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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36)화 (14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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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어. 그래서 다 알고 있어. 네 과거도, 이 세계의 결말도.’

무호는 청연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청연과 함께했던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멈춘 곳이 거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거짓말을 지껄이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와서 그 말이 마음에 걸리는 걸 보면 내가 미쳐 가고 있는 게 맞긴 하는가 보다.

‘청연은 정말 내 과거를 어떻게 알았을까.’

다섯 살에 잃어버렸던 이름과 고향,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까지. 청연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물어보면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에 대충 넘어가 주기는 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끝내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꽤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청연은 제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자연이 돌아가는 섭리부터 중원을 벗어난 세상에는 어떤 나라와 어떤 문명이 존재하는지. 그곳에서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때로는 인간이 생겨나기도 전에 멸종했다는 어느 거대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그와 관련된 문헌이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그런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탓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았고,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말이다.

‘그 모든 걸 혼자서 지어냈다고 믿는 것보단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믿는 편이 나을지도….’

객잔에서 지내다 붙잡혀 신강으로 돌아갔을 때도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꼭 끌어안고 버텼다. 함께했던 추억이 모두 거기에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또 원망했으나 그리움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당신도 나를 그리워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내 생각을 했을까. 많이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구 년 만에 찾아간 객잔에서 얻게 되었다.

‘저쪽 공간이 비었잖아. 안 그래도 나무 한 그루 심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사과나무를 심어야겠어.’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그 공간이 여전히 텅 비어 있음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에 차오른 감정은 분명 기쁨이었다.

내가 없어 나무를 심지 못했구나. 당신도 나를 조금은 그리워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갔던 것 같다.

이후 청연의 뒷조사를 이어 가던 중, 가장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그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단전을 잃고 파문당한 충격이 커서 모두 잊었겠거니 짐작하고 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청연이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연과 과거의 세화는 다른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무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별생각을 다 하네….’

아무래도 청연의 헛소리에 세뇌당한 게 분명하다. 세뇌라니, 혈마도 해내지 못한 걸 청연이 해냈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호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피에 푹 젖은 옷이 축축했다. 여전히 대도가 가슴에 단단히 박혀 있는 탓에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뒤적인 끝에 잔뜩 구겨진 종이 몇 장을 발견한 무호는 그것을 끄집어냈다. 종이 역시 피에 물들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위에 적힌 글자 또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청연의 침상 밑에서 찾은 서신이었다. 평범한 서신이라기보다는 유서에 가까워 보였지만 말이다.

보화 누님께.

누님, 못난 아우가 간만에 안부 올립니다.

연을 끊고 살아가자 단언한 것을 후회하길 수백 번, 다시 청해로 돌아갈까 고민하길 또 수백 번. 결국 이곳에 뿌리내리고자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서신도 그만큼 늦어졌음을 용서해 주세요.

저는 사천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몇 번 위기가 있었지만 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넘겼고, 장사도 제법 성황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여쭈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객잔 일을 도와줄 두 아이를 거두었습니다. 누님께서 이 아이들을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와는 영 딴판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몰래 도망갈 수 있을까 잔머리만 굴리던 저와 다르게, 이 아이들은 일에 아주 열심입니다.

아이들을 포함해, 이곳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손님 중에는 무공을 익힌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자리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오릅니다.

누님께선 기루가 불에 타들어 가던 그날 밤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저는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짓밟지 않는 세상. 힘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 노인과 여인, 아이들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는 곧 저의 신념이 되었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친우를 만나게 되어 기뻤습니다. 세상의 풍파 속에 친우와 헤어져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해도 그를 향한 믿음은 그대로일 겁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길로 샜네요. 그 친우 생각만 하면 감정이 격해져서 말입니다.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제가 오늘 서신을 쓰게 된 이유는 누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허약하고 비루한 몸뚱이, 언제 숨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은지라 이렇게 서신이라도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함께 언정 소설을 읽을 때면 누님께선 늘 불평하셨죠. 어떤 소설은 슬픈 끝맺음으로 읽는 이에게 찝찝한 여운을 남긴다고요. 그때는 저도 누님 말씀에 동의했습니다만, 지금 와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들며 서서히 알게 되었거든요. 한번 시작한 이야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으며, 어떤 이야기는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걸요.

저는 이제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리려 합니다. 미련은 남지만 슬픔은 남지 않았으니 누님께서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웃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세화는 여기서 집니다. 누님께선 꽃잎처럼 훨훨 날아가세요.

사천 청연객잔 객주,

유세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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