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00)화 (100/102)
  • #100

    “헉…허억…. 강…하…! 태하!”

    “왜 멈춰. 좀 더 달려야 해.”

    이겸은 그를 꼭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하아, 지쳤어. 눈앞이 노랗다.”

    “…음. 그럼 10분 쉬자.”

    겨우 받아 낸 허락에 이겸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하다. 강태하는 왜 멀쩡해 보이는 거지? 난 헌터인데? 얜 대체 몇 살 때부터 운동을 한 거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다가왔다.

    “겸아. 이거 봐.”

    “뭔데?”

    실전에서 쓰기 좋은 각 종목별 기술을 모아 둔 영상이었다. 태권도, 복싱, 주짓수… 다양했다.

    “이건 왜?”

    “한번 해 볼래?”

    “…뭐? 누구한테? 너한테?”

    이겸은 절대 싫다며 도리질 쳤다. 맨날 혼자 운동하다가 같이 운동할 사람이 생겨 신난 건 알겠는데 이겸은 현재 딱 죽을 맛이었다.

    “외우긴 했지?”

    “대충은. 그래도 안 해. 함부로 하다 진짜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강태하는 의외로 쉽게 포기했다.

    “이제 일어나. 10분 지났다. 달리자.”

    “…….”

    그럼 그렇지. 포기한 게 아니라 휴식 시간이 끝나서 잠깐 미루기로 한 거군.

    서도현이 왜 안 돼? 이상하다, 이걸 왜 못하지? 이런 식으로 거칠게 채찍질을 한다면, 강태하는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가 보자, 라며 부드럽게 채찍질을 했다. 결론은 둘 다 채찍질을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겸은 그로부터 한 시간은 더 달리고 나서야 운동을 끝낼 수 있었다.

    그들은 운동을 끝내고 근처 식당에 들어섰다.

    “맛있어?”

    강태하는 피식 웃으며 반찬 그릇을 이겸의 앞으로 옮겨 줬다.

    “어. 아침부터 운동하니까 밥이 잘 넘어가긴 하네.”

    “개운하지?”

    “개운… 은 아니고 몸이 쑤셔.”

    “꾸준히 하면 개운해질 거야.”

    이겸은 슬쩍 강태하를 훔쳐봤다. 자신과 같이 운동을 했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로봇이야 뭐야? 지치질 않네.

    “새벽에 일어났는데 피곤하지는 않고?”

    “죽을 것 같아. 침대에 눕고 싶어.”

    이겸이 앓는 소리를 하자 강태하가 얕게 웃었다.

    “그럼 이제 아침 운동 안 할 거야?”

    “…….”

    거기엔 또 침묵했다. 힘들긴 했지만 어차피 해야 될 운동이다.

    몇 번 더 해 보고 정 자신과 스타일이 맞지 않다면 그만두겠지만 지금 판단하기엔 이르다.

    “좀 더 두고 보고.”

    “그래. 그럼 내일도 아까 그 시간에 만나자. 오늘 오후엔 뭐 해?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같이 운동 갈래? 나 오후엔 잠깐 일 있어서 나갔다 들어올 건데 우리 집에서 놀고 있든가.”

    “아, 나도 오늘 오후엔 일이 있어서. 그냥 내일 보는 걸로 하자.”

    “그래? 어쩔 수 없지.”

    평소라면 무슨 일이냐, 약속이냐 물어볼 강태하였지만 지난번처럼 다른 질문 없이 순순히 수긍했다.

    ***

    자취방에 돌아온 이겸은 샤워를 한 뒤, 잠을 청했다.

    …동- 딩동-.

    한참을 잤을까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얼른 일어나 문을 열자 서도현이 앞에 서 있었다.

    “전화해도 안 받길래.”

    “아…. 미안. 너무 피곤해서 좀 잤어. 얼른 준비할게.”

    분명 서도현이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보다 여유가 있길래 한숨 잔 건데 너무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서둘러 준비하는 이겸에게 서도현이 집안으로 들어오며 태평히 말했다.

    “천천히 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피곤하면 더 자. 시간 되면 깨워 줄 테니까.”

    “회의 몇 신데?”

    “4시.”

    “…지금 2시인데?”

    이겸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세 시에 만났어도 충분히 여유롭게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천천히 준비해도 됐잖아. 뭐 이렇게 일찍 와.”

    “그냥. 너랑 놀다 가려 했지.”

    어이가 없었다.

    “애도 아니고….”

    이겸은 작게 꿍얼거린 후 다시 침대에 기어 들어갔다. 시간이 남았으니 좀 더 자다가 나갈 셈이었다.

    “다시 자려고?”

    “응. 아직 시간 남았잖아.”

    “너랑 놀려고 일찍 온 건데.”

    “나 피곤해. 아침 일찍 운동하고 왔어.”

    “운동?”

    운동이란 단어에 서도현이 관심을 보였다.

    “응. 좀 빡세게 해서 졸리네. 이따 시간 되면 깨워.”

    그 말을 끝으로 이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서도현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침대에 등을 기대 앉았다. 몸 쓰는 걸 귀찮아하는 애가 갑자기 운동을 시작한 연유가 얼추 예상이 됐다. 아마 배상우 때문이겠지.

    이겸이 편히 잘 수 있게 조용히 하며 이전과 달라진 자취방 내부를 살폈다. 기분 전환이라도 꾀한 건지 인테리어가 변해 있었다. 그는 팔을 뻗어 침대 맞은편에 놓인 장식장을 구경했다.

    윤이겸이 항상 챙겨 다니는 은색 핀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에는 이겸이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 있었다.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는 퍽이나 귀여웠다. 그러다 점점 자라고 어느새 그의 부모로 추정되는 이가 바뀌어 있었다. 서도현은 그 차이를 유심히 살폈다.

    사진을 보면 이겸의 아기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찍은 가족사진의 부모로 추정되는 남녀 한 쌍과 그 이후에 찍은 사진의 남녀 한 쌍의 얼굴이 달랐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의 부모님이 7년 전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듣긴 했다. 그 후 입양이라도 된 건가. 궁금증이 밀려왔다.

    “뭘 그리 유심히 봐.”

    이불 속에서 눈만 빼꼼 내민 이겸이 물었다.

    “자던 거 아니었어?”

    “자려고 했는데 막상 자려니 또 잠이 안 오네. 뭐 보고 있어?”

    “이거.”

    도현은 그의 가족사진을 가리켰다.

    “아, 그거?”

    이겸은 태평히 말했다.

    “중학교 때 부모님 돌아가시고 삼촌 손에서 자랐어. 삼촌이랑 숙모셔.”

    “흐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데, 자세히는 몰라. 그때 워낙 어린 나이기도 했고, 삼촌은 내가 충격받을까 봐 말해 주지 않으셨거든. 아마 지금 물으면 알려 주실지도.”

    그렇다고 굳이 옛날 일을 꺼내 물어보긴 싫었다. 감사하게도 삼촌과 숙모가 자신을 마치 자식처럼 최선을 다해 키워 주시기도 했고, 그 일은 삼촌에게도 충격이었을 텐데 구태여 언급할 이유가 없었다.

    대화 주제가 점점 무거워질까 이겸은 방향을 틀었다.

    “근데 자경단 회의에서는 뭐 해? 그래도 넌 알 거 아니야.”

    예전에 자경단이기도 했고.

    “가 보면 알 거야.”

    “내가 따로 준비해야 하는 건 없고?”

    지금 물어 봤자 뭘 준비하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말을 꺼냈다.

    “처음이니까 괜찮아.”

    “…네가 그렇다면야.”

    ***

    이겸과 도현은 자취방에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다 시간이 돼서 자경단 기지로 향했다.

    대부분의 자경단원들이 서도현이 자경단으로 복귀했으면 했지 래터라는 길드를 버젓이 두고 정기적인 교류는 무엇이냐, 그러다 자경단에 큰일이 벌어지면 정작 길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주지 않을 게 뻔하지 않냐, 라며 반대했었다.

    하지만 서도현이 과거 자경단에서 세운 전적도 컸고, 배상우의 역할을 이어받은 김형규나 A의 영향력에 의해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때문에 이겸과 도현이 회의실에 도착하자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가득했다.

    도현은 그것이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여상한 낯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겸아, 얼른 앉아.”

    “어, 그래….”

    이겸도 슬쩍 주변을 살피다 그의 옆에 앉았다.

    “우리 쪽 정보만 뺏어 갈 사람들을 뭐 하러 회의실까지 들이나 몰라.”

    “그러게. 정작 우리가 위험할 땐 한발 물러서서 불구경할 게 뻔히 보이지 않나? 자기들은 돌아갈 곳이 있다 이거잖아.”

    자경단원들이 큰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이겸은 딱히 대놓고 들으란 식의 말소리에 주눅들 사람이 아니었고, 화조차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들은 길드라는 돌아갈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들에겐 동료로 인식되기 힘들겠지.

    당장 이겸만 해도 자경단을 동료로 인식한다거나 그런 수준은 아니니까. 저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는 바여서 못 들은 척 넘겼다.

    하지만 서도현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위인이 되지 못했다.

    “아, 그쪽은 돌아갈 곳 없어요? 하긴. 뇌가 비었으니 받아 줄 곳도 없는 건가.”

    “뭐? 우린 자경단이 본거지라 여기가…!”

    “뭣하면 래터에 들어올래요? 청소부로는 고용 가능한데.”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자경단원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시비는 자기가 먼저 걸어 놓고…. 이겸은 말릴 생각도 없이 태연히 그 사태를 관망했다.

    “여기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A님과 형규 형이 허락해 주니까 아주 살판났지?”

    “그러게.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닐 텐데.”

    서도현은 그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돌려줬다.

    “…익! 상우 아저씨는 이딴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저기요.”

    잠자코 듣고 있던 이겸은 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단어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배상우의 얘기를 꺼내는 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

    “…뭐요.”

    차분히 가라앉은 이겸의 눈에 이놈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가 싶어 자경단원이 한결 진정된 목소리로 답했다.

    “얘한테 말로 못 이기겠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선을 넘으면 안 되죠.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죠.”

    “…그건.”

    그가 제 잘못을 깨닫고 멈칫하자 서도현이 이겸을 말렸다.

    “괜찮아. 겸아. 어차피 내가 이겨.”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지금 이분 하는 말이 거슬리잖아.”

    “아, 거슬렸어? 치워 줄까?”

    도현이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물건 대하듯이 하는 태도에 다시금 자경단원이 발끈하려던 찰나, A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김형규가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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