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9)화 (99/102)
  • #099

    …여긴.

    이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일으켰다.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눈을 떠 마주한 이곳은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와 본 적 있는 서도현의 방.

    취하면 챙겨 준다더니 제집으로 데리고 온 듯했다.

    ‘…물.’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방문을 열자 주방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는 도아가 보였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학교 가려고?”

    “학교 가려고오~? 오빠 어제 얼마나 마신 거예요?”

    “…나 물 좀.”

    “여기요.”

    도아는 냉동실 얼음을 동동 띄운 물을 건넸다. 이겸은 벌컥 들이켠 후에 의자에 앉았다.

    “서도현은?”

    “해장국 포장하러 갔다 온대요. 전 밥 먹었어요. 이제 학교 가려고요. 속은 괜찮아요?”

    “…아니. 죽을 것 같아.”

    “꿀물이라도 타 줘요?”

    “그럼 고맙고.”

    도아는 조금만 마시지 그랬어요, 같은 상투적인 잔소리를 해 대며 찬장에서 꿀을 꺼냈다.

    “몇 시까지 등굔데?”

    “8시 반까지는 가야 돼요.”

    이겸은 시간을 확인했다. 여기서 도아의 학교까지 도보로 15분 거리이니 아직 시간은 여유로웠다.

    “데려다 줄까?”

    “네?”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리던 도아가 되물었다.

    “속이 더부룩해서. 좀 걷고 싶네.”

    어제 안주를 얼마나 먹었는지 속 쓰린 것과 별개로 소화가 되지 않았다. 갔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숙취 해소제라도 사야겠다 생각하며 태연히 말했다.

    “어…. 그럼 얼른 준비해요! 저 지각해요!”

    도아는 후다닥 꿀물을 타 이겸에게 건넨 후,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뭘 잔뜩 뒤지더니 이겸에게 새 칫솔을 주었다.

    “이걸로 씻고, 옷은…. 저희 오빠 거 줄게요!”

    다시 도현의 방에 쌩하니 들어가 옷장을 뒤졌다. 그냥 한번 제안해 본 건데 유난히 기뻐 보이는 도아를 보니 무를 수도 없고, 얼른 꿀물을 마시고 외출 준비를 하자 싶었다.

    “아…. 속 쓰려.”

    “공기 마셔요. 맑은 새벽 공기”

    “미세 먼지야.”

    이겸은 모자를 눌러쓰며 중얼거렸다.

    “뭔가 오빠한테서 술 냄새 나는 것 같아요.”

    “나겠지. 그렇게 마셔 댔는데.”

    안 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이겸은 크게 하품을 하다 본의 아니게 심호흡을 했다.

    “공기 맛 어때요?”

    “응. 폐에 먼지 차는 맛.”

    그 대답이 재밌었는지 도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야? 왜 둘이 같이 있어?”

    순간 뒤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복을 입은 차재우가 눈동자를 잘게 떨며 이겸과 도아를 바라봤다. 눈에는 충격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어, 안녕. 등교 중?”

    이겸의 인사에 재우가 잽싸게 다가왔다.

    “네. 형 왜 서도아랑 같이 있어요?”

    “어제 우리 오빠랑 술 마시고 취해서 우리 집에서 잤거든.”

    도아의 설명에 재우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나만 빼놓고 셋이서 논 거네?”

    “뭘 놀아. 취해서 어쩔 수 없이 잤다니까.”

    그럼에도 재우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부럽다.”라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서도아 넌 겸이 형 술주정 본 거네?”

    “어…. 그렇게 되나? 근데 별거 없었어. 중간에 자다 일어나서 물 달라 한 것 빼곤 얌전히 자던데?”

    “뭘 당사자를 앞에 두고 대화를….”

    순간 이겸은 입을 틀어막았다. 자다 깨서 물을 달라 했다고?

    ‘…안 열려.’

    ‘제가! 제가 열어 줄게요!’

    남궁산하의 앞에서 운 것까진 생각난다. 하지만 그 후부터 필름이 끊겨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는데….

    방금 도아의 말이 방아쇠가 되어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말았다.

    ‘…아저씨.’

    ‘예? 저요?’

    ‘윽…, 흐윽. 아저씨이.’

    ‘왜, 왜 그러세요?’

    대리 기사의 앞에서도.

    ‘겸아. 내리자.’

    ‘내리면 안 대. 권상혀기 숨어 있을지도 몰라. 위험해.’

    ‘걷기 싫어? 그럼 업힐래?’

    ‘…내가 앞장설게. 조시미 따라와.’

    ‘응. 든든하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가친 공간은 위험해. 도망갈 쑤 업서.’

    ‘그럼 계단으로 갈까?’

    엘리베이터에서도.

    ‘겸아. 앞장선다며.’

    ‘…졸려.’

    ‘업어 줘?’

    ‘부축해 줘.’

    ‘그래. 나한테 기대.’

    비상계단에서도.

    “하아….”

    “형? 왜 그래요?”

    “아니 그냥…. 좀….”

    잊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어떻게 서도현의 집까지 도착했는지 모조리 떠올랐다.

    하아, 진상이란 진상은 다 부렸네. 쪽팔려서 서도현 얼굴은 어떻게 보지?

    이겸은 벅벅 마른세수를 했다. 이놈의 술. 내가 다시는 마시나 봐라.

    “형, 겸이 형. 다음에는 서도아네 말고 저희 집에서 자요. 그리고 저도 학교 데려다 주세요.”

    “애도 아니고 무슨…. 등교는 혼자 해.”

    지금 마음속이 심히 복잡해 재우를 달래 줄 여유가 없었다.

    “그럼 지금 서도아는 뭔데요?”

    이내 재우가 불퉁하게 따지자 이겸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옆에 섰다.

    “자, 이제부터 서도아 말고 너 데려다 줄게. 이제 됐지?”

    “헤헤. 네.”

    이겸은 ‘다루기 쉬운 녀석.’이라 생각하며 어젯밤의 자신을 한탄했다.

    술이 웬수지, 웬수야.

    그렇게 학생들을 등교시킨 후, 근처 편의점에 들러 숙취 해소제를 계산하려던 찰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개새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