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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11화 (11/234)

11화

“혀, 형…. 잠깐…. 흣….”

커다란 손이 기둥을 감싼 채 엄지손가락으로 선단을 뭉개는 감각이 자극적이다. 내 것을 쥐고 있는 손을 치우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저 무기력하게 얹어 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힘줄이 세차게 돋아있는 손은 여전히 자기 맘대로 쿠퍼 액이 잔뜩 나온 선단을 간질이고, 뿌리 쪽을 꾹 눌러온다.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앞으로 움츠리며 어떻게든 감각을 줄여보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주어 최태혁의 손을 떼어내 보려는 순간, 내 움직임에 자극받았다는 듯이 커다란 손이 기둥을 잡고 세차게 움직였다.

“아, 아아…. 잠, 안 돼. 안 돼요…!”

“쉬-. 괜찮으니까 내보내.”

뒷목에 지긋이 닿아오는 입술을 느끼며, 나는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도리질을 치며 최대한 쾌감에서 멀어지고자 했지만 귀 뒤에서부터 목선을 핥아 내리는 감각에 결국 몸을 크게 움찔거리며 잔뜩 내보내고 말았다.

총칼 없는 전쟁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걸 거다.

왜 이놈은 갑자기 미친 걸까? 분명 회귀하기 전엔 이랬던 거 같지 않은데, 애가 이상해졌다.

아니, 사실 이상해진 건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는 매일 밤 엄청난 테크니션과 질척한 키스를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촉감까지 리얼하게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현실적인 꿈이라서 항상 엄청난 흥분 상태로 눈을 뜬다.

그렇게 눈을 뜨면 일단 더러운 기분을 느끼며, 민감해진 몸을 가라앉히려고 한동안 웅크리고 있는다. 그러다 좀 가라앉은 것 같으면 얼른 화장실로 가기 위해 조용히 일어나는데, 그러면 그때 기막힌 타이밍으로 최태혁이 눈을 번쩍 뜬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괜찮다, 아니다, 그냥 혼자 하겠다, 아니다, 아침이라 그냥 이렇게 된 거다, 아닌 거 다 안다…. 이 씨불놈의 새끼는 내 말은 다 아니란다.

결국 나는 그 무지막지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매일 아침 건장한 남자의 손에 내 아까운 정자 삼억 마리를 버린다. 그리고 최태혁은 그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동안 빙글빙글 웃으며, 진짜 한 대 쳐주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다. 패배감에 젖어 숨을 고르고 있는데, 놈이 어딘가 만족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넌 꽤 쾌감에 약해.”

“…아니에요.”

진짜 언젠가는 저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얼굴을 보면 욕이 나올 것 같아서 그냥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대답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너는 아침부터 강제로 정기를 빨린 것 같은 상황에서 그런 소리 들으면 기분 좋겠냐, 멍청아. 젠장. 힘을 기르든가 해야지….

다행히 오늘부터 엄청난 시급을 받는 일을 하게 됐으니 몸에 좋은 것 좀 챙겨 먹어야겠다.

하, 시급 5만 원. 미쳤나 봐, 너무 좋아. 꿈같은 시급에 황홀해졌던 것도 잠시,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시급도 시급이지만 일단 민선우랑 친해지는 게 우선이다.

전생의 예령이 말을 좀 빌리자면 민선우는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려주는 걸 좋아했다고 했는데…. 그럼 내 학원 시간은…. 제기랄. 처음에야 최태혁이랑 채예령을 같이 있게 하려고 시작한 거였지만 나름 재밌었는데. 시간 옮길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형. 저 오늘부터 나가는 시간 바뀌는 거 알고 계시죠?”

“…오늘부터였나?”

“예. 오늘은 일단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하고, 내일부터 바로 일 시작할 거 같아요.”

“아침에 좀 더 여유로워지겠군.”

“맞아요. 이제 저도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다는 얘기죠, 뭐. 흐흐흐. 아, 근데 들어오는 게 좀 더 늦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연장될 수 있는 일이라, 학원 시간을 좀 더 늦은 시간대로 바꾸면 아마 집엔 11시는 넘어서 들어올 것….”

갑자기 놈의 표정이 존나 살벌해졌다. 갑자기 왜 이래. 나는 급변한 녀석의 표정에 당황해서 젓가락을 든 자세 그대로 정지했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아닌데? 나 뭐 욕한 거도 없고, 아무 잘못 없는데? 아니면 밥이 맛이 없었나?

“저기…. 형, 뭐 입에 안 맞으세요?”

“밤…. 열한 시…?”

나는 들었다. 분명 이를 갈았다. 한껏 찌푸린 인상과 낮아진 목소리, 이를 갈며 짓씹듯 말하는 모습에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그리고 최태혁이 쥐고 있던 쇠젓가락이 휘기 시작하는 순간 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워.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별안간 최태혁의 커다란 몸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저 표정을 본 적이 있다. 험악한 얼굴, 차가운 눈빛. 나는 이제 숨까지 조금 가빠져 오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잽싸게 숟가락을 내려놓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놈에게 방금 먹은 미역국이 짰냐, 오징어채가 너무 질기냐, 아님 어제저녁에 먹었던 나물을 다시 내놔서 그러냐, 별의 별걸 다 물어봤지만 놈의 표정은 요지부동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차가운 눈빛과는 차원이 다른 눈빛에 목이 조이는 것 같았다.

겁에 질려 입을 꼭 다물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워 눈물이 다 고일 지경이었다.

최태혁은 그런 살벌한 침묵 상태를 좀 더 지키다 표정을 풀며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때리려는 건 줄 알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커다란 손은 내 눈가만 훔치고 떨어져 나갔다. 진짜 내 눈에 눈물이 고이기는 했었는지 최태혁이 거둬간 손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놈이 표정을 푸는 걸 보고 천천히 눈치를 보며 몸을 바로 세웠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더니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가 놓더니 다시 정색하며 말했다.

“늦어.”

“네, 네?”

나는 놀란 마음에 잘못 들은 건가 하고 되물었다. 쟤 방금 늦다고 한 거야? 뭐가? 밥이? 아닌데. 우리 보통 이 시간에 먹었잖아.

“아홉 시.”

아홉…? 나는 한참 뒤에야 놈이 뭘 말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이 벌어졌다. 최태혁은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휘어버린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늦어도 아홉 시까지는 들어와라.”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내 귀가 시간이 늦다고 방금 그 지랄을 한 거다. 황당함이 지나쳐 곧장 반박이 튀어 나갔다.

“아니, 그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

“아홉 시.”

“그러니까,”

“세 번 말해야 하나?”

“옙.”

최태혁은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도대체 다 큰 성인이 몇 시에 들어오든 말든 뭔 상관인가 싶고, 그걸 왜 최태혁이 이래라저래라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지만 아까의 두려움이 남았는지 차마 반기를 드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원하는 대답을 해주자. 이러고 늦으면 지가 어쩔 거야.

나는 속으로 전혀 순종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며 겉으론 놈에게 순종적인 척 굴었다. 내 대답에 좀 더 표정이 풀린 놈에게 오랜만에 먹여주기 서비스를 선사했다. 물론 밥까진 아니고, 그냥 그놈이 좋아하는 반찬을 입에 넣어줬다.

간혹 울컥 짜증이 치솟을 땐 몸에 좋은 거니까 싫어도 먹어야 한다고 엄한 표정을 지으며 놈이 눈길도 안 주는 피망 무침 따위를 먹였다.

“오늘은 몇 시에 나가지?”

“다 먹으면 바로 준비하고 나가려구요. 오늘은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라 바로 들어올 거예요, 아마.”

“아마?”

“아니요. 일찍 들어와요. 꼭.”

끄덕이는 고개를 한 번이라도 잡고 흔들어 봤음 소원이 없겠다. 내 스케줄을 지 맘대로 조종하는 꼴이 보기 싫었지만 그냥 닥치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겐 개기지 말자는 게 내 신조였기에. 가끔 나도 내가 심히 찌질이 같다.

* * *

“진짜 크다….”

나는 지금 내가 서민이라는 사실을 엄청나게 실감하고 있다.

이게 대문이라고? 광화문이 아니고? 그냥 성문 아닌가? 진짜 이게 집 대문이라고? 이게?!

나는 일개 집의 대문 따위가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 채예령네도 부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집은 문만으로 그 생각을 와장창 부숴놓았다.

더욱 놀란 것은 단지 문 앞에 서기만 했을 뿐인데 지이잉-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인터폰에서 누구시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린 거다. 화들짝 놀란 나는 그만 소리를 야무지게 지르고 말았다. 한참을 왁, 악, 꺅, 으악- 거리다 목이 아파 잠시 멈췄을 때 ‘왼쪽 위를 보시면 CCTV가 있습니다.’ 하는 말이 들렸다.

쪽팔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리며 회사에서 준 서류랑 내 신분증 등을 인터폰에 비추었다.

-신원 확인 완료.

얼마 안 있어 소리와 함께 내 입을 쩍 벌릴 만한 일이 또 벌어졌다. 그 커다란 문이 자동으로 열린 것이다. 와-. 이 큰 게 자동으로 열리니까 뭔가 영화의 한 장면 같네. 사람이 들어갈 때마다 이렇게 열리는 건가?

나는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넓은 정원 중앙에 나 있는 예쁜 돌길을 걸어 드디어 집 문 앞에 도착했다. 서양 대저택을 모던하게 지어놓은 것 같은 집은 꿈에서라도 한번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새삼 민선우와 대학 때 친해지지 못했던 것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대학 때 밥값이 조금이라도 줄었을지도 모르는데…!

농담 같은 생각을 하며 정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십시오. 김진호씨 맞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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