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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60)화 (60/102)
  • #060

    “…왜긴. 대화하고 싶어서 왔지.”

    “난 할 말 없어.”

    주승태가 고개를 획 돌렸다. 그의 두 손은 구속구로 묶여 있었다.

    “언제부터 크리처의 피를 마신 거야?”

    들려오는 질문에 주승태가 이겸을 쳐다봤다.

    “언제부터냐고?”

    그가 픽 웃으며 말했다.

    “널 만나기 전부터.”

    이겸은 순간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왜? 왜 마셨어? 왜 마시게 된 건데? 꼭 마셔야 했어?”

    주승태는 말없이 이겸을 노려봤다.

    “운도 좋은 놈.”

    “…….”

    “넌 진짜 운 좋은 놈이야.”

    많이 듣곤 하는 소리였다. 최근 들어 더.

    “각성한 사람은 다 너처럼 길드나 일반 헌터에 발견되는 줄 알아?”

    “뭐?”

    “…난 운이 나빴지. 블러드 헌터에 제일 먼저 발견됐으니까.”

    이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주승태는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댄 채 제 과거를 풀어놓았다.

    하필 많고 많은 헌터 중 블러드 헌터였다. 그는 크리처 세계에 막 눈 떴을 때의 이겸처럼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은 그런 주승태에게 자신들은 세상에 선을 베푼다고 포장해 왔다. 그들 입장에선 포장도 아니었다. 왜냐면 자신들이 진짜 그러는 줄 아니까.

    한마디로 사이비였다. 자신들이 사이비인 줄 모르는 사이비.

    그렇기에 무지했던 주승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그들의 말을 따랐다.

    먹으라길래 먹었고. 하라길래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크리처를 마주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존경을 호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치채고 보니 그것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정신이 그러지 말라고 거부하고 있었다.

    블러드 헌터가 나쁜 짓을 하고,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블러드 헌터가 되어 피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 버렸다.

    의지가 있다면 끊을 수 있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담배나 마약도 끊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널린 마당에, 그보다 더 독한 게 크리처의 피였다.

    주승태는 매일 밤 피를 원하는 고통에 시달렸고, 그게 없으면 오히려 환각을 보게 될 지경이었다.

    피를 받으려면 그들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일개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에게 시키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들어온 명령이 하나 있었다.

    윤이겸과 친해져라. 사실 정확한 목표는 윤이겸이 아닌 강태하였다. 이유는 왜인지 모르지만 우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야 보상으로 피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이건 주승태에게도 중요한 문제였고 다행인 일이었다. 우연히 재학 중이었고, 우연히 그 반에 강태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강태하는 세상 무관심하게 굴었고, 그와 대화하는 상대가 있다면 윤이겸이 유일했다. 그래서 노선을 틀어 윤이겸에게 대화를 시도한 것뿐이다.

    그러나 강태하는 오직 윤이겸과만 대화하고, 윤이겸은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하는가 싶다가도 강태하가 무슨 말만 하면 그의 편을 들며 제게 선을 그어 댔다.

    아무리 화가 나도 친해지기 위해서는 비위를 맞춰 줘야 했다. 다음 날이면 잊은 듯 사근사근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좀 짜증 나긴 했지만 그들과 연락하며 친해짐의 성과가 보일 때마다 피를 받았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승태는 말했다.

    “너와 친해진 건 그것 때문이야.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러니 우리 연도 여기까지인 거고.”

    “…….”

    이겸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의도된 접근이었나, 아드렐 소속? 아드렐은 왜 주승태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지? 강태하와 친해지라니?

    수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주승태의 과거에 대한 울분이었다.

    “차라리 자수를 하지, 바보야.”

    입술을 질끈 깨물고 웅얼거리는 윤이겸에 주승태는 제 양 소매를 걷었다.

    손톱으로 긁어 상처를 내고 또 낸 건지, 팔에는 진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 상처가 팔에만 한정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아? 이깟 상처보다, 피를 못 마시는 게 더 고통스러워.”

    “…….”

    “지금도 난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간질거리고, 매일 밤 생살을 갉작갉작 파 먹히고, 목구멍은 모래라도 먹은 듯 텁텁하고 불에 타는 느낌이라고. 너 몇 달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신 적 있어? 지금 내가 딱 그 기분이야.”

    이겸은 말을 머뭇거렸다. 왜 납치당한 척 자신을 유인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이 잘게 떨려 왔다.

    결국 말을 다시 꺼내게 된 이유는 따짐도, 원망도, 비난도 아니었다. 오직 친구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내가 알아봤는데 여기 중독 증상 이겨 내는 법도 상담해 주고, 이것저것 교화 시설도 잘되어 있다고 하더라. 한번 들어 보는 게 어때?”

    “윤이겸.”

    “…….”

    “그렇게 나한테 당하고도 아직 그딴 말이 나와?”

    연이어 비수가 쏟아졌다.

    “성격이 좋은 거야, 멍청한 거야. 너 혹시….”

    조소를 머금으며 주승태가 물었다.

    “아직도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거야?”

    그가 하는 말들을 조용히 경청했다. 이겸은 의외로 담담했다. 주승태가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없는 소릴 한다는 걸 더욱 확신했다.

    그야 눈도 못 마주치고 횡설수설하는 이의 말을 그 누가 진실이라 믿을까.

    이겸은 주승태를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떠오르는 건 오직 그가 했던 행동뿐이었다.

    크리처를 숭배하고, 많게는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블러드 헌터라지만 주승태는 자신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도 크리처와 별개로 자신을 친구로 여긴다는 걸 확신했다.

    도망치라고, 큰소리치며 제 앞을 가로막아 주던 주제에.

    잘도 지껄이네.

    하지만 그럼 그때 행동은 뭐였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이건 오직 이겸과 도현만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행동을 실천한 본인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이겸은 그 무엇도 말하지 못하고 주승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주승태가 지금 분노를 표출하며 지금껏 쌓아 왔던 한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1분 남았습니다.”

    직원의 말에 이겸은 주승태의 말을 끊고 물었다.

    “언제 나와? 평생 여기 있을 건 아니잖아.”

    “왜. 나오면 연락이라도 하려고?”

    “응.”

    이겸의 단호한 긍정에 주승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친구니까.”

    이겸은 그의 상처 가득한 팔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최대한 참아 봐. 너 나오면 너랑 나, 강태하. 셋이 같이 놀아야지.”

    주승태가 짧은 숨을 내쉬며 지친 듯 읊조렸다.

    “1년. 저지른 죄는 크지 않대.”

    “…….”

    “사람을 죽인 적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거기 소속의 졸개여서 하고 싶어도 못 했겠지만.”

    이런 걸로도 운이 좋다면 운이 좋은 걸까.

    “중독 증상을 참아 내고 몇 개월간 버티면 나갈 수 있어.”

    “잘됐네.”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못 버틸 건 뭐야.”

    이겸은 벗어 두었던 목도리를 둘렀다. 직원이 시간이 다 되었다고 눈치를 줬다.

    “가 볼게.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오면 먼저 연락 줘도 돼. 번호 안 바꿀 거니까.”

    이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승태가 소리쳤다.

    “왜 아드렐에서 나한테 강태하와 친해지라고 명령을 내린 줄 알아?”

    “왜 그랬는데?”

    “너 강태하가 뭐 하고 다니는 줄은 알아?”

    “모르는데.”

    이겸은 가끔 훌쩍 연락이 두절되곤 했던 강태하를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뭐 하고 왔냐고 물었지만 그는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아, 아니다. 아무튼 너도 조심해. 걔랑 있어 봤자 좋을 것 없어.”

    불쑥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너랑 있어도 좋을 것 없었어. 저번에도 나 죽을 뻔했잖아.”

    그 뜻은 그런 걸로 친구를 가려 사귀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보니까 잘만 싸우더만.”

    “그러려고 노력했지.”

    조금이라도 지치거나 다치면 네가 튀어나와서 도망치라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리쳐 대니까.

    “내가 작전에 참여한 이유는, 너한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조건을 듣고서였어.”

    체념한 듯 모든 걸 고하는 주승태를 보자 이겸은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 역시 만나 보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했을지도 몰랐다.

    “이만 갈게.”

    직원을 따라나서며 주승태가 말했다.

    “그래. 다신 보지 말자.”

    “응. 출소하면 연락해. 두부 사 들고 갈 테니까.”

    그제야 주승태의 입가에 웃음이 고였다.

    ***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현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이겸에게 다가와 그를 살폈다.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얘기 잘 끝냈나 봐?”

    “응. 후련하게.”

    “잘됐네. 춥다. 차에 타자.”

    이겸은 도현을 붙잡았다. 그러곤 부끄러운 듯, 퉁명스럽게 꿍얼거렸다.

    “고맙다.”

    도현이 부스스 웃으며 답했다.

    “뭘.”

    “주승태 말이야. 나올 수 있겠지?”

    “글쎄.”

    서도현은 자신이 자경단이었을 때 잡아넣거나 출소시킨 이들을 회상했다.

    중독을 견뎌 내는 척, 피를 끊은 척해서 출소했다가도 돌아서면 또 크리처의 피를 허겁지겁 탐하고 있는 족속들이었다. 세상엔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딱 한 명.

    “지금까지 딱 한 명 봤어.”

    “누구?”

    “중독 견뎌 낸 사람.”

    협회에서는 세간에서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에 개화에 힘쓰는 이들을 숨겨 준다. 물론 비밀리에 못된 짓 하나 안 하나 지켜보곤 했고 대부분이 다시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직까지도 협회의 감시에 걸린 적이 없고, 현재도 피를 완전히 끊은 채 일반 헌터로 개화해 바람직한 생활을 하는 중이다.

    이겸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곧 두 명으로 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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