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명준이 별실을 나왔을 땐 새벽 해가 사무실 안을 어스름히 비추고 있었다. 어스레한 빛을 맞으며 소파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낮아 입을 열려다 말았다. 조심스럽게 내디딘 구둣발 소리가 작게 울렸다. 숙여 있던 머리가 움칫거리더니, 올라왔다. 뒷모습이 다시 높아졌다.
“좀 주무시죠, 형님.”
“다 치웠냐?”
“네.”
명준이 소파 옆을 지나치며 대답했다. 벽 끝까지 걸어가 커피포트 버튼을 눌렀다. 몇십 초 후, 끓은 물을 부어 차를 태웠다. 박승혁 앞에 차를 내려놓고 옆에 섰다. 피로에 물든 눈이 그의 공손히 모은 두 손을 확인했다.
“왜 손이 비었어.”
“입구에 다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어차피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차를 쳐다보는 얼굴을 살폈다. 하루 사이에 더 상했다.
“차 좀 드시죠.”
“입구에 놔뒀어도 오늘 안에 치워라. 기어 나와서라도 할 놈이야.”
“······네.”
“이지훈은. 깨어났고?”
“아뇨. 많이 피곤하셨는지 소리를 내도 계속 주무셨습니다.”
명준이 입술을 훑고 이어 말했다.
“조금이라도 날카로워 보이거나 흉기로 쓸만한 건 다 빼놨습니다. 손목도 조금 풀어서 다시 묶었고요. 나중에 보고 오해하실까 봐.”
찻잔을 들려던 박승혁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렇게 꽉 묶으시면 손목 괴사합니다.”
“······ 죽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요. 손이 사라지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줄어들지 않습니까.”
“······”
다른 때라면 능글맞은 장난을 친다고 여길 수도 있는 말이건만, 박승혁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명준도 바라던 반응은 아니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침묵 속에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몇 시간 전, 박승혁의 부름을 받고 사무실로 왔을 때, 명준은 오랜만에 두 사람의 일로 착잡함을 느꼈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에 홀로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큰형님의 모습이란. 장소만 자택에서 사무실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때처럼 동굴 안에 들어간 동물 같았다. 착잡함과 더불어 안타까움까지 일었다.
갑자기 불을 켜면 깰까 봐 캄캄한 사무실을 가로질러 다가갔을 때였다.
“······왔냐.”
어두컴컴해 앉은 채로 자는 줄 알았던 명준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네, 형님.”
박승혁은 마른세수 뒤에 담뱃갑을 꺼냈다. 찰나 동안 너무 많이 피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담배를 문 입에 재빨리 라이터를 켜서 갖다 댔다. 한 모금 길게 내뿜은 그가 말했다.
“지금 별실에 들어가서 허튼짓할 만한 거 다 치워.”
“허튼짓이요?”
“그래.”
“······이 경위님이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튼, 빨리해라.”
“······네.”
그의 지시대로 열쇠를 넘겨받은 명준은 별실로 들어갔다. 열쇠로 문을 열며 흉기로 쓸 만한 걸 떠올리던 그가 별실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한 행동을 지훈의 손목을 푸는 일이었다.
설마 작년처럼 그랬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던 듯했다. 우려보다 침대 위에 결박된 채로 모로 누운 광경이 훨씬 보기엔 나았다. 피가 안 통해 변색된 손만 빼고.
한숨을 내쉰 그는 지훈에게 다가가 침대에 한쪽 무릎을 올리고 손목을 풀었다. 어찌나 단단히 묶었는지, 도저히 풀리지 않아 품속의 칼을 꺼내어 잘라낼 정도였다.
밧줄을 대신할 용도로 자기 넥타이를 풀어낸 명준은 지훈의 손목을 묶기 전, 얼굴을 살펴 여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곤 한동안 손목을 눌러 마사지해줬다.
큰형님을 위해서인 것도 있었고, 그에게 내심 안쓰러움을 느껴서였다. 명준도 지훈을 해가 바뀌는 동안 대하고 이따금 능글맞게 놀리면서 친밀감을 쌓은 건 사실이다.
색깔이 변한 손목과 손을 번갈아 마사지하며 괜히 뒤를 돌아 문을 쳐다봤다. 박승혁이 들어와서 보면 선한 의도였다고 해도, 처맞을 게 뻔하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신도 화가 날 것 같다.
계속 주무르니 손 색깔이 점차 돌아왔다. 패인 손목은 몇 시간이 지나야 없어질 거다. 손을 멍하게 쳐다보며 명준이 생각했다.
‘이지훈이 대체 어떻게 나왔길래 이 정도로 흥분하신 걸까.’
이렇게 묶으면 며칠 내로 괴사한다. 이 정도로 힘 조절을 못 했다면 이성을 잃으셨다는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이 사람을 어쩌지는 못했다. 작년처럼 행동하진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다른 의미로 심란해졌다.
지훈의 상태와 박승혁의 허튼짓할 만한 건 다 치우라는 명령에서 ‘지훈이 한 행동’을 짐작할 순 있다.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 거기에 형님이 이성을 잃고 이렇게 나와버렸다는 건, 이지훈에게 사실상 약점을 보인 거나 다름없다.
그럼 이지훈은 왜 자살하려고 한 걸까. 분명 저 성격에 고분고분하게 자살하려고 하진 않았을 거다. 미친개처럼 자살하려 달려들었을 거고, 그래서 형님도 이성을 잃으셨겠지.
김준영 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하지만 그건······
“아.”
명준이 낮게 소리 내었다. 몇 시간 전, 운전석 문을 잡고 비틀거리던 형님이 떠올랐다. 잠 한숨 못 잔 상태에서 화를 삭이며 피운 줄담배에 양주를 한 병 들이마신 몸으로 문을 열려고 해 부축하며 조수석으로 옮기고, 철성을 시켜 운전하게 했다. 그런 몸으로 만났다면, 김준영 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막 들은 상태였던 지훈과 정상적으로 대화가 됐을 리 없다.
“하아······”
이번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사지를 멈추고 넥타이로 손목 부분을 붕대 감듯 느슨하게 돌리고 매듭은 힘을 주어 꽉 묶었다.
그런 다음에야 별실을 돌며 조금이라도 흉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할 만한 건 전부 가져와 문가에 쌓아뒀다. 서재 겸 침실로 쓰는 별실엔 필기도구를 비롯해 커터칼 등의 용품도 있었다. 그걸 죄다 덜어내니 작은 방이라도 꽤 물건이 쌓였다.
그때까지도 지훈은 내내 잠이 든 상태였다. 문을 열기 직전에도 들리는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지훈도 박승혁과 대화하면서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만만찮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큰형님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별수 없다.
큰형님께 감히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될까.
그때를 생각하던 명준이 제풀에 찔려 고개를 떨구었다. 박승혁이 그를 쳐다봤다.
“안 풀렸을 건데.”
“네. 부득이하게 잘라내고 급하게 제 걸로 묶었습니다.”
명준의 허전한 셔츠를 본 박승혁이 입술을 뗐다 닫았다. 분명 나중에라도 자기 넥타이로 다시 묶을 거다. 명준이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이젠 이 정도 질투는 놀랍지도 않다.
박승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 끊고 서엔 병가 처리해.”
“얼마나 할까요?”
“······어제 일은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아봤냐?”
“네. 조금 전 새벽 뉴스로 첫 보도 됐습니다.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만 나왔고요. 자살이니 타살이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나올 것 같습니다.”
“······”
“며칠로 끊을까요?”
“빈소는. 언제 마련되는지 알고?”
“아, 글쎄요. 그건 새로 알아보겠습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곧 부검 들어갈 거 같다고 들어서 물어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부검?”
“네.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들이 원하고 있답니다. 가족 놔두고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죽어서도 귀찮게 하기는. 씨발.”
박승혁이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듯 눈썹을 구기며 혀를 찼다.
“일단 한 달로 끊어.”
“네?”
저도 모르게 대답 대신 튀어나온 물음에 박승혁이 그를 흘겨봤다. 명준이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형님. 이 경위님을 한 달 동안 저기에 두시려고요?”
“왜, 어때서. 밥 꼬박꼬박 주면 되지.”
그걸로 안 되는 거 아시면서. 명준이 착잡하게 그를 쳐다봤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타의로 좁은 곳에 한 달간 갇혀서는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신이 무너진 그를 볼 자신도 없으시면서 왜 이러시는지.
“한 달이면 병원에서도 힘들다고 할 겁니다. 입원시키지 않는 이상.”
“그런 소리 내지 말라고 건물 지어줬잖아.”
“그래도요. 한 달이면 분명 눈에 뜨일 겁니다.”
“······”
부검 계획이 있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너무 길게 뱉어버렸다. 박승혁도 그걸 알고는 입안을 혀로 굴리다 말했다.
“언제 들어가는지 알아봐. 그게 끝나야 빈소 마련하겠지. 부검 시작되는 날짜에서 넉넉하게 일주일 더해서 끊어라.”
“······네. 형사가 죽은 거라, 빨리 들어갈 것 같습니다.”
대답 대신 끄덕거리는 박승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뒤돌아 가려는 그를 박승혁이 불렀다.
“명준아.”
“네?”
“이거.”
명준이 박승혁이 내민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심하게 깨지고 박살 난 액정 아래 화면까지 일부 망가져 있었다.
“이 경위님 핸드폰입니까?”
“복구시켜서 다 확인해. 문자부터 카톡, 통화기록까지 전부.”
“정확히 뭘 확인할까요?”
작년의 이 물음에 박승혁은 ‘백가연에 대한 거 전부’라고 말했었다. 올해는 정확히 누구일까. 머릿속에 세 글자가 떠오르면서도 명준은 모른 척 물어보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엉뚱한 이름이 들렸다.
“가족이랑 관련된 거. 특히 이지균. 그리고 김준영이랑 관련된 거 전부.”
“네. 알겠습니다.”
속으로 놀람을 삭히고 명준이 대답했다. 인사하기 전, 테이블 위 차를 쳐다봤다.
“차 드셨으면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시죠. 그러시려고 소파 큰 거 사신 거 아닙니까.”
“네가 보기에도 내가 정상적이진 않나 보다.”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도 박승혁은 헛웃음만 냈다. 바람 빠진 헛웃음. 그걸 듣는데, 속에서 무언가 끓어 올라왔다. 모은 두 손을 풀었다. 두 손 아래 감춰있던 잘린 넥타이를 움켜쥐었다.
“형님. 실례지만, 저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경위님이 지금 저렇게 묶일 정도로 행동하신 거, 설마 김준영 형사 사망 소식을 들어서입니까?”
박승혁은 대답 대신 손가락만 까딱했다. 끓어 올라온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별실로 유인해 감금시키라고 하셨을 때, 제가 핸드폰도 압수할지 여쭤봤었죠. 형님께서는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됐다고 하셨고요. ······압수했으면 여기까진 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중에 감금된 거 아셨다고 해도요.”
“······”
“형님, 제가 감히 한 말씀만 드리자면, 형님은 이 경위님께 너무 무르십니다.”
“······”
“아무리 특별한 사이라고 해도요.”
끓어 올라온 걸 뱉어내고 나니 아차 싶었다. 뒤늦게 상체를 구십 도로 꺾었다.
“죄송합니다.”
눈치 보며 슬금슬금 일어나도 박승혁은 제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테이블 위 찻잔만 볼 뿐이다.
“부검 날짜 알아보고 병원 들렀다 오겠습니다. 물건은 나중에 경위님 식사 챙겨오면서 치우겠습니다. 쉬십시오.”
다시 상체를 구십 도로 꺾은 명준이 뒤로 물러났다.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박승혁은 미동도 없었다.
* * *
“박승혁이 보고 싶어.”
감금된 지 사흘째에 뱉은 말이었다. 명준은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용 도시락을 들고 별실에 들어갔고, 여느 때처럼 침대 위에 결박되어있는 지훈의 두 발목에 수갑을 채운 다음, 입에 물린 재갈과 두 손을 풀어주었다.
지훈은 솜을 빼낸 인형처럼 축 늘어져 명준이 하는 대로 있었다. 첫 식사를 들고 들어왔을 때, 손목을 묶은 건 수갑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유로웠던 두 발목도 수갑에 갇혀 있었다. 구태여 어디서 수갑을 구하셨을까, 는 생각하는 게 낭비다.
힘없는 몸짓에 이젠 욕할 힘도 없나 보다, 하고 명준이 생각했다. 잔정이 들었다 해도 제가 오랫동안 모신 분이자 평생의 동경보다 귀하게 여길 리는 없다. 갇혀 있는 동안 난리 치느라 스스로 만든 손목의 상처도 무감각하게 내려다봤다.
그래서 힘이라곤 없는 목소리를 듣고도, 일회용 수저로 뜬 첫 숟가락을 입에 넣기 직전에 뱉은 말을 듣고도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히려 저 말을 한 의도를 생각했다가 알아차렸다. 일반적인 일정으로 보았을 때 내일이 김준영 형사의 발인 날이기 때문이다.
지훈은 김준영 형사가 가족들의 요청으로 부검에 들어간 걸 모른다. 통화기록으로 보아 사망 소식은 전 강력팀 팀장에게 들었을 것이고, 기록된 통화 시간은 사망 경위를 듣기에 충분했을 거다. 타살 정황은 볼 수도 없는 ‘자살’한 사람인데 당연히 부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겠지.
저런 상태에서도 며칠이 흘러가는지 헤아리고, 머릿속으로 발인 날짜가 언제인지 유추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저 말을 뱉었다고 생각하니 희미한 두통이 느껴졌다.
왜 형님은 저런 분에게 빠지셔서,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좀 단순한 사람을 좋아하셨으면 마음고생도 덜했을 건데.
“······제 일정이 좀 바빠서, 십 분 내로 식사 부탁드립니다.”
명준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손에 들린 수갑이 잘그락거렸다. 차가운 대꾸에도 지훈은 밥을 억지로 삼키고 다시 말했다.
“전해줘. 박승혁이 보고 싶어.”
“생각해보겠습니다.”
“뭐?”
“빨리 드시죠. 반은 드셔야 물러갑니다.”
“좆 까고 있네.”
“이미 까서요.”
숟가락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하얀색 플라스틱 숟가락이 힘없이 떨렸다. 저 정도 힘밖에 못 주는 주제에 머리 굴리기는. 입만 살아서.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아무래도 저 꼴이 금방 먹을 거 같진 않다. 반도 못 먹을 수 있다. 그럼 손해다. 지훈이 아니라 자신이 손해다. 지금 사무실에 박승혁이 있기 때문이다.
박승혁이 사무실에 있을 때 나오면 그는 꼭 명준이 들고나온 도시락을 확인했다. 너무 많이 남으면 그가 가정교사도 아닌데 좀 더 먹게는 못 했냐고 한마디를 하니, 둘 사이에 낀 그만 스트레스였다. 두 사람이야 당사자니까 그렇다 쳐도 그는 이런 스트레스가 꽤 억울했다.
명준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 예의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말 자주 하면 너무 악당 같아서 하기 싫은데. 악당이 맞긴 맞지만.
“여동생분 생각해서라도 더 드시죠.”
뚫을 듯이 노려보던 눈이 움칫거리더니, 꺾여 아래로 떨구어졌다.
“씨발놈.”
“감사합니다.”
멈춰 있던 숟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매섭게 뱉은 욕과 달리, 숟가락질은 꾸지람을 들어 기가 죽은 학생처럼 맥없었다.
명준은 지훈의 가족 한정으로 단호하지 못한 성격이 처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처음에 식사를 가져다주는 겸 물건을 치우러 별실에 두 번째로 왔을 때는 가관이었다. 감금된 첫날에, 명준이 들락날락해도 모를 정도로 푹 자고 난 뒤라 어찌나 몸부림치던지. 미친개를 억지로 묶어놓은 것만 같았다. 박승혁이 입에 구겨 넣은 손수건만 아니었으면 걸쭉한 욕까지 세트로 들었을 거다. 물론 손수건을 입에 물고 있었어도 저게 욕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웅얼거림이었다.
이미 혀를 깨물려고 한 전적이 있다. 어떻게 밥을 먹도록 해야 할까. 죽이는 것보다 사지 멀쩡하게 생포하는 게 훨씬 어려운 건 몸소 이쪽 바닥을 구르며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몸에 손대지 않고 얌전히 밥 먹이고 생명이 끊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거다. 장기적으로 관리하려면 영양제를 투입하는 것보다 스스로 밥을 먹도록 하는 게 나았다.
입안 손수건을 빼내야 밥을 먹일 수 있다. 빼내다가 내 손가락이 잘리겠다 싶었다. 명준은 지훈의 통화기록을 떠올렸다. 미친개처럼 몸부림치는 얼굴에 대고 말했다.
“여동생분 대학에 입학하셨던데요.”
거짓말처럼 몸부림이 멈췄다.
“성함이 이지안 씨였죠.”
궁지에 몰린 쥐처럼 독기 서린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다행이다. 명준은 밀려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릴 뻔했다. 박승혁에게 약점이 지훈의 목숨인 것처럼, 지훈의 약점은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의 소재에 대해서는 올 초 지훈의 어머니와 남동생에 관해 조사하며 자연스럽게 안 사실이다. 지훈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 중 가장 정상 축에 속한다는 것까지.
“공부만 하다가 이제 막 입학하셨는데. 대학 생활은 편하게 누리셔야죠.”
“······”
“손수건 좀 빼겠습니다.”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입을 벌렸다. 손수건을 빼낼 때 손가락에 닿은 치아가 살을 얕게 누르다 떨어졌다.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엔 여동생이 입학한 대학과 학과, 지역명을 말하자 입을 다물었다.
지훈은 명준이 감시하는 아래 얌전히 식사했다. 반 이상 남겼어도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화장실을 고려해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두 발만 풀어놔 주기로 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 두 번 제공했다.
허튼짓 안 할 테니 재갈은 물리지 말라 말했으나 혹여나 싶어 유보했다. 오늘로 사흘째가 된 지금은 그때보다 더 눈빛이 살아 있었다. 몸은 내내 묶여 있느라 굳었을 거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힘이라곤 없다. 그중 몇 번은 혼자 있을 때 게워냈을지도 모른다. 몸은 약해져 가는데 눈빛은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은 것처럼 더 생기있다.
하지만 그만큼 그 희망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듯해 아슬아슬해 보였다. 마치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힘껏 타오르는 불꽃처럼. 마지막 희망마저 꺾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 재만 남을 것이다.
그 마지막 희망이라는 건 아직 발인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박승혁과 독대하는 거겠지. 정말 허튼짓은 안 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재갈은 물리지 않기로 했다. 재갈이 필요하다면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재만 남은, 잃은 거라곤 없는 상황일 때 필요하다.
두 숟가락을 더 먹은 후에 지훈이 도시락을 내밀었다.
“조금만 더 드십시오.”
“입맛이 없어.”
“없지만 드셔야죠.”
입술을 깨물다 도로 물렸다. 반찬도 안 먹고 마른 밥만 퍼넣는 정수리가 우물거릴 때마다 흔들렸다. 맨밥만 두 숟가락하고도 반 숟가락을 더 먹은 다음에 내민 도시락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시락을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잽싸게 손을 잡는 행동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지훈은 고집스럽게 명준의 손을 잡아당겼다.
“부탁할게요.”
“······”
“박승혁한테 전해줘요. 보고 싶다고.”
애처로운 눈빛이다. 명준이 가만히 있다가, 손을 빼냈다. 악력도 약해진 손이 맥없이 벌려졌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빼낸 손으로 도시락을 가져왔다. 처연한 얼굴로 두 손을 먼저 모아 내미는 모습이 눈빛처럼 애처로웠다. 까칠하면서 순간순간 보이는 이런 모습에 형님이 그렇게나 빠져버리신 거겠지, 생각하며 수갑을 채웠다. 두 손을 앞으로 해 결박한 지는 좀 되었다. 수갑을 채운 뒤에 발목을 풀어줬다.
“······입은.”
재갈을 채우지 않고 문으로 가자 지훈이 물었다. 명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튼짓은 하지 않으실 거 같아서, 이젠 안 하려고요.”
처연한 얼굴을 뒤로 하고 별실을 빠져나갔다. 열쇠를 잠근 다음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자신을 따라오는 눈빛이 느껴졌다. 명준은 발목용 수갑을 테이블 서랍에 넣었다.
“좀 먹었냐?”
“저번이랑 비슷합니다.”
“보자.”
“네.”
박승혁에게 걸어가 도시락을 열었다. 거의 그대로인 반찬 하며, 반 정도 남은 밥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는 표정이다. 당연하다. 아침엔 두 숟가락만 먹고 헛구역질해 물러났었다. 그래서 더 먹으라고 버텼다.
박승혁은 고개를 돌렸다. 명준이 치우고 오겠다며 사무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등 뒤에서 종이를 팔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잡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형님.”
박승혁이 눈동자만 올려 그를 쳐다봤다.
“이 경위님이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박승혁이 보고 싶어’라고요.”
“······”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곤 문고리를 잡았다. 팔락거리던 종이 소리가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