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아닌데.”
“아 그럼 두 분 다 고등학생이세요?”
대학생이 아니라는 남궁후의 말에 놀라서 되묻는 말이 이상했다. 두 분 다? 나는 처음부터 그냥 고등학생이었다는 거네. 하하, 나 스물여섯에 고등학생으로 오해받은 거야? 그것도 고등학생한테?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형제가 놀러 오신 줄 알았어요.”
“우리 형제처럼 보여? 닮았나?”
남궁후는 형제 소리가 많이 어이없었는지 허리까지 숙여 내 앞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렇게 관찰 안 해도 안 닮은 거 뻔히 아는 놈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사진 찍는 건 어영부영 넘어갈 것 같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것을 그만두고 손을 뺐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쪽 분이 더 오빠같이 보여서…. 아무튼 같은 고등학생이면 더 잘됐네요. SNS 아이디 알려 주면 안 돼요?”
나는 고등학생이라고 단정 짓는 여고생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싶었지만 옛날로 치면 번호를 물어보는 것 같은 대화에 차마 끼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거 알려 주는 건 상관없는데 우린 아직 사진을 못 찍은 상태라. 사진부터 찍고.”
와 양심 없네?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정정하지 않는 녀석을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그렇게 보든 말든 핸드폰을 건네더니 나를 끌고 가 아까 여고생들이 자리 잡았던 곳에 세웠다. 나는 썩 마땅치 않았지만 일단 왔으니 대충 몇 장만 찍고 끝내 버리려고 카메라를 향해 섰다.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브이라도 해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남궁후가 내 어깨를 돌려세웠다.
“왜요?”
“아니 너 머리 좀 정리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내 머리? 머리띠를 쓴 이후 건드린 적이 없는데 정돈할 필요가 있나 싶어 인상을 찌푸렸지만 녀석은 아랑곳 않고 내 앞머리와 머리띠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또 뭘 하려고 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나는 마치 미용사에 빙의한 것처럼 신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을 보고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심한 순간, 남궁후가 갑자기 나보다 눈높이가 내려갈 정도로 무릎을 굽혔다. 반사적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좇아 고개를 숙이는데, 하체 쪽에 녀석의 팔이 감겨 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씨발, 설마. 나는 몸이 붕 뜨는 느낌에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요?!”
녀석은 내 엉덩이 밑에 팔을 받쳐 그대로 들어 올렸다. 상체 균형을 잡기 위해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보니 정말 내가 녀석에게 보여 줬던 사진의 포즈와 비슷해졌다. 이대로 내가 녀석을 향해 상체를 좀 내리고 서로 그윽하게만 보면 딱 그거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나 살폈다. 그리고 후회했다. 우리를 찍어 주겠다던 여고생 무리뿐만이 아니라 각자 사진 찍고 있던 커플들과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하하, 생각보다 가볍네, 곰돌이.”
“지금 태평하게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 아니, 일단 내려놓기부터 해요!”
나는 이제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는 녀석의 어깨를 치며 소리쳤다. 당연히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싫어, 아직 사진 안 찍었잖아. 거기 학생! 연사로 찍어!”
“아… 네, 네!”
어버버 하는 새 찰칵거리는 소리가 시작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쪽팔림에 내 고개는 점점 떨어졌고, 욕을 하고 싶은 것을 입술을 깨물어서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이게 뭐야 진짜.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왜 감아! 카메라 봐야지!”
“조용히 해요, 진짜. 안 그래도 쪽팔려 죽겠는데 카메라를 어떻게 봐요!”
“…흐음. 그래? 알았어. 그럼 그대로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심히 불안한 녀석의 말에 또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소리치려는데 몸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입술에 무언가 말캉한 것이 닿는 느낌에 놀라서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장난기 가득한 눈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멍하니 그 눈동자만 보고 있는데 녀석의 얼굴이 서서히 멀어지더니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다시 높아졌다. 남궁후는 활짝 웃으며 노래하듯 흥얼거렸다.
“커플 사진 성공.”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꺅하는 비명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진짜 미쳤나 봐 남궁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부끄러워서 미친 건가.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없는데 재밌기도 하고, 쟤는 사고 쳐 놓고 뭐가 그렇게 좋다고 저렇게 해맑게 웃는지 이해는 안 가는데 그게 또 실없게 웃겼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가리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곰돌아, 재밌지?”
“아니요.”
남궁후는 키득거리며 나를 살며시 내려놓더니 얼굴을 가린 손을 잡아 내렸다. 눈을 맞추고 작당 모의하는 것처럼 속닥거리는 녀석에게 나는 억지로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은 숨기지 못했다. 남궁후는 그런 내 볼을 쭉 잡아 늘였다.
“이렇게 웃고 있으면서 뭘 아니래.”
나는 다시 내 손가락을 빈틈없이 얽어 오는 녀석의 손을 마주 잡으며 피식 웃었다.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화가 나야 하는데 그냥 웃겼다. 내 꼴도 웃기고, 얘랑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뽀뽀를 했다는 것도 웃기고, 그게 사진으로 찍혔다는 것이 진짜 최고로 웃겼다.
그러다 문득 내가 긴장하고 있는 시간보다 어이가 없고, 황당해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여학생에게 걸어가는 녀석을 따라가며 어떤 의미론 참 대단하고 고마운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 가져간다.”
남궁후는 여학생 근처로 가자마자 핸드폰부터 받았다. 사실 여학생이 거의 넋을 놓고 우리를 번갈아 보기만 했기 때문에 녀석이 가져간다고 말하고 낚아채듯 가져왔다. 그리고 바로 사진을 확인하려는 모양인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옆에 서서 같이 보려다가 너무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느끼고 슬그머니 녀석의 등 뒤로 숨었다. 웃긴 건 웃긴 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녀석은 그런 나를 힐긋 보더니 별말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그새 사진을 다 확인한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수월하게 시선들로부터 숨을 수 있었다.
“학생, 아직도 내 SNS 알고 싶어?”
“예…? 아, 아니, 그게요. 저… 혹시 오늘 찍은 사진 올리실 거예요?”
왜인지 몰라도 어딘가 삐딱한 말투로 묻는 말에 여학생이 살짝 삑사리 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 행동에 어지간히 놀란 것 같았다.
“모르겠는데. 올려도 돼?”
남궁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한테 말한다는 것을 티 내려는 심산인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뺐다. 웬일이래. 내 의견을 다 물어보고.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어디 올리고 말고도 맘대로 할 것 같았던 녀석의 기특한 행동에 나는 칭찬의 의미로 등을 한번 토닥였다. 그리고 말로 할까 하다가 그냥 녀석의 등에 엑스를 그렸다.
“싫대.”
“아… 그럼 괜찮아요. 행, 행복하세요!”
저게 무슨 말이래. 뭔가 이상한 뉘앙스의 말에 눈만 내밀고 보니 여학생은 자기 친구들한테 달려가고 있었다.
어… 뭔가 되게 신나 보이네. 자기들끼리 손뼉을 치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는데 남궁후가 나를 잡아당겨 자기 앞에 세웠다.
“이따 해 지면 와서 한 번 더 찍자. 여기 밤 되면 더 예쁘대.”
아, 남궁후는 해 질 때까지 있을 예정이었구나. 나는 적당한 시간을 봐서 해 지기 전에 돌아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정 댈 핑계가 없으면 집에서 밥 먹고 싶다고 떼를 쓸 예정이었는데….
실내라서 하늘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린 아침 일찍 왔고 아직 입장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두워지기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 터였다. 불안했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 눈에 녀석의 뒤에 있는 회전목마가 보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려한 놀이기구와 웃고 있는 아이들, 손을 흔드는 어른들,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과 들떠 있는 학생들도 보였다. 나는 잠시간 그것들을 보고 있다가 다시 남궁후에게 시선을 옮겼다. 녀석은 싱글거리면서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말도 안 되는 첫사랑 컨셉에서부터 정신 못 차리게 엉뚱한 행동들이 떠오르고,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자꾸만 날아가 버리는 긴장감과 그 틈을 채우는 다양한 감정들. 나는 자꾸 내 볼을 주물거리는 녀석의 손을 잡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모처럼 낸 용기잖아.
“그땐 정상적으로 찍는다고 약속하면요.”
“그건 봐서.”
아깐 웬일로 내 의견을 묻는다 했다. 나는 이따가 또 찍을 때가 되면 그냥 알아서 잘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젠 본격적으로 놀이기구를 타러 가자고 외치는 남궁후를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목적을 이뤄서 그런지 느릿느릿 걷는 녀석 덕분에 내 보폭대로 걸어갈 수 있었다.
‘야! 좀 웃어 봐!’
‘다 했으면 이제 가자. 너 오늘 무리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웃으라고 했다! 사진이 너무 삭막하다고!’
나는 그와 아버지의 대화가 항상 신기했다. 끊임없이 실랑이를 하는 것 같은데 누구도 화나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면박을 당한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그도 뿌듯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뭔가 모자라단 말이야….’
나는 내가 웃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는 계속 웃으라고 소리치던 그는 나에겐 그저 하고 싶은 포즈를 취하라는 말만 했을 뿐 내 표정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재밌는 일이 있어도 그의 앞에서는 일부러 무표정하게 있으려고 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역시 절대 웃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잡힌 손을 꼼지락대면서 생각했다. 웃으라고 하면 웃을 텐데. 그러나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고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걸어온 그는 이번에도 나에겐 활짝 웃어 보였다.
‘진호 너는 완벽해! 진짜 귀엽고 멋지게 나왔어.’
나는 엄지를 내미는 그를 보고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다. 아주 작게 말한 건데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그는 감사할 것도 많다면서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덕분에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하는데 그가 나에게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너도 한번 보라면서 건네받은 카메라를 바로 가방에 넣는 아버지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그는 내 반응에 핀잔을 주는 대신, 잘 나왔으니 나중에 한번 보라고 발랄하게 말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진호야, 여기 어두워지고 나면 조명이 켜지면서 되게 예뻐진다? 우리 그것도 보고, 또 아까 퍼레이드 봤던 거 있잖아. 저녁에 보면 반짝거려서 더 예뻐. 그것까지 다 보고 가자?’
‘민영아.’
‘시끄러워. 이렇게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정도로는 몸에 무리 갈 일 없다고 몇 번을 말해.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니까 잔소리 그만하세요, 아저씨.’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시종일관 신나 하는 그와, 간간이 초조한 것을 숨기지 못하는 아버지를 양쪽에 두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파란 하늘. 밤이 되기까진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기뻤던 것 같다. 최대한 말을 아껴야 하고, 좋아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사실은 즐거웠던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못내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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