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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3)화 (93/102)
  • #093

    “윤이겸!”

    이겸은 제게 헤드록을 걸며 다가온 친구를 쳐다봤다.

    “무거워.”

    “너 요즘 어디서 뭐 했냐? 연락도 없고. 다들 네가 휴학이라도 한 줄 알고 놀랐잖아. 하필 강태하도 안 나와서. 둘이 여행이라도 갔냐?”

    “여행은 무슨. 좀 바빴어.”

    “학생이 바빠 봤자지!”

    그치. 학생이 바빠 봤자지. 부럽네, 그 마인드.

    “헉, 나 교양 수업. 먼저 간다!”

    이겸은 빠르게 사라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다 강의실로 향했다.

    “겸아.”

    “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이겸의 눈이 커졌다.

    “그동안 연락은 왜 안 한 거야? 어디 갔다 왔어? 너 수업도 빠졌다며?”

    “잠깐 일이 있어서. 그리고 수업은 너도 빠졌잖아. 어제 전화는 왜 안 받았어?”

    “…못 받은 거야.”

    강태하의 질문에 이겸은 시선을 회피하며 변명했다.

    “요즘 많이 숨기네.”

    “그냥. 좀 바빴어. 그러는 넌 그동안 연락은 왜 안 됐는데?”

    “나도 바빴어.”

    그가 살포시 웃으며 담백하게 말했다.

    “그럼 서로 퉁치는 걸로 할까?”

    “…….”

    “얼른 가자, 수업 늦겠다.”

    이겸은 강태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 두었다.

    며칠 만의 수업인지, 하필 강태하도 수업을 빠진 터라 누구에게 그동안 했던 강의 내용을 물어봐야 할지 난감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조용히 누군가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저기….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친구의 친구로 그나마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저번 주 수업을 빠졌는데 혹시 강의 내용 좀 알 수 있을까요.”

    “근데 저도 안 들었는데….”

    “결석하셨어요?”

    “아뇨, 그냥… 멍때렸어요. 잠시만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 제 가방을 뒤적이더니 A4 용지를 꺼냈다.

    “이거 지난 시간에 교수님이 나눠 주셨거든요. 괜찮으면 찍어 가시겠어요?”

    “아, 감사합니다.”

    자료를 꼼꼼히 찍은 이겸은 자리로 되돌아가 강태하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너한테 문자로 사진 보내 놨으니까 너도 나중에 확인해.”

    강태하는 휴대폰을 꺼내 내용을 보고 입술을 말아 올렸다.

    “이거 부탁하려고 말 건 거야? 저분한테?”

    “결석했는데 이거라도 찍어 놔야지. 시험 범위일 텐데.”

    “시험이 그리 중한 사람이 결석은 왜 하셨대.”

    “…어쩔 수 없었어.”

    교재를 꺼내며 꿍얼거리자 교수님이 앞문으로 들어왔다. 대화가 끊긴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이겸은 펜을 돌리며 수업에 집중했다.

    “저녁은 뭐 먹을까?”

    “저녁?”

    점심으로 학식을 먹던 이겸이 멈칫하다 답했다. 오늘은 CA 지역도 없고, 굳이 사무실을 들를 계획도 없었다.

    “글쎄.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으면 그냥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되고. 이따 우리 집 올 거지?”

    “응. 만들어 먹자. 아님 시켜 먹든가.”

    “나가기 귀찮구나.”

    정곡을 찔렸다. 최근 들어 힘든 일이 많아 사람 많은 시끌벅적한 장소 말고 그저 조용한 곳에서 한가롭게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 좀 쉬고 싶네.”

    “그래, 그러자.”

    이겸은 학식을 먹으면서도 그와 집에서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배상우의 장례식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미처 먹지 못했던 육개장이 떠올랐다.

    “육개장 해 먹을래?”

    “갑자기?”

    “응. 갑자기 먹고 싶어서.”

    “그것도 좋지.”

    그렇게 모든 강의가 끝나고 강태하의 집으로 가려는데 서도현의 전화가 걸려 왔다.

    - 어디야?

    “학교.”

    - 마칠 시간이지?

    서도현은 이겸의 강의 시간표를 외워 두기라도 한 건지 태연하게 물었다.

    “잘 아네.”

    - 신호등 건너서 와. 데리러 왔어.

    “뭐? 난 오늘….”

    뚝. 전화가 끊겼다.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버릇은 언제 생긴 거람. 아니면 거절할 걸 예상하고 일부러 그 전에 끊은 걸 수도 있다.

    “왜?”

    “…지인이 왔는데.”

    강태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늘어트렸다.

    “또 그 친구야?”

    “응.”

    “선약도 아니잖아. 거절해.”

    그럼에도 이겸은 휴대폰 전원만 껐다 켜며 망설였다. 서도현도 장례식 때 식사를 하지 못했었지.

    “겸아.”

    육개장을 먹는다면 강태하가 아닌 서도현과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차올랐다.

    이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강태하에게 사과했다.

    “미안. 오늘 저녁은 걔랑 먹어야 할 것 같아.”

    “다음에 먹어도 되잖아. 꼭 오늘이어야 해?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건데.”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거든. 미안, 조심히 들어가.”

    결국 강태하를 뒤로하고 도로변으로 나왔다.

    건너편에 보이는 서도현의 차에 다가가자 창문이 스르륵 열렸다.

    “왔어?”

    내일이면 낫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서도현은 어제보다 안색이 좋아 보였다.

    “연락 좀 하고 찾아와. 선약 있었는데 뭐 하는 짓이야.”

    “선약? 취소했어?”

    간간이 웃음을 머금기도 했고.

    “취소했으니까 여기 있지.”

    이겸은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며 꿍얼거렸다.

    “신기하네.”

    “뭐가?”

    “나 때문에 선약도 취소하고.”

    “그럼, 네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무시하고 그냥 가리?”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답했다.

    “원래 그랬잖아.”

    “…….”

    이겸은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강태하와 선약이 있어.’

    ‘취소해.’

    ‘먼저 잡은 선약을 취소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간다.’

    지난날 자신들이 한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난,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행동한 거네?

    이겸은 재빨리 맸던 안전벨트를 다시금 풀었다.

    “안 되겠다. 내려야겠네.”

    “어디 가려고.”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은 되기 싫거든.”

    서도현은 얕게 웃으며 그런 그를 붙잡았다.

    “괜찮으니까 그냥 있어. 네가 뭔 짓을 하든 난 상관없으니까.”

    “…뭐래.”

    “다시 벨트 매. 저녁은 뭐 먹으러 갈까?”

    “육개장.”

    “좋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창밖으로 익숙한 차가 스쳐 지나갔다. 강태하의 차였다.

    ‘집으로 가는 건가.’

    미안함이 피어올랐다. 요즘 들어 사건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강태하와 사이가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기분 탓이라면 좋겠지만 이겸도 은연중에 알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겸은 휴대폰을 꺼내 강태하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강태하와는 점점 비밀이 쌓여 가는 한편, 첫 만남부터 악연으로 시작한 서도현과는 공통점이 늘고, 오직 서로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대화들이 많아진다.

    그 미세한 차이는 지금 현재도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이겸은 껄끄러운 기분들을 눌러 삼키고 도현에게 물었다.

    “도아랑 재우는? 지금 시간이면 하교했으려나?”

    “둘이서 놀다 온대.”

    “그래.”

    차 안에 적막이 감돌고, 빨간불에 멈춰 서자 이겸은 다시 말문을 텄다.

    “그럼 재우는 혼자 사는 거야? 부모님은….”

    “부모님은 수용소.”

    “아.”

    재우가 7년 동안 과거를 극복해 내고 새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그의 부모님은 아직도 중독을 이기지 못해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게 착잡했다. 한편으로는 재우를 그렇게 만든 원인인 사람들이 수용소에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재우는 이에 대해 무슨 생각일까. 부모님이 나오길 기다리는 걸까 그도 아니면 영영 나오지 않길 바라는 걸까.

    그에게 과거사를 들었을 땐 제 부모를 증오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또 속내는 모르니까.

    쉽사리 물을 수도 없는 질문이기에 이겸은 다음 주제를 꺼냈다.

    “도아한텐 그날 일에 대해 말 안 할 거야?”

    “잊혀진 기억인데 굳이 상기시켜 줄 것까지야.”

    “…그것도 맞긴 하지.”

    넌 예전에 납치당해 블러드 헌터에게 끌려간 적이 있다고, 안 좋은 기억을 굳이 읊어 주며 설명하는 것도 웃겼다.

    하지만 자신들은 재우의 과거사를 알고 있는데 도아한테만 쉬쉬하는 게 혹여나 의도치 않게 소외감을 느끼게 할까 걱정스러웠다. 도아에게 말하고 말고는 재우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겸이 홀로 수긍하는 사이 식당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몇 분 지나자 음식이 나왔다. 도현은 새빨간 국물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뭐. 왜. 그때 너도 못 먹었잖아.”

    “그랬지.”

    “그럼 얼른 먹어.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이겸은 수저를 챙겨 들고 꿋꿋이 식사를 이어 갔다. 문득 슬픔이 차올라 저도 모르게 코를 킁, 훌쩍였다.

    “…좀 맵네.”

    어설픈 변명이 부끄러워 더욱 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다.

    “응, 맵긴 하네.”

    들려오는 호응에 이겸은 수저를 내려놓고 휴지를 꺼내 들었다. 얼굴에 갖다 대자 눈물 자국이 그대로 찍혀 나왔다.

    “아, 밥 먹다 우는 게 제일 처량한 건데.”

    이겸이 한탄처럼 중얼거리자 서도현이 휴지를 몇 장 뽑아 그의 앞에 놓아두었다.

    “왜. 예쁘기만 한데.”

    “…뭐가. 킁-.”

    “더 울어도 된다고.”

    그 말에 이겸은 훌쩍이며 식사를 이어 갔다. 눈물 한 방울에 한 입, 눈물 한 방울에 또 한 입. 보다 못한 식당 아주머니가 젊은 총각이 속상한 일 있었냐며 서비스로 만두 한 접시를 갖다 주시기까지 했다.

    “감사…, 합니다.”

    그렇게 만두까지 모조리 비우고 나서야 그들만의 장례식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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