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2)화 (82/102)
  • #082

    “아저씨는 약속 어긴 적 없는데….”

    도아는 배상우가 도착했을까 싶어 불이 꺼져 어두워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겸은 그가 올 동안 미리 찾아보고 있으려고 근처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감각에 집중했다. 꽃병 속 물을 통해 이련 내부가 훤히 보였다. 거기서 좀 더 멀리 나아가려고 애를 썼다.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렵다면 대략적인 것도 좋았다. 시야를 계속 확장시키면 보이는 장면, 50m 밖의 그곳이 사육장이었다.

    시끌벅적한 낮보다는 어둡고, 조용한 밤에 가만히 눈을 감고 집중하니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더욱 선명히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러다 자신들 쪽으로 급히 달려오는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저씨인가? 좀 더 자세히 확인하려 감고 있던 눈을 구기는 순간….

    “서도아!”

    도현이 팔을 뻗어 도아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고, 거의 동시라고 봐도 무방할 타이밍에 이겸이 도아를 도현 쪽으로 밀쳤다.

    도현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은 도아의 눈이 커졌다.

    “…오빠?”

    “보지 마.”

    무심코 고개를 들려 했지만 도현이 머리를 눌러 막았다. 도아는 가만히 그의 품에서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다 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따뜻한 액체에 서늘하게 굳고 말았다.

    “오…빠.”

    “뒤로 가.”

    떨리는 음성으로 도아가 그를 불렀지만 도현은 어깻죽지에 박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내며 도아를 제 뒤로 보냈다.

    이겸은 혹시 몰라 챙겨 온 단검을 빼 들며 도현의 옆으로 다가섰다. 누군가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식은땀이 흘렀다.

    “야, 너 팔이….”

    도현의 어깨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개의치 않고 상처 입은 팔을 스트레칭하듯 한 바퀴 돌렸다. 그럴 때마다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움직일 수 있어.”

    “뭘 움직일 수 있어!”

    도아가 다급히 그의 어깨를 지혈하듯 꾹 누르며 울먹였다.

    “나 때문에…나 때문에. 내, 내가….”

    이 상황에 가만히 있을 도현이 아니건만 무대응인 걸 보니 그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리셋 시점을 두지 못한 듯했다.

    아마 도아가 공격당할 걸 알아차린 순간, 그녀를 감싸지 않고 리셋 포인트를 지정했다면 지금처럼 부상을 입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소중하단 건가.’

    이겸은 긴장으로 자꾸만 땀이 배어 나오는 손으로 손잡이를 고쳐 쥐고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적을 살폈다.

    둘.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위치는 파악했다. 둘이라면 관리소장과, 어제 그와 야밤에 대화를 나눈 인물인가.

    그보다 상우 아저씨는 어떻게 된 거지? 잠입 중에 들키고 만 건가? 이겸은 빠르게 주위를 탐색했다.

    “서도아, 집중해.”

    도현이 저를 지혈하는 손을 뿌리치고 나지막이 일렀다.

    “적이 눈앞에 있는데 뭘 울먹이고 있어? 윤이겸도 그러진 않았어.”

    평소라면 이겸이 말렸겠지만 언제 적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서 빨리 서도아가 정신을 차리고….

    “오른쪽!”

    이겸이 외치자마자 서도현은 제 어깨에서 빼낸 단검을 쥐고 순식간에 오른쪽을 방어했다.

    가로로 눕힌 쇠붙이에 챙- 소리가 나며 상대의 검과 부딪혔다. 정확히 상처 입은 자리를 노리고 온 공격이었다.

    그 틈에 이겸이 달려들어 도현을 엄호했고, 도아는 무기 없이도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상대의 팔뚝을 쥐고 축 삼아 허공에서 공기처럼 회전한 뒤 무릎으로 그의 뺨을 가격했다.

    상대는 주춤하며 떠밀렸다. 잠시 후, 또 다른 누군가가 기척 없이 뒤에서 나타나 이겸의 등을 밀었다. 민다기보단 자그마한 터치에 가까웠다.

    황급히 뒤돌아서자 관리소장이 제 양 손바닥을 보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잡았다.”

    눈앞의 적을 살피느라 셋 모두 한 방향만 보고 있었다. 도현과 도아도 관리소장이 제 등을 밀었는지 뒤돌아 그를 노려보았다.

    이내 셋은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의 등을 맞대고 적과 마주했다.

    삽시간에 찾아온 죽음의 위협에 이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서도현. 능력은?”

    “방금 시작했어.”

    앞으로 열 번. 적은 두 명. 리셋은 시작되었으니 좀 더 편히 마음을….

    짝!

    이윽고 관리소장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순간 이겸의 주변이 캄캄해졌다.

    “…서도현? 서도아?”

    아무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기는…. 1층의 비품실 창고였다. 분명 2층의 의류 매장이었는데 어째서?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관리소장의 능력인가?

    ‘잡았다.’

    …터치로 인해 발동되는 능력이군. 앞의 적에 정신이 팔린 사이 뒤에서 슬쩍 다가와 터치한 거고. 3대 2는 자신들에게도 불리하니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싸우려는 작전인가?

    그렇다면 이겸 자신만 다른 곳으로 보내진 게 아닐 테다. 관리소장은 서서남매도 터치했으니 아마 모두 뿔뿔이 흩어 버린 후 2대 1로 자신들을 한 명씩 격파해 나갈 수도 있다.

    아까 무기로 도현을 공격한 놈은 어젯밤 관리소장과 대화를 나눈 이가 확실하다.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한 명은 앞에서, 다른 한 명은 뒤에서 몰래 접근했다.

    속수무책으로 관리소장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주승태 때의 블러드 헌터들과는 달리 전투에 능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배상우마저 기절시킨 전적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일행과 합류해야 했다. 이겸은 서둘러 서도현과 서도아의 위치를 찾아 나섰다.

    건물 전체에 불이 꺼진 탓에 어두워 사물 분간이 잘되지 않았다. 그중 움직이는 물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위치는 1층의 제일 안쪽 비품실, 서도현은… 희미하지만 새어 나오는 불빛, 어딘가에서 그의 얼굴이 살짝 비치고 사라졌다.

    그 주변에 진열된 검과 무기류들. 자신과 같은 1층이었다.

    깨끗한 백자처럼 반드르르하게 외관에 신경 쓴 무기부터 브랜드 로고가 찍힌 검들, 그리고 그 브랜드라면….

    입구로 들어와서 왼쪽.

    이겸은 서둘러 그와 합류하기 위해 비품실 문을 열었다.

    “…커헉!”

    “한 놈. 잡았다.”

    순식간에 몸을 뒤로 뺐지만 목덜미를 깊게 파고 든 검날에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 상대방을 두 눈에 새겼다.

    “다음은 어디로 가지?”

    “나도 몰라. 랜덤으로 배치되니까.”

    “여전히 쓸모없는 능력이네.”

    “셋 모두 흩어진 건 맞을 테니 상관없잖아.”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겸은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힘겹게 감았다 떴다. 두 놈 다 자신에게 왔다. 문을 열길 기다리고 있었나? 아니면 그놈들이 찾는 중에 내가 타이밍 좋게 문을 연 건가.

    ‘나도 몰라. 랜덤으로 배치되니까.’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 놈들의 말을 되새겨 보니, 순간이동 시키는 능력이 만능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저들도 자신들을 찾아 헤매고 있겠구나.

    ‘서도현이… 리셋을 해야 할 텐데.’

    아까 전 이능을 시작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공격당한 걸 알까? 리셋을 할까?

    일행의 위치를 찾는 데 분주해 적의 위치를 살피지 못했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게 그것이었는데…. 명백한 실수였다.

    죽음의 두려움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가, 알게 모르게 익숙함도 들었다.

    “…윤이겸.”

    그때 서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구에 있다가 소란 탓에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아, 다행이다. 죽을 리는 없겠구나.

    ***

    누군가가 기척 없이 뒤에서 나타나 이겸의 등을 밀었다.

    황급히 뒤돌아서자 관리소장이 제 양 손바닥을 보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잡았다.”

    이겸은 그 말에 오히려 안심했다.

    ‘돌아왔구나.’

    “다친 곳은.”

    서도현이 물어 왔다.

    “아까 봤잖아.”

    나 죽은 거.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의 등을 맞대며 이겸이 대답했다.

    “…….”

    짧은 침묵 후, 도현이 다시금 물었다.

    “겸아, 처음 위치는 어디였어?”

    “난 1층 비품실.”

    “도아는?”

    갑자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도아가 응답했다.

    “…나? 뭐가?”

    “도아는 못 봤어. 그리고 비품실 문 앞에 적이 있었어. 두 명 다.”

    이겸은 서늘한 목덜미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두 명이라곤 장담 못 해.”

    다른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도현의 말에 솜털이 곤두섰다.

    “겸아.”

    “…….”

    “넌 도아한테 가 봐.”

    “뭐? 너는….”

    순간이동 후에 당장 도아를 찾아가라고? 그보다 너는? 자기는 어깨도 다쳤으면서 뭘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지. 게다가 비품실 문 앞엔….

    “만약 아까와 같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넌 도아를 찾아. 찾는 건 네가 더 잘하잖아.”

    “…하지만.”

    이겸이 불안한 눈빛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그가 무어라 말하던 그때,

    “너희들 무슨 말을…. 뭐, 아무렴 상관없나.”

    관리소장이 중얼거리다 얼른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짝!

    박수 소리가 들려오며 순식간에 주변이 캄캄해졌다.

    여전히 1층 비품실.

    그렇다면 모두의 위치도 같을 테다. 서도현은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 서도아는….

    방금 전 둘이 나눈 대화를 통해 몇 가지를 알아냈다. 우선 이동 능력을 쓰는 관리소장도 자신이 이동시킨 인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

    하지만 부산에 있는데 서울까지 보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능력은 아닐 테다. 끽해야 이련 내부겠지. 그러니 그들도 어쩌다 자신을 발견해 죽인 것일 테고.

    이겸은 얼른 이련의 내부를 훑었다. 사육장을 찾기 위해 설치한 꽃병들이 이런 경로로 쓰이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어디 있어. 어디….’

    어둡고 넓은 이련을 확인하며 눈을 감은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물의 시야 속, 움직이는 무언가. 아까는 1층 위주로 살폈었다. 이번엔 2층 먼저.

    서도아가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면 입구의 왼쪽에 위치한 서도현이 모를 리가 없었고, 자신이 있는 1층의 안쪽 비품실 근처에 있었다면 저보다 더 빨리 놈들에게 발견됐겠지.

    아마 도아는 높은 확률로 2층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이쯤이면 놈들이 이곳을 지나갈 시간이란 걸 깨달았다. 자신이 문을 열지 않아도 놈들이 먼저 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공격하는 수밖에.

    이 상황에서는…. 음, 총이 검보다 낫겠군.

    다행히도 1층 비품실이라 무기 재고들이 아주 넉넉히 쌓여 있었다. 이겸은 권총을 챙겨 들었다.

    오늘 처음 마주한 자는 어둡기도 하고 워낙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지만, 지난번 본 관리소장은 알고 있다. 더군다나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번거로운 능력. 처리하려면 그쪽이 먼저다.

    이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서도현이 빠르게 이쪽으로 오고 있었고, 비품실 쪽으로 다가오는 두 놈이 보였다.

    고작 나무로 된 문이다. 차재우가 넘어졌을 뿐인데도 부서졌던, 경첩 핑계를 대던 학교의 그 나무 문과도 비슷했다. 총으로 부수는 것쯤이야.

    이겸은 아무것도 없는 나무 문을 빤히 응시하며 눈대중으로 가늠했다. 관리소장의 키는 대략 180cm, 서도현보다 작고 자신과 비슷하다. 대충 이쯤 되겠지.

    문을 열고 소장이 아닌 다른 놈이 자신을 먼저 공격했고, 관리소장은 그 뒤에 왔었다. 그럼 아까보다 한 템포 텀을 두었다가….

    이내 비품실 맞은편에 놓아 둔 유리 꽃병 속 물에 놈들이 비쳤고, 이겸은 그 위치에 총구를 갖다 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