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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70화 (70/234)

70화

딩동.

- 누구세… 어머, 어머!

- 엄마?!

쾅.

“진호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어… 문 이거 부서진 거 아니에요?”

나는 급하게 나와 숨을 몰아쉬는 아주머니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문을 살피는 척했다. 정말 오랜만에 온 것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반겨 주실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힌 문은 멀쩡해 보였다.

“지금 그게 중요하니? 부서지면 하나 새로 달면 되는 거, 놔두고 얼른 들어와. 그동안 뭐 하면서 지냈길래 밥 먹으러도 안 와!”

“요즘 좀 바빠서요. 잘 지내셨어요?”

“네가 영 소식이 없어서 잘 못 지냈어, 얘. 어쩜 문자 한 통도 안 보내고 말이야.”

내가 어디 가 버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얼른 집 안으로 밀어 넣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결국 웃어 버렸다. 현관에는 달려 나가는 아주머니를 뒤따라온 것처럼 보이는 채예령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말은 괜찮다면서도 내심 문이 신경 쓰이셨는지 요리조리 살펴보면서도 타박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녀석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자 채예령도 같이 어깨를 으쓱였다.

“엄마 그 정도론 문 안 부서져요. 맨발로 나가 계시지 말고 들어오세요.”

“아니 부서졌을까 봐 그러는 게 아니고…… 흠흠. 진호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어! 잘 지냈어?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엄…줌마 속상하게. 왔으니까 밥 먹고 가. 아줌마가 오늘 왠지 고기반찬이 하고 싶어서 마침 돼지고기를 사 놨지 뭐니? 진호 온 김에 제육볶음 해야겠다!”

채예령이 한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짓던 아주머니는 막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선 내 어깨를 밀어 거실로 향했다. 명랑한 말소리를 들으면서 들어온 집은 바뀐 것이 없어서 오랜만인데도 어제 온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엄마 구워 주신다고 했잖아요!”

“시끄러! 원래 그냥 구워 먹는 거보다 양념해서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야.”

그지, 진호야? 하고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장난기 어린 어투로 말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마주치며 킥킥대는 우리를 보면서 채예령은 네네, 아무렴요, 라고 중얼거리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저 삐돌이 새끼. 맨날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아주머니에 관해선 어렸을 때부터 금방 삐지곤 했다. 그래도 가만 놔두면 풀릴 것을 알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아주머니를 향해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준비하실 거면 도울게요. 스승님 요리하시는데 제자가 쉴 수는 없죠!”

“에이, 진호 너 하산시킨 지가 몇 년인데! 청출어람이라고, 이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가 배워야 할 정도잖아. 그러지 말고 예령이랑 방에 들어가 쉬고 있어. 엄…줌마가 해 줄게. 진호 오랜만에 왔는데 편하게 있어.”

손을 내저으면서 부엌으로 가시던 아주머니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까는 표정을 못 봐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어색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겠지.

졸업이 확정된 것을 축하한답시고 채예령이랑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가 아주머니에게 호칭에 대해서 진상 짓을 한 일이 있었다.

그게 졸업식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체감하기엔 일 년이 훌쩍 넘은 일인 데다 그 뒤로도 몇 번 만났다는 기억도 있었지만, 아주머니에겐 그 일 이후 나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하아, 회귀 후 정신이 없긴 했다지만 그런 중요한 것도 잊고 있었다니. 그래서 아까 나를 유독 더 반겼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서야 아까 아주머니의 눈에 서려 있던 게 안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에도 여기 다시 오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번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회귀 전에 뵀을 때보다 훨씬 더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아 많이 죄송했다. 하지만 그때 했던 말은 진심이었으므로 나는 전과 같이 그냥 멋쩍게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에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요리 연구가를 제가 어떻게 가르쳐요. 평생 배워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제육볶음은 정말 아주머니 손맛 못 따라잡겠어요. 얼마 전에도 했었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아니야, 진호 너 진짜 재능 있어. 오죽하면 내가 너 중학교 때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봤겠니. 내 학생들보다 네가 훨씬 빨리 배우고 센스도 있어서 아줌마는 아직도 아쉬워.”

일부러 더 능청스럽게 아주머니를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마자 나를 과분하게 칭찬하는 말이 돌아왔다. 윙크까지 하면서 얘기하시는 모습에 나는 그냥 한 번 더 웃어 보이며 냉장고에 있는 고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전달하려던 나는 이어진 말에 나도 모르게 얼어 버렸다.

“네 엄마만 아니었음 내가 진작에 옆에 딱 끼고 안 놔줬을 거야, 얘.”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옛 기억에 멀거니 서서 그 일을 떠올리는데 옆에서 하얀 손이 쑥 나오더니 고기를 채 갔다. 채예령이었다.

씩 웃은 녀석은 내 등을 한번 툭 치더니 아주머니가 계신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진호 사회복지학과 나왔거든요? 요리하고 싶었으면 요리 관련 학과를 갔겠지. 괜히 내 친구 곤란하게 하지 말고 아들이 아니라 아들내미 친.구가 좋아하는 제육볶음 얼른 해 주세요. 배고파.”

“아니 아쉬우니까 그러지. 아쉬워서.”

아주머니는 채예령한테 고기를 받으면서도 계속 나를 보며 혼잣말하듯 우물거리셨다. 채예령 덕분에 멍 때리던 것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 말에 대충 웃음으로 답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슬슬 벗어나야 할 때다.

채예령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나는 채예령만 볼 수 있게 배꼽 밑에다 손을 바짝 붙이고 녀석의 방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다행히 바로 눈치챈 채예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주머니를 돌려 주방으로 밀면서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네네 알았습니다! 야, 엄마 또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내 방에 가서 오랜만에 게임이나 하자.”

“쓸데없는 소리가 뭐야 채예령! 엄마한테 정말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밥 다 되면 부를 테니까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놀고 있어.”

다행히 아주머니도 우리를 더 붙잡아 놓을 생각은 없으셨는지 밉지 않게 흘겨보시면서 컵을 건네주고 바로 요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채예령이 컵을 받아 드는 것을 보고 나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와 콜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거실과 마찬가지로 매우 익숙한 채예령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나 그랬듯 채예령은 책상 의자에 앉고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야 앉아 있어. 누우면 게을러지잖아.”

“시끄러. 나 원래 게을러.”

매번 똑같은 행동에 매번 똑같은 잔소리, 똑같은 대답. 현관에서부터 여기 오기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게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며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는 것을 미룬 날들과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망설이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한 번은 와야 할 거, 그냥 와서 충전이나 하고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호 너 취직 활동은 하고 있는 거야? 학원 다닌다면서 토익 시험은 언제 봐?”

하… 사람이 여운에 빠져 있을 틈을 안 주네. 이런 거까지 여전할 필요는 없는데 정말 한결같은 놈이다, 저놈도.

“학점이 좀 안 좋긴 해도 이런저런 점수 만들어서 붙이면 명문대 타이틀 그거 먹힐 거야. 일단 대기업은 당연히 넣어 보는 거고, 탄탄한 중소기업 찾아서 거기도 좀 넣어 보고….”

“나 민선우 형네 집에 취직됐어. 지금은 사정상 출근 못 하고 있지만 조만간 할 거야.”

이대로 가다간 어느 기업에 넣어야 하는지까지도 일장연설을 할 기세길래 도중에 말을 끊고 민선우네 취직한 사실을 알려 줬다. 잔소리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속셈이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선우형네? 뭘로? …설마, 청소?”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어미에 나는 눈을 떠서 녀석을 올려다봤다. 한껏 찌푸린 얼굴.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표정이었다.

“그거랑 요리랑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하아 ……진호야.”

아씨 지뢰 밟았네.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는 채예령은 잔소리 경보 3단계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잔소리가 쏟아졌다.

“요즘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너 그 고생하고 들어간 대학에서 공부한 거 안 아까워? 전공 살리란 말은 안 해도 남들 하는 사회생활은 한 번쯤 해 봐야지. 번듯한 직업이라는 말이 왜 있겠어, 진호야. 청소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첫 직업으로는 좀 아니지 않아?”

“그게 뭐가 어때….”

“지금 시기 놓치면 일반 회사는 들어가기 힘들어. 그만큼 공백이 생기는 거고, 나이 차면 신입으로 받기 꺼려하니까. 갈 수 있을 때 일단 정석대로 살아 보고 그래도 안 맞으면 다른 길을 가야지 넌 왜 애가 벌써부터…!”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없이 우다다다 잔소리를 해 대던 녀석은 내가 귀를 막는 제스처를 보이고 나서야 폭격을 멈췄다. 마침 점점 언성이 높아지던 터라 입을 다문 채예령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녀석이 긴 한숨을 내쉬면서 좀 진정한 것 같길래 다시 손을 내리고 슬쩍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열자마자 채예령은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도 그 집 너한테 소개할 때 내용 들어서 조건 좋은 건 대충 알아, 아는데 그래도 분야가 분야잖아.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로 소개해 준 거지 직업으로 하라는 게 아니었다고. 너 그 직업 너네 어머니한테 말씀드릴 수 있어? 요리도 못 하게 하셨던 분인데….”

아 저 새끼 선 넘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잔소리하는 거에 치중해서 나오는 대로 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쯤에서 진짜 멈춰 줘야겠다는 생각에 채예령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해라.”

눈은 계속 감고 있었기에 녀석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바로 조용해진 걸로 봐선 자기가 방금 무슨 얘길 했는지 본인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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