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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8)화 (68/102)
  • #068

    그날은 좀 특별했다.

    “나 왔어.”

    “오늘은 겸이 형이 꼴찌네요!”

    하나는 항상 사무실에 제일 늦게 도착하는 서서남매가 자신보다 먼저 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제안은 거절한 거 아닌가요?”

    자경단 입단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마무리했고, 끝났을 터인 배상우가 또 사무실을 찾아 왔다는 점이다.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온 거야.”

    요즘 들어 자주 뵙네.

    “형! 여기 제 옆에 앉으세요.”

    재우는 굳이 이겸을 끌고 와 자신과 배상우 사이에 앉혔다. 어지간히도 배상우의 옆이 껄끄러웠나 보다.

    “무슨 일이신데요?”

    “별건 아니고, 그냥 도현이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

    서도현의 도움이? 이겸은 제 맞은편의 그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고, 그의 눈동자가 잘게 휘었다.

    “점심은 먹었어?”

    이겸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는?”

    “아직.”

    둘의 대화를 들은 도아가 감격에 벅차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평범하게…. 평범하게 대화했다.”

    원래라면 시간이 몇 신데 당연히 먹고 왔지. 그딴 거 네가 알아서 뭐하냐 등, 여러 까칠한 답변이 나오고도 남았을 텐데 둘의 관계가 변한 것이다.

    둘 사이에 그 평범한 대화가 오간다는 게 도아는 몹시 신기하고 감개무량했다. 그건 재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갈무리하는 데서 알 수 있었다.

    “얘들 또 왜 이래?”

    이겸이 질겁하며 중얼거렸다. 최근 서도현과 무슨 대화라도 나누면 저런 반응이니 원….

    배상우는 소파에 편히 기댔던 등을 떼며 말했다.

    “아무튼. 너희한테까지 털어놓을 말은 아니고, 난 도현이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거니까 잠시 데리고 간다.”

    무슨 얘기길래 그러지?

    “네.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

    뭐가 됐든 제게 용건이 있어 찾아온 게 아니니 이겸은 태연히 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 수납장을 뒤적거렸다.

    어제 먹으려고 찜해 놨던 과자가 여기 있을 텐데…. 다행히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과자 보관함으로 이용하는 서랍이 아닌 천장의 접시 놔두는 곳 사이에 숨겨 놓았다.

    이 모든 건 차재우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엇. 그 과자 거기 있었어요? 분명 저번에 봤는데 없어졌길래 찾고 있었는데. 형이 숨겨 놨어요!?”

    “응. 그냥 놔두면 네가 다 먹잖아.”

    “그 정돈 아니거든요! 형, 이리 와서 저랑 같이 먹어요.”

    이겸은 봉지를 까 들고 차재우의 옆에 다가갔다. 천장 수납장은 방금 들켰으니 다음엔 어디 숨겨 놓을까 계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사이 도현은 배상우를 따라 자리를 비웠다.

    “근데 넌 상우 아저씨 왜 피하는 거야?”

    “…들켰어요?”

    이전 배상우가 사무실에 왔을 때 화장실을 핑계로 숨었단 사실은 후에 도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 옆자리가 배상우가 되자 굳이 자신을 사이에 끼워 앉힌 것도 그렇고.

    “덩치가 커서 무섭대요. 산하 오빠 덩치가 더 큰데. 대체 기준이 뭐람.”

    도아는 이겸이 깐 과자를 하나 집어 먹으며 대답했다.

    “저 아저씨 저래 봬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어엄청 무서웠어.”

    “상우 아저씨가?”

    재우의 대답에 도아와 이겸이 동시에 되물었다.

    말투가 거칠긴 해도 정 많고 착하신 분 같은데?

    돌이켜 보면 재우가 1년 전에 래터에 들어왔다고 했었다. 그때 각성을 한 줄 알았는데 몇 년 전에 배상우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그럼 그 전엔 다른 길드에 의탁하다 래터로 넘어온 건가?

    “너 각성은 몇 년 전에….”

    “겸아.”

    질문하려던 이겸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입구를 쳐다봤다. 배상우와 대화하던 도현이 문을 열고 자신을 부른 것이다.

    “왜?”

    “잠깐 와 봐.”

    이겸은 뭐지, 싶으면서도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오오, 이제 친해졌다고 막 오라 가라 해!”

    “까까라도 사 드시고 오세요!”

    이것들이. 학생 아니랄까 봐 어디 학교에서 교내 커플들에게 할 법한 반응을 보인다. 가볍게 무시하곤 서도현을 따라 나갔다.

    “무슨 일인데?”

    도현은 배상우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전에 걸음을 멈춘 뒤, 이겸에게 말했다.

    “능력을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능력? 쓰면 되지. 왜?”

    배상우의 부탁이 능력까지 써야 할 정도인가? 그보다 쓰면 되지 왜 굳이 나를 부르지?

    도현이 제 피어싱을 문질렀다. 그 행동이 난감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습관인 걸 알고 있었다.

    “네 허락 맡고 쓰기로 했잖아.”

    “…아.”

    그것 때문에?

    괜스레 머쓱해진 이겸은 눈길을 피했다. 그날 극적인 화해를 하고 서도현은 한층 더 제게 잘해 줬다. 지금도 그렇고. 그가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왜인지 민망함을 느꼈다.

    그래서 굳이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까 넌 A 만난 적 없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근데 7년 전 도아 사건 보면 A도 그곳에 참여했다는데?”

    기록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A가 활동했다고.

    “아, 그거? 그땐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

    그의 답에 이겸은 수긍했다. 하긴, 하나뿐인 동생이 잡혔는데 눈에 뵈는 게 있을 리가.

    “왜. 궁금해?”

    “뭐가?”

    “A에 대해 묻길래.”

    “아니, 그냥….”

    이겸은 제 볼을 긁적였다. 할 말이 없어서 그거라도 물어봤다.

    “할 말 끝났으면 사무실 들어갈게. 대화 나누고 와.”

    서도현의 능력 사용에 대한 허락도 했겠다, 나중에 어느 날, 몇 시에, 몇 번 쓰는지만 알면 좀 지루하더라도 미리 대비하면 됐다.

    재차 사무실로 가려는 이겸을 도현이 붙잡았다.

    “이왕 나온 거 같이 얘기 듣고 가자.”

    “굳이? 그보다 내가 들어도 되는 대화야?”

    “응. 넌 특별하잖아.”

    “…말을 해도.”

    서도현은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당연하다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고, 부끄러움은 이겸의 몫이었다.

    이내 둘이 무슨 대화 했냐고 추궁하며 놀릴 게 뻔한 학생들이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느니 서도현을 따라 나갔다 오는 게 더 나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아, 그러지 뭐. 상우 아저씨는 어디 계시는데?”

    “저기.”

    사무실 근처라 래터가 자주 가는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자 배상우가 손을 흔들며 제 위치를 알렸다. 이겸이 착석하고 그는 주름 잡힌 눈가를 늘어뜨리며 주절거렸다.

    “난 도와만 주면 상관없다지만, 역시 상황 설명하는 건 부끄럽네.”

    “뭐가요?”

    이겸의 질문에도 배상우는 머뭇거렸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명색의 자경단인데, 누구한테 습격당했단 건 쪽팔리잖아. 심지어 A의 최측근인데.”

    “…습격이요?”

    이겸의 눈동자가 일순 커졌다. 배상우가 싸우는 건 보지 못했어도 자경단 내부에서도 높은 위치이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고 있을 텐데. 도무지 ‘배상우’와 ‘습격’이란 단어가 연관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뒤늦게 배상우의 행색을 살폈지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무슨 기습?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아아! 큰일은 아니야. 큰일은 아니니까…. 습격이라 말하기도 뭣하다, 야. 하하하!”

    배상우는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단 게 민망한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고, 결국 이겸이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는 도현에게 눈짓했다.

    그에 도현이 간단히 축약한 내용을 말해 줬다.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두통이 생겨 쓰러졌대, 그러고 일어났어. 그게 끝이래.”

    “…네?”

    이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습격이 아니라….

    “병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MRI 찍어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놈이!”

    배상우가 눈을 부릅뜨고 일갈했다.

    “나는 지병 같은 거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갑자기 길을 걷다 기절했는데? 아무런 상처도 없이 일어났으면서 그게 왜 습격이지? 신체에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

    이겸의 의심에 배상우는 변명하듯 그때의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전에 일단 자신의 소개가 먼저였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자경단에서도 꽤 높은 위치야.”

    “네. 알고 있죠.”

    “그래서 자랑은 아니지만 블러드 헌터도 날 쉽게 건들지 못해.”

    혹여나 배상우가 죽기라도 하면 자경단은 전력으로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암살 시도라도 하면 블러드 헌터 쪽에서도 손실이 크다. 그렇기에 쉽사리 건들지 못하는데, 최근 급습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뭔데요.”

    “일단 들어!”

    아직도 병원 생각을 떨치지 못한 이겸이 되묻자 배상우가 호통을 치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나한테서 A의 정보를 캐내려고 한 것 같아.”

    “…네?”

    이능을 이용해서인지 뭔진 모르지만, 자신을 기절시킨 뒤 휴대폰, 지갑, 심지어 차 키까지 들고 가서 차 내부를 뒤지기까지 했다.

    “이게 내가 일어났을 때 상황이야.”

    “…….”

    이겸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물론 나와 A의 접점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지만.”

    배상우와 A가 연결된 점이라고는 밤 12시에 문자가 오는 낡은 휴대폰 하나였지만, 이제는 A가 전면 활동에 나서며 그마저도 폐기했다.

    “그렇게 뒤지다가 아무런 정황도 안 나오니 포기한 것 같은데, 영 찜찜해서 말이야.”

    “뭐가요? 그보다 정말 다친 곳은 없으시죠?”

    “어어. 다친 곳은 없어. 걱정 마.”

    배상우는 제 멀쩡함을 알려 주고 말을 이었다.

    “블러드 헌터 짓이 분명한데, 그냥 뒤지다 사라진 거라…. 뭔 증거라도 있어야 추적하든 말든 할 텐데.”

    단순 소매치기나 그런 유라면 일반인일 테니 배상우가 당할 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참에 내부 색출부터 시작해 보려고.”

    이겸은 서도현을 바라봤다. 이야기가 꽤 멀리 왔지만 배상우가 래터에 찾아온 이유는 서도현에게 부탁이 있어서였다.

    “근데 그게 서도현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 그거? 도현이가 스파이 찾는 달인이거든. 그래서 도움 좀 받으려고.”

    …서도현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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