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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2)화 (62/102)
  • #062

    “…자경단이요?”

    이겸은 자동으로 서도현을 바라봤다. 그는 눈살을 미세하게 구기고 있었다. 배상우가 어떤 제안을 할지 이미 알고 있던 듯했다.

    “서도현이 아니라 제가요?”

    “도현이는 나간 사람이지. 내가 제안하는 건 너야. 아니, 정확히는 A의 제안이지.”

    “A요?”

    그 사람이 왜 날?

    “어떻게. 들어올래 말래?”

    “갑자기 물으셔도 전 이미….”

    이미 래터 소속인데. 그가 갑자기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A는 왜? 내가 자동차 창문 깬 것밖에 못 봤으면서. 나한테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뭐 이런 건가?

    “…제가 뭐라고? 전 A와 대화해 본 적도 없어요.”

    배상우가 이겸의 전적을 나열했다.

    “입단 1년 이래 뮤턴트 크리처 사냥에 큰 기여, 최근 블러드 헌터를 1명 잡은 전적 있음. 너 정도면 유망주지. 제안 받아도 이상할 것 없어.”

    “그건.”

    이겸은 재차 서도현을 쳐다봤다. 그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제일 먼저 죽는 건 자신이었겠지.

    한마디로 전부 서도현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전적. 가짜 스펙. 요즘 말로는 이력서 사기.

    “서도현이 네놈도 말이야. 재깍재깍 내 연락 씹지 말고 윤이겸이한테 전해 줬으면 됐잖아. 힘들게 찾아오게 하고 말이야.”

    이겸도 궁금했다. 자신이 이런 제안을 받을 걸 알고 있었다면 언질이라도 주지. 느닷없는 제안에 당황하게 만들고 말이야.

    배상우의 말에 도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야말로 윤이겸 요즘 예민한데,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더 예민하게 만드세요.”

    ‘예민하게 만들고 지랄이세요.’라고 말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그래도 지인이라고 살포시 화를 누그러뜨린 채 말한 것 같았다.

    “이게 내 제안이냐? A의 제안을 전하러 온 거지?”

    “그 A라는 놈 도둑놈 심보네요. 내가 힘들게 키워 놓은 걸 홀라당 뺏어갈 생각이나 하고.”

    도현이 제 머리를 쓰다듬자 이겸은 그의 팔을 탁 치고는 새침하게 중얼거렸다.

    “예민이 아니라 심란이야.”

    서도현이 키워 놓았다는 건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꼽지만 반은 맞는 말이고, 그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할 일들이었으니까.

    “도현이 눈치 보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 고민된다면 내부까진 못 보여 주더라도 내 집무실은 구경시켜 줄게.”

    자경단에서 꽤 높은 위치 같은데, 내부 구경이 아니라 집무실을 구경시켜 주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닌가?

    그 생각을 할 때쯤 배상우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도현이 친구인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하지만 이겸은 단호히 거절했다.

    “아뇨. 전 그런 위험한 곳에서 일할 생각도 없고, 한다 해도 당장 죽을 거예요.”

    크리처 사냥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일을 할까 보냐. 분명 자경단도 인력 부족이라 내게 권유한 거겠지? 절대 사양이었다.

    “위험한 일 아니야. 네가 할 일은.”

    “…네?”

    지레짐작하고 거절했건만 배상우의 말에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자경단에 들어오면 크리처 사냥은 물론, 블러드 헌터와 마주칠 일도 없을 거야.”

    “…그게 가능해요?”

    “넌 A의 업무 보좌만 하면 돼. 서류 처리 그런 거?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해지는 거지.”

    “…좋은데?”

    이겸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겸아.”

    “아니….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고, 좋긴 하다고.”

    완전히는 아니고 대강 90% 정도는 넘어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윤이겸이 정말 갈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서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배상우의 말에 모순이 있는 걸 알아챘다.

    “입단 이래 뮤턴트도 잡고, 블러드 헌터도 잡은 인재라면서 서류 처리만 시킨다고요?”

    “A가 그러겠다는데 난들 알겠냐.”

    배상우가 생각하는 A는 참으로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몇 년간 함께 일한 자신에게도 얼굴을 보여 준 적이 없을 정도로 사람을 믿지 못했다.

    소수라도 자경단 내부에 스파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언제 이빨을 드러내 자신을 물지 모르니까. 그 점을 조심하고 있었다.

    배상우의 자리는 특별하다.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나 또 홀연히 사라지는 A의 말을 전달하고, 또 A와 자경단 내의 결속을 맡는 일을 한다. A가 없을 땐 실질적 리더였다.

    그의 선임이 떠나고 이 자리를 물려받았을 무렵, A와 연락할 수 있는 낡은 휴대폰을 하나 받았다. 다른 기능은 전부 안 되고, 오직 그와 통신만 가능했다.

    처음 그 직책에 올라서고도 몇 년간 A와 통화도 한 적 없었다. 그저 명령을 내릴 게 있으면 매일 밤 정각 12시에 낡은 휴대폰으로 연락이 온다. 그뿐이다.

    A와 처음 통화를 하게 된 것은 ‘7년 전’ 그 사건 이후였다.

    “그 A는 저한테 왜 그런 제안을 하는 건데요?”

    호기심을 담아 물어 오는 이겸에 배상우는 귀찮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아, 몰라몰라. 네가 뭐 믿을 만해 보이나 보지.”

    다년간 함께 일한 자경단 애들보다 더. 입 안이 조금 씁쓸했다.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제가 옛부터 블러드 헌터와 접점이 있었는데 최근 각성했다 거짓말 치고 협회에 들어온 걸지도 모르잖아요. 굳이 피가 아니더라도 그들 편에 서서 모의를 꾸미고 있을 수도 있고.”

    이겸이 객관적으로 제 상황을 평가하자 장난기가 돋은 배상우는 분위기를 전환할 겸 놀란 척 자켓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뭐야. 너 블러드 헌터야?”

    필시 칼이나 총, 수갑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그때 서도현이 이겸의 앞으로 팔을 쭉 뻗으며 보호했다.

    “아저씨는 얘 블러드 헌터라도 못 잡아가요.”

    “아무리 유망주라 해도 나한텐 안 될 것 같은데.”

    “제가 그렇게 안 놔둘 거니까.”

    “너 지금 블러드 헌터 편을….”

    배상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윤이겸의 말이 진실이 아닌 건 알지만 서도현이 방금 한 말은 농담이라도 그냥은 못 넘어갔다.

    “그러니까 전 청렴결백한….”

    “서도현. 너 그거 중죄야. 아저씨는 너랑 도아, 그렇게는 못 둔다.”

    이겸은 생각했다. 글렀다. 제 말은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럼 죄 좀 짓죠, 뭐.”

    “…….”

    “그게 대수인가? 그치 겸아.”

    이겸은 칭찬해 달라는 식으로 제게 들이대는 도현의 얼굴을 밀쳐 냈다.

    “대수지. 뭔 죄를 지어. 그리고 난 청렴결백하다고.”

    “아무튼 이건 이겸이 너에게도 좋은 제안이니까 잘 고민해 보고 연락 줘.”

    배상우가 명함을 건넸다.

    “네. 그럴게요.”

    명함을 내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 들어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 이겸을 보며 도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난 다 마셨으니까 또 일하러 간다.”

    배상우가 끄응차 하며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

    둘만 남게 된 도현이 이겸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함 줘.”

    “자.”

    서도현이 지랄하기 전에 순순히 주었다. 그는 받자마자 갈기갈기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찢었다.

    “찢어 봤자 이미 외웠는데.”

    “연락하려고?”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이겸의 거짓 없는 답변에 도현은 눈썹을 찌푸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는 넌 여기까지 왜 따라왔냐?”

    대화 중간중간마다 끼어들어 배상우가 권유도 못 하게 할 정도로 시비 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했다. 그럴 거면 왜 따라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짜증 나잖아. 내 집에서 내 거 훔쳐 간다는 게.”

    “돌았어? 어디 아파?”

    고작 그런 이유라고? 인상을 와락 구기며 물어오자 도현이 재미있다며 웃었다.

    이겸은 잠시간 침묵하다 테이블에 올려진 찢어진 명함 조각을 툭 치며 그를 불렀다.

    “서도현.”

    “응.”

    “내가 여기 연락하면 어쩌려고?”

    “해 봐. 그것도 나쁘진 않지.”

    뜻밖의 대답에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일까 요리조리 살피며 노려보자 도현은 입매를 느슨히 늘어트리며 말했다.

    “어차피 너.”

    “…….”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

    …무슨 그딴 망언을.

    좋다. 백번 양보해 지금까지 서도현을 알게 모르게 의지해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건 다른 문제다.

    “아악!”

    “혀…형, 왜 그래요? 저 오늘 형 컵밥 안 먹었어요.”

    “후우…. 서도현 그놈 때문에 그래.”

    “아, 별거 아니네요. 하던 거 마저 하세요.”

    확실히 배상우의 말에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목숨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서류 처리만 하면 된다고? 분명 그곳은 따뜻하고 편안한 의자와 좋은 책상이 있는 꿈의 직장이겠지?

    직접 보질 못 했으니 점점 상상이 좋은 쪽으로 부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도현이 아니더라도 서도아와 차재우, 남궁산하까지 이곳에서 좋은 이들을 만났다. 지금은 크리처 사냥도 익숙해져 어렵지 않았고, 딱히 무섭거나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A의 보좌만 하면 된다는 좋은 제안을 받고서도 그 ‘꿈의 직장’과 래터를 두고 어쩔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못 한다고?

    당연히 이겸이 자경단 측의 제안을 거절할 거란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무슨 그런….”

    그럴 거면 배상우가 여기 사무실을 찾아오기 전에 몇 번이고 연락 줬다는데 그때는 왜 제게 말을 안 해 준 거지?

    ‘윤이겸 요즘 예민한데,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더 예민하게 만드세요.’

    진짜 그 이유 하나 때문인가? 주승태 때문에 심란하다고? 아주 챙겨 줘서 고오맙네.

    “근데 겸이 형.”

    “응.”

    “어제 그 자경단 아저씨랑 나가서 무슨 이야기 했어요?”

    “…….”

    이겸은 눈을 초롱초롱 맑게 빛내며 물어 오는 재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는 진짜….”

    “네?”

    “아니다. 어떻게 서도현 밑에서 이런 애가 나온 거지.”

    “엥? 왜요? 저 도현이 형 아들 아닌데요? 서도아랑 남매도 아니고?”

    “하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 좀 쉴게. 이겸은 오늘도 어김없이 서도아의 침대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자경단에도 침대 있으려나. 사무실엔 침대가 있어야 편한데….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베개에 머리를 눕히자 재우가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왔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마스터가 말이나 행동은 좀 그렇지만 되게 착해요.”

    “말이나 행동이 싸가지 없는데 어떻게 착할 수 있는 거야?”

    “어, 그러니까…. 음.”

    당황한 재우가 눈알을 데굴 굴렸다.

    “저희한텐 잘해 주잖아요! 그럼 됐죠.”

    확실히 잘 챙겨 주는 것 같긴 하다만….

    “아, 몰라.”

    이겸은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

    “재우야, 거기 내 휴대폰 좀.”

    “네. 근데 왜요? 서도아랑 마스터는 오늘 좀 늦는대요.”

    “걔한테 연락하려는 거 아니야.”

    모르니까. 확실히 해야지.

    고민된다면 구경도 시켜 준다니까 연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곳이 정말 자신의 상상대로 꿈의 직장일지. 개 같은 서도현이 있는 이곳과 비교한다면 어떤 환경일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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