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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46)화 (46/102)
  • #046

    “아뇨, 그…. 점심은 먹고.”

    이겸은 난감하다며 머리를 흩뜨렸다.

    “그리고 아무리 형이 서도현과 화해하라고 말해도 걔가 먼저 사과하기 전까진 절대 안 할 거예요.”

    남궁산하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아니야. 난 그냥 너 보려고 온 거야.”

    그럼에도 이겸은 의심의 눈을 거둘 수 없었다.

    “아, 혹시 도현이가 아니라 너만 설득하러 온다고 화난 거야?”

    “그런 생각 한 적은 없는데…. 진짜 그랬어요?”

    산하가 양손을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사무실에서 도현이를 얼마나 닦달하는데!”

    “…형도요?”

    남궁산하는 도아, 재우와 달리 휴가 날 잠깐 보고 친해진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닦달까지 한다고? 그 소심한 성격에?

    “그럼 당연하지! 여기 이거 봐 봐.”

    산하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밤새 고심해 작성한 PPT를 증거로 내밀었다.

    “뭔데요?”

    “둘이 화해하면 래터에게 올 이득과 현재 래터 분위기에 대한 고찰이야.”

    이겸은 빠르게 PPT를 훑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CA 지역 나갈 사람이 적어 일정이 빠듯하다, 도아와 재우는 학생이라 새벽 CA는 나가기 버겁다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단점들이 나열돼 있었다.

    “맨 뒤 페이지 보면 둘이 왜 싸웠는가로 시작해서 도현이가 잘못했다면 앞으로의 관계 타개 방향에 있어 고칠 점, 너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좋을지 세세하게 분석해 놨어.”

    “…그래서 걔는 이걸 보던가요?”

    “그… 한 줄 읽고 껐어.”

    산하가 우울히 답했다.

    걔가 그럼 그렇지 뭐.

    이겸도 화면을 끄고 상을 펴기 시작했다.

    “정리 다 하셨으면 같이 밥 먹어요.”

    “응! 이것만 넣으면 끝나!”

    산하는 수저와 앞 접시를 챙겨 온 후 포장 음식을 뜯었다. 겨울철 국밥,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다.

    “이겸아, 이거 먹고 친구랑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태워 줄까?”

    “가는 길이면 부탁드려요.”

    다행히도 같은 방향이라 식사를 끝낸 후, 산하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추운데 따뜻하게 가야지.”

    어떻게 이런 사람이 서도현과 한 팀이지. 이겸은 만약 자신이 래터를 탈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마음 기댈 곳은 남궁산하뿐이라 다짐했다.

    그때 놀기로 약속했던 친구인 주승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겸은 휴대폰을 들었다.

    “응. 지금 가고 있어.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 넌 어디야?”

    - 이… 이겸아.

    “무슨 일 있어?”

    주승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사… 살려 줘…. 여, 여기….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잔뜩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겸의 안색이 서늘하게 굳었다.

    “너 지금 어디야.”

    ***

    통화는 계속 연결되었다.

    - 모…모르겠어. 뒤에서 누가 머리를 때려서 기절했는데… 트럭 같은 데 실려 이동되는 것 같아.

    이겸은 남궁산하도 들을 수 있게 스피커 모드로 바꾼 뒤, 경찰에 연락해 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 이겸아…. 나, 흐윽, 나… 죽어? 이거 납치?

    “안 죽어. 지금 경찰에 신고했어. 금방 출동할 거야.”

    눈치 빠른 산하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승태에게 물었다.

    “학생, 정확히 어디서 정신을 잃었어요?”

    - …누구세요?

    이겸이 다급하게 말했다.

    “너 지금 어디야? 트렁크? 몸은? 묶여 있어?”

    - …응. 이겸아, 옆에 누구랑 있어? 나, 나 구하러 올 거지?

    “당연하지. 지금 경찰이 네 폰으로 전화 준대. 위치도 확인 중이고 지금 가고 있다니까 너무 걱정 마.”

    옆에서 남궁산하가 말해 준 그대로 읊어 주며 주승태를 진정시켰다.

    “저기… 학생? 저는 겸이 친한 형인데 지금 경찰이 학생 폰으로 연락 준다고 하니까….”

    - 지, 지금요? …그럼 저 윤이겸이랑 전화 끊어요?

    무섭고 혼란스러워 상황 파악이 안 돼 무작정 아무나 잡고 보는 모양이다.

    “괜찮아. 나보단 경찰이 더 친절히 알려 줄 거야. 어, 지금 건대.”

    - …응. 근데 나 배터리가…. 철컹-.

    주승태 쪽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이겸과 산하는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 일단 잡아 오긴 했는데, 이놈은 어떡하지?

    - 보아하니 1차 각성도 방금 마친 것 같은데, 제물로 바쳐.

    - 차라리 피를 먹여 보는 건?

    각성? 제물? 피? 세 단어를 취합해 볼 때 떠오른 이들이 있다.

    블러드 헌터?

    이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아무래도 일반 납치범이 아닌 듯하다. 주승태, 너 대체 뭘 본 거야.

    스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 귀한 피를 이딴 이능도 각성하지 않은 애송이한테? 대기순이 길어. 제물로 바치는 게 더 이득이야.

    - 그것도 그렇지.

    철컹-.

    다시금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납치범들이 떠났다는 뜻이었다.

    - 이… 이겸아. 여기….

    “너 괜찮아?”

    - 응. 아직 내가 기절한 줄 알고 있나 봐.

    이겸이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형, 이거 경찰로는….”

    “응. 지금 자경단에 연락 넣었고, 트럭이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면 탑차일 확률이 높아.”

    탑차는 주로 냉동 차량이나 택배 차량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탑차요?”

    순간 한 장면이 이겸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모퉁이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블러드 헌터, 크리처를 싣고 가는 탑차.

    “주승태, 혹시 거기….”

    삐-삐-.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 음성만 나오는 게 아까 그가 언급한 배터리가 다 된 듯싶었다.

    주승태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어지자 불안함은 배가 되었다.

    “이겸아. 진짜 갈 거야? 우선은 자경단한테 맡기고 우리는….”

    “형, 제 친구예요.”

    “…그래도 이런 상황에선,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죄송하지만 저 혼자라도 택시 타고 갈게요.”

    “이겸아!”

    이겸이 당장이라도 내릴 듯 안전벨트를 풀자 산하가 다급하게 말렸다.

    “위치도 모르면서 어떻게 가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일단 앉아.”

    이겸은 언짢은 기색을 지었지만 우선 그의 말대로 했다. 남궁산하는 뒷좌석의 노트북을 끌어와 열심히 만졌다.

    “이겸아, 여기. 여기서 신호가 끊겼어. 우선 여기로 가자.”

    어떻게 한 건지 위치 추적이라도 한 듯싶었다.

    “지금 시간대에 저기 지나간 탑차들 수배해 달라고 자경단에 요청했고, 파견된 자경단도 지금 오는 중이라니까 너무 걱정 마. 우리도 지금 출발….”

    “형, 자경단이요.”

    “응.”

    이겸은 불신 가득한 눈으로 물어 왔다.

    “강한 거 맞죠?”

    크리처 사냥이 아닌, 블러드 헌터를 전문적으로 쫓는 집단이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서도현도 한때 거기 속했다는 것 정도는 대충 들었고.

    운전대를 잡은 산하는 평소답지 않게 냉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 친구는 무사할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도현이한테도 연락하자.”

    “…서도현한테요?”

    이겸이 질겁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잖아. 그리고 도현이는 무조건 도움 될 거야.”

    ‘그건 그렇지만 먼저 연락하기 싫은데.’

    하지만 지금은 하찮은 자존심 따위 챙길 게 아니다. 적에게 무릎 꿇고 구걸해 친구가 살 확률이 높아진다면 그 짓조차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었다. 강태하 못지않게 소중한,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몇 없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서도현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쯤이야. 큰일도 아니었다.

    - 응.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겸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 위치 보내. 금방 갈게.

    “…그래.”

    한편으로 현재 있지도 않은 서도현이 무슨 도움이 되나 싶기도 했지만 막상 전화를 걸고, 무작정 이곳으로 온다는 그의 말을 듣자 안심이 되었다.

    - 산하 형과 같이 있다고?

    스피커 모드로 된 휴대폰에 산하가 소리쳤다.

    “응. 도현아. 우리 지금 가는 중이야!”

    - 몇 분 후 도착이야? 통화는 끊지 말고. 무선 이어폰 있어?

    “5분 후면 위치 끊겼던 현장까진 도착할 수 있어. 끊겼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빠지는 길은 없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선 이어폰은… 이겸아 있어?”

    “없어요.”

    “뒷좌석 내 가방에 들어 있어.”

    이겸이 운전 중인 산하를 대신해 가방을 뒤적거려 이어폰을 찾았다.

    “찾았어. 근데 이게 왜.”

    한시가 급하건만 이어폰은 왜 찾는 건지.

    - 다행이네. 그건 겸이 네가 사용해.

    “…내가?”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알렸다.

    - 난 지금 출발해도 너보단 늦게 도착할 거야.

    “알아.”

    - 잘 들어, 윤이겸.

    “…….”

    - 산하 형은 약해서 도움이 안 될 거야.

    남궁산하는 전투 요원이 아닌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계 쪽 사람이다. 제작 쪽으로는 뛰어날지라도 전투로는 능력이 ‘하’에 불과하다. 윤이겸의 발목만 잡게 될 터.

    - 너 혼자 싸워야 돼.

    이겸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긍정했다.

    “…알아.”

    도현이 나직이 말했다.

    - 도착하면 시간을 재. 단위는 5분으로.

    “너 지금….”

    이겸은 도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 괜찮아. 여태 해 왔던 걸 오늘도 하는 것뿐이야. 놀랄 것도 없어.

    “…이겸아, 곧 도착해.”

    산하의 알림에 이겸은 곧장 블루투스를 연결해 한쪽 귀에 끼웠다. 다행히도 남궁산하의 가방엔 없는 게 없었다. 여러 무기를 제작하는 사람답게 나이프, 망치, 총 다양한 무기들이 차에 즐비했다. 이겸은 자주 사용하고, 제일 익숙한 단검을 꺼내 들었다.

    “형, 자경단은 언제 도착해요?”

    “오는 중이라곤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도현이보다 일찍 올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고.”

    이겸은 단검을 그러쥐었다. 협회 습격. 그때완 다르다. 그때는 크리처를 죽여야 살 수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역할은 버티기.

    자경단이 올 때까지, 서도현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일이다.

    그때보다 쉬운 일이다.

    할 수 있다.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주승태가 죽고 만다.

    - 신호 주면 시뮬 돌릴 테니까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알려 줘.

    그때 굳힐게. 이겸의 손에 땀이 고였다. 그제야 실감이라도 난 걸까.

    언제나, 언제고 서도현이 옆에 있었다. 협회 때도, 그 후 크리처를 사냥할 때도, 래터 사무실에서도, 훈련할 때도. 저도 모르게 그를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혼자만의 상황이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 무게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손끝이 잘게 떨려 왔다.

    - 위험하면 도망쳐. 친구 버리고라도 도망쳐. 넌 살아.

    “안 돼. 내 친구야.”

    서도현은 매정할 정도로 차갑게 일렀다.

    - 그럼 겁이나 먹지 마.

    목소리부터 떨리고 있잖아. 여태 그랬던 것처럼. 단순 크리처 사냥이잖아.

    “하지만 크리처가 아니라 사람이잖아….”

    이겸의 반박에도 그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걔들은 사람도 아니야. 단순히 크리처 사냥한다 생각하고 맘 편히 죽여.

    “…….”

    - 네가 죽기 싫으면 죽이는 수밖에 없어.

    이겸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서도현식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덕분에 뇌는 조금 식혔다.

    “저기 앞, 저 탑차 아니야?”

    남궁산하가 소리쳤다. 주승태가 타고 있다고 의심되는 차량을 발견했다.

    이겸은 눈을 감고 찬찬히 심호흡했다. 최대 열 번. 그때까진 제 세상이다.

    “우선 가까이 붙어 볼게.”

    산하가 좀 더 속력을 높여 차량 운전석 쪽으로 붙고, 이겸은 창문 너머로 운전석을 살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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