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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70)화 (70/102)
  • #070

    하아. 이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서도현이 말했다.

    -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 우선 얼굴 보고 얘기해.

    “지금은 안 돼. 친구 집이야.”

    - …그놈이야?

    서도현이 누굴 떠올렸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네가 생각하는 그놈 맞을걸.”

    - 언제 만날 수 있어.

    왜인지 서도현은 다급하게 굴었다.

    “하루 자고 갈 거야. …너 혹시 우리 집 앞이야?”

    - 아니. 네가 그런 거 싫어할까 봐. 왜? 기다릴까?

    “어. 잘 아네. 기다리지 마.”

    이런 건 눈치 빠르게 알아채는 놈이 그딴 식으로 굴었었냐.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윤이겸. 어디 갔나 했더니, 빈방도 많은데 안에서 통화하지 왜 밖을 나가.”

    “아, 지금 들어갈게.”

    강태하의 부름에 이겸이 계단을 오르다 멈칫했다.

    - 겸아.

    “…내일 연락할게.”

    서둘러 통화를 끊고 강태하에게 향했다.

    “넌 왜 나왔어. 그냥 안에 있지.”

    “너 찾으러 나왔지. 대화는 잘됐어?”

    “애초에 나만 화난 거야. 걘 지가 뭘 잘못한지도 모를걸.”

    이겸이 투덜거리며 현관 비밀번호를 쳤다. 만약 자신이 화낸 이유를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를 것이고.

    그딴 놈이 뭐가 예쁘다고…. 만나 주는 자신도 호구 중에 호구였다. 내일은 또 만나서 대화도 안 통하는 놈이랑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뇌와 한숨이 밀려왔다.

    ***

    다음 날, 카페에 도착한 이겸은 팔짱을 끼고 앉아 서도현에게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어디 한번 말해 봐.”

    “싫으면 안 할게.”

    또 자신이 도망이라도 갈까, 급히 터져 나오는 답변이 참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싫다는 이유로 안 하는 게 아니고, 그건 범죄여서 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 줘야 하나? 유치원생도 아는 사실을.”

    “…….”

    “상우 아저씨 생각은 안 해 봤어? 자신이 부탁한 일 때문에 네가 그딴 범죄 저지르는 거 알면 억장 무너지시겠다.”

    그렇지 않아도 배상우는 서도현과 서도아를 각별히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신의 부탁으로 모르는 사이 도현이 그런 짓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하실까.

    “아저씨는 기억 못 해.”

    “하아…. 그러니까 그걸 전제로 하는 게 이상하다고.”

    대화가 안 통한다. 왜 얘를 붙잡고 설득해 본다고 이러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말리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스파이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실제 죽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살아갈 거다.

    하지만 이겸은 달랐다. 알고 있잖은가. 그들이 한번 죽었단 사실을.

    그건 엄연한 방관 아닌가?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와 방관자만 있다.

    그렇다면 그건 범죄가 아닌가? 피해자가 없으니까? 그 피해자가 기억도 못 하니까? 서도현의 능력이 안 되던 것도 되게 만드는 탓에 비도덕적 기준치만 넓혀 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생각하다간 머리가 어떻게라도 될 것 같았다.

    “그럼. 그럼 서도아는 뭔데.”

    “도아?”

    이런 쪽에 서도아를 예로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를 회유하기 위해선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적어도 제 사람에게는 모질게 굴지 않으니까. 이겸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물었다.

    “서도아도 기억을 잃었잖아. 그럼 이전 도아를 납치했던 자경단원과 블러드 헌터는 죄가 없어?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 말이 통했는지 도현의 눈썹이 조금 구부러졌다.

    “도아는….”

    “왜. 도아는 언제든 기억날 수 있고, 떠올릴 수 있지만 네 능력을 쓰면 영원히 기억 못 하니까 괜찮다고?”

    도현은 전혀 제 잘못을 깨달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겸의 말이니 끝까지 들어 주겠다며 잠자코 있었다.

    “서도현. 그걸 완전 ‘범죄’라 하는 거야.”

    “…….”

    “완전 범죄는 범죄가 아니야?”

    이겸은 북받친 듯 말을 이어 갔다.

    “막말로. 네가 정말 정당하다면, 그 능력으로 서도아나 차재우, 산하 형을 죽일 수 있어?”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거봐. 못 하잖아.”

    도현은 한동안 침묵하다 입술을 열었다.

    “난 널 특별히 대해 주고 있어.”

    “어. 노력은 하는 것 같더라.”

    “난 널 죽이지 않고 소중히 대해.”

    “어쩌라고. 감사라도 해야 해?”

    죽이지 않는 게 무슨 특별 권한이라고 운운하는 거지. 기본 상식이 대체 얼마나 결여되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자꾸.”

    “…….”

    “왜 내가 남들에게까지 그렇게 굴어야 해?”

    내게 특별한 건 래터면 충분해. 서도현이 그렇게 말했다. 의견을 굽힐 생각 없다는 표현이었다.

    “야.”

    그에 이겸이 정색했다.

    “특별한 존재를 만드는 건 좋아.”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히 여기고, 특별히 생각하는 대상은 있기 마련이니까. 제게도 있었고.

    “그렇다고 남들이 길바닥의 개미는 아니잖아.”

    “소중한 거에 집중하기도 바빠.”

    “나는….”

    이겸은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미치기 싫다. 나중에 서도현처럼, 도덕도 결여된 인간으로 변하게 될까 두렵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서도현 때문에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 시간들 속에 서도현이 없었다면, 홀로 남겨졌다면 그것 또한 돌아 버릴 일이었겠지.

    “나는 그냥.”

    이겸은 그저 바랐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서도현의 이능은 강하다. 전투에선 무서울 정도로 유용하다. 그렇기에 섬뜩하다. 자신과 서도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우리만 아는 그 세계는 강력하다. 하지만…, 하지만, 우린 그 세계를 누릴 권리를 얻는 대가로 인간성을 빼앗기는 게 아닐까.

    마침내 그것은, 서도현의 인간성을 지워 냈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이겸은 이 시간들 속에서 제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서도현처럼 변하기 싫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미 돌아 버린 서도현을, 자신은 놓을 수가 없다는 걸.

    “나는, 나는 진짜…. 혼자 버티기도 싫고, 그렇다고 너 같은 미친 애랑 같이 있기도 싫어.”

    “윤이겸. 말이 좀 심한데. 우리 친해지기로 했잖아.”

    “그래, 친해지기로 했지. 노력하기로 했지. 그러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설득하려고, 대화라도 해서 어떻게든 회유하려고. 서도현이 그나마 제 말은 들은 척이라도 해 주니까, 미안하지 않아도 일단 미안한 척 눈치라도 보니까.

    이번에도 그냥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되는 척, 그런 짓은 하지 않길 바랐다.

    이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서웠다, 얘를 닮아 갈까 봐.

    “서도현.”

    “응, 겸아.”

    이런 상황에서도 저 나긋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언뜻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이 시간 속에 혼자 버티는 건 불가능하니까. 서도현이 없으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

    “우리 제발.”

    그래서 간절히 부탁했다. 울먹임을 참고 부탁했다.

    “제발 인간답게 살자.”

    나는 너를 놓을 수가 없어.

    서도현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이겸은 고개를 숙여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도무지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일까 봐 마주하기 겁이 났다.

    기어이 그 침묵을 깬 건 서도현이었다.

    “울지 마.”

    “…….”

    “울지 마, 겸아.”

    “안 울어.”

    그가 하는 말은 몹시 단출했다.

    여기까지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냐. 암담한 심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도현이 재차 운을 떼었다.

    “노력해 봤는데, 이해는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렇겠지. 가치관 문제인데. 그게 어디 쉽게 고쳐지나.

    “그러니까 일단은 네 말대로 할게.”

    “…뭐?”

    이겸은 뜻밖의 대답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의 무표정.

    “네가 하지 말란 건 하지 않고, 싫어하는 짓은 고칠게.”

    “…….”

    “그거면 돼?”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그거면 되냐고. 묻잖아, 겸아.”

    “어… 어, 응….”

    떨떠름하면서도 그가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급박하게 긍정했다. 서도현이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럼 아저씨에겐 다음 주 못 하겠다고 말해야겠네.”

    “…….”

    이게 통한다고? 서도현이 내 말을 듣는다고?

    “너 대화가 통하네?”

    이겸이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해 볼 생각은 있었고?”

    “…아니.”

    어제만 해도 화가 순식간에 몰아쳐서 대화를 나눠 볼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그럼 넌 또 노력을 안 했네.”

    “…….”

    “연락도 안 받아, 집에도 없어. 또 날 피하기 바빴네.”

    “그건….”

    할 말이 없었다. 자신과 서도현이 싸운 걸 안 래터가 또 이상한 화해 원정대를 꾸려서 집을 찾아올까 봐 의도적으로 강태하네 집으로 피신했던 것도 사실이다.

    “겸아, 난 너와 잘 지내기 위해 언제나 노력 중이야.”

    “그래. 나도 노력해 볼게.”

    “말로는 못 하는 게 없지.”

    이겸은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봤다. 대화할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그를 피한 건 맞았으니까.

    “그… 앞으로는 대화도 좀 나눠 보고 잘 지내보자.”

    “그래야지. 서로 노력 중인데. 그렇지?”

    이겸은 괜히 찻잔을 문질렀다. 그러다 슬쩍 머쓱함을 피할 겸 뻘쭘히 말했다.

    “할 말 끝났으면 일어난다? …내일 보자?”

    “어디 가는데?”

    “친구 집.”

    답변을 들은 그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넌 무슨 일만 있으면 걔한테 가더라.”

    그야 강태하가 제일 편하니까…. 왠지 그 말을 서도현 앞에서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쫓아와 이겸을 붙잡았다.

    “가지 마. 나랑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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