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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0)화 (90/102)
  • #090

    이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떤 말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선택과 선택을 거쳐 내린 결정이 배상우의 죽음이다. 인간은 자신이 해내지 못한 걸 가볍게 해낸 자를 존경하게 된다고 들은 바가 있다.

    이겸에게 배상우가 딱 그랬다. 그렇지만 배상우도 신이 아닌 이상 죽음은 무섭겠지.

    아마, 서도현이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해도 결과는 같을 거다. 이겸은 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그리고 이겸은 이날을, 이 죄악감을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살게 될 것을 직감했다.

    “…서도현.”

    이겸이 배상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딱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돌려 줘.”

    무리한 부탁이란 걸 알지만. 배상우의 부상이 달라지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딱 한 번만 더.

    도현은 이겸을 곁눈질하곤 말없이 능력을 끌어모았다. 내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과 체내의 피가 역류하는 고통이 찾아왔다.

    삐이이-.

    귀에서 이명이 들리며 주륵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돌아간 시간.

    “…해!”

    타앙-!

    총소리에 맞춰 이겸도 이전 비품실에서 챙겨 뒀던 총을 꺼내 들며 권상혁을 겨눴다.

    떠올려 보면 권상혁과는 첫 만남부터 악연의 연속이었다.

    ‘일반 헌터가 블러드 헌터를 마주칠 확률은 음…, 거의 없어요! 로또 당첨될 확률? 이겸 씨는 정말 운이 좋네요!’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전 크리처 사냥이 무서워서 아래에서 기다리려고요.’

    그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때… 그때!

    탕-!

    분노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손끝이 떨려 오기 전에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동시에 배상우가 이겸에게 엎어지는 바람에 잠시 조준점이 흔들렸다.

    정확히 심장을 겨눈 총구가 빗겨 나가 권상혁의 어깨를 관통했다. 권상혁의 눈이 일순 커지더니 이겸과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곤 투명화.

    놓치면…!

    이겸은 조심스레 배상우를 서도아에게 맡기고 얼른 권상혁을 뒤쫓으려 했다.

    “……이…겸…!”

    하나 그 한마디 부름이 이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저씨.”

    이겸은 뛰쳐나가던 것을 멈추고 다시금 배상우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차갑게 식어 가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제가, 제가 맞았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아마…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차마 앞의 문장을 말하지 못하고 목구멍 뒤로 삼킨 뒤, 미친 사람처럼 죄송하단 말만 반복적으로 했다.

    멍청한 자식. 그토록 반복한 시간 속에서 아저씨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생각한 적 없었냐.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정말 죄송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머니…. 주……니.”

    “주머니. 주머니요!”

    잽싸게 알아들은 서도아가 눈물을 훔치며 배상우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기적처럼 그를 치료해 줄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 없단 걸 알지만서도 도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에 난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조리 살폈다.

    그리고 작은 케이스를 발견했다.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쇠막대기. 그냥 은색 핀이었다. 이걸 왜…. 자세히 들여다보니 ‘윤이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도아는 입술을 꾹 깨물어 울음을 눌러 참고 이겸에게 건넸다. 상자 안 내용물을 본 이겸은 단박에 그 쓰임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건 뭐예요?’

    ‘이거? 크리처 피 판별기.’

    ‘근데 왜 제 건 없나요?’

    ‘뭐? 넌 외부인이잖아. …거 참 맹랑한 학생일세. 이제 됐냐? 이 아저씨의 목숨 줄을 빼앗고 만족해?’

    “…….”

    그때 시간이 반복됐었다. 때문에 배상우는 기억도 못 하는 대화였다. 하지만 왜, 어째서….

    목숨 줄을 빼앗고 만족하냐고요? 제가 그럴 것 같아요? 이건 뭔데요. 왜 주는 건데요. 왜 제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건데요. 갖고 싶단 말도 안 했는데 왜….

    “아저씨.”

    서도현이 그를 불렀다. 피가 차오르는 그의 가슴에 서슴없이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 걱정은 마세요. 도아도, 래터도 제가 잘 돌볼게요. 은퇴 후 시골에서 쉬고 싶다 한 것도 제가 대신 할게요.”

    “…….”

    “아저씨가 하고자 했던 것, 이루려고 했던 것, 이루지 못한 것. 제가 다 이을게요.”

    가슴팍을 두드리는 다정한 손길과 자장가 같은 음성이었다.

    “그러니 편히 주무세요.”

    그렇게 배상우는 안식에 접어들었다.

    ***

    “……&@#…!”

    한참을 어둠 속에 꽃을 피우고 있었을까.

    두꺼운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처럼 붙잡혀 온 또 다른 사람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 구하러 온 동료들일까.

    재우는 바닥에 손을 짚은 채 튼튼한 거목들로 입구 주변을 감쌌다. 그 앞으로 가시덤불을 피워 내 크리처들의 접근을 물리쳤다.

    자신은 속하지 않지만, 일반 헌터는 크리처에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괜찮으…!”

    콰앙!

    열댓 마리의 크리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거목에 몸을 부딪치며 자경단에 뛰쳐 들었다.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 같던 거목도 몇 번 부딪히자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히익! 기겁한 자경단원은 얼른 재우의 목뒤를 끌어당겨 밖으로 탈출했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다급히 사육장의 거대한 문을 닫고 꼼꼼히 봉쇄했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고요?”

    “네… 네. 괜찮아요.”

    재우는 얼떨떨하게 대답하며 저를 구해 준 이들을 쳐다봤다. 그 사이 래터는 없었다.

    ‘형들이 구하러 와 줄 줄 알았는데….’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너무 가까이 붙지 마.”

    호들갑을 떨며 재우의 안위를 챙기던 자경단원에게 그의 선배가 일침했다.

    “네? 아니 지금 당장 힐러에게 보여야 할 판에…!”

    그의 선배는 매정한 눈길로 재우를 흘겼다.

    저분은…. 이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네가 도아를 지켰다고?’

    ‘네, …네! 도…, 도아가 갑자기 각성하길래 옷에, 옷에 제 피를 잔뜩 뿌려서 도아에게 두른 뒤 크리처 뒤편에 숨겨 놨어요! 임시방편이지만 잠깐은 괜찮거든요! 호, 혹시 몰라서 여기, 나무로 방패막이도 설치했어요! 이렇게, 이렇게!’

    어린 재우는 혹여라도 그가 자신을 죽이기라도 할까 열심히 제 쓸모를 증명했다.

    이 사람이 도아의 오빠라고?

    첫인상은 ‘무섭다’였다.

    어른도 아닌, 고작해야 중고등학생으로 보일 법한 외형이었다. 그런 주제에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그가 두려웠다.

    더군다나 방금 전 서도현이 ‘델로’에서 우상시되는 크리처를 도륙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고, 힘이 없어 말릴 수도 없었지만 말릴 생각도 없었다.

    제 부모를 홀린 놈이었고, 자신 또한 크리처에게 족쇄가 채워지듯 억지로 피를 마셔 버렸다. 속이 시원한 한편, 본능적으로 크리처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순리였다.

    서도현은 벌벌 떠는 재우를 뒤로하고 죽은 듯 쓰러져 있는 도아에게 다가갔다.

    맥박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다.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1차 각성을 할 때 잠깐 정도는 크나큰 고통이 찾아오니 그를 못 이겨 기절을 한 걸 수도 있다. 무심한 눈길로 재차 재우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저 애가 한 말이 진실이란 건가.

    블러드 헌터가 부모님이라 어린 나이에 억지로 피를 마셨다고 했지.

    크리처가 제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데 사시나무처럼 떨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고 그 끝을 지켜보는 게 블러드 헌터로서 무척이나 힘든 일인 걸 안다.

    도아와 비슷한 또래 같은데 독기도 있어 보였다.

    ‘서도현! 뭐 해! 3팀에서 지원 요청이야! 도아 찾았으면 얼른 움직여!’

    동료의 부름에 도현은 기절한 도아를 들쳐 업고 재우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

    7년 전 4월 5일. 델로는 전멸했고, 서도현과 서도아에겐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상처가 생긴 날이지만, 재우에겐 마치 축복 같은 날이다.

    거의 평생을 갇혀 지내듯 살았다. 어떤 날은 피를 마시지 않으면 밥도 먹지 못해 굶은 날도 많았다.

    살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그날은 식물을 이능으로 다루는 어느 소년의 두 번째 탄생일이기도 했다.

    “가까이 가지 말라면 가까이 가지 마! 잔말 말고 이리 와.”

    “…네.”

    7년 전, 3팀 지원을 가야 한다며 도현을 불렀던 남자였다. 그때 죽기 살기로 도현의 뒤를 졸졸 쫓는 재우를 못마땅한 기색으로 흘겨 보곤 했었다.

    자경단 중엔 블러드 헌터가 회개했다고 해도 껄끄러워하는 이들이 대다수니 그럴 만도 했다.

    재우는 스스로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슬쩍 물었다.

    “저… 제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요?”

    “상사가 알려 줬으니까.”

    퉁명스러운 대답에 재우는 한 번 더 시무룩해졌다. 연락을 보고 그래도 형들이 신고를 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구나.

    그러던 찰나.

    “같이 있던 네 동료가 대충 위치를 짚어 줘서 찾기 수월하긴 했지.”

    “아…!”

    겸이 형이…. 재우의 얼굴이 환해지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려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런 재우를 본 자경단원이 혀를 쯧, 찼다.

    7년 전 그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리숙해 보였다.

    실제로 어리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피를 마셨으니 참지 못하고 또 피를 탐할 줄만 알았다. 실제로 초반에는 수용소에서 적응도 못 했었지만 현재는 그 누구보다 아득바득 열심히 버텨 평범한 헌터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어린 시절 억지로 블러드 헌터가 된 케이스였다. 기구한 인생이지. 블러드 헌터가 혐오스러운 것과 별개로 재우에겐 찬사를 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잘 버텼다.”

    예나 지금이나.

    재우에게서 등을 돌리며 스쳐 가듯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못 들을 재우가 아니었다.

    “네! 저 버티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 헤헤.”

    “…임무 완수도 했고, 이만 돌아가자.”

    선배의 말에 옆에 있던 자경단원이 동료에게서 온 연락을 살피며 말했다.

    “네, A는 현재 이련에 있답니다. 차로 이동하면 5분도 안 걸리니….”

    “A? A가 왔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재우를 무시하곤 다시금 연락을 확인하며 끊겼던 말을 이었다.

    “2팀은 인근에 있던 블러드 헌터 2인을 검거했습니다. 그리고…. 음?”

    두 명이란 이필진과, 뒤에서 몰래 다가와 제 숨을 틀어막아 기절시킨 한 명을 말하는 건가. 재우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다음 덧붙일 말을 기다렸다.

    “…아저씨가.”

    “뭐? 그다음 전언은 뭔데.”

    “전언…. 배상우, 상우 형님이 임종하셨다는…, 연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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