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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89)화 (90/145)

089화

“객주님!”

제하는 곧장 청연에게로 손을 뻗으며 몸을 던졌다. 청연 또한 그 손을 마주 잡으려는 듯 힘없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두 손끝은 결국 닿지 못했다. 솟아오른 강물에 청연이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제하를 바라보던 그의 입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벙긋거렸으나, 그걸 알아듣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제하는 망설임 없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거센 물길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듯 덮쳐왔지만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객주님!”

물살에 밀려 저 멀리 협곡을 향해서 떠내려가는 청연이 보였다. 그의 주위로 붉은 핏물이 번져 나왔다.

급하게 헤엄쳐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마치 강이 방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뒤로 밀려났고, 누군가 옷자락을 꼭 붙든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청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제하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예의나 호칭 따위는 집어던진 지 오래였다.

죽을힘을 다한 끝에, 드디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제하는 미친 듯이 헤엄쳐 청연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가 있는 쪽은 유속이 유난히도 빠른 듯했다. 아무리 따라가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를 않았다.

이윽고 떠내려가던 청연의 머리가 수면 위에서 사라졌다. 제하는 온 정신을 집중해 그의 기척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근방에 산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코끝을 맴돌던 피비린내 또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었다. 기척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내려갈 시간도 아니었다. 그가 정말로 숨을 거둔 게 아닌 이상…. 제하는 고개를 저으며 불길한 생각을 떨쳐 냈다.

시간이 지나자 거칠었던 물살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협곡에 도달한 제하는 물속으로 잠수해 청연을 찾아 헤맸다. 강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깊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끝이 없었다.

숨이 찰 때마다 수면 위로 올라가 공기를 들이마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어디에도 청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그를 찾아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달여 먹인 뒤 꼭 안아 주고 싶었다. 이제 모두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니 제발…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

몇 시진이 흐른 건지 모르겠다. 쨍쨍했던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간신히 뭍으로 기어 나온 제하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간 잠시도 쉬지 않고 정신없이 청연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몸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이었다. 지금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됐다. 이렇게 힘들어할 시간에 차라리 주변을 조금이라도 더 살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몸이 휘청거렸다. 마음을 가득 채운 불안감이 이제는 몸까지 지배하려고 했다. 제하는 정신을 차리려 자신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바위에 쩌적 금이 갔다.

그 소리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불에 타들어 가는 폐가에서 들었던, 벽이 갈라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날 밤만큼이나 괴롭고 두려운데, 저를 안고 집에 가자고 말해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가자…. 집에 가자.’

그렇게 말하던 청연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제하는 그 목소리에 약했다.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해 보아도 그때를 떠올리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자신을 안아 들고 걸어가는 그의 파리한 낯빛을 본 순간, 제하는 직감했다. 평생에 걸쳐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이다. 내가 강해져서 보호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은혜를 갚기는커녕, 이렇게 겁에 질려 떨기나 하다니.

어쩌면 그날 밤 객주님께서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불타는 집의 문짝을 맨손으로 뜯어내실 때, 이토록 간절하면서도 두려우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제하는 이성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물속이든 뭍이든 되는 대로 뒤져야 했다.

청연이 죽었을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을뿐더러, 그의 시신을 제 손으로 수습한다는 건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외면할 수밖에.

“대체 어디 계십니까….”

이미 삼협을 전부 뒤졌다. 구당협과 무협을 지나 서릉협을 막 벗어나던 참이었다. 많이 다치셨으니 강가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하는 강변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면서 근처 숲 속을 살펴보기도 하고, 물속에 무언가 떠다니는 걸 보기라도 하면 바로 뛰어들었다. 미친 듯이 강가를 헤집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위험한 사람으로 오해해 도망쳤을 것이다.

물에 젖은 옷이 말랐다가, 또다시 젖기를 반복했다. 옷을 말릴 여력 따위는 없었다. 제하는 허벅지까지 물에 담근 채 수면 위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가 떠내려오길래 확인해보았더니 고작 부서진 나무판자였다.

물 위에 나뭇잎이 동동 떠다녔다. 공허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던 제하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세 살의 가을, 제하는 강변에 앉아 스승님과 객주님의 평화로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두 분의 새로운 취미 덕분에 사천에 올 때면 종종 강가로 나들이를 나오게 되었다.

‘그것참 이상합니다. 저는 이렇게 고기가 잘 잡히는데 왜 대인께선 항상 감감무소식인지….’

청연은 잡은 물고기를 강물에 풀어 주며 고개를 갸웃했다.

‘바늘이라도 바꿔보시겠습니까? 여기 새 바늘이… 어라? 이게 왜 그대로 있지?’

그의 손에는 낚싯바늘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소명은 그걸 힐끗 보더니 앞에 있던 낚싯대를 들어 보였다. 그 낚싯대에는 줄만 대롱대롱 연결되어 있을 뿐, 바늘이 없었다.

‘아…. 애초에 잡을 생각이 없으셨나 봅니다. 저는 여태 그런 줄도 모르고.’

청연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미 여러 번 함께 낚시를 하러 나왔음에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사실 그건 제하도 마찬가지였다. 고기를 잡을 생각이 없으셨다면 왜 지금까지 바늘도 달지 않은 낚싯대를 놓고 기다리셨을까.

‘상념을 정리하기에 참으로 좋은 장소입니다.’

소명이 차분하게 말하자 청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멀뚱멀뚱 구경하던 제하는 왠지 심심해졌다. 객주님께서 제게도 저렇게 웃어 주셨으면 했다.

제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사방에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 가장 고운 잎을 고르고 또 골라, 손바닥 위에 소중히 올린 채 두 사람의 뒤로 다가갔다.

‘객주님!’

‘응?’

소리 내 부르자 스르르 뒤를 돌아보는 청연의 머리칼에서 싱그러운 꽃향기가 났다. 제하는 손에 든 단풍잎을 내밀어 보여 주며 물었다.

‘곱지 않습니까?’

‘그러게. 예쁘네.’

‘제가 잘 말려서 드리겠습니다. 풀을 발라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잎이 부스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객주님께서 고운 잎을 오래도록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청연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눈을 휘며 환하게 웃었다.

‘착하기도 하지.’

그 말 한마디와 눈길 한 번이라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가 저를 보고 웃어 주기만 한다면, 하늘 아래 고운 것들은 모두 모아 안겨드릴 수 있었다. 제가 품은 마음이 연정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그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왜….”

왜 내게 웃어 주지도 않으시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를 거기에 두고 먼저 난간을 넘어서는 안 됐다. 그의 곁에서 한 치라도 떨어져서는 안 됐다. 그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됐다.

차라리 처음부터 전부 죽여 버릴걸.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자책은 강물을 타고 떠내려온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제하는 눈을 벅벅 비볐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손을 뻗어 그 물건을 집어 든 제하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물이 사방으로 첨벙 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피로 얼룩진 청색 머리 끈이었다. 한참을 물 위에 떠다녔음에도 빠지지 않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제하는 손을 덜덜 떨며 머리 끈을 내려다보았다.

“집에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객주님이랑 같이.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제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객주님께서 돌아가셨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넓은 면적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뒤졌는데 기척 한 번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숨소리 한 번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살아 계셨다면 진작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제하는 더 이상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게 끝난 기분이었다. 이제 돌아갈 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시신… 시신이라도….”

시신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그 말을 내뱉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신을 바라볼 면목이 있을 리가.

그때, 주저앉은 채 절망하는 제하의 뒤로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왔다. 발소리를 숨기지 않은 터라 제하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건 청연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등 뒤에 멈춰 선 그 사람은 제하의 목에 도를 들이밀며 말했다.

“일어나.”

위협하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살기를 진하게 내뿜는 쪽은 저였다.

제하는 고개를 들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네놈을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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