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도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겸을 반갑게 맞이했다.
“별거 아니야. 테스트는 끝났어?”
후다닥 달려온 도아가 이겸의 손에 들린 검사 결과지를 빼 들었다.
“역시 ‘상’으로 나왔네요. 축하해요.”
“오, 겸이 형 ‘상’ 나왔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됐고. 뭔 소란이냐고.”
사고 치지 말라니까 그 30분을 못 참고 사고를 쳐? 거기다 서도아와 차재우는 언제 온 거야? 이것들은 안 말리고 냉큼 가담을 해?
이겸의 시선이 도르륵 굴러가 김지환에게 꽂혔다. 지난날의 자신이 그에게 겹치며 동정심이 차올랐다.
“왜 또 애먼 사람 붙잡고 있어. 차재우 너는 저번에 반성하는 것 같더니만 연기였어?”
“아, 아니에요! 저 사람 예호 길드라고요. 뻔하잖아요. 저쪽이 먼저 마스터한테 시비 걸었을 거예요! 분명해요!”
“서도현이 시비 털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방금 보니까 서도현한테 구타당하고 있던데, 저런 약한 분이 무슨 담이 있다고 얘한테 시비를 걸어.”
졸지에 약하고, 담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김지환이 고개를 숙여 분노에 몸을 잘게 떨었다. 그 와중에도 이겸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서도아 너는 보고만 있지 말고 말리기라도 해야지. 기어코 사람 한 명 죽어 가야 말릴 거야? 서도현 너는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쳐?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성호야.”
“네, 지환 선배.”
“대련 신청해.”
“…네? 제가요?”
“그래.”
지금 이 상태로 길드로 돌아가 봤자 예호가 래터에게 당했다는 소문만 퍼질 거다. 심지어 래터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는 자는 아닌 척하면서 제 이미지를 더욱 깎아내리고 있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반박도 하지 않고 잠자코 돌아가면 방금 전 차재우가 외쳤던 비공식 대련으로 처참하게 깨졌다는 사실도 아닌 사실들이 소문으로 돌아다닐 게 분명했다.
지금도 슬금슬금 믿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더 이상 예호의 이미지를 깎아내릴 순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모두의 앞에서 대련을 해 래터를 처참히 뭉개 줘야 체면이 선다.
그것을 지성호도 모르지 않았다.
“근데 선배. 누구와 대련을….”
“저기. 저놈.”
지환의 검지를 따라가자 차재우가 시선 끝에 맺혔다. 지성호가 고개를 끄덕이곤 차재우에게 다가갔다.
***
“…내가 왜.”
훈련실, 서도현의 권유로 지성호의 앞에 선 윤이겸이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호의 저분은 분명 차재우에게 대련을 신청했는데 왜 자신이 나가게 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황당한 건 지성호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예호의 2팀 예비 인원으로 들어오게 된 신입, 노정규와 함께 테스트를 봤던 사람이다. 윤이겸과 대련을 한다면 예호에선 장군이 나가는데 래터에선 쫄병이 나가는 꼴이었다.
이기면 본전, 지면 쪽박.
래터의 마스터 서도현도 이걸 노린 걸 테다.
애초에 불같은 성격을 띠는 제 선배, 김지환이 서도현에게 다가갈 때 말렸어야 했는데. 다 내 업보지….
정작 본인은 정강이뼈가 부러져 그 뒷수습을 자신이 하게 되었다.
제 처지가 슬프기도 했지만 이왕 대련을 하게 된 거 봐주는 일은 없다. 더군다나 구경꾼도 잔뜩 몰려왔다. 절대 질 수 없는 대련이었다.
“예호의 2팀 지성호입니다. 이능력 없이 격투로만 대련을 하겠습니다.”
신입 상대로 이능도 보이면 본전도 못 찾지. 이능 없이 무조건 이겨야 했다. 예호의 지성호는 즉시 전투 모드로 돌입했다.
반면 래터의 신참 윤이겸은 뻘쭘하게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가끔가다 서도현을 돌아보며 ‘진짜 해?’라는 의문 섞인 표정은 덤이었다.
그에 도현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제게 손짓했다.
“…잠시만요.”
그 모습을 보던 이겸이 양해를 구하고 도현 쪽으로 자리를 떴다.
“진짜 내가 싸우라고?”
도현이 당연하다며 답했다.
“그래. 곤죽을 내. 싸우다 어디 한 군데 부러트리면 더 좋고. 정강이뼈는 어때? 선배랑 후배가 똑같은 위치 다치면 웃기긴 하겠네.”
예호의 2팀 헌터가 몇 년 전 막 창설된 따끈따끈한 래터 길드의, 그것도 신입에게 참패했다면 그것만큼 우스운 꼴은 없을 거다.
반대로 래터의 위상은 더더욱 올라가고.
꼭 이겨야만 하는 지성호의 입장과 다르게 서도현은 윤이겸이 져도 본전이고, 이기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예호의 권유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도현의 생각을 이겸이 알 리 없었다. 내가 어떻게 저 사람을 이겨?
“…지면 어떡해?”
이겸이 걱정된다며 물어 왔다.
“겸이 형! 이길 수 있어요! 예호의 코를 아주 뭉개 버려요!”
“괜찮아요. 이길 수 있어요. 제가 뒤에서 몰래 반칙 써 드릴게요.”
…그거 참 고오맙다. 응원 같지도 않은 응원에 없던 힘도 주욱 빠졌다. 그 사이로 도현이 예쁘게 웃었다.
“지고 싶어도 못 질걸?”
“…….”
그의 말에 이겸의 미간이 꿈틀했다.
도현은 제 손목시계의 알람을 맞추고 있었다.
“래터의 윤이겸이요.”
“예호의 지성호입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지성호는 총알같이 이겸에게 튀어 갔다. 전투의 기초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건 침착, 언제나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초보들은 대부분 그런 법칙도 모르고 빠르게 날아온 첫수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지성호는 그걸 노렸다.
하지만 이겸은 가뿐히 상체를 숙이는 걸로 능숙하게 주먹을 회피했다.
‘뭣…!’
지성호는 그대로 이겸의 위를 훌쩍 날아가 지나쳤다. 공중에서 한 바퀴 몸을 구른 후, 땅에 발을 디뎠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전히 착지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위화감이었다.
세상엔 반사 신경이 빠른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방금은…, 방금 윤이겸의 반응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이건 반사 신경이라기보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혹시 숨기는 능력이라도? 그럴 리는 없었다. 이제 막 2차 각성을 마친 애송이었다. 잘 다루지도 못할뿐더러 그의 능력이 천리안과 관련되었단 건 자명했다.
혹시 천리안이 아닌… 미래를?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성호는 이겸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공격을 피해 쉽게 좋아하는 얼굴도, 얼떨떨해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영 개운치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머뭇거림도 잠시, 그는 우연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빠르게 돌진했다.
가벼운 대련이기 때문에 무기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형식이었다. 지성호는 약간의 페이크를 주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
이겸의 시선은 정확히 지성호의 발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제게 채찍처럼 휘두를 것을 예상이라도 하듯이.
그 모습을 확인한 지성호는 다리를 움찔 떨고는 그대로 이겸의 오른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윽.”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그대로 던져지듯 날아간다. 상체를 일으킨 이겸이 제 뺨을 손등으로 매만지더니 고인 침을 뱉어 냈다. 입 안에 상처가 났는지 침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도아가 깜짝 놀라 이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오빠! 괜찮아요? 안 되겠다. 그냥 졌다고 하면 제가 나서서 다 죽여 놓을게요!”
“…….”
“형! 한쪽 뺨을 내줬으면 반대쪽 뺨도 내준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어요!”
“…….”
악마냐. 뺨이 욱신거리는데 반대쪽 뺨까지 내주면 밥은 어떻게 먹으라고.
이겸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승부욕 넘치는 래터들과 달리 이겸은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내키지 않았다.
이능력을 아직 잘 다루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상대편은 능력 없이 맨몸으로 싸워 주는데, 정작 자신은 서도현의 능력을 이용해 앞서 나가고 있다.
엄연한 반칙. 사기를 치는 기분.
이 대련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의욕이 없었다.
이겨서 래터의 위상을 올리자는 거대한 목표도 없었고, 이긴다고 제게 무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져도 본전이라면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았다.
하아, 다음 공격이 뭐였더라.
아까는 분명 턱을 맞았었는데. 이번에는 고개를 뒤로 빼야 하나.
이겸은 대충 싸우다 끝낼 심산으로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윤이겸.”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니꼬운 듯 서 있는 서도현이 보였다.
“왜?”
“잡생각을 버려.”
…그게 말처럼 쉽나.
입술을 비죽이던 이겸은 입 안의 상처 난 부분을 핥았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잠시 눈을 깜빡한 찰나 지성호의 신발창이 시야에 가득 찼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선 뒤 발목을 잡아채 포환을 던지듯 저 멀리 던졌다. 벽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부딪혔지만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끝장을 낼 심보로 재차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새 정신을 차린 지성호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후두둑. 안면을 맞은 탓에 코피가 터져 나왔다. 입에선 피 맛, 코에선 코피.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지성호의 뒤편에선 당연히 승리를 예상해 자신만만한 얼굴인 예호가 보였다.
그리고 알람이 울렸다.
“…래터의 윤이겸이요.”
“예호의 지성호입니다.”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히 인사를 건넨 이겸은 익숙하게 상체를 숙여 지성호의 주먹을 피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목을 잡아채 아까처럼 포환 던지듯 벽면에 그를 처박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아까와 비슷한 상황. 곧 있으면 안면에 팔꿈치가 날아올 것이다. 그리고 코피를 쏟았다.
그렇다면…, 이겸은 지성호의 팔꿈치 부근 아래로 숙여 옆구리를 가격했다. 쿨럭. 헛기침을 한 그가 휘청거리며 제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이렇게 천천히, 빈틈없이 지성호의 습성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대응법을 만들어 차분히 격파해 나갔다.
흡, 지성호는 숨을 들이쉬고 참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쪽으로 공격하면 피해 오고, 그 역을 이용해 허점을 찔러도 끄떡없었다. 그저 예상했단 무심한 얼굴로 모든 수를 읽고 있었다.
지성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갓 들어온 신입한테, 한낱 신입한테 자신이 밀리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 전투 센스란 게 타고난 것도 있지만 경험에 의해 생기는 게 다분했다. 분명 경험은 자신이 더 많을 텐데. 그럴 터인데.
윤이겸이란 자는….
소름이 돋아났다. 범인이 천재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떤 수를 써도 읽히고 만다.
그 순간 지성호는 직감했다.
자신의 패배를.
이 상태론 윤이겸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할 거다.
“…졌습니다.”
체력적으로 몰아붙일 수는 있어도 전투 센스,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건 승리라 할 수 없었다. 그는 훈련장 바닥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대(大)자로 뻗었다.
이겸은 숨을 몰아쉬며 지성호를 내려다봤다.
“오빠! 잘했어요! 세상에 땀 좀 봐. 다친 곳은 없어요?”
“형형. 물? 물 마실래요? 부축해 드려요? 괜찮아요? 완전 멋졌어요.”
예호의 앞에서 보란 듯이 주접을 떨며 이겸에게 뛰어오는 도아와 재우, 그 뒤를 따르는 서도현.
이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잘했어.”
“와! 그럼 오늘은 회식인가? 형 저희 고기! 고기 먹어요! 축하 파티!”
“난 생선이 좋은데. 초밥집 어때? 오마카세!”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시끌벅적한 상황 속 이겸은 어떤 말도 없이 묵묵히 서 있었다. 무언가를 고뇌하는 것 같았다.
같이 대련을 한 지성호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예호에서 대련 후에 덕담을 주고받는 건 기본 중에 기본 아니냐며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래터는 그걸 가볍게 무시했다.
어차피 승자는 자신들이니까.
다만 이겸은 달랐다. 덕담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였다.
개운치 않은 감정이 자꾸만 제 양심을 콕콕 찔러 댔기 때문이다.
***
래터의 새로 들어온 신입이 예호의 2팀, 지성호와 대련해 승리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말은 발보다 빨랐고, 그건 곧 예호의 길드 마스터 김이성의 귀에 도착했다.
“2팀으로 활동 중인 지성호 헌터가 래터의 신입에게 대련에서 졌습니다.”
유리컵을 움켜쥔 손에 우악스러운 힘이 들어갔다. 알알이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손바닥을 상처 입히는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었다.
다만 그의 산적같이 흉흉한 얼굴은 회복되지 않았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