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이틀이 흘렀다. 박승혁은 평소의 강건한 그로 돌아왔으며, 정력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서류를 처리하고, 영업소에 나가 매출을 체크하고, 그의 영업소에서 상납받은 높으신 분들을 확인했으며, 그중 한두 명은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눴다.
겉모습만 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재밌는 것을 앞두고 약간 신이 난 것으로도 보여, 높으신 분들에게 ‘뭐 새로 준비하고 계신 것 있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명준은 늘 그렇듯이 매끈하고 무던한 얼굴로 그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두 사람 사이에 이지훈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이틀하고도 반나절이 더 흘렀다. 다시 재갈을 물린지 사흘째가 된 날, 점심 식사 이후 잠깐 자리를 비우고 나타난 명준이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늘 아침이나 저녁때나 움직이던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박승혁은 흘긋거리기만 하고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명준은 조용히 그에게 목례를 하고 그가 앉아있는 사무실 책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별실로 통하는 문이 있는 곳이었다. 열쇠를 꺼내는 동안 침묵이 유지됐다.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으려는 때였다.
“······이틀이라고 했는데.”
명준이 행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박승혁은 여전히 서류를 보고 있었다.
“하루 더 지났다.”
명준의 몸이 그를 향해 돌려졌다.
“예정일이 밀려 어젯밤 새벽에 부검이 끝났다고 합니다. 빈소는 오늘 밤부터 마련될 예정이고요.”
“발인은.”
“모레 아침입니다.”
“부검 결과는.”
“타살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별다른 특이사항도요.”
“······”
“······워낙 강하게 거부하셔서 하루 가지고는 소용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틀은 굶어야 다른 반응을 보이실 거 같아서. 빈소도 오늘 밤부터 마련되고요.”
입술을 훑으며 듣기만 하던 박승혁은 눈썹을 으쓱거리며 손짓했다. 알겠으니 들어가라는 뜻이다. 왠지 명을 어기고 보스 애인을 하루 더 굶겨버린 것 같은 느낌에 구구절절 설명해버렸다.
명준이 어색하게 열쇠를 구멍에 넣어 돌렸다. 문이 열리고, 닫힌 후에야 박승혁이 그 문을 쳐다봤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 * *
별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등을 돌리고 모로 누운 형체가 보였다. 이제 지훈이 불쌍해 말해준다는 식으로 연기하며 부검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형님도 참, 이런 연기를 시키시다니. 하지만 불쌍한 척하는 건 쉬울 것 같다. 저 뒷모습만으로도 불쌍해 보이니까.
감금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이젠 눈에 띄게 마르고 수척해졌다. 식사를 거부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얼굴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등에서 삶의 의지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경위님.”
“······”
“식사 들고 왔습니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
“오늘도 안 드십니까?”
어제 아침엔 좆 까, 저녁엔 꺼져, 라고 말했는데 오늘은 아무 대답도 안 한다. 불안함이 올라와 다가갔다. 침대를 돌아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눈을 반쯤 뜬 모습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비록 희미했지만.
“오늘은 좀 드시죠.”
“······”
계속 굶기면 배가 고파서라도 먹을 줄 알았는데. 이래서는 물만 입안에 부어줘야겠다. 어깨를 잡고 힘을 줘 일으켰다. 지훈의 몸이 손짓에 따라 딸려 올라갔다. 가까이서 보니 이틀 전부터 삶을 놓아버린 인형처럼 멍한 눈에 생기라곤 없었다. 처연한 얼굴과 맞물려 처음 보는 사람도 안타까운 심정이 들게 할 정도였다.
재갈 물린 입에 물을 부으려면 얼굴을 들어야 한다. 손끝으로 턱을 잡고 위로 올렸다.
“으응.”
지훈이 낸 소리에 물통을 쥔 손을 멈췄다. 어깨를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다 재갈을 풀어줬다. 어제 부하들이 미행 보고로 보낸 여동생 사진도 보여줬으니, 허튼짓이야 하겠는가.
재갈을 빼 자유로워진 입을 뻐끔대던 지훈이 소리를 냈다.
“······배······”
“네?”
“담배 피우고 싶어······”
명준은 양복 재킷 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냈다. 아직 빈소 얘기는 꺼내지 않았어도, 자살하는 거랑 내보내 달라는 거 빼곤 다 들어달라고 했으니 담배 정도야 당연히 괜찮을 것이다. 수갑 찬 손 대신 입에 물려주며 그동안 용케도 담배 달라는 얘기를 안 했구나, 싶었다.
담배 끝에 불을 붙여줬다. 지훈이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희뿌연 연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담배가 반으로 줄어드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음미하듯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그게 너무 편안해 보여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마치 삶을 놓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자처럼 보였다. 서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툭 뱉었다.
“그거 피우고 뭐 하실 겁니까?”
감겨 있던 눈이 떠졌다. 지훈은 눈동자만 위로 올려 명준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수갑 찬 손을 들어 담배를 빼냈다. 명준이 비닐봉지 속 종이컵을 꺼내어 앞에 갖다 댔다. 톡, 소리와 함께 가는 회색 재가 종이컵 안으로 떨어졌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이냐?”
“······”
“너나 박승혁이나······ 김준영이나 다 똑같은 새끼······ 착한 척만 뒤지게 하는 새끼들.”
지훈이 중얼거리며 담배를 물고 깊게 빨아들였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시원해 보였다.
“김준영 형사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린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좆같게 모른 척 물어보지 마.”
“뭘, 아직 빈소도 안 차렸는데······”
담배 쥔 손가락이 굳었다. 손가락처럼 굳은 얼굴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명준은 입을 달싹거리다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실수를 뱉어버린 사람처럼.
“실례했습니다.”
“뭔데. 왜 아직도 안 차렸는데. 어?”
“······부검한다고······”
“왜.”
“······”
“김명준.”
갑자기 팔을 잡는 움직임에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흔들렸다.
“왜 부검했는데요. 말해줘요. 제발.”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내밀고, 자신을 동아줄처럼 붙들고 올려다보는 모습이 간절했다. 처음에 형사에게 푹 빠진 큰형님을 ‘뭘 그렇게까지’라고 이해하지 못했다가 사진을 보고, 실물을 보고 그러실 수도 있겠다 납득 됐던 얼굴과 분위기. 수척해져도 지훈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순간 눈을 피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가족분들이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살할 리 없는 사람이라고요.”
“결과는, 나왔어?”
“네. 타살 징후는 없었다고 합니다.”
“언제, 언제 끝났는데요.”
“어젯밤 새벽입니다.”
“그럼 빈소는······”
“······”
“김명준 씨.”
“······아직 마련되지 않았죠. 오늘 밤부터 조문객 받는다고 합니다.”
인형 같던 얼굴에 점차 생기가 돋았다. 명준은 명령대로 하는 것임에도, 직책만 비서실장일 뿐이지 실상은 조폭 오른팔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고작 연기 하나에 이유 모를 자책을 느꼈다.
“형님 설득하는 건 그만두시죠.”
“그래서 지금까지 풀어주지 않은 거였어······”
“식사하시겠습니까?”
혹여나 던져본 말에도 지훈은 혼잣말하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담배 피우는 것도 잊은 듯했다.
“형님께서 내보내 달라는 거 빼고는 다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
“경위님?”
“식사는 됐고.”
지훈은 손을 내밀어 반쯤 남은 담배를 종이컵에 넣었다.
“······허튼짓 같은 건 안 할 테니까 수갑 좀 풀어줘요. 좀 씻고 싶으니까.”
자살과 내보내 달라는 거 빼고는 다 들어주라고 하셨으니까. 명준은 그가 원하는 대로 수갑을 풀어주었다.
자유로워진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은 몸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어 휘청이자 명준이 잡아주었다. 지훈은 거부하지 않고 부축을 받으며 욕실로 걸어갔다. 허리에 감긴 손이 어딘가 뻣뻣한 느낌에 그가 말했다.
“냄새나도 참아.”
“냄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닙니다.”
왠지 큰형님 몰래 못된 짓 하는 거 같다 생각하며 명준은 욕실로 그를 부축했다.
“혼자 씻을 수 있어.”
욕실에 도착한 지훈은 부축을 풀며 말했다. 풀자마자 옷을 벗는 모습에 명준이 뒤를 돌았다.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무던한 그도 이상한 분위기에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몰라 뒷머리를 긁었다.
씻으시라 하고 먼저 나가야 하나, 하다 욕실 안에서 “새 옷이랑 속옷 좀 꺼내줘요”라는 말에 음식이 든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서랍장으로 갔다. 보스 애인의 목욕 시중이라니. 왕이 예뻐하는 애첩에게 던져진 하인이 된 느낌이었다.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기다리기로 했다. 새 옷과 속옷을 문가에 내려놓고 손을 모은 채로 기다렸다. 서서 기다리는 건 익숙했다. 주머니에 넣은 수갑을 한 번 확인했다.
십 분 정도 흘렀을 때였다. 샤워기 소리가 이어지다 갑자기 콰당, 하고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에 가까이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경위님?”
아무 대답도 없다. 안에서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몸도 성치 않아 넘어져 머리라도 찧었나 싶어 문을 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자신도 남자 알몸 보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욕실 안을 들여다본 명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이 바닥에 앉은 채 신음을 뱉고 있었다. 생각했던 게 맞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씨발. 쯧.”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며 욕하는 거 보니 기운은 남아 있는 듯하다. 명준이 가까이 다가가 팔을 잡고 일으켜줬다. 바디 워시 거품이 묻은 팔이 미끄러웠다. 명준의 어깨를 잡은 지훈이 고갯짓으로 샤워기를 가리켰다.
“좀 헹궈줘.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식사도 안 하시니까 당연하죠.”
“빨리 헹구기나 해.”
명준은 ‘정말 애첩에게 던져진 하인 맞네’라는 생각을 하며 샤워기를 들었다. 솔직히 남자 알몸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해도 같은 성인 남자 씻겨주는 것도 그렇고, 큰형님 애인이라 양심에 찔려 팔이나 등 정도만 손을 대고 문질러줬다. 다행히 지훈이 먼저 “다른 데는 이미 했어”라고 말해 끝났다. 샤워기를 끈 명준의 양복 재킷과 바지가 물기로 얼룩덜룩해졌다.
“닦아줘.”
내민 수건을 받아 몸을 닦아줬다. 그냥 빨리 끝내고 이 이상한 분위기에서 탈출하는 게 나을 성싶었다. 지훈도 상체만 닦도록 한 다음 하체는 수건을 뺏고 스스로 닦았다. 다만 명준을 버팀목처럼 그의 팔을 잡은 채로 닦았다.
명준은 본의 아니게 알몸을 보며 많이 마르긴 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평소에 봤었을 땐 옷을 입은 채라도 말라도 단단한 몸인 걸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갈비뼈가 언뜻 보였다.
이 감금이 끝나면 형님께서 계속 먹인다고 또 고생하시겠군.
작년에 지훈이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박승혁의 지시 아래 하루가 멀게 식당을 예약하고 식사를 포장했던 명준은 곧 닥칠 미래를 상상했다. 물론 지금으로선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설마 속옷도 입혀줘야 하나, 하던 명준은 아래로 손을 뻗는 맥없는 손짓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대신 속옷을 집었다. 알몸으로 서 있는 성인 남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속옷을 대는데 처음으로 일에 자괴감을 느꼈다.
지훈도 민망했는지 발만 넣고 끌어 올리는 건 본인이 했다. 바지도 비슷한 과정으로 입었고, 상의는 두 손을 들고 명준이 위에서 아래로 옷을 입혀줘 쉽게 끝났다.
기존 옷을 세탁하기 위해 집어 드는 명준에게 지훈이 말했다.
“박승혁이 그랬다면서. 내보내 달라는 거 빼고는 다 들어준다고.”
“네. 더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심부름 하나만 해줘.”
바닥에 내려놨던 음식이 든 비닐봉지까지 잡은 명준이 그를 쳐다봤다. 지훈이 다가와 팔을 잡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왜 이러시나. 평소엔 삐딱한 얼굴로 쳐다만 보고 대화도 물을 때만, 단답형으로만 하던 사람이.
둘 이외엔 듣는 사람도 없건만, 지훈은 그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고개를 뒤로 뺀 채로 듣던 명준의 무던한 얼굴이 점차 의아해지더니, 당혹감으로 변했다. 말을 마친 지훈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부탁할게.”
“······이사님께 물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오랜만에 씻어 개운한지 침대로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좀 전보단 생기 있었다.
“모르는 게 박승혁한텐 더 좋을 거지만.”
“······”
“솔직히 맞잖아.”
“그렇긴 하죠.”
역시 솔직해서 좋은 새끼. 지훈이 조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가져올까요?”
“가져올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저녁 전까지는 들고 왔으면 좋겠는데. 안 먹어도 또 들고 올 거잖아.”
“알면 좀 드셔주시죠.”
말 없는 지훈에게 명준은 등을 돌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 음식도 나가자마자 버릴 생각을 하니 아까웠다.
“음식 내려놓고 가든지.”
명준이 그를 쳐다봤다.
“저녁 가져올 때 가져가면 되잖아.”
“······그럼 두고 가겠습니다.”
명준은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동안 식사할 때도 서서 지켜본 건 일회용 수저로 허튼짓하지 않을까 봐서였지만, 저러는 거 보면 절대 허튼짓은 하지 않을 거 같다. 오히려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죽이지 말라고 빌 얼굴이다.
“수갑, 안 채워도 되겠죠?”
“당연한 거 묻지 마.”
“그럼.”
인사하는 명준에게 지훈이 말했다.
“부탁한 거 꼭 가져와 줘요.”
“······생각해보고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조소와 욕설을 마지막으로 명준을 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이 이상 여기에 있다가는 이상한 분위기에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이 뒤는 큰형님께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