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나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나마 믿을 만한 최후의 보루도 코웃음 당한 마당에 저항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씨발. 말 졸라 잘하는구만, 아까는 왜 그랬대. 아니, 차라리 계속 이해 안 되게 말하지. 못 알아먹은 척이나 하게.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고 침대로 올라갔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팬티를 벗는데 쪽도 안 팔린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슬쩍 벌린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정새빈의 기분이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때리진 않겠지. 아, 아프게도 안 할 거야. 믿자. 믿는 수밖에 없어!
“되게 떠네. 그러게 나 기분 나빠지기 전에 말 듣지…. 그래도 괜찮아! 나 다시 기분 최고야. 쫑쫑이 거시기 귀여워.”
다시 멍한 표정과 아이 같은 말투로 돌아온 정새빈은 내 페니스와 고환을 살살 쓸었다. 차라리 확 쥐면 모르겠는데 손바닥이 닿을 듯 말 듯 스치니 간질거린다.
나는 어느새 돌아온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정새빈의 손가락이 고환 밑을 쿡 찌르자마자 무너져 버렸다.
“윽…!”
찌릿, 하고 약하게 전류가 흐르는 느낌은 곧이어 허리를 들썩일 만큼 큰 것으로 변했다. 놈이 내 페니스를 정말 입 속에 넣어버린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몰아치는 감각에 못 이겨 손가락을 깨물었다.
“흐…, 으읏…!”
이대로 차버리고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뿌옇게 떠올랐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고 있다. 기분 좋아, 사정감이 짙어질수록 눈앞에서 그 문장만 깜박였다.
정새빈은 펠라가 정말 하고 싶었는지 빌어먹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혀로 기둥을 쓸고 선단을 간질이고 입으로 전체를 감싸며 조이는 기술이 장난 아니게 능숙하다.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정새빈은 고환 양쪽을 하나씩 베어 물더니 뒷부분의 살을 한 번에 싹 훑어 올렸다.
“힉…!”
훅 치미는 사정감을 이기지 못하고 분출하려는 순간 벅찼던 자극이 사라져 버렸다. 왜…?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떠 나도 모르게 정새빈을 찾았다. 시야에 포착된 놈은 내 다리를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는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
“펠라 끝! 히히. 이제 후장 핥아야지!”
…이 새낀 진짜 씨발놈이다.
나는 무력감과 수치심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꿈꿨던 나의 첫 경험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발꿈치로 녀석의 뒷머리를 가격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잡고 있는 녀석의 악력이 심상치 않아서, 아까 내 아가리를 찢어줄 수 있다던 녀석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두 팔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창피해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김진호, 너 왜 대답을…!”
이제 하다하다 환청까지 들린다. 나는 나를 부르는 최태혁의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그래, 네가 지금 와 주면 얼마나 좋겠냐. 와서 내 밑에 있는 새끼 좀 제대로 한 대 때려주면 얼마나….
“이 미친 새끼가!”
퍼억!
상상이라기엔 너무 실감 나는 소리와 함께 내 허벅지를 잡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웠다. 밝아진 시야에는 거짓말처럼 험악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있는 최태혁이 보였다. 정새빈은 방구석에 볼이 새빨개진 채로 구겨져 있었다. 매우 안심되고 쌤통인 광경이었다.
* * *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평범한가? 결론은 항상 평범하다, 로 끝났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오그라들어 하다가도, 또 어느 때가 되면 문득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곤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평범할까?
그리고 학비를 위해 알바를 하다가 결국 휴학까지 해야 했던 날부턴, 지금까지 내가 낸 답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 평범한 것도 쉬운 건 아니구나. 빌어먹을.
거기다 이제 회귀까지 했으니 평범하지 않음을 넘어 특별함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것은 그 인생을 살아가는 당사자인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을 바란 적도, 특별해지기를 염원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형들. 제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도대체 저희 집엔 어떻게 들어오시는 거예요?”
저번부터 기회가 없어 넘어갔는데 이젠 정말 알아야겠다. 그래도 전엔 최태혁한테 줬던 여벌 키를 복사해서 들어온 건가 했지만, 이번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나 열쇠 얼마 전에 바꿨는데? 그새 우리 집에 몰래 침입해 열쇠만 훔쳤을 리는 없고, 특별히 소리가 나지 않았던 걸 보면 부수고 들어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서로, 라기엔 굉장히 일방적으로 정새빈을 노려보고 있는 최태혁과 정새빈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물론 둘은 지 할 일하느라 내 의문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선우가?”
“민선우는 왜…. 설마 그놈은 알면서 안 왔단 거냐?”
“아마.”
허 참. 무뚝뚝하고 말 없는 애들한텐 무슨 텔레파시 능력이라도 있나 보다. 아니면 둘 다 지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해 듣는 무한 이기주의자들이든지.
쟤네 혹시 내 말이 너무 길고 정확하고 구성져서 못 알아듣는 거 아냐? 내가 말을 너무 잘하나? 진짜 어이없어 죽겠다.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대화를 시도하는 걸 포기하고 혼자 생각에 잠기기로 했다. 원래 집에만 붙어 있는 성격이라 최태혁이 집 밖에 붙여 놓은 보안 요원들은 이제 신경도 안 쓰인다. 또,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다들 캐주얼한 차림을 하거나 정장 재킷은 꼭 벗고 다녔기 때문에 얼핏 보면 우리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동네 주민처럼도 보였다.
아무튼 덕분에 안전하고, 넉넉한 돈으로 빚 잘 갚고 있고, 생활비 안 모자라고, 돈도 일정하게 부치고 있다. 요즘엔 심지어 저축도 한다. 문제는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저놈들이다.
나로서도 이제 와서라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다. 변명을 하자면 요 근래 평생 놀랄 걸 한꺼번에 몰아 놀라서 무단 침입은 심각하게 고려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서 깨달은 건데, 내가 겪은 모든 정신없는 일들의 근원은 아무래도 그 무단 침입에 있는 듯하다. …그래, 진짜 총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그거였다.
“아직은 안 돼.”
“싫어.”
“…정새빈.”
최태혁은 내 손으로 집에 들였으니 생략하고, 쌍둥이들은 허구한 날 우리 집에 들락거리면서 사람 정신을 빼 놓더니 어느 순간부턴 다들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뒤로 갈수록 같이 있는 게 익숙해져서, 집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조금 감격스러워서 그냥 이상하단 생각을 안 했다. 머리가 확 돌아서 나한테 몹쓸 짓을 하려고 한 민선우와 그런 날 구하겠다고 온 최태혁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거실에 들어앉은 걸 보고서야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 명은 물론이요, 그들과 채예령의 사이에.
그래서 급히 열쇠공을 불렀다. 사실 막연히 그들이라면 바꿔도 소용없을 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 나름의 의사 표시였다. 우리 집에, 나한테 마음대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부의 표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의 두 놈은 존재만으로 그들이 내 의사를 얼마나 개무시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려 주는 좋은 예인 셈이다.
대뜸 왜 왔냐고 물어보려다 저놈들과 똑같은 대화법을 쓰기 싫어 자제하고, 그래도 최태혁 덕분에 내 항문을 구할 수 있었으니 돌리고 돌려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은 거다. 실제로 그 방법도 좀 궁금했고. 나는 다시 말없이 째려보기 시작한 최태혁의 바지를 잡아당겨 관심을 끌었다.
짜식. 오랜만에 보니까 더 잘생겨 보인다. 뜬금없는 거 아는데, 역시 얼굴은 이놈이 짱인 것 같다.
“어떻게 들어왔냐고요.”
“문으로.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너, 지금 무슨 짓을 당할 뻔한 줄 알아?”
알지 그럼. 네놈이 타이밍 좋게 들어와 줘서 참사는 막았지만 혀는 살짝 닿았는데. 으윽, 상상했던 것보다 더 기분이 나빴던 그 느낌이 다시 떠오르려고 한다.
나는 다시 잔소리쟁이 모드로 돌아가 이것저것 훈계하려는 놈한테 내 질문이 먼저라고 못 박았다.
이런 걸 봐도 내가 얘네랑 꽤 많이 얽혔다는 걸 알 수 있다. 옛날엔 무서워서 눈도 못 봤는데, 지금은 이렇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는 건 그다지 싫지 않다. 특히 아까 정새빈에게 지었던 야차 같은 표정과 달리 조금은 다정한 듯 보이는 최태혁의 표정은 전혀 싫지 않았다.
이런 점은 정말 좋은데….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저 놈들이랑 더욱 곤란하게 얽힐 것 같다. 자의식과잉인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서 더 가까워져 봤자 좋은 꼴로 끝날 것 같진 않다. 나는 나와 채예령이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
“형들이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들인 거 알았으니까 다음부턴 초인종 눌러주세요.”
“…너,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아니, 그건 물론 고마운데요. 그래도 앞으론 그러지 말아요. 새빈 선배도요. 아! 다른 형들한텐 형이 좀 전해 줘요.”
샐샐 웃으면서 말하는데 네가 어쩔 거야. 내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잡고 있던 바지자락을 살짝 살짝 흔들며 조르는 투로 할 말을 다 했다. 그 모습이 의도한 대로 귀여웠느냐 하는 건 내 소관이 아니다. 일단 주먹이 날아오진 않았으니 통과겠지, 뭐. 내가 말하는 건 씨알도 안 먹힐 테니까 이왕이면 정말 최태혁이 말해 줬으면 싶다.
확답을 얻기 위해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최태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봤다. 그러자 무슨 생각인지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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