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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49)화 (49/102)

#049

안구에 탄알이 박혀 부상을 입은 남자가 분노에 몸서리치며 한 발짝 다가왔다.

이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겸은 그를 무시하고 탑차 쪽 남은 이를 바라봤다. 아직까지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자를 처치하면 다음은 저자와 싸워야 했다. 갈 길이 멀었다.

“쟤는 이능이 뭐야?”

“앞에 나를 두고 다른 애를? 죽을 때가 되더니 정신이 나간 건가.”

“응. 너무 죽어서 정신이 나간 것 같네. 아, 죽을 만큼 아팠던 거지 죽지는 않았구나.”

이겸은 짧은 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이번엔 절대 리셋 안 해. 눈앞에 있는 자를 처치하고 굳힌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상대로 추정되는 이의 능력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런데, 알려 주면 안 돼?”

미리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당장 나한테 죽을 네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그건 괜찮아. 이번에는 확실히….”

이겸은 끝말을 삼켰다. 그리고 남자의 공격을 기다렸다. 가장 좋은 타이밍이 공격이 먹혀 들어갔다고 확신할 때였다. 그것은 다른 말로 방심을 하고 있다는 뜻.

기회는 그때였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공간이 찢기길 기다렸다. 맨 처음은 오른쪽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공격이 실패하면 복부를 뚫을 것처럼 정면에서 칼을 휘젓다가도 곧장 방향을 틀어 등에 칼을 꽂는 습관이 있었다.

몇 번이나 상대하면서 알아낸 사실. 그것 때문에 부상을 입은 적도 많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자는 등에 칼을 꽂을 때가 숨통을 끊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할 터, 그때가 승리를 제일로 확신한, 방심의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겸은 일부러 그가 등을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이후 반복적인 패턴이 찾아오고, 냉큼 뒤를 돌아 공간 틈을 팔을 집어넣었다.

“……!”

기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을 이겸이 저보다 빠르게 이용하자 순간 당황한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겸은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여기가 남자의 팔이라면 그 위는 어깨, 목, 얼굴.

안구에 탄알을 쐈는데 멀쩡히 움직인다면 조금 더 확실히 죽일 수 있을 만한 심장이 좋았다. 이겸은 단검으로 대번에 남자의 심장을 꿰뚫고, 아까 경험하고 배웠듯이 일부러 검을 비틀어 빼냈다.

“끄윽…!”

상처를 헤집고 더 깊은 자국을 남겼다.

남자의 힘이 풀린 건지 자동적으로 공간이 취소되며 신체가 돌아왔다.

“…너!”

“…….”

이겸은 쿨럭 피를 쏟아 내는 남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크리처화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곧 남자가 죽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람을 죽였다. 두려움? 당황? 불안? 혼란? 문득 서도현과의 첫 만남 때, 그가 자신을 몇 번이고 죽였던 일이 떠올랐다.

언제 한번 “너는 죄책감도 없냐.”라고 지나가듯 물은 기억이 있다. 서도현은 “글쎄.”라고 답했다. 그에 사이코 새끼라고 욕을 박아 주었다. 사람을 죽이면 죄책감이나 공포를 느끼고, 밤마다 그날의 일을 악몽으로 떠올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

현재 이겸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고, 또 고요한 상태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쳐서?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아니면 내가 어떻게 된 걸까? 잘 모르겠다.

그저 이 감정이 기쁘다, 슬프다, 당황하다 정도의 일차원적인 게 아닌 너무나 고도의 감정이라 이겸은 이것이 무슨 기분인지 쉽게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글쎄.”

첫 살인은 그랬다.

***

그가 이겸에게 저벅저벅 걸어왔다.

“어떻게 한 거지?”

가까이서 본 남자는 턱에서부터 입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 그냥 한 거지.”

“그게 아니라, 얘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몰라. 우연인데.”

“우리 쪽에 스파이가 있나….”

남자의 시선이 탑차로 옮겨졌다.

“그것도 아니면.”

“…….”

“그 이어폰 누구랑 연결돼 있지?”

이겸은 태연한 척 답했다.

“노래 듣고 있는 건데.”

- 1분 남았어. 지금까진 괜찮아?

“어, 굳혀.”

- 그래. 굳히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3분 후 도착이야. 3분만 버텨.

3분 동안 저 남자를 홀로 상대해야 한다. 아까의 상대보다 더 강해 보였다. 외형으로나 내적으로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지쳤는지도 몰랐다.

저 여유로운 태도에서 언뜻 위압감도 함께 나오는 것도 같았다. 이미 기세에서 진 기분.

하지만 어떻게든 3분만 버티면 된다. 어떻게 해서든.

푹-.

느닷없이 등허리에 칼이 꽂혔다.

‘아, 오늘 기습 여러 번 당하네.’

고통이 몸을 쑤시는 판국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니, 이겸은 문득 자신이 서도현과 비슷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겸은 이를 악물고 제 등에 박힌 칼을 빼내었다.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원래라면 출혈 방지를 위해서 몸에 박힌 무기는 빼면 안 됐지만 지금은 움직임을 저지시키는 방해물에 불과했다.

앞으로 3분 후에 도착. 서도현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상처 없이 버티면 될 뿐이다. 그 후엔 둘이 함께 놈을 상대하면 된다.

“…아.”

순간 이겸은 비틀거렸다. 피를 많이 흘려서가 아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방이 저를 주변으로 빙글빙글 도는 기분.

저자의 능력은 뭐지? 독?

그러기엔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온 칼이 신경 쓰였다. 그것도 아니면 복수 능력자인가?

혹은 공간을 마음대로 찢고 이어 붙이던 자의 짓인가. 아니다. 그는 이미 이겸의 뒤에서 싸늘하게 죽어 있다.

“콜록.”

손으로 입을 막고 잔기침을 뱉었다. 기침 속에 피가 섞여 있다. 하지만 손바닥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도리질을 쳤다. 무언가가 뇌를 가로막았다. 생각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죽진 않으니까 너무 염려 마. 칼에 묻어 있던 독, 크리처의 피거든.”

“…크리처?”

이겸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크리처의 피를 섭취하게 될 시 나타나는 증상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우선 크리처를 신적으로 여기게 되고, 신체의 부분 크리처화까지 가능해진다고 했다.

이겸은 바들바들 떨리는 제 손을 확인했다. 제 몸에 크리처의 피가 파고든 거라면….

“신입은 신입이네.”

“뭐?”

“소량으로는 환각 증상밖에 없어. 어디 은총을 받기가 쉬운 줄 알아? 그분들을 모시려면 다량의 혈액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고.”

눈앞의 형상이 비틀렸다. 두 명이었다가 세 명이었다가 이내 제 주위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 윤이겸, 괜찮아?

그 형상은 곧 하나로 겹쳐지며 괴물과도 같은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환각? 아니면 실제?

“이겸아! 뒤로 물러나!”

순간 남궁산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가?

이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로 물러섰다. 눈앞이 아스라이 산산조각 났다. 뭐가 뭔지.

시각, 후각, 미각, 청각 모든 감각 하나 믿지 못했다.

“…ㅇ… 쪽!”

순간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섬뜩함과 살았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환청이 실제인지, 혹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마 몇 번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환청 증세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고.

“오른쪽!”

말을 따르는 수밖에!

부스럭. 오른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피해야 했던 게 맞았다.

이제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캄캄하고,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감각이 무뎌진다.

“네놈은 없애야겠구나.”

남자의 눈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이를 향해 번뜩였다. 진작에 죽었어야 할 터인 윤이겸을 살려 낸 남궁산하.

신체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동안 보고 배운 게 있어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모든 상황을 의심하기 때문에 페이크 동작도 쉽게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벼운 몸풀기로 상대하는 중이라지만 환각에 제 한 몸 겨누지 못하는 이를 앞에 두고 어찌하지 못하다니.

“나도 많이 죽었군.”

윤이겸은 죽이기 번거롭지만 남궁산하는 딱 보아도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으아아!”

남궁산하는 제게 달려오는 남자에 큰 덩치를 웅크리며 무작정 몸을 숙였다.

부릉- 부르릉-!

“아악!”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며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찾아오는 고통이 없자 남궁산하는 살며시 감은 눈을 떴다.

“괜찮아?”

서도현은 쓰고 있던 검은 헬멧을 벗어 던졌다. 타고 온 오토바이는 남자의 머리를 갈아 버리는 데 쓰고 버렸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앞으로 고꾸라진 남자를 뒤로하고 윤이겸을 일으켜 세웠다. 이겸은 술에 취한 듯 몸을 휘적이며 바로잡지 못했다.

“크, 크리처 독에 당했나 봐.”

“해독제는?”

소량이라면 해독제가 존재했다. 그리고 해독제는 모든 헌터들이 상시 챙기는 약품 중 하나였다.

“내, 내 차 트렁크에 있어.”

“갖고 와 줄 수 있어?”

“응!”

산하가 전복된 차 트렁크에서 약품을 꺼내기 위해 달려갈 무렵, 도현은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변화했나.’

오토바이로 머리를 갈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 이마를 타고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릴 뿐 그 외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엔진 소리를 듣고 빠르게 크리처화를 시도한 듯싶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바퀴에 머리를 강타당해 즉사, 헌터라면 기절 정도, 하지만 블러드 헌터는 멀쩡히 일어났다.

이게 그 차이였다.

크리처의 피를 마시면 신체 능력이 보통 헌터보다도 배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거기다 부분 크리처화라는 능력은 유사시에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하’급 크리처 피를 먹으면 몰라, 그들 안에서도 상, 중, 하로 크리처 등급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취급하는 건 상, ‘상’의 피를 마신 만큼 그 효과도 톡톡히 봤다.

다만 지금은… ‘중’ 정도인가.

‘상’은 블러드 헌터의 간부들이나 나눠 마시지 일개 졸이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런 걸로 따지면 이 녀석들의 블러드 헌터 내에서 입지가 그다지 없는 조무래기.

“…서도현.”

남자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단단히 섰다. 한때 자경단에 속해 있던 서도현이었다. 그 명성은 톡톡히 알고 있다. 제 선에선 상대가 안 될 게 분명했다.

“어디 소속?”

도현이 스트레칭하듯 목을 까딱이며 물었다. 사자 없는 산에서 왕 노릇 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 줘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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