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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63)화 (64/145)

063화

그 이후 세화는 표국을 찾아가지 않았다. 외출할 때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길거리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거나, 산 위에 올라 한적하게 풍경을 내려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여운에 대해서는 자연히 잊었고, 그를 향한 앙금도 전혀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정화 누님이 원하던 대로 착실히 주방 일을 돕기 시작했다. 부모도 가진 것도 없는 처지에 이런 곳에 빌붙어 있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누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뿌리를 내려 볼 작정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가끔 손님들이 행패를 부릴 때면 주방에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낭인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무래도 이 세상엔 제가 주먹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밖에 없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렇게 세화의 태도가 점점 변하자 기루 식구들도 다들 기뻐하는 눈치였다. 보화 누님께서는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빌려 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고, 정화 누님께서는 일을 마치면 언제든 밖에 나가 놀아도 된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오늘도 주방 일을 마친 뒤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세화는 자연스럽게 늘 가던 곳으로 향했다. 이야기꾼 주변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 사술을 걸면 죽은 사람이 깨어나기도 하고, 산 사람을 반 죽은 상태로 만들기도 하는데….”

오늘도 강시 이야기인가. 세화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앉아 쩍 하고 하품했다.

“얼굴은 창백해져서 시퍼렇게 핏줄이 돋고, 이는 뾰족하게 돋아나서 사람들을 물어뜯는다오. 걸음걸이도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양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두 다리를 모아서 쿵, 쿵.”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사특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들 인생이 따분해서 그런 걸까. 세화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저 시간을 보내러 나온 것뿐이니 재미없는 이야기는 들으나 마나였다.

그때, 세화는 뒤통수에 꽂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휙 돌린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바쁘게 지나다니는 행인들만 있을 뿐, 제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흰 옷자락을 본 것 같기는 했지만….

세화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그 애가 인제 와서 제게 관심을 보이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감시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어떤 강시에 물리면 사술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강시로 변한다고 하오. 그렇게 해서 점차 역병처럼 퍼져 나가는 거요.”

“그럼 강시가 된 사람은 다시는 못 살아나는 건가요?”

“못 살아나오. 한 번 강시가 되면 그걸 되돌릴 방법이 없소. 힘도 장사처럼 세져서 이들을 상대하려면 단칼에 목을 베어 머리를 잘라 버리거나 불에 태워 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오.”

관중과 이야기꾼의 문답까지 듣던 세화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지루해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차라리 맛있는 요리나 사 먹는 게 더 생산적이겠다. 아니면… 저를 지켜보던 게 진짜 그 애가 맞는지 확인해 보거나.

그가 관심을 보이든 말든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세화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흰 옷자락을 찾아다녔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제가 쫓아다니지 않는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하는.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세화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착각했나 보다. 하긴, 이 거리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몇 명인데 겨우 옷 색깔 하나 가지고 그 애라고 짐작한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멍청했다.

“됐다, 됐어. 알아서 뭐 하냐.”

세화는 중얼거리며 뒷산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붉게 물든 석양을 보러 가는 세화만의 장소가 있었다. 비교적 고도가 높지 않은 뒷산 중턱 부근에 위치한 절벽이었다. 거기 누워서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세상만사가 모두 하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산을 오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른 잎들이 발밑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렇게 반 시진도 안 돼서 절벽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세화는 마른 풀밭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겨울인지라 땅에 맞닿은 등이 차가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해가 부쩍 짧아진 탓에 이미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자꾸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고 울적해졌다.

부모와 함께한 몇 안 되는 추억이었다. 뒷산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던 거. 그들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하늘의 색감만큼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아들 혼자 남겨 놓고 저세상으로 가신 두 분은 평안하실까. 지금 제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워하실까, 아니면 부끄러워하실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 중인 건 알아주시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세화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붉은 하늘의 잔상이 어른거렸다. 마치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던 부모의 온기처럼.

그렇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온몸에 스며드는 한기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세화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물어 산속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지금이 대체 몇 시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아, 큰일 났다. 또 누님들한테 혼나겠네.’

오늘 일은 절대 기밀이다. 깊은 산속에서 한밤중까지 잠들어 있었다는 걸 누님들이 아시는 날에는 또 한동안 외출을 금지당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도박장에 가서 구경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핑계 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세화는 부랴부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 정신을 놓고 잠들기까지 한 건지. 아직 자시가 넘지 않았기만을 바랐다.

그가 빠르게 하산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온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건 분명 늑대 울음소리였다. 동료를 불러 모으는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세화는 잠시 얼어붙었던 다리를 움직여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품에 손을 넣어 지니고 다니던 날카로운 단검을 꺼냈다. 혹시라도 늑대를 마주친다면 이걸 써야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늑대는 대부분 무리 지어 다니기 때문에 겨우 단검 하나를 가지고 혼자서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그러니 그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하산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산에 오를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늑대 밥 따위가 되는 최악의 결말은 맞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이 세화의 귓가에 들려왔다.

“살려 주세요!”

“…뭐야?”

“살려 주세요!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애원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세화는 뜀박질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유심히 살폈다. 여태 열심히 달려 내려온 산 윗길이었다.

어렴풋이 누군가의 손이 보인 것 같았다. 다만 그 손은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니 손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몸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거꾸로 뒤집어진 얼굴이 세화를 향해 애타게 외치고 있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덫에 걸렸어요.”

“저 바보는 또 뭐냐고….”

세화는 혀를 쯧쯧 차며 남자를 한심하게 바라보았지만 한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내려오던 길을 다시 뛰어 올라갔다. 밤새 저렇게 매달려 있다가는 늑대 밥이 될 게 뻔했으니까.

“여기 사람 좀 살려… 어, 어린애네?”

“살고 싶으면 그 입 좀 다물어요. 도와주러 왔으니까.”

그러자 남자는 고분고분 입을 다물고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왔다. 얼마나 오래 매달려 있었는지 얼굴에 피가 몰려 퉁퉁 부은 게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단검을 던져 끊기에는 밧줄이 매달린 위치가 높았고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해서 세화는 커다란 나무 기둥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단검을 기둥에 푹푹 박아 몸을 지탱하며 오르던 그는 단숨에 남자가 매달린 가지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가지 위에 앉아 중심을 잡은 뒤 조심조심 끈이 매달려 있는 끄트머리까지 기었다.

“고, 고맙다, 얘야. 정말 고마워. 늘 다니던 길이라 덫에 걸릴 줄은 몰랐는데 네 덕분에 살았다.”

“좀 조용히 하라니까요!”

목소리를 작게 낮춘 세화가 그에게 화를 내려던 때였다. 다시 한번 길게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두 사람은 짠 듯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끈의 매듭을 풀어 남자를 먼저 아래로 내려 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주변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둠 속에서 몇 쌍의 눈이 저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마치 먹이를 던져 주길 기다리는 개들의 몸짓처럼.

‘큰일 났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동태를 살폈다. 이건 겨우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여섯? 아니, 일곱?

매달려 있던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세화를 향해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절대로 자신을 바닥에 내려 주지 말라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 나무 위에서 버티는 수밖에. 세화는 그가 매달린 밧줄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힘을 다해 끌어 올렸다.

그러나 밧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린 성인 남자를 끌어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앉아 있는 가지는 그렇게 굵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중심을 잃고 떨어질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애를 쓰며 그를 가지 위로 올려놓으려 했지만 애꿎은 손바닥만 까져 피가 흘렀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조금씩 흥분하는 기색이 느껴져 마음이 조급해졌다. 손을 뻗어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팔을 붙잡아 보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시간 그를 매달아 놓았던 밧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어지고 있었다. 세화는 최대한 밧줄을 건드리지 않으려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지만 가지가 자꾸만 휘청거려 균형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 이러다 정말….”

잔뜩 겁을 먹은 남자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화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목숨은 함부로 포기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점점 늘어지던 밧줄이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소리를 내며 끊어지고 말았다. 남자의 몸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였다.

그와 동시에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짐승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생각 따위는 할 틈도 없었다. 단검을 단단하게 고쳐 잡은 세화는 크게 심호흡한 뒤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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