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연은 커다래진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입술로 전해져 오는 숨결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난폭하게 밀고 들어와 입 안을 헤집어 놓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청연은 안간힘을 다해 도리질 쳤다. 제 턱과 허리를 단단하게 잡은 손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피부가 델 것만 같았다. 지금 무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결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제정신이 아니기에 더더욱 이러면 안 됐다.
축축한 살덩이가 미끄러지듯 치열을 훑고는 혀에 얽혀 왔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끈질기게 엉겨 붙어 문지르는 탓에 입 속이 빠듯하게 들어찼다.
제발 그만하라고, 놓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두 입술이 빈틈없이 맞붙은 탓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갈 곳을 잃은 청연의 두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대다가 무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있는 힘껏 밀어 보아도 꿈쩍하지 않는 그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저항하자 맞닿은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내렸다. 무호는 그마저도 아깝다는 듯 혀를 내어 청연의 턱을 핥아 올렸다. 질척이는 소리가 더해지자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몸짓에 혼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점점 거칠어지는 무호의 숨소리가 청연의 머릿속에 경보음을 울렸다. 위험하다고. 이러다 정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
무호가 이성을 되찾길 바라며, 청연은 이를 세워 그의 혀를 거세게 물었다. 그리고 그가 주춤한 틈을 타 급하게 입술을 떼어 냈다.
한참 동안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이자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청연은 헐떡거리며 젖은 입술을 소매로 훔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반면에 무호는 그 자리에 멀쩡히 선 채 청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짙은 눈매가 매서웠고 번들거리는 입술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제발 정신 차려, 이 미친놈아….”
청연의 입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여전히 제 허리를 붙들고 있는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몸을 뒤틀었다.
그때,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에 청연은 숨을 헉 들이쉬었다. 땅에서 떨어진 두 발이 갈 곳을 잃고 허공 위로 달랑거렸다. 무호의 손에 가볍게 들어 올려진 몸은 그대로 몇 걸음 옮겨져 침상 위에 풀썩 내려앉았다.
“지, 지금 뭐 하는… 야! 잠깐만!”
순식간에 제 몸을 덮쳐 오는 커다란 그림자를 본 청연은 기겁하여 외쳤다. 바르작거리며 그에게서 도망치려 해 봐도 때는 이미 늦었다. 청연의 몸 위에 올라타 꼼짝할 수 없게끔 사지를 압박한 그는 고개를 숙여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다만 이번에는 그 행위가 더 폭력적이었다. 조금 전 혀를 깨문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려는 작정인지, 날카로운 이가 청연의 아랫입술을 집요하게 깨물어 댔다. 입술이 터질 듯한 통증에 청연은 제압당한 팔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 이 새끼야, 그만하라고!”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청연은 그에게 입술을 물린 채 부정확한 발음으로 상스러운 욕설을 줄줄이 내뱉었다. 어쩌다 정신 나간 놈한테 잘못 걸려서 이 지경까지 몰린 건지 비참한 심경이었다.
쌍시옷 발음을 비롯한 된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하자 입술을 물고 핥아 대던 무호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어 청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 마. 이제 그만해.”
쌍욕에 반응하는 걸 보니 세게 나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청연은 단호하게 내뱉었다.
“계속 이러면 다시는 너 안 봐.”
“…안 봐?”
“안 봐.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섞을 거야. 이렇게 상대방 의사 무시하고 힘으로만 짓누르는 건 진짜 못돼 처먹은 거야. 너랑은 이제 모르는 사이… 아흑, 미친놈아!”
목에서 느껴진 날카로운 통증에 청연의 몸이 절로 튀어 올랐다. 어느새 다시 고개를 숙여 그의 목을 콰득 물어 버린 무호가 살벌한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안 봐?”
“안 본다고. 너처럼 강압적인 사람 진짜 싫어. 앞으로 절대… 아, 아파! 아프다고! 그만!”
입술에 이어서 이제는 목이었다. 그가 힘을 주어 깨물 때마다 흰 살결 위로 붉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면서도 열이 오르는지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앞섶을 거칠게 풀어 헤쳤다. 벌어진 상의 사이로 드러난 가슴과 선명한 복근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그가 자꾸만 몸을 밀착해 오는 탓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본능적으로 서늘한 곳을 찾는 듯, 체온이 낮은 청연의 몸에 뜨거운 살갗을 마찰하던 그는 점차 입술을 내려 쇄골로 내려갔다. 무력하게 목을 내어 주었던 청연은 덜컥 겁이 나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파…. 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내 거야.”
“흐으, 제발 그만….”
“아무 데도 못 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이 무호의 잇새로 새어 나왔다. 세게 나가기로 한 작전은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그를 더 자극한 꼴이었다. 청연은 그의 아래에서 발버둥 치며 빠져나가려고 애썼다. 그 난리 통에 깔끔히 정리해 놓았던 이불과 베개가 침상 밖으로 밀려 떨어져 나갔다.
갖은 노력에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전략을 수정하기로 했다. 무호를 달래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거야.”
청연은 자신의 쇄골 부근에 얼굴을 묻은 채 같은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무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으응…. 네 거야.”
“아무 데도 못 가.”
“알아. 아무 데도 안 가. 난 네 거야.”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입질을 멈췄다. 여태 신나게 물어뜯은 잇자국 위로 쪽쪽 입을 맞추며 만족한 듯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기까지 했다.
이 한마디면 되는 거였다니. 완전히 지쳐 버린 청연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너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나도.”
“그런 의미로 미치겠다는 게 아니잖아.”
“응.”
“응은 무슨 응이야. 이 개새, 아니, 무호야. 얼굴 들어 나 봐 봐.”
고분고분 얼굴을 들어 올린 그의 눈은 이미 붉은 기가 많이 사그라들어 원래의 빛깔을 되찾은 후였다.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체온도 어느 정도 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청연은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손목도 좀 놔 줄래?”
“안 돼.”
“나는 어차피 네 거잖아, 응? 놔 주라.”
“…….”
무호의 손이 스르르 풀리자 청연은 저린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의 뺨을 한 대 치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또 자극했다가 어딜 물리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된 거야?’
폭주라고 하기에는 말이 잘 통했고 쉽게 온순해졌다. 게다가 마교주의 자리에 올랐다면 다른 고수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광증이라도 있는 건가.
“의원은 만나 본 적 있어? 여기도 의원이 있을 거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아, 얘 또 시작이네. 그만! 접문 그마안!”
다시금 입을 맞춰 오는 무호에게 반항하던 청연은 이내 포기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그래도 물리는 것보단 접문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무호는 눈을 감은 채 깨질 듯한 머리를 짚었다. 혈마가 다녀간 뒤 술에 취해 잠든 청연을 챙기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
가끔 감정이 널을 뛰며 피가 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고,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원로들이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혈마의 경고를 되뇌던 무호는 착잡한 얼굴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누워 있는 곳은 제 방의 침상이었다.
‘청연은?’
청연이 자신의 방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침상을 등진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청연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당장 그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제야 눈에 들어온 주변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침상 근처에는 이불과 베개가 떨어져 널브러져 있었고, 청연이 앉아 있는 탁자 밑에는 술 단지가 깨져 파편이 나뒹굴었다. 산산조각이 난 문짝과 바닥에 놓인 대도까지 발견했을 땐 피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제 모습까지 엉망이었다. 입고 있던 검은 장포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앞섶이 풀어 헤쳐져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마….’
안 돼. 절대 안 돼.
무호는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연에게로 향하는 짧은 길이 마치 구억 만 리처럼 느껴졌다. 제가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질 텐데 돌아보지도 않는 그의 모습에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조여 왔다.
마침내 그의 얼굴을 확인한 무호는 얼어붙었다.
청연의 두 뺨은 몇 대 얻어맞은 것처럼 새빨갰고 입술이 터져 피가 맺혀 있었다. 게다가 목에는 자신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잇자국과 울혈이 가득해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그는 곁눈질로 무호를 힐끗 바라보더니 아예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한 텅 빈 눈빛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호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맞추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오히려 그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조금 더 틀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목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처참한 상태였다.
목숨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결코 강제로 안으려던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상상은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소중한 이를 그런 식으로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잃은 사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심지어 입술이 터질 정도로 때렸다니. 누구 말대로 자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청연.”
무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를 봐 주지 않는 시선에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나 좀 봐.”
그의 얼굴을 향해 조심스레 뻗던 손이 얼마 못 가 툭 떨어져 내렸다.
한편, 청연은 지금 이 상황이 민망해서 죽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좀 전까지 입술을 비비던 사람이 저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저를 불러 대니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제발 저리 가, 이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