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배상우가 트렁크 문을 닫으며 손을 털었다.
“이걸로 짐 다 실었지?”
“네.”
잔뜩 설레는 얼굴로 대답한 도아가 차에 올라탔다.
부산의 무기 제조 회사 ‘이련’으로 가는 당일이 되었다. 배상우의 밴을 타고 가기로 한 터라 자리가 넉넉하고 짐을 실을 공간도 많았다.
운전은 배상우, 조수석엔 서도현이 올라탔고 이겸은 뒷좌석에 개운치 않은 얼굴로 올랐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아무것도.”
그날 학교에서 갑자기 들려온 재우의 소식에 강태하와 급하게 헤어진 후,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의 아파트까지 찾아갔지만 흔적이 없었다.
아마 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불시에 자리를 비운 듯싶은데 강태하의 권유를 거절하고 헤어진 후라 타이밍이 영 껄끄러웠다. 또 소리 소문 없이 불쑥 나타나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찮은 건 매한가지였다.
이내 신경 쓰지 말자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일주일간 부산에 다녀오면 강태하도 집에 와 있겠지.
“다들 벨트 맸지? 출발한다?”
“네.”
재우는 배상우를 어려워하더니 이제는 면역이 생긴 건지 그도 아니면 함께 부산에 가게 되어 자주 마주칠 게 뻔하니 포기를 한 건지 이전보다는 나아진 기색이었다.
여전히 그에게서 멀리 떨어진 맨 뒷좌석이긴 했지만.
학생들도 같이 부산에 가는 만큼 배상우의 습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이 있어 배상우를 따라 예호의 김이성을 만나러 가는 거라 대충 설명을 해 주었다.
“아저씨. 여기 물 버리세요. 아님 지금 다 마시든가.”
“안 돼. 나 피곤하면 그거라도 마셔야 해.”
서도현은 운전석 거치대에 놓인 생수를 자신이 몽땅 들이켰다.
“인마, 그걸 왜 네가 마셔?”
“윤이겸 멀미 나요.”
“엉? 그거랑 이게 뭔 상관이래?”
최근엔 능력의 사용이 자유롭다 못해 의식하지 않아도 시야가 혼동되곤 했다. 일부러 의식해 능력을 쓰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할 정도였다. 언제든 쓸 수 있으니 좋다면 좋은 점이지만 서도현의 말처럼 운전할 땐 그 점이 불편했다.
노곤하게 잠에 빠져들려 할 때 출렁이는 물의 시야로 바뀌는 건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이리저리 시선이 흔들리고 달팽이관이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제 능력이랑 관련 있어서. 차라리 커피라도 사 드릴게요.”
“에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가는 길에 음료라도 사 가야겠네.”
“감사합니다.”
이겸은 순순히 포기한 배상우에게 운전석 백미러 너머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다 서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뭐, 왜. 앞에 봐.”
“할 말 없어?”
“…없는데?”
뭐야, 감사 인사라도 바란 건가? 이겸이 의문을 표할 무렵, 도현은 떨떠름한 그의 말을 듣곤 턱을 괴며 창밖을 바라봤다.
윤이겸은 이성적인 사람이다. 이성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협회 습격, 주승태 사건 때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반복을 통해 이성을 찾아 현명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어느 땐 이성적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면서, 최근엔 그 경계가 무서워 움츠려 있다 종종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만다. 그러면서 뿌듯해하는 게 웃기면서도 하찮고 아주 가끔은 귀여웠다.
배상우를 따라 부산에 가는 것이나 재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학교에 온 것이 그 예였다. 스스로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동안 학업에 그렇게 열중했으면서 결석하게 되었는데도 기어이 발걸음 했다.
‘우리 제발 인간답게 살자.’
그거 때문인가.
인간다운 게 뭐라고 딱 잘라 정의하진 못하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서도현이 보기에 윤이겸은 충분히 그것과 비슷했다.
사과를 받고, 친하게 지내기로 노력하면서도 가끔 저를 보면 하악질을 하거나 날 선 눈으로 보는 게 증거였다. 어디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것만 해도 윤이겸은 입력한 대로 행동 가능한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었다.
제 딴엔 앞으로 자신과 계속 지내야 하는데 사사건건 부딪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속 그러다 보면 자신들도 보는 사람도 지칠 테니 차라리 화해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머리는 차갑게 식어 사과를 받아들였다 해도 아직까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치미는 듯싶었다.
심지어 윤이겸은 스스로가 변했다 생각하고 그러지 않길 바라는 모양인데, 서도현이 본 그는 첫 만남부터 지금 모습까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다움을 고민하다가 스스로가 평소 했던 행동조차 의심하고 마는, 그러다 그것조차 잊고 마는 게 꼭…. 꼭 옛날의 자신과 똑같았다. 한심할 정도로.
숨은 어떻게 쉬고 뱉더라, 혀는 어느 위치에 놔두더라, 이건 원래 어떻게 하던 거였더라, 아무렇지 않게 행했던 일상조차 의문스럽고 모든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땐 이렇게 하는 게 옳은 행동이었지, 저렇게 하는 게 옳았지 일일이 생각하다가 어느샌가부터는 효율을 따져 움직이게 된다.
지금 윤이겸은 그 기로에 서 있었다.
서도현은 윤이겸이 진심으로 저를 용서하길 바라는 한편,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
그가 자신의 사과를 받고, 앞으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본인을 다섯 번이나 죽인 사람을 용서하겠는가. 하지만 정말로 용서한다면, 용서가 가능하다면 그땐….
물론 자신은 용서가 아닌 복수를 택하겠지만, 만약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면 이겸은 아마 아주 넓은 아량을 가진 인간이 될 테지.
그도 아니면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 해가 되는 모든 억눌린 감정들을 배제하여 인간다움을 잃은, 그 무언가. 그땐 정말.
‘정말 나와 닮아지겠네.’
***
배상우의 밴은 잠시 휴게소에 들어섰다.
도아와 재우는 부리나케 먹을 걸 구매하러 나가고, 배상우는 장시간 운전에 기지개를 펼 겸 잠시 내렸다 탑승했다. 그러다 뒷좌석의 이겸에게 물었다.
“근데 너 이능은 뭐냐?”
“…네?”
“무슨 이능이길래 차에서 물도 못 마시게 해?”
말해도 되나? 이겸은 습관적으로 서도현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그가 귀신같이 해결해 주니 저도 모르는 새 몸에 배인 본능 같은 거였다.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제 부하 능력 공개까지 못 하게 하는 법은 없으니 너무 걱정 말고. 뭐, 네가 말하기 싫다면 묻진 않을 테지만.”
“아뇨. 그게 아니라….”
배상우의 조언에 그제야 자신이 서도현을 봤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갈무리했다.
“그래도 같이 부산도 가고, 그럴 리는 없겠다만 가서 뭔 일이라도 터지면 서로 알고 있는 게 좋잖아?”
“네. 말씀드릴게요.”
이겸은 고스란히 제 능력을 밝혔다.
“오, 흔하진 않은 능력이네. 너 훈련 열심히 해야겠다.”
제 이능에 대해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고, 오로지 홀로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이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의 말에 순응했다.
“네. 그럼 아저씨는 능력이….”
“아! 그래도 너무 보이는 거에 의지하진 마라? 세상엔 말이야. 더 요상한 능력을 쓰는 놈들도 있거든.”
“네. 그럴게요.”
이겸은 조수석의 서도현을 흘겼다. 요상한 능력…. 곧장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러 능력들을 겪어 보지도 않았지만 그거 하난 장담할 수 있다. 아마 서도현보다 희귀한 능력을 만나기도 힘들 테다.
잠시 생각에 젖어 있을 무렵, 차 문이 열리며 도아와 재우가 먹을 것들을 양손에 가득 든 채 나타났다.
“그 주전부리들은 다 뭐야….”
이겸이 질린 눈으로 올라타는 학생들을 타박했다.
“전 몰라요. 차재우가 다 먹을 수 있다고 막 사던데요.”
“다 먹을 수 있어요! 아직 도착하려면 몇 시간 더 가야 하잖아요.”
“이놈! 난 내 차에 부스러기 떨어지는 거 싫어해!”
배상우의 호통에 차재우가 찔끔하며 대답했다.
“보… 봉지 받치고 먹을게요. 일부러 쓰레기용 봉투도 하나 더 챙겨 왔어요.”
“그래? 그럼 먹어. 어디 나도 하나 줘 봐.”
언제 목소리를 높였냐는 듯 배상우가 팔을 뻗어 봉투를 뒤적였다. 그러곤 아무 과자를 집은 후, 재우의 머리칼을 헤집어 주고 자세를 바로 해 시동을 켰다.
긴장한 기색이 가득하던 재우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에 의아해하며 맨 뒷좌석에 착석했다.
“자- 그럼 다시 출발한다.”
***
이겸은 재우가 사 온 과자를 얻어먹거나, 도아가 차 내의 블루투스와 연결해 틀어 주는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거나, 가끔 눈을 붙였다. 그렇게 장시간 달리다 보니 부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도아가 찌뿌둥한 몸을 활짝 폈다.
“으아, 우두둑 뼈 소리 나는 것 봐. 오빠는 안 뻐근해요?”
“응.”
한곳에 오래 있는 게 버릇이기도 하고, 원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귀찮아하던 이겸은 긴 이동에도 끄떡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라 그래. 뼈가 유연하잖아.”
서도현이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뭔 고양이야.”
이겸은 투덜거리면서도 팔을 내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배상우의 뒤를 따랐다.
여기가 무기 제조 회사인가. 척 보아도 외관부터가 공장같이 생겼다. 그때 서도현이 옆에서 물었다.
“겸아, 지난번에 옷 사고 싶다고 했잖아.”
“옷? 무슨 옷.”
“해져도 해지지 않는 옷.”
“아, 그거?”
분명 서도현이 자신이 사 준다고 다음에 같이 사러 가자고 했었다.
“사 주려고?”
“사 준다고 했는데 사 줘야지. 정장으로 맞출까?”
“전투할 땐 편한 게 최고지 무슨 정장이야.”
이겸이 반박하자 도현이 낮게 웃었다.
“여기서 만든 건 다 편하게 나와.”
“그렇다면야.”
이겸은 기껏 사 준다는 사람에게 토 달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장이든 뭐든 그런 옷이 이곳에서 제작된다는 것이 신기해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그의 말에 꼬투리를 잡을 틈도 없었다.
“어어? 이겸 씨! 윤이겸 씨!”
저를 발견해 부르는 목소리에 이겸은 낯을 구겼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인데. 자신을 이겸 씨라 부르는 사람 중에 노정규가 있지만 그 목소리는 아니고, 그렇다면….
뒤를 돌자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예요. 저! 권상혁.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