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5)화 (95/102)
  • #095

    “…탈영이요?”

    재우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혀… 형! 그러다 잡혀가요! 지금이라도 군대로…!”

    “아냐! 난 지금까지 너무 나만 생각한 것 같아. 너희가 힘들 때 나… 난! 앞으로 군대는 가지 않겠어!”

    “아니, 그건 형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으, 으아. 어떡하지? 신고해야 하나? 아니, 신고하면 잡혀갈 텐데? 근데 신고 안 해도…! 으어아아아 어떡하죠 이걸?”

    재우가 이겸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며 주절거렸다. 이겸도 넋이 나가 맥없이 흔들리며 남궁산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오빠, 혹시 며칠 됐어요? 지금이라도 들어가는 게….”

    “괜찮아, 얘들아! 너무 걱정 마, 내가 다 알아보고 온 거야!”

    다 알아보고 온 사람이 탈영을 하냐.

    남궁산하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협회에서 나온 헌터 원칙 중에 헌터는 크리처 사냥을 하며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까 굳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가 있어!”

    대충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는데, 남궁산하는 규칙을 모조리 훑어본 모양이다.

    “그리고 만약 입대하게 되면 충실히 이행하라는 말도 없고.”

    “탈영병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겠죠.”

    충실히 이행하는 게 당연하니 적지 않은 원칙 아닐까.

    남궁산하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니 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

    “…그게 그렇게 되나?”

    재우가 어리벙벙하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보면 헌터법에 위반되지 않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제가 협회에 문의해 볼게요.”

    “잠깐!”

    도아가 서둘러 협회에 전화를 걸려 하자 남궁산하가 막아섰다.

    “왜, 왜요? 그래도 문의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오빠 진짜 큰일 나요!”

    “응. 문의는 해야지. 근데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어?”

    남궁산하는 돌연 종이와 볼펜을 꺼내 들어 무언가를 작성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협회에서 이리 물었을 땐 저리 답변하며 반박하는 예상 문답을 쓰는 것이었다.

    “됐어!”

    잠시 후, 볼펜을 내려놓고 협회에 전화를 건다. 이겸은 괜히 자신이 다 떨려 왔다.

    “나 잠깐 나가서 받고 올게.”

    “아뇨, 차라리 저희가…. 형 편히 통화하시는 게….”

    “괜찮아, 겸아.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니까.”

    남궁산하는 휴대폰을 챙겨 들고 말릴 새도 없이 쌩하니 나갔다.

    “…괜찮을까?”

    이겸의 걱정스러운 어조에 묵묵히 남궁산하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서도현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 산하 형은.”

    뜻밖에 믿음이 담긴 말이 돌아와 신기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남궁산하는 조금 괴짜 기질이 있어서 그렇지 언제나 자기 몫은 하는 사람이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하는 재우, 도아와 함께 통화를 마치고 들어올 남궁산하를 기다렸다.

    그리고 10분이 흐르고.

    “나… 이제 군대 안 가! 탈영도 협회에서 문제없이 처리해 준대!”

    남궁산하가 승리의 빅토리 포즈로 양팔을 활짝 위로 올리며 입장했다.

    “와! 다행이다! 얘기 잘됐나 봐요?”

    재우는 그제야 밝게 웃으며 남궁산하에게 달려가 환호했다.

    “응! 계속 너희 곁에 있을게!”

    “와아! 형, 아까 당황해서 말을 못 했는데 잘 오셨어요! 제대? 어음…. 탈영 성공? 아무튼 축하드려요!!”

    “응! 근데 조건이 있어!”

    “…네?”

    재우는 남궁산하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세리머니를 하다 걸음이 뚝 멎었다. 남궁산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크리처 열 마리 잡아 오래. 물론 무료 인력으로.”

    “…협회에서요?”

    “그게… 응.”

    “…저희한테 떨어지는 금액은 없고요?”

    “그, 그렇게 됐어…. CA 지역은 협회에서 지정해 준대.”

    “…….”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헌터가 하는 일이 크리처 사냥이고, 그것으로 국가의 의무를 대신하는 거니 탈영 대신 크리처를 사냥하는 건 얼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가도 없이? 그 돈은 협회가 다 가지겠다? 너희들은 몸만 굴러라?

    이겸이 스산하게 일어나 남궁산하에게 손을 뻗었다.

    “형, 휴대폰 저 주세요. 제가 다시 전화해 볼게요.”

    “그게…. 따져도 소용없을 거야.”

    “왜요?”

    “내가 말해 봤는데, 꼬우면 영창 가란 식으로… 얘기가 끝나서.”

    이겸의 인상이 확 굳자 남궁산하가 쩔쩔매며 움츠러들었다.

    “꼭, 꼭 그런 식으로 얘기한 건 아니고 돌려 말해 줬는데 말의 의미가 딱 그거라서….”

    실수했다. 이건 원칙대로 따지며 문의를 넣을 게 아니라 서도현처럼 말도 안 통하는 진상을 먼저 만나게 한 후 사근사근하게 직원을 달래며 문의하는 거였는데.

    그래야 했었는데.

    “미, 미안해. 크리처 사냥은 나 혼자 어떻게든….”

    “무슨 소리예요, 형! 당연히 같이 잡으셔야죠! 형은 기술계라 혼잔 더 힘들 텐데!”

    “미안해. 내가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해서. 내 잘못 때문에 너희가….”

    “네? 그게 왜 산하 형 잘못이에요!”

    재우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협회라는 간악한 무리에 탈영이란 명목으로 붙잡힌 인질, 남궁산하를 위로했다.

    “그래, 형. 그게 왜 형 잘못이야. 크리처만 잡으면 되는 거잖아.”

    도현이 서늘하게 웃었다. 물론 남궁산하가 탈영을 시도해 협회에 일을 만들긴 했지만 크리처 열 마리는 심하지 않은가. 그것도 협회가 CA 지역을 선정해 준다니.

    이건 CA 정해지면 언제든지 튀어나오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사체 손상률 언급은 따로 없었지?”

    “으… 응!”

    “그럼 됐네. 잡지, 뭐. 열 마리.”

    이겸은 도현의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우리에게 떨어지는 돈이 없다면 크리처 사체를 잔뜩 흠집 내 상업적 가치도 없게 만들어 너희에게도 이득을 주지 않겠다는 심보였다.

    이번만은 서도현의 생각에 무척이나 동의했다. 크리처 열 마리면 돈이 얼마인데. 그걸 무상으로 잡으라고? 어림도 없지.

    “그래요. 형. 잡으면 되죠. 뭐 어렵다고요.”

    “그, 그래도…. 우리 CA 지역도 관리해야 하고, 최근 힘든 일도 많고 바쁠 텐데 내가 와서 일을 더 얹은 건 아닌가 싶어서. 나, 나 괜히 왔나?”

    “뭘 괜히 와요. 그런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애들 다 좋아하고 있는데.”

    우울해하는 산하에게 이겸이 도아와 재우를 고갯짓하며 가리켰다.

    “그럼요, 오빠. 열 마리 까짓것 순식간에 잡으면 되죠!”

    “네, 저도 도울게요!”

    “고, 고마워. 고마워 얘들아. 나 정말, 래터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

    감격에 찬 얼굴로 산하가 울먹였다.

    ***

    산하의 탈영 사건이 어영부영 마무리되고 그들은 가볍게 저녁을 해결할 겸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잘 먹겠습니다.”

    도아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잠시 동안 묵념했다. 묵념이 끝나자 기다렸단 듯 재우가 입 안 가득 음식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너 원래 그런 거 안 하잖아.”

    “그냥 해 봤다, 왜. 그곳에서도 나처럼 맛있는 거 많이 드시라고 기도한 거야.”

    주어가 빠졌지만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 모르지 않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려는 걸 도아가 명랑하게 떠들었다.

    “와, 이거 맛있다! 산하 오빠, 군대에서도 이런 음식 나오곤 해요?”

    “아니. 오랜만에 먹어 봐!”

    “정말요? 그럼 많이 먹어요! 이것도 먹고.”

    “응, 그럴게! 너희도 많이 먹어.”

    식사를 마쳐 갈 무렵, 이겸은 먼저 나가 기다리겠다고 하며 식당 밖으로 나섰다.

    그러다 식당 앞에 설치된 막대 사탕 뽑기 기계를 발견했다.

    ‘…500원.’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동전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건 오래돼서 몸에 안 좋은데.”

    그때 이겸을 따라 나온 도현이 중얼거리며 대신 동전을 기계에 넣어 주었다.

    “사탕은 유통 기한 길어서 괜찮아.”

    이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불이 들어온 기계의 스위치를 눌렀다. 인원수에 맞게 두 개가 출입구로 달그락거리며 나왔다.

    하나를 서도현에게 건네니 몸에 안 좋니 뭐니 말하던 그도 잠자코 포장지를 까 입에 집어넣었다. 하얀 막대만 빼꼼 삐져나오자 꼭 담배를 문 것 같았다. 이겸도 포장지를 벗기며 처연히 꿍얼거렸다.

    “아저씨도 끊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일이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자주 언급하며 감정을 해소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겸은 너무 심했다. 꼭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넌…. 아니다.”

    순간 아무렇지 않냐고 따져 물을 뻔했다. 하지만 그때의 서도현을 떠올리면 함부로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같은 결과가 나올 게 뻔한데도 부작용이 심히 올 정도로 과도하게 능력을 사용해 대던 그를. 마침내 자신이 죽고 나서야 배상우의 죽음을 받아들이던 그를.

    죄책감에 휩싸인 자신을, 내가 널 선택한 거라고, 넌 아무 잘못 없다며 달래 준 그를.

    그때를 생각하면 서도현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많았다. 모든 책임을 그에게 덮어씌운 것만 같았다.

    ‘네가 말렸는데, 내가 억지로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뿐이야. 넌 아무 잘못 없어. 다 내가 한 거야.’

    그날도.

    ‘네가 죽었으면 난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이능을 사용했을 거야. 내가, 널 선택한 거야.’

    이날도.

    서도현은 언제나 자신이 했다고 한다. 내가 한 거라고. 넌 잘못 없다고.

    이겸은 가만히 입 안의 사탕을 굴렸다.

    ‘달다.’

    몸에 좋지 않은 건 대부분 달다.

    서도현의 말 또한 그랬다. 달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의지하고 모르쇠 방관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첫 만남의 서도현을 용서했냐고? 날 죽였던? 용서했다고 말했다. 사과를 받아 주었다. 하지만 난 정말 그랬을까.

    답은 ‘아니’였다. 아마 한구석에선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응어리로 남아 있겠지.

    그래서 서도현이 싫냐고? 예전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 응어리를 구석에 영원히 박아 둔 채 지내는 거다.

    그저 그런 관계다.

    과거 그에게 지우지 못할 흉터를 받고서도 그와 함께 다닐 수밖에 없는.

    어쩌면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이가 서도현이고,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자신이니까.

    아무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결코 떨쳐 낼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지막엔 서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저 그런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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