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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99)화 (100/145)

099화

청연은 아침부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 했다. 단전에 모인 기를 내보내 독맥을 통해 백회혈까지 올리고, 임맥을 통해 다시 단전까지 끌고 왔다.

소주천을 이루니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이 하나로 연결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주천을 따라 기를 한 바퀴 돌리는 행위를 일주라고 했는데,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 시진이 조금 안 되게 걸렸으나 이제는 일각 정도면 충분했다. 청연은 앉은 자리에서 가뿐하게 삼주를 마쳤다. 조금만 더 하다 보면 하루에 십주 정도는 거뜬할 것이다.

단전을 새로 만든 만큼, 내공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지만 성취가 빠르니 그리 지겹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익힌 무공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 책을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아침 장사할 시간인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목소리에 청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을 나서기 전, 그는 비파를 챙겨 들었다. 요즘 들어 연주를 요청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기녀들을 고용한 객잔에 가거나, 아예 기루에 가도 괜찮을 텐데. 왜 굳이 여길 와서 제게 신청곡을 들이미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수입이 짭짤하니 나쁜 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여자 손님들이 많네….”

청연은 늘 앉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던지라 제게 쏟아지는 손님들의 시선 같은 건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점소이가 다가와 손님의 말을 전했다.

“저쪽에 계신 분이 오늘 생일이시랍니다. 친우분들과 시간을 보내러 나오셨다고 하니 신나는 곡으로 부탁하신답니다.”

그의 설명을 듣던 청연은 목뒤를 긁적였다. 생일이면 주루에 가는 게 낫지 않나. 왜 아침부터 객잔에 와서 술을 마시지.

그러나 점소이가 건넨 은자를 본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알겠어.”

케이팝 메들리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청연은 마음을 고쳐먹고 중원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생일 축하 노래로 대미를 장식했다.

어쩌면 이걸 이벤트로 확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직원들에게 연습시켜서 생일자가 있는 자리로 찾아가게 하는 거다. 대충 탬버린을 대체할 악기를 찾아서 손에 쥐여 주고.

머리에 고깔모자도 하나씩 씌워 주자. 음식은 뷔페식으로 충분할 거고, 케이크는… 떡이면 되겠다. 떡을 삼단으로 쌓고 화려하게 장식해 주자.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 생일잔치뿐만이 아니라 돌잔치, 혼례식 장소로 점차 발전시키다가 나중에는 대관비만 받아도… 와, 이게 다 얼마야.

역시 울적한 마음을 치료해 주는 건 금전이었다. 마침 해령이 다가오기에 청연은 그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는데 말이야.”

“표정 풀지 마세요.”

“어?”

갑작스러운 해령의 말에 청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 풀지 마시라고요. 요즘 왜 부쩍 손님이 늘어난 건지 모르시겠어요?”

“뭐라는 거야. 그게 내 표정이랑 무슨 상관인데.”

“객주님이 슬픈 얼굴로 비파 연주하는 거. 다들 그거 보러 오시는 거라고요.”

“…….”

그럴 리가 있겠니. 청연은 조금 전 생일이라던 손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나는 곡으로 부탁하시던데?”

“곡 같은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얼굴이에요.”

“…….”

“지금까지 늘 하시던 대로만 하세요. 그러면 오 층 증축도 금방이에요.”

해령은 그 말을 끝으로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청연은 말문이 막혀 비파를 내려놓았다. 남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그때, 대문 쪽에서 들려온 쾅 하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걷어차 부숴버렸다. 그 사람은 당당하게 객잔 안으로 걸어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섰다. 커다란 덩치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위협적이었다.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청연은 혀를 쯧 차며 생각했다.

지난번, 무호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해 찾아왔을 때, 객잔을 때려 부수다가 된통 혼이 나고 도망간 그 남자였다. 당시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저 객잔에서 시체가 나오지 않게끔 하려던 무호의 배려였건만.

그때 일은 오래되어 까맣게 잊은 건지, 아니면 복수라도 하러 온 건지. 남자는 콧김을 뿜으며 객잔 출입구에 서서 손님들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후자인가보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 모양새였다. 마침 연습 상대가 필요했던 청연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정도면 건강하고, 튼튼하고. 조금 맞아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것 같고. 연습 상대로 딱이었다.

“오랜만에 오셨네.”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가자 그의 얼굴이 즉각적으로 구겨졌다. 딱 한 대만 먼저 날려라, 하고 속으로 주문을 외던 청연의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식하게 큰 주먹이 복부를 향해 날아왔다. 워낙 덩치가 큰 탓에 그는 몸을 약간 수그려야 했다. 그 틈을 타 청연은 빠르게 뛰어오르며 주먹에 힘을 실었다.

요란한 타격음과 함께 남자의 얼굴이 주먹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그는 몸의 균형을 잃고 뒷걸음질 치다가 대문 바깥쪽으로 쿠당탕 쓰러졌다.

멀쩡하게 착지한 청연은 얼얼한 주먹을 문지르며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낙안권, 기러기가 내려앉는 형상을 본떠 만든 곤륜의 권법이었다.

“이게 다 무슨 난리래?”

열린 문밖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청연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형님,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아우 맞이를 이런 식으로 하시다니요.”

환하게 웃음 짓는 도경이었다. 그는 쓰러진 남자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혀를 차며 객잔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연락도 없이.”

“지난번 비무대회 때 봐놓고 뭐가 오랜만입니까. 아, 그때 형님은 따로 일을 보느라 바쁘셨지.”

“그건… 내가 미안하다.”

“농담입니다.”

그는 웃으며 빈자리에 앉았다. 청연이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일단 차부터 줄까?”

“당가 삼공자를 만나기로 해서요. 차는 조금만 이따가.”

“당가 삼공자라면….”

청연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제하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이 객잔에 처음 찾아왔을 당시에 당가 삼공자랑 싸웠다가 스승님께 혼나고 잔뜩 시무룩해졌었지. 그때 계단 위에 웅크려 앉은 애를 달래 주니 울음을 터뜨렸는데.

“맞아요. 제하랑 사이 안 좋은 그 공자.”

그 공자랑도 친해진 건가. 이쯤 되면 도경과 친하지 않은 건 남궁세가 사람들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에 재능이 없다며 무시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친화력을 가졌으니까.

“아, 제가 선물을 가져왔는데.”

도경은 짐 속에서 둘둘 말린 족자 하나를 꺼냈다. 그걸 건네받아 펼쳐 보니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남궁세가 삼공자의 그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그림은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었다. 청연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족자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예. 가져다 팔면 돈이 꽤 될 겁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객잔이 망하거든 팔아서 식비에 보태세요.”

“…안 망해. 저기 벽에다 걸어 둘 거야. 잘 어울리겠다. 고마워.”

“웃으라고 드린 건데 안 웃으시네.”

“응?”

청연이 묻자 그는 자신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한 번도 안 웃어 주셨잖습니까. 내 얼굴을 보고 안 웃는 사람은 형님이 유일할 겁니다. 아, 우리 집 형님들도 빼고.”

“…미안.”

“미안해지라고 드린 말씀이 아니라.”

그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며 물었다.

“제하가 속 썩입니까? 무슨 환골탈태나 했다는 양반 안색이 이렇게 어두운지 모르겠네.”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그때 그분입니까?”

“…….”

이미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던 도경의 질문에 청연은 할 말이 없었다. 청연의 얼굴을 살피던 그는 문득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속앓이하실 거면 차라리 내게 오시든가.”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놀란 청연의 눈이 커지자 그는 청연의 긴 머리카락 끝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머리칼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춘 그는 다시 청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게 오시면 힘든 일 없을 텐데.”

여느 때보다 진중한 눈빛이었다. 그와 시선을 맞추던 청연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장난 그만해.”

“안 통하네.”

에이, 아쉬운 소리를 뱉으며 머리카락을 놓아준 그는 씨익 미소 지었다. 청연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까지 나한테 그러지 마. 심장 떨어져.”

“아무 반응 없는 것보단 뭐라도 떨어지면 다행이지.”

“안 그래도 삶이 막막한데 더 막막해질 뻔했어.”

고운 얼굴로 헤헤 웃던 도경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청연을 불렀다.

“형님.”

“응?”

“삶이 막막할 땐 어찌해야 한다고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청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중요한 걸 일러 주듯이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죠.”

“아….”

“어렸을 때 형님이 제게 그랬잖습니까.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라고.”

당장 할 수 있는 일….

청연은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던 자신이 지금 해야 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세화의 복수를 대신하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누명 또한 풀어 주고 싶었다. 억울하게 떠나야 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고 싶었다. 게다가 누명이 풀리면 여운이 문파에서 받는 대우 또한 훨씬 나아질 테니,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청연이 도경을 바라보자 그는 그게 무엇이든 옳은 결정이라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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