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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70)화 (71/145)

070화

‘끝까지 발뺌할 셈이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세화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하며 애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고, 양쪽에서 거칠게 팔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억지로 일으켜졌다.

단전이 파괴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몇 번이고 정신을 잃었다가 또다시 고통으로 인해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다급하게 달려온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화야.’

그 사람의 손이 얼굴과 어깨를 더듬거리며 어루만졌다.

‘세화야.’

반복되는 부름에 답하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이 시간을 감내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아무리 해명하고 알고 있는 사실들을 줄줄이 내뱉어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사문을 모욕하려 한다는 죄만 더해졌다.

그들이 묻는 말에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해 단전이 부서졌다. 아마 다음에는 경맥이 끊기고, 그다음에는 혈도가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목이 잘리겠지.

‘더는 안 됩니다. 제발… 제발 결백을 밝힐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밝혀낼 터이니….’

앞을 가로막고 무릎 꿇은 채 간절히 읍소하는 여운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그를 엄하게 타이르는 스승과 장문인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그래, 저분들은 항상 사형의 말에 약했지. 곤륜의 미래이자 빛이고, 나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귀한 제자.

자조하던 세화의 정신이 다시 아득해졌다. 누군가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

청연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두통이 심해 차마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양의 기억이 한꺼번에 돌아와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세화일 때의 기억과 신우일 때의 기억이 한군데 뒤섞여 한 개의 자아를 만들었다.

이곳이 소설 속 세계임을 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원작 소설을 읽은 자신과 그 이야기에 등장한 세화가 동일 인물이라는 착각이 뇌를 지배했다.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침상을 더듬어 보았다. 밤새 곁을 지켜 주었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꿈을 꾼 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가버렸나.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아파?”

의자에서 일어난 여운이 성큼성큼 걸어와 침상에 걸터앉았다. 청연은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마 옆 혈 자리를 꾹꾹 눌러주는 손길이 만족스러웠다.

“좀 낫다….”

“약 지어오라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아.”

“넌 여태 뭐 했어…? 잠은 좀 잤어?”

여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청연은 그의 얼굴에 담겨 있는 수만 가지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

“미안해.”

그때 그렇게 떠나버려서. 뒷말은 삼켰지만 여운은 이해한다는 듯 다시 고개를 저으며 청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무사하면 됐어.”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면 좋을까. 청연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시선을 내리깐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여운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참이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을 아꼈다.

“시랑.”

망설이던 청연은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질문을 건넸다.

“날 찾았어?”

내가 떠난 이후로 어떻게 지냈느냐고. 혹시 나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느냐고.

말없이 청연의 눈을 들여다보던 여운은 어깨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에서 그간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찾고 싶었어. 그런데….”

“…….”

“네 서신….”

여운의 떨리는 손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제는 너무 낡아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종이 한 장이었다.

“…그 서신을 여태 지니고 다녔어?”

“그렇게 떠났는데…. 내가 널 찾으면 네가 더 힘들어질까 봐.”

청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말하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서신을 읽고 또 읽다가 결국엔 접었을 그 마음이.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니 누구보다 더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찾고 싶고 만지고 싶어도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것이다. 그저 무사하길,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기만을 바라면서.

“그래서 돌아갔구나.”

청연은 잘 됐다 말하며 그를 토닥여 주었다. 그가 사문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그곳을 그리워했을 만큼.

게다가 스승에게 덤볐다는 죄책감도 컸을 것이고, 돌아가서 제 누명을 벗겨 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곤륜에서 파문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고 해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불러일으킨 오해였고 악인은 따로 있었다.

“내가 문파에 남아 있으면 더 이상 널 쫓지 않겠다고 약조하셨어. 그래서….”

“알아. 다 이해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옳은 결정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검과 수련을 모두 내던지고 산속에서 은거하느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백배 나았다.

“나는… 객잔 주인이 됐어. 사천에서. 어이없지?”

청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여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들었어.”

“응? 어디서?”

“같이 온 그 공자한테.”

“아….”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없어 여운을 제외한 모든 걸 잊고 있었던 청연은 그제야 제가 왜 이곳에 와있었는지 기억해 냈다.

“비무대회 보러 왔다며.”

“아, 그게….”

그동안 기억을 잃었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기에 청연은 대충 둘러댔다.

“크게 신세 진 은인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 제자가 이번 비무대회에 나가게 됐거든. 밖에서 얼굴이나 슬쩍 보고 가려고 했는데 너한테 들켰네….”

“은인?”

“응. 의원이신데 그분 덕분에 예전보다 많이 건강해졌어.”

그 말에 여운은 청연의 소매를 걷어 맥을 짚어보며 말했다.

“그러면 이따가 같이 가자. 대회는 오후에 다시 시작하니까 그전에 잠깐 다녀오면….”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또 저를 아는 누군가와 마주칠까 두려워진 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여운과 함께라도 여기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제하에게는 나중에 따로 축하와 사과를 전해야 할 듯싶었다.

가만히 맥을 짚던 여운은 다시 소매를 내려 준 뒤 입을 열었다.

“세화야.”

“응?”

“나 이제 서신 버리고 싶어.”

“어?”

여운은 낡아버린 종잇장을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서신은 그만 볼래.”

“…….”

“옆에 있게 해 줘.”

청연은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으나, 또다시 저 때문에 그가 피해를 본다면 그때는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대답을 고민하는 사이, 여운은 청연의 몸을 가볍게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았다. 허리를 안은 두 팔과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청연은 떨리는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시선을 피했다.

“곤륜을 떠나겠다는 거 아니야. 너한테 부담주지 않을게.”

“…그럼?”

“내가 찾아갈 때 피하지만 말아 줘.”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여운은 천천히 다가와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그다음에는 눈 위, 그다음에는 코끝에 입술을 살살 누르며 내려오던 그는 청연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의 얼굴에 주저함이 스쳤다.

“해도 돼?”

접문을 한 지 너무 오래돼서일까, 그는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해 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청연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사백, 저 왔습니다.”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청연은 급히 여운을 밀어내고 무릎 위에서 후다닥 내려와 앉았다. 옆에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일전에 식당에서 보았던 곤륜파의 제자가 들어왔다. 손에는 약첩과 찬합을 든 채였다.

“시키신 대로 다 사 왔는데 이게 맞는지… 어, 손님이 계셨네요?”

그는 청연을 향해 간단히 예를 올린 뒤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어쩐지 화식을 꺼리시던 분께서 이런 요리를 사 오라고 하셔서 이상했습니다. 손님이 계신 줄 알았다면 더 넉넉하게 사 왔을 텐데요. 아무튼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문이 도로 닫히고, 청연은 여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네가 사백 소리를 다 듣고. 삼대 제자한테 심부름도 시키고.”

“처음 부탁한 거야.”

“누구 제잔데?”

“여현.”

“아…. 너는? 너는 제자 안 받아?”

여운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로 향했다. 그가 찬합을 열자 음식 냄새가 방 안에 가득 풍겼다. 청연도 그의 뒤를 따랐다.

“어제 식당에서 들어보니까 애들이 널 많이 따르는 것 같던데.”

“…내가 가르치니까.”

“어?”

“밥부터 먹어.”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여운의 얼굴을 바라보던 청연은 시선을 내려 그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너 도복은 왜 안 입었어?”

“그냥….”

“똑바로 말해.”

시선을 피하는 그의 모습이 심히 거슬렸다. 청연은 그에게 따져 물었다.

“안 입는 거야, 못 입는 거야?”

“세화야.”

“…설마 제자도 못 받는 거야?”

“…….”

순식간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청연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여운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깨달음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너는 혼자서 벌을 받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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