶지는 않네. 저 위선자들이 힘을 쓰든 말든 그건 모르겠고, 네가 다시 또 아픈 거에 갇혀서 눈물 흘리는 거 보는 게 싫어서 관둘래. 응, 그러고 싶어.”

흐릿하던 녀석의 동공에 초점이 생기더니 내 옆과 뒤를 지그시 쳐다봤다. 쌍둥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러다가 쫑쫑이도 내 꼴 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긴 했어. 나는 잊는 방법은 아는데, 채워지는 방법은 모르거든. 살찌워서 데리고 오려면 민선우나 최태혁한테 맡겨야 하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쌍둥이가 와서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야.”

“저렇게까지 자신하는데. 다녀와, 쫑쫑아. 가서 쟤들이 말하는 그 햇볕 쬐면서 걷는 거 하고, 밥 잘 챙겨 먹고.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해지려면 해야 한다는 그 현실에 발 딛고 사는 거, 그거 하면서 살 포동포동 찌워서 더 귀여워져서 와. 그럼 또 둘이서 기분 좋은 거 잔뜩 하자.”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는 정새빈의 얼굴은 눈물 자국 하나 없이 말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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