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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5)화 (6/145)

005화

제하가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건 까만 어둠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겁을 집어먹은 아이는 몸부림쳤다. 입에는 무언가가 물려 있어 비명도 나오지 않았고, 양쪽 손목이 뒤로 포박되어 꼼짝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눈을 미친 듯이 깜빡이던 제하는 이내 자신의 눈가에 검은 천이 둘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시야를 가리고, 입을 막고, 손목까지 묶은 거다.

제하는 포박되지 않은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중심이 잡히지 않아 앞으로 고꾸라졌다.

“흐읍… 읍….”

버둥거리던 다리에 무언가가 차였다. 묶여 있는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보았다. 나무 재질의 딱딱한 바닥을 더듬거리던 작은 손에 차갑고 물컹한 물체가 닿아 왔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손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속이 메슥거렸다. 제하는 놀라 손을 거두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차단된 감각은 두려운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무서웠다. 누가 제게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여긴 대체 어디인지. 주변을 둘러싼 저 차가운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되는 건지. 밀려드는 두려움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속이 타들어 가는 듯 아팠다. 온몸의 피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기 전 흑의를 입은 남자들이 입 속에 무언가를 밀어 넣어 삼키게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었다.

모든 게 두려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코를 찌르는 익숙한 냄새였다.

단 한 번 맡아 보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냄새. 부모를 잃었던 그날 밤, 온 집 안에서 풍기던 피비린내였다.

그 잔혹한 냄새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눈앞에 펼쳐 놓았다.

집 안을 집어삼킬 듯했던 화염과 이리저리 날뛰던 사람들. 그 와중에 차분한 목소리로 저를 달래던 사람의 손길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했다.

‘아가, 동틀 때까지 이 안에 얌전히 있는 거야. 알았지? 절대 나오면 안 돼.’

궤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친의 얼굴이었다. 동이 트고 밖으로 나갔을 때 모친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우욱….”

헛구역질이 나왔다. 차라리 코를 막아 숨도 쉬지 못했으면 했다.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제하는 작은 몸을 웅크리며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려 애썼다.

부모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던 날.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던 날. 고운 비단옷을 맞춰 입었던 날.

가장 배고프고 힘들었을 때 만난 스승님. 거리를 떠돌던 제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셨는데. 무공을 처음 배우던 날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매일 혼나고 서러웠어도, 제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무심한 말 한마디 끝에 전해져 오는 눈빛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음을.

그리고 떠오르는 또 한 사람.

저를 안아 주던 넓은 품과 이름을 불러 주던 다정한 목소리를 생각하니 나오지 않던 눈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손길은 오래전 부모의 것만큼이나 애틋하고 부드러웠다.

그토록 차가운 손도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아이는 처음 알게 되었다.

눈에 두른 천이 축축하게 젖어 갈 때쯤, 들려온 발소리에 호흡을 멈추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 명이었다. 분명 저를 이리로 데려온 그 두 사람이다.

“오, 깨어났네?”

“내가 말했지. 신의의 제자는 뭔가 달라도 다를 거라니까.”

“그러게. 다른 놈들은 일각도 못 버티고 피를 토했는데.”

그제야 제하는 코를 찌르던 피비린내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부터 주춤주춤 몸을 물렸다. 두 남자는 그러든지 말든지, 대화를 나누기에 바빴다.

“이번에는 좀 오래 버텨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소교주님께서 또 노발대발하실 거라고.”

“그분이 화나면 그렇게 무섭다며?”

“말도 마. 장로들도 쩔쩔매는 걸 자네가 봤어야 했는데. 지난번에도 십칠에 대적할 만한 놈을 찾아오라고 얼마나 난리였는지.”

“그분은 왜 그렇게 십칠한테 집착하시는 거야?”

“몰라. 높으신 분들 의중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이천삼십오가 죽어 나갔을 때 내 목도 잘릴 뻔한 걸 생각하면… 어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럼 쟤가 몇 번이지? 이천팔백육십일?”

“음…. 아마도 그럴걸?”

“아무튼 이번에는 오래 버티겠지. 그 윤소명이 직접 고른 제자라는데 평범한 놈이겠어?”

스승님의 이름까지 거론되었지만, 제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커다란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시간 됐다. 하나 더 먹이자. 이번에도 견뎌 내면 데려가는 거야.”

“내가 할게.”

한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제하는 필사적으로 몸을 물렸으나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착하지, 꼬마야.”

남자는 제하의 턱을 붙들고 입을 막고 있던 천 뭉치를 거칠게 끄집어냈다. 그러기 무섭게 제하는 입을 다물고 이를 악물었다.

“입 벌리고. 하나만 더 먹자.”

뭉툭한 손가락이 꾹 다문 아이의 입술 사이를 억지로 파고들어 벌려 냈다. 남자의 악력을 버텨 내지 못한 제하는 결국 이를 세워 그 역겨운 손가락을 까득 물었다.

“악!”

“뭐야? 왜 그래?”

“이 쥐새끼 같은 게 날 물었어!”

“푸하, 이제 애들한테도 당하나?”

“이… 이 새끼가….”

남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제하는 눈을 감았다. 정말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스승님도, 객주님도….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아직 은공도 갚지 못하였는데.

제하가 마음을 졸이던 그때, 벽 너머로 어렴풋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서구? 갑자기 무슨 일이지?”

“가서 확인하고 와. 나는 이놈이랑 얘기 좀 해야겠으니까.”

“화 좀 가라앉혀. 괜히 흠집 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울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꼬맹아.”

저를 부르는 위협적인 목소리에 제하는 무릎을 세웠다. 그가 더 다가오면 발로 차 버리기라도 할 요량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죽기에는 억울했다.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앞으로 어떤 꼴을 당할 줄 알고.”

“…….”

“흠집 내지 말랬으니까 봐준다.”

제하는 불안에 떨며 입술을 짓씹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네가 우리 따라서 가게 되면 앞으로 어떤 놈들을 상대하게 될 줄 알아?”

“…….”

“눈깔이 반쯤 돌아 버린 놈들이야. 특히 십칠이라는 놈이 있는데….”

“이봐!”

그때, 밖으로 나갔던 남자가 소리치며 뛰어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충격을 받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소환령이야.”

“소환령이라니? 갑자기 왜?”

“소교주님이… 소교주님이 당했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소교주님이 당하다니.”

“나도 몰라. 아무튼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해.”

“이런 미친…. 그럼… 그럼 애는?”

“지금 애가 문제야? 소교주님도 없는데 애가 무슨 소용이야.”

“그럼 저 시신들은? 처리는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그건….”

이어진 남자의 대답에, 제하는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

청연은 텅 빈 골목에 멈춰 서 숨을 골랐다. 한참을 뛰어다닌 탓에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빨리 찾아야….

조급한 마음과 다르게 다리는 자꾸만 풀렸고 눈앞은 빙빙 돌았다. 허약한 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원작에 따르면 제하는 객잔 근처에 위치한 어느 폐가에 갇혀 있을 것이다. 남자 두 명이 지키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폐가. 그걸 찾기 위해 그는 민가를 헤집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두컴컴한 거리를 헤매다 보니 이전에 이미 왔던 곳인지 분간되지도 않았다.

소명이었다면 제하의 기척을 귀신같이 잡아냈을 텐데. 그런 능력 따위 없는 청연은 마구잡이로 거리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찾아 두기라도 할걸.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버린 전개에, 안일했던 지난 행동을 후회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시체 더미 사이에 갇혀 포박되어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얼마나 무서울까. 울고 있을까. 아니면 사내는 우는 게 아니라며 눈물을 참고 있을까.

‘그 어린애가 혼자 잡혀갔으니 많이 두렵고 힘들 텐데…. 그러니까 나라도 힘을 내서 얼른 찾아야 해.’

청연은 다시 힘을 내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이미 기력이 바닥났음을 느꼈지만, 제가 잘못한 일이니 책임도 져야 마땅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원작과는 달리 의미 없는 싸움에 끼어든 거? 소명에게 진맥을 받은 거? 제하에게 친한 척했던 거?

어떻게 됐든, 가장 후회되는 건 납치를 막지 않은 것이었다. 분명 경고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소설 속 인물들이라 여겼나 보다. 그들도 이 세계에선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고, 눈물도 흘리는 인간이었음을 간과한 거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련으로 치부하면서 아이에게 닥친 위험을 외면했다. 저는 무늬만 어른이었던 거다.

청연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힘을 내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 와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울고 있을 제하의 얼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고 있을, 앞으로 더한 고통을 받을지 모르는 아이의 얼굴이.

청연은 살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새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밝아 오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청연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떨리는 입술 사이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흐른 게 아니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힌 건 태양이 아닌 거대한 화염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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