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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6)화 (86/102)
  • #086

    “…악!”

    정신을 차린 배상우가 제 손목을 부여잡고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눈앞엔 이겸과 도아가 있었고, 깊이 찔렸는지 피가 멈출 낌새도 없었다.

    이겸은 얼른 제 겉옷을 벗어 더 이상 피가 통하지 않도록 배상우의 팔에 칭칭 감아 졸라매 지혈했다. 병 주고 약 주고가 딱 이럴 때 쓰는 말일 테다.

    여기서 흥분하면 안 돼, 정신 놓으면 안 돼, 침착하게,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생각대로 움직이며 내색하진 않았지만 옷을 매듭지어 묶고 지혈하는 손끝이 잘게 떨렸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려 두 번, 무려 두 번이나 이겸은 배상우를 상처 입혔다. 심지어 첫 번째는 당황해 일단 손목을 찌르고 봤지만, 두 번째는 냉철하고, 더 정밀하고, 속도도 이전보다 빨랐다. 그리고 서늘한 날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까지 분명히 제 손에 남아 있었다.

    ‘내가 아저씨를….’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오히려 고통에 앓고 있는 배상우가 더 침착할 지경이었다.

    “침착하세요, 침착해…. 흥분하면 피가 더 빨리 새요.”

    이겸이 읊조렸다. 배상우의 팔에 감긴 겉옷이 벌써부터 축축해졌다. 이러다간….

    내가 너무 깊이 찔렀나? 다시 서도현에게 연락해서…. 아, 전투 중이라 받지 않으려나.

    “윤이겸….”

    배상우는 자신보다 더 당황한 듯한 윤이겸을 쳐다봤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소장실. 자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소화기로 변해 있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고, 그 이후부터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있다면 자신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그것이 곧 자신을 죽일 것만 같아서 반격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앞에는 윤이겸이 제 손목을 지혈하고 있었고, 서도아는 소장실 한편에 놓인 구급상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환각? 블러드 헌터의 피를 마셨나? 방금 배상우가 본 환각은 그것과는 조금 궤를 달리했다. 아마 누군가의 이능.

    “아저씨! 여기, 여기 거즈 있어요….”

    “도아 너…. 목이….”

    “됐으니까 얼른 지혈부터 해요!”

    거즈를 찾아 내미는 서도아의 목이 빨갛다. 그 붉은 자국은 마치 누군가의 손자국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상우는 가만히 주먹을 쥐려 했지만 쥐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배상우는 자신이 환각 속에서 누군가와 싸웠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손으로….’

    그리고 그걸 막아 세운 건 아마. 배상우는 상처 입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윤이겸을 토닥였다.

    “잘했다.”

    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현명하고 빠르게 잘 대처했다.

    “아저씨, 피가. 피가 안 멈춰요…. 제가 너무 깊게….”

    윤이겸이 눈동자를 잘게 떨며 배상우를 올려다봤다. 실시간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배상우보다 이겸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배상우는 오히려 태연하게 그를 달랬다.

    “진정해. 자경단 생활하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인 줄 알아? 아유, 이제야 스트레칭했네. 못난 꼴 보여 미안하다.”

    “움직이지 마세요!”

    이겸과 도아가 동시에 다급하게 외쳤다. 어째 행동이 서도현과 똑 닮았다. 안심시키려는 의도는 좋은데 왜 자꾸 무리해서 움직여 상처를 더 벌리는 건지.

    “괜찮아. 그보다 적은?”

    “적은….”

    이겸은 얼른 주의를 기울여 1층의 상황을 살폈다. 아까 전만 해도 유리들이 깨지며 진열대 위의 무기들이 떨어지고 요란했건만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서도현은….

    벌컥. 소장실 문이 열렸다. 도아는 빠르게 피를 빼내어 자신들 주위로 막을 형성하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연 이에게 날을 겨눴다.

    “나야.”

    “…오빠?”

    상대를 알아보곤 얼른 이능을 해제했다.

    “서도현. 피가. 아저씨 손목에서 피가 안 멈춰. 내가 찔렀는데. 내가…. 나 때문에.”

    평소의 침착은 어디 가고 이겸이 한껏 당황해 서도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서도아를 지키다 생긴 어깨의 상처와 새로 난 손바닥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 봐.”

    서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배상우에게로 성큼성큼 움직였다.

    도아는 이 모든 게 저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았다. 자신이 기어코 이곳에 오겠다고 졸라서. 적의 공격 하나 알아차리지 못해 서도현을 다치게 했고, 순간 이동된 곳에서 배상우와 다투다 차마 그를 해할 수 없다는 유약한 마음에 모든 책임을 윤이겸에게 떠넘긴 꼴이 되었다.

    그 결과 이겸은 스스로 배상우를 찔렀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고, 배상우는 피가 멈추지도 않는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도아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가 고집을 피워서…. 항상 재우와 본인을 내버려 두고 자기들끼리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그들에게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 모든 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었고, 만용이었다.

    저 하나 때문에 일이 이 지경으로 커진 것만 같았다.

    “어, 서도현이. 적은?”

    “처리했어요.”

    “꼴이 말이 아니구먼.”

    “피차일반인데요.”

    방금까지 적을 처리하고 온 서도현이 배상우의 상처를 살폈다. 이겸이 매듭지어 놓은 겉옷을 풀어헤치고 옆에 놓인 거즈를 들어 응급처치를 했다. 도아가 찾은 구급상자에 웬만한 건 모두 있었고, 이런 상처들을 자경단 시절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처치였다.

    그러다 축 처진 얼굴을 하고 있는 이겸과 도아에게 말했다.

    “왜 푹 죽어 있어. 주변 경계나 살펴. 별거 아닌 상처야.”

    배상우가 괜찮다고 했을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다 상처 전문가 서도현이 그리 말하자 한결 안심한 이겸이 주위를 경계했다.

    서도현은 그런 그를 흘끔 살폈다. 혹여나 적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도아가 우울해하는 건 어찌어찌 이해한다 쳐도 윤이겸이 그러는 건 의외였다.

    ‘서도현. 피가. 아저씨 손목에서 피가 안 멈춰. 내가 찔렀는데. 내가…. 나 때문에.’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배상우를 이리 만든 건 윤이겸이었다. 적이 아닌 아군을 찔렀단 게 충격이었나. 이런 상처 정도야 죽지도 않고, 며칠 자고 나면 나을 텐데. 그보다 윤이겸은 배상우 걱정만 하네.

    “…아.”

    서도현은 배상우의 손목에 소독약을 들이붓다가 제 손바닥 상처를 그러쥐고 작은 신음을 뱉었다.

    “…너 뭐 하냐?”

    배상우의 어이없는 물음이 들려왔다.

    “소독약이 제 상처에도 들어가니까 아파서요.”

    “너 다쳤어?”

    그제야 윤이겸이 서도현의 상처를 확인하려 다가왔다.

    “응.”

    그는 제 다친 손을 보란 듯 내밀었다.

    “조심 좀 하지.”

    “…….”

    들려오는 감상은 그게 끝이었다. 워낙 평소에 상처가 나도 태평히 굴고, 그렇게 하도록 윤이겸을 훈련시켰던 벌이라면 벌이었다. 이겸은 서도현이 무적인 줄 알고 있는 듯싶었다.

    하는 수 없이 배상우의 손목을 마저 처치하고 제 상처 입은 손바닥과 어깨도 치료하려 할 무렵, 이겸이 중얼거렸다.

    “누가 오고 있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지만 2층에 설치한 꽃병 너머로 두 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살피다 이내 소장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장실의 넷은 당연하게도 일제히 공격 태세를 갖추다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문을 연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배상우?”

    “…이성이?”

    놀랍게도 예호의 마스터 김이성과 그의 신입 노정규였다.

    “어? 이겸 씨? 왜 여기….”

    상대를 확인하고 곧장 경계를 푼 노정규와 달리 나머지 다섯은 여전히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었다. 김이성이 칼을 빼 들고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블러드 헌터 조사 차원. 너는?”

    배상우가 묻자 이번엔 김이성이 대답했다.

    “숙소로 가던 중 소리가 들려서. 피도 있고. 1층에는….”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크리처화한 시체. 그렇다면 그들의 말은 사실임이 입증된다. 김이성은 상황을 파악하고 무기를 집어넣은 뒤, 이제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사흘 전, 무기 제작 의뢰를 맡기고 나흘 후에 찾으러 오란 안내에 잠시 볼일이 있어 이련을 나섰다가, 오늘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련 내부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심상치 않아 몰래 뒷문으로 잠입했다고 설명했다.

    배상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는 길에 다른 적은?”

    “우리 말곤 없었어.”

    김이성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다친 것 같은데, 치료해 줘?”

    김이성의 이능은 반사와 회복이었다. 현재 서도현과 배상우에게 더없이 필요한.

    “아저씨부터 부탁드려요.”

    서도현은 여전히 경계 어린 눈빛을 유지하며 배상우의 옆에 섰다. 만약 김이성이 무슨 짓을 벌인다면 곧바로 반격할 수 있게 단검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경계가 무색하게 배상우의 피가 점차 멎어 들고 상처가 아물었다.

    이후 김이성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서도현을 치료했다. 아무리 래터와 예호의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김이성의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이성 역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얼간이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겸은 한시름 놓았다. 구성원 중 힐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리 크다니 떨떠름하면서도 안심이 됐다.

    망할 꼬맹이. 김이성이 혀를 차며 서도현을 노려보다 이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겸 역시 지은 죄가 없지 않기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전 예호의 2팀 상대로 대련에서 승리했던 게 죄는 아니지만 거기서 편법을 쓴 건 기억에 남아 양심을 깊게 찔렀다.

    “래터 신입, 너 이름이 분명….”

    김이성이 이겸을 향해 굳은 입을 열 찰나였다. 이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이건 분명…. 그래, 마치 그때와 같다.

    사흘 전, 정장을 맞추다 본 그 장면과 같았다. 이겸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 시야에 집중했다.

    빛 한 점 없는 내부로 들어오는 희미한 세로 빛. 기절한 누군가 문틈 사이로 던져졌다. 그리고 보이는 건 지독히도 익숙한 얼굴.

    “…차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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