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선우는 정신을 잃은 진호를 얼른 추슬러 안았다. 무릎 뒤로 팔을 넣어 안정감 있게 진호를 들어 올린 그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던 지배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안내하세요.”
지배인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서 선우가 예약한 방으로 안내했다.
“훌쩍….”
선우는 자면서도 훌쩍이는 진호를 보며 그냥 침실로 데려가 눕혀 줘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카페가 맞냐고 계속 확인하던 그를 떠올리며 일단은 그나마 카페로 보이는 공간에 있기로 했다.
그는 진호를 거실 소파에 내려놓았다. 수건을 가져와 얼굴이라도 좀 닦아 줄까 생각하며 화장실 쪽을 보던 선우는 바지가 당겨지는 느낌에 밑을 내려다봤다. 진호가 그의 바지를 꼭 쥐고 있었다. 깬 건가 해서 얼굴을 잠시간 관찰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짓궂은 생각이 든 선우가 일부러 그 손을 쳐냈다. 그러자 허전해진 손을 꼼지락거리던 진호가 몸을 웅크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정말 탈수를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선우는 진호의 겨드랑이로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자신이 먼저 소파에 앉은 후 그의 무릎 위로 진호를 앉혀 마주 안아 주었다. 빈틈없이 밀착된 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진호가 선우의 어깨에 볼을 부비며 슬쩍 웃었다. 선우는 그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작게 ‘헤헤’ 하는 소리로 그가 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그 모습이 조금 어이가 없었던 선우는 이마를 짚으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호의 머리를 옮겨 땀과 눈물범벅인 얼굴을 한번 손으로 쓸어주고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진호는 언제 그렇게 난리를 쳤냐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나비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그리고 왜 내가 널 두고 갈 거라는 이야기를 했을까.”
선우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것 같은 질문을 허공에 던졌다. 잠든 지금이 아니라, 깨어났을 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진호는 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선우의 직감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텔 복도에서 보여 준 모습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우는 매사 단순하게 생각하고, 뭐든 금방 잊어 버리던 진호가 사실은 그런 척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안 좋은 기억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가 진호의 방어 기제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도망을 가려고 했을까. 그 일에 내가 어떤 연관이 있길래 나를 그렇게 원망 어린 눈으로 본 걸까. 선우는 떠오르는 질문을 고개를 저어 흐트러트렸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호의 등허리를 쓸어내리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진호야, 나비야. 나는 네가 뭘 겪었던 우리에게 뭘 숨기고 있든 상관없으니, 얼른 내 손에 들어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예쁘게 우는 모습을 다른 새끼들에게 보여 주기는 싫으니까. 선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형. 진짜 죄송해요.”
“진짜 괜찮아요. 다행히 세탁하는 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잖아요.”
선우는 계속해서 사과하는 진호에게 다정히 웃어 주었다. 그에게 이 정도는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다. 하드하게 놀다 보면 토하는 것 정도야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선우는 프론트에 연락을 하기 위해 인터폰을 찾으며 아직 무릎 위에 있는 진호에게 말했다.
“옷 맡길 거니까 벗어요.”
“네…? 아, 저. 제 옷까지요? 아니, 제, 제 옷은 그냥 제가 손으로 빨게요!”
거의 소리치듯 말한 진호가 벌떡 일어나더니 방 여기저기를 기웃댔다. 선우는 화장실을 찾는 것 같은 그 행동에 피식 웃으며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어 프론트에 연락했다. 두 벌의 옷에 대한 세탁을 의뢰한 그는 드디어 화장실을 찾은 진호에게 향했다.
선우가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 진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자기 자신을 탓하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선우는 자기가 온 것도 눈치 못 채고 있는 진호에게 걸어가 부드럽게 몸을 돌렸다. 놀랐는지 눈이 커진 진호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선우는 일부러 더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진호 씨 옷, 오늘 선물한 건데 제대로 된 세재도 없이 빨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좀 속상할 거 같아요.”
“아….”
역시 예상대로 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우는 그 틈을 타 진호가 입고 있는 셔츠 단추를 천천히 끌렀다. 상의를 다 벗긴 후엔 멍하니 있는 진호의 볼을 톡 쳐서 자신을 보게 만든 후 바지를 가리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진호는 입술을 꼭 깨물며 느릿느릿 바지를 벗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선우도 화장실에서 나와 탈의를 마쳤을 때였다. 그는 옷장에서 가운을 꺼내 입고, 남은 한 벌의 가운을 아직도 화장실에 있는 진호에게 가져다주었다. 바지까지 다 벗은 채 손에 든 옷으로 어설프게 몸을 가리고 있던 진호는 가운을 받으면서 내밀어진 손에 제 옷을 넘겼다. 선우는 속옷만 입고 쑥스러워 하는 진호의 모습에 가운을 괜히 줬나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진호는 계속 화장실에만 있으려고 할지도 몰랐다. 선우는 여기서 더 이상 성가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 그렇게 서 있으려고요? 아까 옷 맡기는 김에 마실 것도 시켰으니 곧 올 거예요.”
“아니, 하…. 저 그냥 물이면 될 거 같은데. 마실 것까지….”
선우가 일을 마치고 다시 들어와 앉을 때까지 진호는 화장실이 있는 방의 문가에 뻘쭘하게 서 있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계속 눈치를 보는 게 귀엽긴 했지만, 이렇게 떨어져 있어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진호가 스스로 올 때까지 기다리려던 그는 결국 손을 까닥였다. 진호는 머뭇거리면서도 손짓하는 대로 그에게 걸어왔다.
선우는 걸어오면서 세탁비는 얼마일까 중얼거리는 진호를 보며 작게 웃었다. 세탁비를 내 줄 생각인 건가. 이 호텔은 선우와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만큼 모든 비용이 일반 호텔보다 매우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세탁비 정도면 진호가 지불 가능하긴 했지만, 문제는 초과 예약에 대한 비용이었다. 이 호텔은 고객끼리 마주치치 않도록 방문부터 퇴실까지 모두 예약된 시간에만 이루어지며, 당연히 예약된 시간엔 다른 고객은 방문조차 불가능했다. 방에 대한 대금은 물론이고 예약 시간에 대한 대금도 당연히 청구된다. 거기다 어떠한 사정으로든 예약 시간을 초과할 경우 일반 금액의 5배를 지불해야 했다.
선우는 오늘 30분을 예약했었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넉넉했을 시간은 예상치 못한 해프닝으로 인해 꽤나 많이 초과되었다. 그렇게 발생한 비용이 오늘 그에게 선물한 옷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알려 주면 진호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지만 선우는 참기로 했다.
경험상 이 이상으로 경제적인 격차를 드러냈을 때엔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돌아왔었다. 가져 보지 못한 것들을 그를 통해 가지려고 하거나, 스스로는 얻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으로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하거나. 선우는 그 두 가지 반응 모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혹여나 진호가 둘 중 하나라도 보인다면 그의 관심은 식을 것이 분명했고, 그러기엔 아직 조금 더 이 유흥을 즐기고 싶었다.
“거기 말고 여기 앉아요.”
“아니, 굳이…. 네. 알겠어요.”
느린 걸음으로 걸어온 진호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선우는 단호한 말투로 제지했다. 그는 앉으려다 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을 보는 진호에게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강조하듯 손가락으로 같은 자리를 가리키자, 반박하려던 진호는 짧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그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우는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은 진호의 어깨를 감싸 당겼다. 순식간에 몸이 기울여진 진호는 선우에게 완전히 기댄 꼴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이제 좀 괜찮아요? 어지럽거나 그러진 않아요?”
진호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따지려고 들었지만, 그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선우는 주의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고, 진호는 말문이 막혔는지 입만 벙긋거렸다. 그 틈을 타 선우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을 내려 이번엔 진호의 허벅지를 잡고 하체까지 자기 쪽으로 당겨왔다.
선우와 진호는 빈틈없이 밀착되었다. 키 차이 때문에 진호를 내려다보게 된 선우는 가운 사이로 보이는 젖꼭지를 한 번 확인하고 진호의 이마에 그의 이마를 댔다.
“열은 없는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하고 말하는 소리에 진호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진호는 남자를 이성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외모 또한 그를 정신없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확신했다.
진호는 멘탈이 한 번 무너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묘하게 순종적이었고, 선우는 그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상하네, 왜 느끼는 것 같지? 내가 뭘 했다고?”
“아니, 읏….”
얼굴을 붉히고 입술을 깨무는 진호를 보며 선우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민감한 편인 그는 허벅지를 잡히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것 같았다. 선우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빼며 은근하게 자극을 주다가 진호가 부정하려는 순간 엄지손가락으로 허벅지와 사타구니 사이를 지그시 눌렀다. 뭉근하게 올라오는 간지러운 감각에 진호가 허리를 굽히며 신음을 흘렸다.
“누가 얼굴 내리라고 했어.”
“아,”
선우는 진호의 몸에 두른 팔로 등을 밀어 굽혀진 허리를 펴게 만들었다. 다시 자기를 마주 봐 오는 진호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선우는 입술이 닿기 직전 눈을 감아 버린 진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비야, 혀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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