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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3)화 (83/102)
  • #083

    관리소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팔을 들어 제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막았다. 그사이 빠르게 크리처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큿…!”

    그럼에도 팔에 총알이 박혔다.

    이겸은 방아쇠를 당기는 반동으로 인해 잠시 휘청거리며 두 명의 적들을 노려봤다.

    반동이 세고, 크리처화한 단단한 피부에도 총알이 박힌 걸 보면 일반인들이 쓰는 총이 아닌, 헌터가 쓰는 크리처 전용으로 이련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총인 듯했다. 손에 집히는 것 중 아무거나 집은 건데 운이 좋았다.

    하지만 정확히 머리를 노렸는데 그건 실패인가. 역시 주승태 때 만났던 블러드 헌터 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리소장이 제 팔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놈이 이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순식간에 반대편에서 달려온 서도현이 그와 날붙이를 힘차게 맞댄 후, 이겸의 옆에 섰다.

    “도아한테 가 봐.”

    “하지만 두 명인….”

    “아까 한 말 못 들었어?”

    관리소장의 능력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때, 서도현이 무어라 중얼거렸던 말.

    ‘믿고 맡길게.’

    하지만 적은 두 명이고, 한 명은 아무리 팔을 다쳤다 하지만 그건 서도현도 마찬가지. 아직도 그의 어깨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겸아, 약속했잖아.”

    이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간 자신이 했던 말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도아도 곧 성인인데 알아서 하게 놔둬.’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챙길게.’

    적이 눈앞의 두 명 외에 더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도아가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다.

    “…금방 찾아 올게.”

    “그냥 숨어 있어.”

    그래도 친오빠라고, 어지간히도 도아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도아는 어릴 적 안 좋은 기억도 있고, 지금은 잊었다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시에 모든 기억이 떠올라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아마 서도현이 제일 염려하는 상황이겠지.

    이겸은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려 다급하게 2층으로 뛰어갔다.

    “어딜…!”

    블러드 헌터가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겸을 노려봤다. 그러자 순간 다리에 거센 통증이 일며 저도 모르게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저벅저벅. 이겸에게 다가오려는 그의 앞을 도현이 막아서 제지했다.

    “어딜.”

    두 사람이 칼을 맞부딪치며 몸싸움을 벌이자 진열대의 유리가 깨지고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블러드 헌터가 도현과의 싸움에 정신이 팔리는 통에 이겸의 다리도 어느새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부들거리며 일어서 보니 크리처화로 상처 난 팔뚝을 지혈한 관리소장도 둘의 싸움에 가담해 있었다.

    도망치려는 놈은 공격 의사가 없어 보이니 둘이서 한 놈부터 먼저 끝장내고 나머지 놈들을 쫓으려는 건가.

    이겸은 자신이 너무 늦지 않길 바라면서 서둘러 2층 계단을 올랐다.

    ‘서도아, 서도아.’

    1층에서 이렇게 큰 소란이 벌어졌으니 소리가 충분히 들렸을 텐데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능을 사용해 찾아도 봤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럴 순 없는데. 내가 못 찾을 리가 없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점차 눈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딜 그렇게 꼭꼭 숨은 거야.

    그러다 문득, 어느 한 곳이 유독 보이질 않는 걸 인지했다.

    소장, 소장실이 비춰지지 않는다.

    ‘제길, 이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이련의 넓은 내부를 뒤지기 급급해 어디의 꽃병이 사라졌는지 눈치도 못 채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그건 나중에 후회해도 늦지 않으니 얼른 관리소장실로 향했다. 이겸이 이내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서도…!”

    “오…커흑! …오빠.”

    서도아의 이능으로 세로로 가늘게 찢어진 그녀의 팔에서 피가 굳어 나와 서슬 퍼런 날 형태로 번쩍였고, 그 날은 곧장 배상우를 향해 있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배상우를 벨 수 있음에도 차마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고, 배상우는….

    “……아저씨가 왜.”

    서도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

    와장창, 진열대의 유리가 깨지며 도현은 그중 손에 집히는 아무 무기나 잡아 들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와중에도 적을 착실히 공격해 나갔다.

    오늘 아침에 잠입을 한다며 나갔던 아저씨는? 어디 있지? 이미 죽임을 당한 건가? 만약 잠입을 들켰다 해도 서도현이 알고 있는 배상우는 그렇게 쉽게 죽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아니면 혹시…. 이전 기습 때처럼 당한 건가?

    그러고 보니 방금 윤이겸이 아무 장애물도 없는 곳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넘어졌다. 왜?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두통이 생겨 쓰러졌대, 그러고 일어났어. 그게 끝이래.’

    ‘…네? 병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MRI 찍어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놈이! 나는 지병 같은 거 없어!’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던 배상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넘어진 윤이겸.

    아, 관리소장은 순간이동 같은 이능을 사용하고, 남은 한 놈은 고통 계열 능력인가.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서도현의 낯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다년간 자경단으로 활동했고,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 능하다.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인 듯했지만…, 과연 나보다일까.

    도현은 제 어깨의 상처를 무시하며 관리소장을 공격했다.

    모든 것엔 순서가 있다. 그건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우선순위는 조금씩 다르다 해도 이거 하난 명백하다.

    가장 약한 자, 겁먹은 자부터 처리한다.

    언뜻 봐도 관리소장은 옆의 동료보다 전투 수준이 떨어져 보였고, 방금 전 윤이겸의 공격으로 인해 고통을 알게 된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면 그 고통도 잊힌다지만 지금은 가장 고통이 심하게 느껴지고, 무서울 시간.

    도현은 눈앞의 남자를 무시하고 오로지 관리소장만을 노렸다. 이 자는 대충 보기에도 전투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에 비해 관리소장은 좀 더 약하고, 고통을 느끼는 중이고, 자신들에게 있어 번거로운 이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관리소장을 우선으로 노리는 까닭이었다.

    크리처화로 방어하겠다고? 이곳은 이련이다. 사방에 널린 게 무기. 방패가 막아 내는지, 창이 뚫는지 아주 재미있는 대결이 될 듯하다.

    도현은 양손에 검을 쥐고 관리소장에게 달려들었다. 꼴에 도망은 치지 않겠다는 건지 방어와 반격을 준비하는 자세가 퍽이나 웃겼다.

    정면을 향해 달려가다 급히 몸을 숙여 관리소장의 다리를 베었다. 발을 축 삼아 팽이처럼 회전한 후, 제게 달음질치는 다른 자와 검을 맞댔다. 하필 오른쪽이었다.

    도아를 지킬 때 났던 상처 쪽 어깨에 압력이 실리자 손에서 힘이 빠지며 단검이 허공 위로 튀어 올랐다.

    그대로 남자의 검날이 제 목전을 향해 오기에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오른 어깨에다 이제는 오른손을 다쳐 버렸네.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식으로 이성을 잃고 싸우다 보면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공포, 그리고 거기서 오는 희열. 통쾌함.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아. 꼭 퀘스트를 깨는 기분이다. 다치면 다칠수록, 만신창이가 될수록 상대에 대한 정보가 입력된다.

    그리고 무로 돌아가 공백.

    그 후엔 언제나 승리.

    고작 어깨와 손바닥이 관통된 것뿐이다. 더 심한 일도 겪어 봤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 일, 무로 돌아갈 필요도, 리셋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일.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서 중요한 건 단련된 신체도, 엄청난 이능도 아니다. 순간의 센스.

    도현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한 뒤, 다리를 쭉 뻗어 남자를 가격했다. 바람이 일며 남자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오른손을 관통한 검도 빠져나갔다.

    그대로 양손을 바닥에 짚고 물구나무서듯 발을 쳐올리며 관리소장의 턱을 가격하고 제대로 섰다.

    남자와 싸우다 허공으로 빙그르르 튕겨져 나간 검은 어느새 도현의 손에 들려 있었다.

    크리처화? 우습기도 하지. 이건 크리처를 죽일 때 쓰는 칼이거든.

    단검은 그대로 관리소장의 심장에 내리 꽂혔다.

    전투에 있어 순간의 센스.란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이겨 낼 것인가. 무엇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

    도현은 제 몸을 돌보는 것보다 적을 공격하는 걸 더 중요시했다. 그 결과 오른 어깨와, 손은 엉망이 되었지만 관리소장을 쓰러트렸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아까 뭐라고 했더라.”

    너희가 윤이겸을 죽였을 때. 아, 그랬지.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도현은 입꼬리를 잘게 올리며 중얼거렸다.

    “한 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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