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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7)화 (17/102)

#017

이겸이 당황을 가득 싣고 물었다.

“…내가? 뭘?”

“너, 나, 크리처, 잡다.”

어린아이라도 타이르듯 이해하기 쉽게 알려 준다고 조사란 조사는 다 빼고 말하는 도현에 이겸은 멍청히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왜?”

“궁금하잖아. 나만 기억하는 세상에 너도 있다는 게. 한번 호흡 맞춰 보자.”

입매를 말아 올리는 도현의 뒤로 검은 무언가가 점점 쌓이더니 크리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 뒤!”

“알아.”

알면 좀 뒤돌라고!

사슴 같은 외형의 크리처는 살, 가죽, 그런 건 볼 수도 없고 오직 뼈로만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겸은 어쩌다 제 손에 쥐어지게 된 단검을 살폈다. 이걸로 쟬 죽인다고? 뼈에 검이 박히긴 해?

“크리처 도감은 봤어?”

도현이 물어 왔다.

“…보긴 했어.”

권상혁이 준 도감을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 봤다. 다만 아무리 찾아도 자신이 죽였던 물고기형 크리처는 도감에 실려 있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사슴을 닮은 크리처도 마찬가지로 도감엔 없는 존재였다.

“네가 봤을 도감은 초보자 도감이라 등급이 ‘하’인 크리처밖에 안 적혀 있거든.”

“…그럼 얘는 뭔데?”

“네가 저번에 잡은 물고기형 크리처 ‘피레’는 ‘중’ 등급, 그리고 얘는 ‘감마’로 등급은 상이야.”

이겸의 안색이 굳었다.

그러니까, 갓 입문해 초보자용 도감을 받은 자에게, 같이 상을 잡자고 저러는 거지?

“너 돌았냐?”

이겸이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걱정 마. 물론 많이 다치긴 하겠지만 5분이 지나면 다 나아 있을 거고, 죽어도 살아나니까.”

태연스레 말하는 도현에 이겸의 동공이 잘게 진동했다.

“아프긴 하단 거잖아.”

서도현은 그런 이겸의 태도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겁이 많지? 몇 번 죽어 봤잖아.”

“…시발아.”

기어코 나직한 욕설을 터트렸다.

“익숙해지면 괜찮은데. 좀 더 죽어 봐야 익숙해지려나.”

이겸은 쥐고 있던 검에 악력을 높였다. 이걸 죽여, 말아?

그 뒤로 사슴의 머리에 난 뿔이 성난 채찍처럼 둘에게 휘둘러졌다. 맞은편에서 그걸 목격한 이겸은 눈을 크게 떴다.

퍼억-.

제 뒤통수로 날아오는 뿔을 보지도 않고 몸을 숙여 피한 도현이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힌 이겸을 쳐다봤다.

“괜찮아?”

먼지로 사방이 뿌예지며 이겸이 기침과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바닥에 피가 떨어지는 걸 보아선 필시 머리에 상처가 난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죽고도 남았을 한 방.

“그 정도로는 안 죽어. 어서 일어나. 그러다 또 당할래?”

도현이 독하게 그를 다그쳤다. 한심한 자를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

이겸은 비척이며 일어섰다. 뺨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도현을 노려보는 두 눈에선 불티가 튀었다.

그는 저를 노려보는 이겸을 무시하고 크리처의 공격들을 속속이 피하며 말했다.

“얼른 이리 와. 죽이는 법 알려 줄 테니까.”

“…내가 왜.”

“뭐?”

그 말을 한 이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뭐? 크러처 잡는 법을 알려 줘? 웃기는 소리. 혼자서 잡으라지.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현장에서 멀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되게 재밌네.”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마치 비아냥처럼 느껴졌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이겸은 제 앞에 보이는 상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서도현의 능력이 있는 한,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지극한 사실.

시간이 되돌아가고 크리처에게 입었던 부상은 완치되었다.

잘못 걸려도 한참을 잘못 걸렸다.

“그렇게 계속 눈 감고 있다가 또 다칠 텐데.”

귓가를 파고드는 음성에 이겸은 저도 모르게 우선 몸부터 웅크리고 봤다. 머리 위로 크리처의 뿔이 스쳐 지나갔다.

마주 앉아 보이는 도현의 눈매는 가늘게 접혀 있었다.

“이번엔 피했네.”

“…….”

크리처의 공격에 놓쳤던 단검은 시간이 반복됨에 있어 다시금 이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도망갈 수 없다. 도망가도, 도망가도 없던 일이 되어 버린다.

하루 10번밖에 능력 사용을 못 한다고? 그럼 10번 도망가면? 그다음 날이 문제다. 괘씸한 서도현은 제 능력을 빌미로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이겸을 괴롭힐 게 뻔했다.

결론은 맞서 싸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서도현은 벽에 뿔이 박혀 투레질하는 크리처를 가리켰다.

“저기 심장 보이지?”

뼈로 이루어진 크리처라 그 내부가 훤히 보였다. 이겸은 어렵지 않게 늑골 안에 팔딱이는 붉은 심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단해. 저기 찌르면 돼. 내가 주의를 끌 테니까 네가 뒤에서 공격해.”

이겸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주의는 서도현이 끈다니 다행이었다.

앞으로 냉큼 달려간 도현이 사슴의 얼굴을 걷어찼다. 뼈로 이루어져 그런지 몹시도 단단했다. 때린 사람의 다리가 되레 아팠다.

격분한 사슴이 앞발로 땅을 탕탕 치며 도현에게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그사이 뒤에 온 이겸은 사슴의 늑골 사이로 팔을 뻗었다.

“윽…!”

조금만 더 뻗으면 심장인데 뼈가 모이며 제 내부에 침투한 이겸의 손목을 조였다. 우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 해?”

“손이…!”

그대로 뛰쳐나간 사슴에 의해 이겸 역시 손목이 끼인 채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게 질주하는 사슴을 가볍게 피한 도현이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고 답답한 눈초리로 이겸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겸은 그의 눈길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이윽고 사슴이 이리저리 질주하며 속력을 이용해 이겸을 내팽개쳤다. 둔탁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왜 이렇게 합이 안 맞아. 눈에 훤히 보이는 심장 하나 못 찔러?”

이겸의 정수리에 큰 손을 얹어 내리눌러서 채찍처럼 날아오는 사슴의 뿔을 피한 도현이 그를 다그쳤다.

“넌 갓난아기 때 두 다리로 걸었냐?”

이제 막 이 세계에 입문한 사람한테 뭐!? 상? 이건 도레미파 피아노 계이름을 알려 주자마자 베토벤의 악보를 던져 주고 쳐 보라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따라붙는 것만으로 벅찬데. 뭐? 심장을 찌르라고? 씹…. 넌 뭐 처음부터 다 잘했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권상혁보다 더했다.

둘 다 쓰레기는 맞는데 서도현이 좀 더 질이 나빴다.

사슴이 머리를 숙여 뿔을 한껏 드러내며 이겸에게 달려들었다. 분노로 머리가 어떻게 된 이겸은 그 고통을 그대로 감수하며 도현에게 소리쳤다.

“막말로 넌 뭔데. 뭐가 그리 잘났는데. 그렇게 내가 아니꼬우면 혼자 사냥하세요. 나는 뭐 너랑 어울리고 싶어서 어울리는 줄 알아? 이 싸패 새끼가. 세상이 네 좆대로 굴러가니까 좋냐?”

쿨럭. 소리를 내지를수록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벽과 뿔 사이에 끼여 장기가 압박되었다.

그럼에도 이겸은 도현을 향한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돌아가면 사라질 고통.

도현은 거친 앞담을 들으며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오기는 있네.’

평가는 그게 전부였다.

잊힌 세계, 기억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면 합을 맞춰 전투력에 도움이 될까 했는데. 그건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고 우선 오기로 보면 합격이었다.

아픈 건 싫어하는 것 같지만, 화가 차오르면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분노는 앞뒤 사정을 안 가리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데 해가 되지만, 반대로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적이나 공포에 잠식되었을 때 그를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도 되었다.

양날의 검.

지금으로선 좋은 쪽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로 시간을 되돌렸다.

이겸은 초췌해진 눈을 한 채 몸을 숙였다. 이제는 거의 자동이다. 머리 위로 뿔이 지나감에 따라 상체를 일으켰다.

“대충 감 잡혔지?”

“무슨 감.”

도현의 질문에 그를 죽일 듯 노려봤다.

“아까 작전으로 다시 가자.”

“…….”

도현은 다시 크리처의 주의를 끌었고, 이겸은 크리처의 뒤로 향했다. 일단 크리처를 잡고 나서 한바탕 시원하게 욕을 해 줘야겠다 다짐했다.

기회가 엿보이자 이겸은 사슴의 늑골 사이로 다트 던지듯 검을 던졌다. 목표를 향해 분명 10점이었을 검은 수축한 뼈로 인해 막혀 버렸다. 사슴은 자유자재로 제 뼈를 수축하고 이완할 수 있었다. 뒤늦게야 깨달은 사실이다.

도현은 여전히 주의를 끌고 있었고, 이겸은 이 지긋지긋한 반복을 끝내기 위해 사슴에게 뛰어갔다.

뼈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렇게 못 하게 하면 그만이다.

뼈와 뼈 사이를 손으로 잡고 우악스레 벌렸다. 사슴이 터벅터벅 제 다리를 휘청였다. 이겸을 본 도현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도현이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이겸이 벌린 틈을 향해 던져 넣었다. 팔딱이는 심장이 목전에 있었다. 그러나 사슴이 비틀거리며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

이겸이 비실 웃으며 도현을 타박했다. 이전의 복수라도 하듯. 그러곤 벌어진 틈 사이로 다급히 손을 뻗었다. 사슴의 뼈가 옥죄여 오고, 팔뼈가 부러지기 이전에 심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꿈틀. 손안에 팔딱이는 뜨거운 심장이 느껴졌다. 솜털이 떨려 왔다. 잠시 망설이다 손아귀에 힘을 쥐었다.

왈칵. 심장이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사슴, 크리처가 맥없이 쓰러졌다.

잠시 멈췄던 호흡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잘했어.”

도현의 담담한 칭찬이 들려왔다. 이겸은 크리처의 피에 젖어 붉어진 손을 도현의 옷자락에 슥슥 닦았다.

“더러워.”

서도현도, 크리처도 전부 다 더러웠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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