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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7)화 (67/102)
  • #067

    “네. 네, 죄송해요. 구경까지 시켜 주셨는데. 네, 감사합니다.”

    배상우에게 자경단으로 들어갈 수 없다 거절을 하고, 통화를 끊었다.

    “누구야?”

    “아는 분.”

    “근데 뭐가 죄송한데?”

    “그냥 뭐, 이런저런 이유.”

    대충 말을 둘러대며 강태하의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오랜만에 그의 집에 놀러 오니 제 집처럼 아늑하고 편했다.

    “일어나. 나갈 거야.”

    이겸은 옷을 갈아입는 태하를 힐끔 쳐다봤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땐 같이 씻기도 했던 터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맨몸은 익숙했다.

    하지만 익숙함과 신기함은 별개였다.

    이겸은 그가 니트를 꺼내 입기 전까지 움직이는 자잘한 등 근육을 감상했다.

    ‘뭐 저리 운동을 많이 했대.’

    “근데 어디 가?”

    “과제하러.”

    “집에서 하면 되잖아.”

    귀찮다며 침대를 뒹굴뒹굴하자 강태하가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교양 조별 과제야. 오늘 만나기로 했어.”

    그가 듣는 교양 수업의 조별 과제인 듯싶었다.

    “그럼 더 너 혼자 가야지. 그러게 나랑 같은 교양 들었으면 좋았잖아. 그건 과제도 얼마 없는데.”

    “수강 인원이 꽉 찼었잖아.”

    매 학기마다 같은 시간표로 맞췄지만, 이번 학기는 잠깐 한눈파는 사이 수강 인원이 꽉 차 버려 이겸만 수강 신청을 성공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강의를 듣게 된 강태하가 제 강의로 옮기라며 권유했지만, 그 교양 교수님은 조별 과제를 내는 걸로 유명했기에 만사 귀찮은 이겸이 갈 리 없었다.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어. 금방 끝낼 테니까 옆에서 음료라도 마시고 있어. 사 줄 테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되나?”

    추운데 굳이 나가기도 싫었고 여기는 포근하니 따뜻했다.

    “혼자 집에서 뭐하…. 겸아, 너 전화. 삼촌이신데?”

    “…잠깐만.”

    강태하의 일으킴에도 흐느적거리며 다시 눕기 바빴던 이겸이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삼촌.”

    7년 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결혼은 했지만 자식이 없던 삼촌 부부의 집에서 친자식처럼 모자람 없이 컸다.

    삼촌과 숙모는 이겸에겐 은인, 제2의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네, 괜찮아요. 종강하면 찾아뵐게요.”

    정자세로 앉아 통화를 마친 이겸에게 태하가 물었다.

    “뭐라셔?”

    “반찬 떨어지진 않았냐, 용돈 더 필요없냐, 잘 지내냐 그런 말들이지.”

    “너 보고 싶으신가 봐.”

    “응. 종강하면 뵈러 가야지.”

    그래도 최근 들어 래터에서 들어오는 금액이 있어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월세, 학비, 생활비 등 이것저것 내다 보면 결국 삼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매달 큰 금액을 용돈으로 입금해 주시지만, 마음 한편에선 늘 죄송하고도 감사했다. 받은 돈은 쓰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저축해 놓다 정말 급할 때 간간이 출금해서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벌어들이는 금액이 크니 씀씀이가 조금 커지더라도 여유분이 넉넉해 감당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일어나. 4시까지 만나기로 했으니까. 과제 끝나면 저녁이나 먹고 들어오자.”

    이겸은 강태하의 재촉에 꾸물꾸물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CA 지역도 없고, 오랜만에 생긴 휴일이라 집에만 있을 예정이었는데 친구란 놈 때문에 일정이 틀어졌다.

    “과제는 얼마나 걸리는데?”

    “2시간 안엔 끝낼게.”

    그 동안 혼자 카페에 앉아서 뭐 하냐. 차라리 과제나 하고 있자 싶어 책가방을 뒤졌다. 제출 기한이 아직 남았지만 미리 해 놓아서 나쁠 건 없었다.

    강태하와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한 뒤, 이겸은 그와 거리가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강태하는 조별 과제를 위해 팀원들이 위치한 자리로 향했다.

    추운 밖에 있다가 따뜻한 안으로 들어오니 몸이 나른해져 절로 하품이 터져 나왔다.

    [금방 끝낼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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