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1)화 (91/102)
  • #091

    이겸은 며칠 전 이련에서 맞추었던 검은 정장을 챙겨 입었다.

    부산, 이련에서 벌어진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관리소장부터 블러드 헌터라고 밝혀지고, 이련으로 협회 사람들이 내려와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검거된 인원은 총 일곱 명. 이련에서 근무하며 크리처 사육장에 사람들을 먹이로 밀어 넣은 놈들이었다.

    조직명은 ‘오르카’로, 검거된 인원 외에도 다수의 조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발을 빼고 달아난 지 오래였다.

    A는 그들을 추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오르카’의 권상혁이 배상우를 살해했으니까.

    권상혁은 블러드 헌터로 밝혀졌고, 그가 투명화로 모습을 숨긴 걸 봤다는 이겸의 증언에 따라 ‘복수능력자’로 분류되었다.

    협회에서 피 검사를 할 때마다 보유 이능인 ‘환각’으로 자료를 조작하고, 협회 습격 사건 때 투명화로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인간은  역시 그였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마 배상우가 서도아를 공격하게 된 것도 권상혁의 환각 때문이리라.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배상우가 누구가의 이능에 걸렸단 걸 깨닫고 적이 한 명 더 있단 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관리소장이 순간이동, 다른 한 놈이 고통을 주는 능력이라면 배상우가 본 환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그쪽으로 조금만 더 심도 있게 살폈다면…. 그랬다면….

    그 이후 바로 예호가 들이닥치고, 재우가 크리처 사육장에 갇히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쉴 새 없이 덮치는 탓에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깨달음과 후회는 언제나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 찾아온다.

    그래서 권상혁은 어떻게 되었냐고? 어깨에 총상을 입은 채 종적을 감추었다. 제 동료들과 함께 달아난 듯싶었다.

    크리처 사육장은 헌터를 불러 하나하나 처치하고, 오르카가 그동안 해 왔던 연구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원래라면 블러드 헌터들은 연구 자료를 모두 챙기든가, 크리처를 몰래 빼낸 후 불을 질러 자료들을 없애야 했다. 하지만 하필 차재우가 크리처 사육장에 갇혀 있었고,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자경단이 수색에 나섰기 때문에 그 일은 불가했다.

    아마 눈물을 머금고 달아났겠지.

    그들도 재우가 과거 블러드 헌터였었고, 크리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사육장 안에 고이 갇혀 이겸에게 신호를 보낸 건 예상 밖의 일이었겠지.

    이련 내부 스파이 색출 시작. 블러드 헌터 다수 검거. 크리처 사육장 발견. 여러 가지 수확도 많았지만 그만큼 손실도 컸다.

    이겸은 고요히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매듭 지은 후, 우산을 챙겨 집 밖을 나섰다.

    서도현의 차에 올라타니 도아와 재우도 이미 타고 있었다. 그 둘도 이련에서 함께 맞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아직은 학생이라 정장을 착용할 날이 1년은 더 늦게 찾아올 줄 알았건만 이런 식으로 입게 될 줄이야.

    학생들의 고집에 순순히 정장을 맞춰 준 서도현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해야 할지, 이 암담한 현실에 목이 메어 왔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배상우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다.

    식은 평범한 장소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성대함은 끊임없이 오가는 조문객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에 참석했다.

    배상우와 친하게 지냈거나, 함께 임무를 나섰던, 혹은 도움을 받았던 이들.

    특히나 자경단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건 래터도 마찬가지였다.

    미혼에 부모님마저 돌아가신 배상우에게 가족이란 건 없었다. 다만 어릴 적부터 그의 손에서 자란 서도현이 상주, 서도아는 상제로서 상복을 입고 그 자리에 섰다.

    도현은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애도하는 이들에게 경건히 예를 표했다. 그는 도아와 함께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너는 좀 쉬다 와.”

    “괜찮아요.”

    그들의 옆에서 함께 자리를 지키던 이겸이 재우에게 휴식을 권했지만,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뒤로하고 거절했다.

    “저 사실은요. 상우 아저씨 옛날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랬겠지.”

    재우의 사정은 전부 들었다. 부모님에 의해 블러드 헌터가 되었고 지금도 그 중독을 참는 중이라고.

    지난날, 서도현이 중독을 견뎌 낸 사람이 있다고 언질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재우였던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지금까지 잘 버텼다,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재우가 과거 블러드 헌터였다 해서 달라지는 건 무엇도 없었다. 이전도, 지금도 이겸은 주승태와 친구이고, 차재우와도 마찬가지다.

    도아에겐 사건의 전말 중 납치라는 단어를 쏙 빼고, 그저 서도현이 자경단 시절 어린 재우를 구해 줬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녀도 처음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수긍했다. 차재우야 이런 일로 멀어질 사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배상우의 장례를 치르는 게 급선무라 유야무야 넘어간 것도 있었다.

    “사실 저 수용소에 있었을 때, 많이 도와 주셨어요. 이것저것 사다 주시며…. 그…, 중독 못 참고 나쁜 짓 한 날엔 엄청 혼내셔서 무서웠지만.”

    “…….”

    재우는 7년 전, 델로가 전멸한 날부터 몇 년 동안 수용소에서 교화 수업도 꾸준히 들었다고 했다.

    부모가 잘못했지 재우는 뭘 했다고 수용소에 들어가나 했지만 그곳은 중독을 이기게 도와주는 센터도 마련되어 있어 재우가 자처해 들어갔었다니 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수용소에서 몇 년을, 이후 거기서 나와 정상적으로 일반인 생활을 어느 정도 하게 됐을 쯤에 서도현을 찾아가 래터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오셨습니까.”

    조곤조곤 재우의 말을 듣던 이겸은 순간 고개를 돌렸다.

    자경단원이 A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주치진 않았지만 듣기로는 이련에 A도 잠깐 왔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향을 피우고, 잠깐 절을 올릴 때는 옆에 가면을 벗어 두었다.

    처음으로 모두가 있는 앞에서 가면을 벗은 것이었다.

    하나 아무도 그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으며 배상우에 대한 예를 지켰다. 그의 맨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절을 끝낸 후 다시 가면을 쓰고 홀연히 사라졌다. A는 울고 있었을까? 이겸은 알 수 없었다.

    A와 자경단 사이 연결책을 하던 배상우의 역할은 다른 이가 이어받기로 했다.

    이름은 ‘김형규’로 7년 전 서도현과 2인 1조가 되어 델로에 파견을 나갔었다고 한다. 이번 크리처 사육장에 갇혔던 재우를 꺼내 준 이도 그였다.

    이겸은 어째선지 속이 답답해졌다. 배상우의 역할을 이어받는다니, 이건 정말로… 정말로 그의 죽음을 인정하는 꼴이잖는가.

    숨통이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네. 편히 쉬고 오세요.”

    재우에게 말하고 이겸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섰다.

    허공에 깊은 숨을 뱉었다. 아직도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했어야 좋았을까. 어쩌면 모두가 살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관리소장 포함 블러드 헌터 2명을 서도현이 처치했고, 차재우의 위치도 제 능력으로 알아냈겠다, 예호의 마스터도 왔겠다. 이 인원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그 안일한 마음이 배상우를 죽인 건 아닌가.

    만약 이련을 나서기 전 배상우의 지시대로 진형을 서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라고 생각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련 내부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한낱 꼬맹이가.

    몇 번 전투 좀 벌여 봤다고 자만했었나.

    그 서도현도 말없이 진형을 맞췄는데. 내가 뭐라고 우쭐해 있었나. 그 자만심의 피해자가 배상우였던가.

    서도아도, 노정규도 진을 맞춰 긴장하며 주변을 정찰했는데, 자신은 되레 그 둘을 살피곤 했으니까.

    그래서 권상혁이 나를 노린 거였나. 그래서… 그래서 배상우가 대신해 맞은 거였나.

    아무리 그날의 일을 되짚고, 되짚어 봐도 모든 원인은 이겸 자신이었다.

    “하아….”

    배상우가 죽기 직전 자신에게 주었던 작은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그날 이후 한시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어딜 가나 들고 다녔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자경단에선 크리처 독 판별기가 꽤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들었다.

    부서지거나 잃어버리면 그날은 운이 없는 날, 재수 없는 날로 칭하고, 자신을 지켜 주는 소중한 부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이도 많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배상우였다.

    운 나쁘게도 이겸은 자경단만큼 블러드 헌터를 자주 만나니 부적이랍시고 준비한 듯싶었다.

    나 같은 놈한테 주기보단 본인 거나 새로 만들든가 하지. 미련한 아저씨.

    “여기서 뭐 해.”

    “…바람 좀 쐴 겸. 너는?”

    “네가 없길래.”

    며칠 내내 한시도 빈소를 비우지 않았으면서…. 그런 서도현이 이겸을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자책하고 있을까 봐.”

    “…하.”

    이겸은 작게나마 실소를 터트렸다. 어떻게 된 게 서도현에겐 숨길 수가 없었다. 숨겨도 알아채곤 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데.

    이겸은 상자를 딸각이며 중얼거렸다.

    “그때 말이야.”

    “…….”

    “아저씨가 아닌 내가 맞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아저씨를 밀치고….”

    “해 봤잖아.”

    잊었어? 그 후 네가 죽었어. 그가 담담히 말해 왔다. 이겸은 죄책감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게 맞았어.”

    “뭐?”

    이겸의 음성이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그게 맞았다고. 내가 용기가 없어서 그랬어. 겁이 많았어.”

    “윤이겸.”

    “내가…. 내가 비겁자고, 이기적이었어. 그래서 결정하지 못했어. 아저씨가 아닌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게 맞는데.”

    “윤이겸.”

    “서도현. 나는…. 차라리 내가….”

    “윤이겸!”

    이겸은 화들짝 놀라 서도현을 올려다봤다. 그가 드물게 언성을 높였다. 마주한 얼굴은 잔뜩 성이 난 얼굴. 그는 분노를 곱씹으며 읊조렸다.

    “내가 선택한 거야.”

    “…….”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리셋을 했어. 결정하지 못했다고? 당연하지. 넌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네가 죽었으면 난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이능을 사용했을 거야.”

    이겸은 할 말을 잃었다. 서도현이 고저 없는 어조로 제게 일렀다.

    “내가, 널 선택한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