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52)화 (52/102)

#052

“…쥐새끼?”

“둘러보지 마. 의식하고 있단 걸 눈치채니까.”

도현은 자꾸만 탑차 쪽으로 눈짓을 주는 이겸을 확인했다.

‘의심하고 있는 건가.’

자신이 말한 쥐새끼는 숲에 몸을 숨기고 있는 놈을 지칭한 건데, 아무래도 윤이겸은 따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친구가 위험하다고 왔으면서, 정작 그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이해는 된다.

정황상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블러드 헌터가 탑차를 이용하는 이유는 몸집이 큰 크리처를 싣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을 호송할 땐 언제나 무장하고, 최소 5명 이상의 인원을 꾸려 움직인다.

하지만 크리처도 뭣도 없고 고작 블러드 헌터 두 명에 납치한 사람이라곤 하나뿐이다. 아니, 세 명인가.

“보여? 숲 쪽에 있을 텐데.”

“아, 아니. 이미 도망간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리 쉽게 물러났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들도 무슨 작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진작 완료했나?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아까처럼 무작정 총으로 쏴 볼까, 어쩔까 고민했다.

이겸은 쥐새끼라는 단어가 주승태를 가리킨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한시름 놓았다. 아직 불안감은 차오르곤 있지만 확신하지 않았다.

‘이, 이겸아. …쿨럭! 도망, 도망쳐.’

이겸은 아직 그를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겸아!! 해독제 가져왔…. 끝났어? 도현이도 왔네?”

“응. 해독제 이리 줘.”

도현은 해독제를 건네받고 이겸의 소매를 걷었다. 뾰족한 주삿바늘에 지레 겁먹은 이겸이 제 등 뒤로 팔을 숨겼다.

“왜. 나 멀쩡해.”

방금까지 칼에 몇 번이나 찔려 놓고서는 작은 주사에도 도망쳤다. 싸울 때 과감해지는 건 좋은데 평상시에는 작은 상처조차 꺼려 했다.

도현은 문득 각성한 전투 모드의 윤이겸, 일상 쫄보 모드 윤이겸을 번갈아 상상하곤 실소를 머금었다.

“왜 웃어.”

“아니야. 그래도 여기 상처 났잖아. 스친 거지만 혹시 모르니까 맞긴 해야지.”

도현이 살짝 긁힌 생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괜찮으니까 이따가 맞을래. 알코올 솜도 없고 이런 곳에서 맞긴 싫어.”

이겸의 말에 도현은 결국 승복하며 해독제를 눈앞에서 치웠다.

그제야 산하가 우악스레 다가와 이겸을 살폈다.

“이겸아, 다른 다친 곳은 없어? 미안해. 내가 일찍 갔어야 했는데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둘러보고 온다고 늦었….”

“그거 어느 쪽이야?”

“어, 어어? 응. 아래로 내려가면 내 차 있는데, 그걸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소리가 났어. 근데 내가 둘러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니까 정확히… 7분 전에?”

도현은 작게 혀를 찼다. 7분 전이면 떠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아니면 다른 곳에 몸을 숨겼거나.

“이, 이겸아.”

창고에 피신해 있던 주승태가 슬며시 나오며 윤이겸을 불렀다.

삐삐삑.

그때 알람이 울리며 5분이 지났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도로 위, 두 대의 승용차가 탑차의 옆에 멈췄다.

척척.

몇몇 인간이 승용차에서 내리고 절도 있게 움직였다. 그들이 맨 처음으로 한 행동은 주승태를 포박하는 일이었다.

이겸이 깜짝 놀라 성큼 다가갔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자경단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저희 자경단이 맡겠습니다.”

“그게 무슨….”

그들은 이겸이 말릴 틈도 없이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된 블러드 헌터의 시체 두 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자경단은 크리처 세계에서 경찰의 역할과 비슷했다. 악인을 쫓고 잡는. 차이점이 있다면 자격증이 필요 없고, 자원하면 누구든 몇 가지 심사를 거쳐 그곳에 속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얘는…! 얘는 피해자예요. 납치된 것뿐이니까 일단은….”

“피해자요? 저희는 용의자로 검거하는 겁니다. 우선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참고인 조사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돌아갈 교통수단이 없다면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네? 잠시, 잠깐만요. 증거 있어요?”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요. 피 검사라든가.”

피 검사는 일반 헌터와 블러드 헌터를 구분 짓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이겸이 주승태를 끌고 가려는 그를 붙잡고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언제나 일관된 답변을 뱉었다. 조사, 조사, 조사.

“주승태!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

주승태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이겸을 외면했다. 순순히 자경단의 손에 이끌려 승용차에 탑승한다. 이겸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마음속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이제는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왜? 대체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변명이라도 해 봐. 그게 아니면 진짜…. 정말로 저놈들과 한패라도 된다는 거야?

숨이 가빠 왔다. 내가 뭣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뭣 때문에 칼에 찔리고, 뭣 때문에….

나를 믿고 여기까지 함께 온 산하 형과 서도현은 뭐가 되는 건데? 너 진짜 날 속인 거야?

이겸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창을 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선탠이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의 주승태가 제 말을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뭐라 말 좀 해!”

“이겸아… 일단은 진정하고….”

남궁산하가 급히 달려와 그를 말렸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

이겸은 차 문을 벌컥 열었다. 역시나 굳게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주먹을 세게 쥔 채 그대로 창문을 내리쳤다.

우드득, 유리창이 금이 갔다. 이겸은 그대로 한 번 더 내리쳤다.

콰앙-.

“윤이겸.”

뒤에서 서도현의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자경단이 자신을 말리러 오기 전에 어서. 마지막 세 번째에 결국 유리창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당황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주승태가 보였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개의치 않고 중얼거렸다.

“말해. 변명이라도 믿어 줄 테니까.”

“…….”

“아니라고 말해. 뭐든 말해 봐.”

네가 그럴 리 없잖아. 나보고 도망치라 했던 네가, 날 대신해 앞을 가로막던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믿었던 친구가 그럴 리 없다. 나를 이곳까지 유인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꾸 그가 침묵을 택하는 바람에 극단적인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도현이 그만하면 됐다며 주승태를 등지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때 주승태가 비웃듯 말했다.

“윤이겸. 여전히 호구네.”

“…뭐라고?”

“어. 맞아. 너 유인하려고 납치당한 척 좀 했어. 꼴에 친구라고 냉큼 달려온 건 좀 웃기더라. 난 너 친구라 생각 안 해. 너 옛날부터 존나 재수 없었어. 끼리끼리 논다더니 강태하 걔는 지가 뭐 잘난 것도 아니면서 세상 통달한 척하는 게 꼴보기….”

그 후로 주승태는 계속해서 비수가 되는 말을 쏘아붙였다.

이겸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그의 말을 귀에 담았다. 도현이 앞을 가린 터라 주승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머리통을 도현의 어깨에 기댔다. 지쳤다.

뭐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주승태와 자신은 친구였다.

주승태가 하는 말이 진심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마!’

그런 네가 친구라 생각한 적 없다고?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릴. 어설픈 변명이라도 믿어 주려 했다.

“듣지 마.”

도현이 이겸의 귀를 덮었다.

“넌 잘못한 것 없어. 그러니 기죽을 것도 없어.”

“…그게 잘 안 돼.”

“그럼 내 말만 듣고, 믿어.”

다른 사람 말엔 귀 기울이지 마. 난 네가 듣기 좋은 소리만 해 줄게.

내 말이 전부인 것처럼 굴어.

역경 속 찾아온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힘겨웠고, 피로했고, 지쳤다. 여기서 이겸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주승태의 날 선 비난이었다.

무얼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만히 도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누군가 이겸의 몸을 확 잡아끌었다.

얼굴을 드러낸 다른 자경단과 달리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누구.”

“…….”

상대방은 이겸의 손목만 잠자코 붙잡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툭, 투둑, 툭.

갑자기 모든 걸 씻겨 내리기라도 하듯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겸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다.’

이윽고 세차게 쏟아진다.

가면을 쓴 남자는 제 겉옷을 벗어 이겸의 위에 얹어 주었다.

자경단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수습 마쳤습니다. A 님.”

“A?”

대화를 경청하던 남궁산하가 되물었다. A라면 익히 알고 있다. 자경단의 리더. 그런 사람이 있다고 구설처럼 전해져 왔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지금은 부재중이라고 다들 짐작했던 A였다.

‘그 사람이 저 사람이라고?’

자경단의 리더 자리는 세습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역대 A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그게 저 가면인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신체로 보았을 때 젊은 나이로 보였다. 기껏해야 20대 정도? 이전 세대의 아들인가? 그렇다면 최근 자리를 물려받았을 확률도 높다.

그리고 A를 대대로 유지하는 가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 집안이 헌터가 아닌 일반인처럼 생활한다고도 했고, 또 어떤 이는 A가 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역대 A들의 습관과 버릇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나온 가설이다.

그 가설에 힘이 실리는 건 모든 A들의 이능에 대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오직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만 싸우는 터라 밝혀지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예로 서도현이 있다.

남궁산하는 이러한 경황들을 추정해 아마도 A의 이능이 ‘시간’과 관련된 능력이 아닐까 섣불리 지레짐작해 보았다.

호기심이 동해 A를 탐색하고 있을 무렵, 자경단이 래터 일행을 다른 승용차로 이끌었다.

“비도 오고 하니 도착지까지 태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건….”

이겸이 깨트린 유리창을 보고 침음을 삼켰다. 주승태를 태운 승용차였다.

A가 말없이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수리 비용은 청구하지 않겠답니다.”

도현은 이겸의 어깨를 붙잡고 남궁산하를 불렀다.

“형, 비도 오는데 얼른 타자.”

“어, 으응! 지금 갈게.”

도현의 검은 동공이 A에게 잠깐 머무르다 사라졌다.

“…잠깐만.”

이겸은 차에 올라타려다 멈칫하고 숲 너머를 응시했다.

비가 오니 감각이 한껏 예민해졌다.

***

우수수수-.

억수같이 비가 쇄도하는 수풀 사이 몸을 숨기고 있던 남자가 전화 너머로 중얼거렸다.

“어. 아담의 말대로 A가 나타났어.”

- 그렇다면 이걸로 확실해졌군.

“그래. 아담에게 전해. A의 정체는 분명….”

타앙-!

- 이봐. 무슨 소란이야?

“…….”

- 여보세요? 어이, 거기 누구 있어?

쓰러진 남자를 주변으로 시뻘건 선혈이 웅덩이졌다.

미처 피할 틈도, 크리처화로 막을 틈도 없었다. 모든 작전이 끝난 지금, 가장 방심할 때 가장 완벽한 순간을 노려 기습해 온 단 하나의 탄알.

차마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그의 이마에는 깊은 총상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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