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청연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이 들자마자 자신의 몸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커다란 칼날이 관통했던 몸통은 피 한 방울 나지 않게 말끔해졌다. 작은 흉터 하나 없었다.
다쳤던 얼굴과 머리를 더듬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프기는커녕 상처조차 만져지지 않아, 드디어 내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진짜 죽었나 보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흰 빛으로 가득했다. 강물도, 흙바닥도, 하늘도, 지평선도 없이 희게 빛나는 면으로 사방이 채워져 있었다.
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계속해서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데다 길도 나 있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다만….’
끝도 없는 흰 빛 속을 담담하게 나아가는 청연의 마음에 걸리는 게 딱 한 가지 있었다. 배에서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제하의 얼굴이었다.
많이 놀랐을 텐데. 놀란 걸 넘어서 충격받고,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아, 민아는 또 어쩌지.’
빙의한 지 거의 십 년이 다 되어서야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시체로 돌아오… 아니, 시체는 찾을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못 찾겠지. 안타깝지만 교룡의 뱃속에서 산산이 분해되어 시신 같은 건 남지 않았을 터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니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을지도 모르는 여운과 무호, 제하의 스승님. 객잔 직원들과 단골손님들까지. 걱정을 잔뜩 짊어지고 걷던 청연은 이내 체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 죽음을 돌이키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이들이 잘 견뎌 내기를 바랄 수밖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한참을 걷던 중, 청연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였다.
그는 퍼뜩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길 위에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무슨 어린애가 이런 곳에….’
아이에게 다가가려던 청연의 머릿속에는 문득 배 위에서 들었던 남자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동안 협곡에 제물로 바쳐진 게 대부분 여인과 노인, 그리고 아이라고 했던가. 분명 그중의 한 명일 것이다.
“아가.”
청연은 몸을 낮춰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꼬질꼬질한 차림새와 서럽게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쩌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먼 길을 오게 됐을까.
“나랑 같이 갈래?”
조심스럽게 묻자 아이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연은 팔을 뻗어 그를 번쩍 안아 올렸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는 길에 친구가 생긴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청연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아이에게 말을 붙였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조용한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목적지 없이 나아간 지 일주향 정도 흘렀을까.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새 칼바람이 부는 산속에 와있었다. 눈으로 온통 새하얗게 뒤덮인 겨울의 설산이었다. 청연은 그다지 추위를 느끼지 않았지만, 품속의 아이는 몸을 작게 웅크린 채 덜덜 떨었다.
“추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떡하지?”
자신이 입은 장포로 아이의 몸을 최대한 감싸보아도 소용없었다. 청연이 작은 몸을 녹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아이의 손이 장포 밖으로 불쑥 튀어나오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청연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앙상하게 벗겨져 눈이 잔뜩 쌓인 나뭇가지 위에 누군가의 옷이 걸려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겉옷이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 겨울바람에 나부꼈다.
청연은 곧장 팔을 높게 뻗어 옷을 잡아챘다. 그걸로 몸을 둘둘 감싸 주니 아이는 더 이상 떨지 않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이다.”
아이를 팔로 단단하게 안고 다시 걸음을 내딛던 그는 어느 집 한 채를 지나게 되었다. 설산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집의 모습이 자꾸만 그의 다리를 멈춰 세웠다.
청연은 창 앞에 서서 잠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박한 살림살이와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바닥, 은은한 약재의 향이 잔잔했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잠시만… 안에서 쉬었다 갈까.’
곰곰이 생각하던 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왠지 저 안에 들어갔다가는 영영 떠나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미련을 버리자, 속으로 되뇌며 힘겹게 시선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앞만 보고 나아갔다. 소복소복 쌓인 눈 위로 깊게 팬 발자국만이 남았다.
사방에 가득했던 눈과 앙상한 나무들이 점점 멀어져 갔다. 이제 두 사람은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다. 조금 전과 같은 산인데 마치 계절이 바뀐 듯, 급격히 변해버린 주변 풍경에 청연의 입이 헤벌어졌다.
눈길을 두는 곳마다 붉었다. 울창한 단풍나무 숲을 지나는 내내 발밑에서는 마른 낙엽이 바스러졌고, 어디선가 풍겨 오는 달큰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그때, 아이의 손이 튀어나와 다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긴 청연은 조금 전부터 산속에 진동하던 향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게 무슨 꽃인지 알아?”
청연이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꽃을 따다 달라는 듯이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었다.
“저건 계화라고 불러. 가을에 피는 꽃인데 향이 좋아서 차를 우려 마시기도 하고 향유를 만들기도….”
그는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목이 메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꽃을 조금 따다가 작은 손에 들려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꽃을 손에 넣은 아이는 그걸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 향기를 맡기도 했다.
청연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걸음을 돌렸다. 고운 단풍잎이 유난히도 많이 달린 어느 나뭇가지 위에, 다람쥐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여름인 건가….”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계절을 거슬러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싱그러운 풀 냄새가 가득한 들판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초록 잔디와 풀벌레 소리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 시간 걸어온 청연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는 깨끗한 샘 옆에 자리 잡고 앉아 물을 떠 마신 뒤, 아이의 입에도 조금 흘려 넣어 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 지 모르니까 마셔둬.”
아마 봄에 다다르면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샘 주변으로는 작은 들꽃이 잔뜩 피어있었다. 손버릇처럼 꽃을 꺾어 반지를 만들려던 청연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걸 만들어봤자 뭐에다 쓴다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를 안아 들려고 하자 그는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청연은 대신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번에도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청연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목을 타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켜 내기 어려웠다.
“…사과가 먹고 싶어?”
싱그러운 초록 과실이 열린 사과나무였다. 청연은 떨리는 손끝으로 예쁘게 생긴 열매 하나를 따서 아이에게 건넸다. 그가 사과를 깨물자 아삭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차마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들고 묵묵히 나아갈 뿐이었다.
이제 곧 봄이겠구나. 그러면 모든 게 끝이겠구나. 생각하며 걷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객잔이었다. 매콤한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그 객잔을, 청연은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가자는 듯이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객잔과 아이를 번갈아보던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몇 번이나 다짐했던 바였다.
때마침 더운 여름 바람이 불자 객잔의 열린 창문을 통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손을 뻗어 그걸 빠르게 낚아챈 청연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게 종이 한 장임을 알게 되었다.
빈 종이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엉망진창인 서체로 써 내려간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마지막에 적힌 이름 석 자만큼은 아주 정갈한 서체로 되어 있어, 자신의 것과 똑 닮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게 뭐라고….”
겨우 이 종이 한 장이 뭐라고 다리가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을까.
쓰게 웃음 짓던 청연은 결국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았다. 겨울에서 여름까지 걸어오며 켜켜이 쌓인 미련이 그를 무릎 꿇렸다. 그는 제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를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여느 때보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저… 더는, 더는 못 가겠어요.”
모든 기억이 거기에 있었다. 자신을 등에 업은 채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흰 옷자락이 있었고, 대문 앞에 서서 작별하며 건네받은 향유 병이 있었고, 지붕 위에 앉아 한입씩 베어 물던 청사과가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었다.
“가고 싶지 않아요….”
이 모든 걸 남겨 두고 봄을 향해 갈 수 없었다. 혼자서 평화롭게 눈 감을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