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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5)화 (85/102)
  • #085

    관리소장을 쓰러트린 후, 지잉- 서도현의 머리에 고통이 찾아왔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비틀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도현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번쩍였다. 귀찮은 능력이다. 하지만 상대는 능력을 사용할 땐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지 언제나 멈춰 선 채로 한곳을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배상우를 기절시킬 정도의 고통이라면 더 집중해야 했을 테고, 서도현은 지금 그가 그럴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다.

    끽해야 눈을 찌푸리는 정도로 그칠 수 있는 고통.

    도현이 가뿐히 몸을 숙여 피하자 헛손질로 공격을 그친 남자는 빠르게 경로를 틀어 단검을 휘리릭 돌려 고쳐 잡은 뒤, 그가 위치한 아래를 향해 단숨에 일직선을 그리며 내리꽂았다.

    남자도 지금까지 허투루 살아온 게 아닌지 전투 중 앞을 내다보는 수가 많았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순간적인 센스가 좋다는 뜻이었다.

    고통의 크기는 집중도에 비례하겠지만 자잘하더라도 오직 한 곳만 노려 고통을 계속 준다. 오랜 기간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바위도 뚫듯 지속적으로 머리에 고통을 주니 그것이 중첩되는 것처럼 지끈거리며 어지러웠다.

    고통이라.

    ‘겸이가 싫어할 능력이네.’

    감상은 그게 끝이었다.

    순간적인 센스가 좋다고 해도, 이능을 효율적으로 다룬다 해도, 그뿐. 상대를 잘못 만났다.

    고통은 도현에겐 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기도 했다.

    “…자경단?”

    남자가 한 발짝 물러나 언제든 공수를 나눌 수 있게 자세를 취한 뒤 물었다.

    배상우 외의 자경단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관리소장의 말로는 배상우가 지인과 함께 왔다고 했는데….

    서도현의 전투 스타일은 수많은 경험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었다. 눈앞의 작은 고통을 무시하고 더 큰 이득을 얻어 내는 그런. 오른팔은 이미 너덜너덜하면서도 신체를 멀쩡히 보존한 자신과 막상막하로 검을 부딪혔다.

    반복적으로 머리에 고통을 주고 있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이능을 사용하고 있나? 싶을 만큼 무감각했다.

    그때 도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른쪽, 위, 휘청거리면서 왼쪽, 상체를 숙인 뒤….

    무언가를 입력하는 것 같던 도현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음, 됐다.”

    “…뭐?”

    그리고 모든 게 리셋되었다.

    ***

    남자는 서도현의 머리에 고통을 준 후, 그가 비틀거릴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도현이 멀뚱히 아무 자세도 취하지 않기에 고통에 맥을 못 추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곧장 검을 내질렀다.

    채앵-!

    하지만 순식간에 날붙이가 부딪혔고, 쇠와 쇠가 긁히며 끼기긱- 하는 마찰음이 울렸다.

    도현은 그 날을 타고 내려가 바닥 어느 곳으로 손을 뻗어 관리소장의 무기를 쟁취했다. 곧장 남자의 복부를 향해 날이 날카롭게 섰다. 그는 왼손을 들어 검을 막았지만 부상을 막을 순 없었다.

    “크윽…!”

    검이 박힌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사람을 향해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는 칼끝이다.

    아까 전 관리소장을 우선적으로 노릴 때도 그랬고, 현 상황에서 뭐가 더 이득인지 따져 움직일 정도의 냉철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목숨을 건 전투가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자경단인가?

    반복적으로 머리에 고통을 주고 있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내가 이능을 사용하고 있나? 싶을 만큼 무감각한 표정.

    남자는 제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있는 도현을 공격하기 위해 오른손에 쥔 단검을 돌리며 고쳐 잡고 아래를 향해 일직선으로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도현은 마치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 칼을 높이 치켜들어 남자의 오른 손목을 찔렀다.

    “흡!”

    그 덕에 남자가 고쳐 잡으려던 검은 그대로 도현의 얼굴 아래로 낙하했고, 도현은 단숨에 검 손잡이를 낚아챘다. 남자가 뒤로 주춤 물러났고 도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이후부터는 쉬웠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간단한 싸움이었다.

    모든 경로를 파악했고 그걸 막으면 될 뿐이다.

    아마 윤이겸이라면 외우기에 능하니 더 잘할 테지.

    리듬 게임 같은 거였다. 음표가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따분한 일이다.

    남자는 도현과 수합을 겨누면 겨눌수록 스산한 기분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기분.

    “아.”

    이제야 알았다. 마주친 적은 없어 얼굴은 몰랐지만 들은 바가 있다.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동료들과 대화하면 가끔 등장하곤 했던 이름이다.

    조직 내 후보군 리스트에 있던 이름.

    “네가 서도현이구나.”

    “응. 불렀어?”

    남자는 도현과 검을 나누면서 저만치에 쓰러져 있는 관리소장을 향해 혀를 찼다.

    능력이 좋다길래 페어로 활동했건만 이동하는 물체가 랜덤으로 배치되어 본인조차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등 쓸모가 없는 놈이다.

    이련의 관리소장으로 일하면서 고객의 이름도 모르다니.

    ‘저…. 선생님, 이분은?’

    ‘아, 이놈은 자주 안 올 애니 이름 같은 거 외워 둘 필요 없어.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고. 너흰 이만 나가서 구경이나 하라니까?’

    배상우도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고, 정장을 맞출 땐 윤이겸의 이름을 댔기에 서도현의 이름은 어디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남자는 관리소장의 쓸모를 탓하다 심장에 검이 박혔다. 크리처화된 부분의 가죽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남자의 최후였다.

    ***

    편지를 모두 읽은 재우는 편지 사진을 찍어 메시지를 보내 이 사실을 형들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똑똑- 똑똑-.

    “저기요…. 편지 다 읽으셨나요?”

    “앗, 넵!”

    재우는 서둘러 휴대폰을 확인했다.

    미치겠네. 왜 연락이 없지.

    그들이 숙소에 있었다면 제 방문을 두드리는 낯선 이를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분명 어디 나간 게 틀림없었다.

    ‘왜 나를 빼고….’

    사육장에 관한 조사를 하러 갔나? 그렇다면 이해는 하지만 언질이라도 주지.

    형들에 대한 서운함과 문 너머 사람에 대한 당황, 이번 사건에 빠진다는 미안함 등, 각종 복합적인 감정들과 더불어, 직접적으로 관여는 못 하지만 어떻게든 1인분 몫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재우를  움직이고 말았다.

    “저… 좀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데 들어오세요.”

    재우는 그렇게 문을 연 채 이필진을 불러들였다.

    “후우, 감사합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 안에 들어섰다.

    제집도 아닌 숙소라 뭘 대접할 만한 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재우는 물이라도 건네주기 위해 간이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내밀었다. 작은 호의였다.

    “이거라도 드세요.”

    “감사합니다.”

    생수병 뚜껑을 여는 이필진에게 재우가 조심히 물었다.

    “저… 편지 읽었는데요. 지인이 퇴사 후 연락이 안 된다고….”

    “…네.”

    그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가장 최근은 바로 나흘 전이에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니…. 다음 날부터 나오질 않아요.”

    나흘 전에 무슨 소리를 들었고, 다음 날 안 나왔다고?

    자신들이 부산에 온 건 사흘 전으로 이겸이 크리처 사육장에서 사람을 보았다고 한 주장과 딱 들어맞았다.

    만약 이겸이 본 사람이 이필진의 지인이라면 그는 이미….

    “저…. 그러면서 걔가 소리 나는 방향을 알려 줬거든요. 제가 길을 알고 있는데 동료들도 다 싫다고 하고. 도무지 혼자 가 보긴 무서워서요. 헌터님이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기술계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각성하면 이련에 와서 연수를 받는 탓에 크리처를 마주할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크리처 사냥은 언감생심이었다.

    사실 재우도 크리처 사냥을 잘 안 나가긴 했지만 눈앞의 이필진이란 자보다 강하긴 할 테다.

    재우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주눅 들어 있는 이필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형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속에 일렁였다.

    “…그럼 근처까지만.”

    어쩔 수 없이 근처까지만 함께 가기로 타협하자 이필진의 얼굴이 몰라보게 활짝 피어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니 더욱 거절하기 힘들었다.

    “저기요, 여기로 가는 거 맞아요?”

    어째 점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재우는 불안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밤공기는 서늘하지, 형들은 연락도 안 받지, 이필진은 점점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가지, 꼭 담력 테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필진이 알고 있는 곳이 크리처 사육장이라면 이런 곳으로 들어갈 만도 했기에 재우는 좀 더 꾹 참은 채 열심히 걸었다.

    “네, 조금만 더 걸으면 친구가 말했던 곳이 나와요. 힘드시죠?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이필진은 아까 재우에게서 건네받은 생수병을 내밀었다.

    “아뇨, 힘든 건 아니지만….”

    재우는 그것을 거절하며 되물었다.

    “협회에 신고해 볼 생각은 없으셨어요?”

    이련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거나 그런 쪽으로….

    “제가 신고해서 몇 번 왔었는데 관리소장님과 대화를 나누더니 특별한 건 못 발견하고 다시 돌아갔어요.”

    이필진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별것도 아닌 걸로 신고해서 사람 귀찮게 한다고 관리소장님한테 대판 깨졌지만요, 하하. 아,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친구가 말한 곳이에요!”

    그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꺾으니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길이 하나 나왔다.

    여기가 이겸과 도현이 그토록 찾던 크리처 사육장인가? 재우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우선 그것으로 추정되는 곳의 위치는 외워 뒀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이만 돌아가려 했다.

    혹시 모르니 사진도 찍고….

    “저… 사진은 왜 찍으시나요?”

    “제 동료들한테 알려 주려고요. 그리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요. 여긴 제가 나중에 저희 길드원들이랑 다시 방문해 살펴보도록 할게요.”

    “아! 그래서였군요. 감사합니다.”

    재우는 사진은 찍은 후,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중얼거렸다.

    “근데요. 저 말고 다른 헌터들한테도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었죠.”

    “그분들은 어떻게 됐나요?”

    협회처럼 관리소장과 대충 대화를 나누며 일을 설렁설렁 하다 그냥 돌아갔나? 그럴지도 모르지. 그들은 부탁을 받았을 뿐 그게 본업은 아니니까.

    “그분들이요?”

    이필진이 볼을 긁적이며 난감한 어투로 대답했다.

    “으음, 아마 죽었을걸요?”

    “…네?”

    들려오는 대답에 재우는 어떠한 반응도 못 하고 몸을 잔뜩 굳혔다. 피부에 서늘한 밤공기가 맴돌았다. 언뜻 크리처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순간 뒤에서 숨죽이며 다가온 누군가가 재우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좋은 양분이 됐죠. 크리처들에게.”

    이필진의 목소리와 함께 재우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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