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병실은 고요했다. 관계자 외에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계자 또한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부모님, 매니저, 멤버들, 그리고 지정된 의료진 두 명. 그 외에는 누구도 병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부터 병실 앞까지 경호원들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냥 이 VVIP 병동이 있는 층 자체가 통제되었다고 보면 됐다. 유명 아이돌 멤버가 입원했다고 뭐 이렇게까지 하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소속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병원 밖에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말로 포장을 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얻기 위한 기자들이 득실대고 있었고, 소속사는 그 기자들로부터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했다. 아이돌에게 부정적인 이슈는 독이었다. 자신들의 아티스트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또 그 아티스트가 가진 상품성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도 소속사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렇게 철저히 보호하는 덕분에 ‘아포제 멤버 강하진 새벽에 응급실 행’에 대한 소문만 무성할 뿐, 그 흔한 인증사진 한 장도 인터넷에 떠돌지 않았다.
매니저는 실시간으로 포털 사이트를 계속 검색했다. 증거도 없으면서 내내 가혹한 스케줄, 실연, 멤버간의 불화라고 떠들어대는 언론에 머리가 다 지끈 거렸다. 거기에 소속사에서도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냐고 전화를 하고 난리였다. 당장 들어오라는 단호한 목소리에 매니저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진아. 형 실장님 호출이라 회사 좀 다녀올게.”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혼자 괜찮겠어? 애들 오라 그럴까? 전화하면 올 거야.”
혼자 두는 게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매니저의 표정에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있을게요. 멤버들 오면 또 사진 찍힐 거고, 힘들 거예요.”
“그래. 걔들 와서 붙잡히기라도 하면… 아, 머리 아파. 그럼 형 금방 올 테니까 자고 있어. 나 오기 전에 불편한 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침대 옆에 버튼 누르고. 따로 필요한 거 있으면 톡 해. 올 때 사 올게.”
“네. 다녀오세요.”
하진은 병실을 나서는 지창을 바라보았다. 저 때문에 분명 곤란할 거고, 화도 날 텐데 저에게 원망 한마디 없어 더 미안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지친 얼굴로 닫힌 문을 바라보던 하진은 뭔가 생각난 듯 베개 옆에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멤버들과 지창이 안다면 그걸 왜 보냐며 혼내겠지만, 정작 하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극적인 기사나 악플 같은 것은 저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상처투성이인 마음 위에 흠집 하나 더 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진은 멍하니 밝아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실시간 검색어에는 온통 저의 이름과 멤버들의 이름, 그룹 이름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강하진, 강하진 자살 시도, 강하진 입원, 아포제, 송인규, 강하진 병원, 차정우.
“…….”
하진은 마지막에 적힌 차정우라는 이름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차정우라는 이름을 눈에 담는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감각만이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한참이나 그 이름을 바라보던 하진은 긴 숨을 내쉬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될 줄 알았는데, 저는 여전히 정우를 떠올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진은 머리가 지끈댈 만큼 따라붙는 상념들을 지우려 애쓰며 입술을 꾹 깨물며 화면 속 낯선 제 이름을 눌렀다. 그리고 마구 떠오르는 여러 개의 기사 중 가장 위에 있는 기사 제목을 눈에 담았다.
<단순 해프닝? 자살 시도? 인기 아이돌 그룹 아포제의 멤버 강하진 비밀리 입원> 자극적인 제목에 화가 날 법도 한데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진은 자살 시도 외에는 저도 아직 잘 모르는 새벽의 일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렸다.
인기 아이돌 그룹 <아포제>의 멤버 강하진(22) 씨가 오늘 새벽 4시 20분 경, 서울의 S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 5시 경에는 VVIP병실에 입원했다. 소속사인 한영엔터테인먼트 측은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로 쇼크가 와 쓰러졌을 뿐이니, 억측을 삼가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세간에서 퍼지는 ‘자살기도설’에 대해 묻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말로 강하진은 물론 멤버들도 큰 상처를 받고 있다. 법적으로 처리할 것.’이라며 자살기도설에 대해 일축했다.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새벽 3시 20분이었다. 4시 2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병원으로 옮겼을 것이었다. 누가 발견했을까. 역시 정우일까. 만약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갑자기 한꺼번에 밀려드는 생각들에 인상을 쓴 하진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너무 많은 생각들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게 괴로운 건지 머리가 지끈대며 아파 왔다.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쉰 하진은 갑자기 들리는 노크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회사에 다녀온다던 매니저 형이 벌써 왔을 리는 없고 누구일까. 부모님도 면회 가능한 시간에 왔다 가셨고, 멤버들도 모두 왔었다. 아니, 모두는 아니다. 하진은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보이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에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가장 보고 싶고, 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왔어?”
“네.”
“아침에… 스케줄 있었어?”
“없었어요.”
“…….”
그런데 왜 안 왔어? 정작 그 말은 소리 내지 못한 채, 침대 옆으로 다가오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다른 멤버들은 전부 아침에 다녀갔었다. 하지만 정우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했는데, 없었다는 대답을 들으니 말문이 막혔다. 밀려드는 감정은 서운함이기도 하고, 서러움이기도 했다.
“매니저 형한테 따로 가겠다고 했어요.”
“…….”
“형한테 할 말도 있고.”
“…앉아.”
“이게 편해요.”
침대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선 정우가 등을 세우고 기대어 앉은 하진을 내려 보았다. 늘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정우의 그림자가 하진의 얼굴 위를 뒤덮었다.
“형이 나를 진짜 좋아하긴 하는구나. 오늘 새삼 알았어요.”
“…….”
“그만두라는 말은 안 듣더니, 죽으라는 말은 들었잖아요. 죽는 게 더 쉽다는 거잖아. 날 안 좋아하는 것보다.”
하진은 저에게 쏟아지는 정우의 목소리를 전부 받아냈다. 피할 길이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보기만 해도 심장이 부서질 만큼 좋았다. 정우가 지금 제 앞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떨릴 정도였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낮은 목소리도, 그리 다정하지 않은 저 시선도 전부 다 좋았다.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고, 저에게 죽으라고 말한 정우가 미워야 하는데, 그게 정상인데, 그 말에 찔려 피가 철철 나도 아픈 줄 모를 만큼 마음이 열려 버렸다.
“형이 이겼어요.”
정우의 손이 침대에 반쯤 기대어 누운 하진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하진은 정우의 손이 닿는 순간 눈을 감았다. 머리칼에 닿았던 손은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와 하진의 뺨 위를 느릿하게 문질러 내렸다. 그 손길을 따라 심장이 쿵 떨어지고,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이런 다정한 손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방송할 때를 제외하고, 단둘이 있을 때는 이렇게 다정한 적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매달리고, 제발 너무 차갑게 대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해도 정우는 들어주지 않았다. 정우의 거친 섹스, 차가운 시선, 날카로운 말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하진에게 지금의 따뜻함은 놀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해요. 연애. 형이 하고 싶은 게 그거잖아요. 형은 연애하고, 나는 형이 원하는 거 해주고, 팀은 팀대로 굴러가고. 정리해 보니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 같더라구요.”
턱까지 미끄러져 내려온 정우의 손끝이 하진의 턱 끝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꼭 작은 동물들에게 하는 행동과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형이 죽어서 팀 해체되는 것보다, 내가 형이랑 연애해 주는 게 낫잖아요. 형이랑 할 때마다 나도 기분 좋았던 건 부정 못 하겠고, 뭐 내가 말할 거야, 형이 말할 거야. 둘만 입 다물면 밖에 알려질 일도 없을 거고. 아, 임신해서 복잡해질 일도 없고.”
“…….”
“진작 할걸. 왜 몰랐지. 편한 길이 있는데.”
하진은 완전히 제 뺨을 덮은 정우의 손에 시선을 떨구었다. 전이라면 자존심이 상할 말인데, 지금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속상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정우가 여기에 왔고, 저를 만져준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연애라는 말에 어쩔 줄을 모를 만큼 심장이 뛰었다. 기형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할까요?”
“…….”
“농담인데, 뭘 그렇게 놀라요. 형 아프니까 기분 좋게만 해주고 갈게요. 형 키스 좋아하잖아.”
놀라서 올려보는 하진을 본 정우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그대로 하진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하진은 순식간에 제 입속을 파고들어 헤집는 정우의 혀에 고개를 더 들었다. 내내 몽롱하던 머릿속에 아주 밝은 불이 확 켜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아…… 하아….”
입술이 떨어지며 혀끝으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중간에 툭 끊어진 것이 입술로 아무렇게나 달라붙었다. 하진은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젖은 정우의 입술을, 변화가 없는 눈동자를, 저를 사랑하지 않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숙소에서 봐요.”
“…와줘서 고마워.”
하진은 화를 내지도, 또 정우를 밀어내지도 못했다. 저에게 거짓된 감정으로 손을 내밀고, 그것이 거짓임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 정우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만들어진 다정함. 순간의 쾌락 외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닿음. 하진은 그렇게 정우와 거짓된 연애를 시작했다.
그룹 아포제 데뷔 1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