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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8/16)

8장

지훈은 계속 울려대는 핸드폰을 눈싸움하듯이 노려봤다. 꽤 긴 시간이 흘러도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다. 좀 전 집어던져 금이 간 액정과 더불어 시끄러운 진동 소리는 불안을 점점 더 증폭시켰다. 

계속 노려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진동 소리가 멈췄다. 지훈이 아래로 손을 뻗어 바닥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방금 왔던 전화까지 합쳐 부재중이 2통 와 있었다. 2건 다 팀장이 전화한 내역이었다.

첫 번째 부재중은 지균과 통화할 때 왔었던 전화였다. 그제야 통화하던 당시, 귀에 들리던 잡음의 정체를 알았다. 통화 중에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음이었다. 너무 예민해져 있던 때라 뇌가 잡음으로 인식해버린 듯하다.

이 새벽에 연달아 두 번이나 전화할 정도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 지금 시각에 전화한 것을 보면 자신이 속한 교통과와 관련된 형사사건 유의 공식적인 일은 아닌 듯하고, 어떤 사적인 일이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긴급하게 전화를 한 것일 테다.

‘경찰서에도 민원 넣지 마? 형 지금 있는 곳, 교통과도?’

조금 전 지균은 그렇게 말했다. 말로만 넣을까 넣지 말까 놀리고, 사실은 이미 악질적인 소문을 포함한 민원을 넣었을 수도 있다. 전에 있었던 형사과에도 조폭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알렸을 수 있다. 그것과 관련된 전화인가.

겨우 진정됐던 심장이 다시금 요동쳤다. 명치에 납덩이라도 인 것처럼 답답하고 막막했다. 박승혁과 연애라는 걸 하고 제대로 만나보자고 했을 때, 이런 미래도 생각했어야 했다. 

가족 부양을 핑계로 불법 업소에서 금전적 육체적 상납을 받을 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던 것처럼, 너무 무모했다. 이런 미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박승혁이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알아서 잘 처신한다고 믿고 넘겨버렸다.

오만하고 멍청한 새끼. 그런 새끼가 나다. 입술을 깨물며 전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도 채 가지 않고 목소리가 들렸다.

“-어.”

“팀장님?”

“오랜만이네. 자는데 미안하다.”

이젠 근무하는 부서도, 서도 다른 이 사람이 왜 전화한 걸까. 작년 복직했을 때도 소문만 믿고 책망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잘 지내고 있냐? 교통과는 어때. 교통 범죄 쪽이라 비슷하려나.”

“예 뭐, 비슷한데 다른 점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아······”

안부도 묻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는 지훈에게 팀장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 시간에 갑자기 전화해서 놀랐겠네. 전할 소식도 있고, 물어볼 것도 있어서.”

“아닙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핸드폰 너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할 때부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 등골이 서늘했다. 예전 형사일 때 느꼈던 감각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형사로서 느끼는, 많이 느꼈었던 ‘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느낌.

‘무슨 일’이 별실에 쳐들어와 자기 코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제 키보다 한참 큰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말 없는 팀장에게 지훈이 재차 물었다.

“팀장님?”

“이 경위. 놀라지 말고 들어.”

왜 새삼스레 직급까지 붙여서 부르는 건지. 이유 없이 숨이 가쁜 느낌이다. 급작스럽게 긴장이 오른 탓이다. 

한 번 더 침을 삼킨 팀장이 말했다.

“막내가 자살했다.”

잠깐 멍청하게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깜빡일 생각도 못 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목에 뭔가 턱 걸린 느낌이었다. 조용했던 공간이 순간 다른 곳처럼 여겨졌다.

목이 막혔다. 뭐라도 올라올 것 같은 목구멍이 막혀 힘주어 소리 냈다.

“······예?”

“······”

지훈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핸드폰 너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반응에 머리가 더 이해하지 못하고 맴돌았다. 막내. 막내······ 무슨 막내? 전에 있던 강력팀 막내? 아니면 지금 막내? 무슨 소리야.

“누가요?”

목구멍에서 간신히 낸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팀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막내. 김준영이 말이야. 너랑 잘 붙어 다녔던 놈.”

“······”

“진정하고. 조만간 서에서도 공식 발표할 건데 너한텐 미리 전화해봤다. 따로 물어볼 게 있어서.”

대답도 못 하고 가만히 있으니 알아서 말을 이었다.

“막내가 며칠 전에 너랑 만났다고 알고 있는데, 만나서 무슨 얘기 했냐? 뭐 이상한 점 없었어?”

불과 며칠 전을 상기시키는 말이 머리가 다시 움직이게 했다. 계속 떠 있느라 매운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다시 숨이 가빠오는 것 같아 등을 침대 헤드에 기대고 심호흡했다. 

형사 하면서 숱하게 죽음과 관련된 단어를 들어왔는데, 아는 사람과 붙여 들으니 낯설게 다가왔다. 더 들어갈 것도 없이 꽉 찼던 머릿속에 다른 불순물이 대가리를 디밀고 꾸역꾸역 들어왔다. 관자놀이가 아려와 눈살을 찌푸렸다.

“막내가······ 준영이가 팀장님께 어떤 말을 했습니까?”

“아니, 널 의심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며칠 전에 네가 근무하는 서에 수배범 인계 절차 받으러 갔었잖아. 그날 좀 늦게 끝났다고 복귀하지 않고 바로 퇴근했었거든. 내가 절차가 오래 걸렸냐고 다음 날에 물어보니까, 너 만나서 얘기 좀 하느라 늦게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근데 너도 솔직히, 작년에 복직하고 네 상황이 힘들긴 했지만- 준영이는 먼저 잘 다가가는데 네가 자꾸 피했었잖냐. 그래서 같이 차 마셨다니까 신기하긴 했지. 근데 별 얘긴 안 했다고 하더라고. 그냥 안부 물어보고 지금 일 어떠냐, 그런 얘기만 했다고 하던데. 나도 거기까지만 듣고 넘어갔지.”

역시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다. 백가연과 납치, 이 두 단어는 서에서 지훈과 준영만이 알고 있었고, 일로써 접수된 사건과 관련된 걸 제외하곤 절대 내뱉지 않았다.

불과 조금 전까지 지균에게 공격당하듯이 통화했지만,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떨쳐 버려야 한다. 관자놀이가 쑤신 와중에도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면서 물었다.

“자살했다는 건 확실합니까? 아직 결과 안 나온 거 아닙니까?”

“좀 전에 감식반들이랑 같이 들어가서 직접 확인했다. 친필로 쓴 유서도 발견됐고. 정식으로 감식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일단 육안으로 보기엔 외부에서 침입하거나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어.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매일 본 팀원들보다는 오랜만에 본 네가 더 정확히 알 거 같아서. 좀 달라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거나, 이상한 말 하지 않았냐? 솔직하게 말해봐.”

“아니, 전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서라고요? 뭐라고 썼는데요? 그리고 발견은 누가 한 겁니까? 자살 확실합니까? 감식 결과 언제 나온답니까?”

“진정 좀 하고, 다시 생각······”

“누가 발견했냐고요!”

“······”

“먼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누가 발견했습니까? 그리고 유서, 그거 친필 맞습니까? 말씀 들어보면 아직 감정 결과도 제대로 안 나온 거 같은데 확실합니까? 언제 발견됐습니까? 사인은요?”

속사포로 말한 지훈이 숨을 몰아쉬었다. 팀장은 침묵 끝에 대답했다.

“······발견은 정 형사가 했다. 막내랑 동갑이면서 임용 동기인, 형사팀 소속인 놈 있잖아.”

“네. 저랑도 밥 먹은 적 있습니다.”

“걔 말로는 막내가 오늘 아침부터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확인을 안 하더란다. 막내 오늘 비번이었거든. 우리야 걔가 연락이 없어도 자기 비번이니까 푹 쉰다고 안 하나 보다, 싶었을 거 아니야. 하루만 지나면- 그러니까 몇 시간 뒤에 해 뜨면 어차피 출근해서 얼굴 보는데 굳이 쉬는 날 급한 일 아니고서야 연락할 리도 없고.

정 형사랑은 임용 동기고, 동갑내기 친구니까 쉬는 날에도 자주 만나서 시간 보내고 했었나 봐. 근데 비번 날에 연락도 없고, 해도 안 받는다 이거지. 원래는 몇 시간 뒤에 출근하니까 아침까지 기다려 볼까 하다가 뭔가 이상하다, 집에 들어가 봐야겠다 싶어서 사람 불러서 조금 전 새벽에 문 따고 들어가서 본 거지. 

사인은······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나나 감식반원들도 괜히 벌써 외부 침입 여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게 아니야.”

“정확히 몇 시간 전에 발견됐습니까?”

“한 시간 반 전쯤 발견됐다.”

“사망 추정 시각은요?”

“지금 시각 기준으로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 전. 발견 당시엔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확할 거다.”

박승혁.

저도 모르게 세 글자를 떠올렸다. 

그가 먼저 준영과 만난 걸 언급하진 않았다. 되려 지훈 자신이 더 신경을 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혼자서 오버했다며 민망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가 생각났다. 살해당한 것도 아니라 자살이라고 하는데도. 지균과의 통화 탓일까, 아니면 혼자만의 억측일까.

지훈은 팀장이 말한 시간을 곱씹었다. 지금 시각으로부터 세 시간 전이면, 자신이 명준에게 전화해 박승혁이 지금까지 안 오고 있다고 말했을 때다. 당시 핸드폰 너머로 무언가 쾅, 하는 소리와 데구루루, 하고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리고 명준은 저를 데리러 집에 왔을 때도 평소와 달리 집중을 못 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 모든 게 준영이 사망한 것과 조금의 관련도 없을까. 입술이 바싹 마르는 듯해 연거푸 혀로 훑었다.

“하······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정확하게 결과 나온 건 없겠네요.”

“그렇지. 계속 감식 중이다. 나도 잠깐 나와서 전화 중이고, 부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아직 발견한 지 얼마 안 돼서 감식 결과가 나와야 결정할 거다. 유서 필체 감정도 받아봐야 하고, 친필이라도 수상한 점이 있거나 유족의 요청이 있다면 해야지.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이 새벽에 기자들 찾아와서 인터뷰 요청하는데 거절했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그네들 입 막을 순 없고. 내일부터 뉴스에 나올 거야. 

DNA나 필체 감정처럼 세세한 건 결과가 안 나왔을 뿐이지, 육안으로 외부 침입 여부는 보이지 않는다고 금방 감식반원이 말했거든. 내가 현장에서 직접 봐도 그렇게 느꼈고. 필체 감정이랑 DNA 결과만 나오면 타살 혐의점은 없다는 발표도 조만간 나올 거다. 국과수 쪽에서도 형사가 죽은 거라 빨리 해 줄 거고.”

“정 형사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서 새벽에 달려갔다고 하셨는데, 뭔가 들은 게 있답니까?”

“어. 그저께 같이 저녁 먹는데 좀 사람이 우울해 보였다고 하더라고. 자꾸 주변을 흘깃거린다던가, 밥 먹다가도 정신 놓고, 전체적으로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다고 해.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자세히 말을 안 해줘서 일하면서 생긴 일 때문에 그러나 하고 넘어갔단다. 

근데 일할 때 딱히 걸릴 만한 일은 없었거든. 험한 거 보는 거야 맨날 보는 건데. 그래서 너랑 만날 때도 그랬나 싶어서 물어보는 거다. 너는 정 형사보다 더 일찍 막내랑 만난 사람이니까.”

“······유서엔 뭐라고 쓰여 있었습니까?”

“딱 다섯 글자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라고.”

지훈의 미간이 구겨졌다.

“죄송합니다?”

“그래. 우리 팀 다 가서 직접 확인했다. 막내 글씨체 맞더라. 걔가 남자치곤 글씨체가 참 반듯하거든. 너도 잘 알잖아. 물론 정식 감정받아봐야 정확하겠지만.”

“왜 죄송하다고······”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도 골치가 아파. 뉴스에 나오면 분명히 윗선에서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냐고 쪼아댈 텐데. 업무량이야 평소랑 비슷했거든. 아니면 험한 거 보고 넘기는 성격이 아닌데 그동안 스트레스받았던 게 쌓여서 그랬던 걸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피해자들 제대로 못 구해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들도 많으니까. 

걔가 좀 무른 편이긴 했지. 여동생만 많아서 그런가······ 일단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너는 뭐 이상한 거 못 느꼈냐고. 이제 말해줄 건 다 말해줬으니까 다시 생각 좀 찬찬히 해봐라. 응?”

지훈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정말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날 자신을 찾아온 건 백가연에게 납치당했던 일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걸 팀장을 비롯하여 팀원, 심지어 친구 정 형사한테도 말했을 리는 없다. 그랬다면 지금 상황에서 정 형사는 분명히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냈을 거고, 팀장도 전화하자마자 그것부터 언급했을 거다.

지훈 자신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타살도 아니고 자살인데, 준영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 명예만 실추된다.

죄송하다는 말은 대체 누구한테 하는 걸까.

설마 나? 나한테?

그 생각이 들자 속이 울렁거렸다. 토기가 치밀어 오르는 듯해 이불을 걷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디디자마자 머리가 도는 듯해 휘청거렸다. 옆 책상을 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스트레스를 가라앉히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몸을 움직여서인지, 수술 부위에서도 다시금 환상통이 느껴졌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며칠 전 카페에서 준영은 지훈에게 울면서 사과했고, 지훈은 분명히 괜찮다고 말했다. 

아니······

내가 괜찮다고 말했던가?

아닌가? 신경 쓰지 말라고만 했었나? 둘 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준영의 마음속 죄책감이 덜어지지 않은 건가? 하지만 분명 헤어지기 직전 준영의 얼굴은 밝았었는데. 일상적인 대화도 나누다가 끝나 밝고 후련한 느낌이었다. 마음의 짐을 던 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다음엔 술 한잔하자는 말까지 했겠지.

지훈은 한참 동안 생각했다. 팀장도 편히 생각하라는 듯 말을 걸지 않았다. 결국 불규칙한 숨소리만 내뱉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하······ 다시 생각해봐도 모르겠습니다. 우울해 보이지도 않았고, 이상한 말도 안 했습니다. 오히려 편해 보였는데······ 자기가 먼저 다음에 같이 술 한잔하자고도 말했는데······”

“그래? 그랬다면 한 이 삼 일 사이에 급격하게 감정 변화를 겪었나 본데. 더 생각나는 거 있으면······”

“아, 빈소는요? 빈소는 언제 마련됩니까?”

“부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서 좀 걸릴 거다. 공식 결과는 안 나왔어도 일단 지금으로서는 외부 침입 여부도 보이지 않고, 필체도 우리 팀이 보기엔 친필이 맞고, 정 형사 진술도 있어서 유족 요청이 없는 한 부검은 하지 않겠지. 그럼 최소 이틀 내에 마련될 거고. 그 집도 참······ 안 됐어. 집의 유일한 남자면서 가장 노릇도 하던 놈인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구태여 생각하지 않아도 현재 준영의 집안 분위기는 어떨지 예상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중심을 잡고 문으로 걸어갔다. 박승혁의 사무실로 통하는 문이 아닌, 자신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있는 뒷문이었다.

“팀장님. 지금 서에 계십니까?”

“나? 아니, 막내 집이지. 계속 감식 중인데 나와서 전화하고 있다. 이따 국과수에 가볼 거야.”

“저도 지금 가겠습니다. 주소 좀 보내주십쇼. 대충 어느 동네 사는지만 알고 정확히는 모릅니다.”

“지금? 지금 와도…”

“그래도 팀원 다 거기 있을 거 아닙니까. 막내 집에 남자도 없고 홀어머니는 편찮으시고, 동생들도 아직 어려서 충격 많이 받았을 겁니다. 막내 본가에도 가서 상태 봐 드려야죠. 그리고 가는 중에 새로운 거 생각날 수도 있고요.” 

“······그래. 늦었으니까 급하게 오지 마라.”

“네.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지훈은 서둘러 뒷문으로 걸어갔다. 택시를 타고 팀장이 보내주는 주소로 바로 가기로 했다. 집에 가서 조문용 검은색 정장을 챙기는 건 후에 빈소가 마련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뒷문 문고리를 잡고 돌렸을 때였다.

‘덜걱.’

문고리가 반도 내려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재차 위아래로 움직여봐도 덜걱거릴 뿐, 그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지훈은 잠시 서 있다 뒤를 돌아 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사무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문으로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목이 말라 입술을 훑고 침을 삼켰다. 

문고리를 잡았다. 

덜걱.

이번에도 제자리에서 헛돌 뿐 일정 범위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문고리를 놓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다.

잠겼다. 아니, 잠갔다. 누군가가. 김명준이든, 누구든 박승혁의 부하가 한 짓이다. 당연히 박승혁의 명에 의해.

“하······”

설마, 설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애써 무시한 채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이어진 신호음이 멎자마자 말했다.

“박승-”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

“-씨발!”

문을 맞고 튕겨 나간 핸드폰이 바닥을 굴렀다. 식식대다 주먹으로 문을 내리쳤다.

“박승혁! 문 열어!”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내리쳐도 문 건너편은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박승혁은 없을 것이고, 사무실 너머에도 비서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설사 있다고 해도 못 들은 척할 것이다. 어쩌면 방음 장치 하나는 좆같이 잘해놔서 이 소리조차 사무실을 뚫고 사무실 바깥까지 넘어가지도 않을지 모른다. 계약 관계 시절, 여기서 신나게 뒹굴었을 때 바깥에 들릴까 봐 신경 쓰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으니까.

그래도 지훈은 계속해서 문을 내리쳤다. 내리치다가 손이 얼얼해 발로 문을 걷어찼다. 더 큰 굉음이 귀를 울렸다.

“문 열어 이 씨발놈아!”

문은 약간 떨리기만 할 뿐, 요지부동이었다. 문 내구성도 좆같이 튼튼한 걸 달았나 보네. 지훈이 이를 악물고 더 세게 문을 걷어찼다. 맨발이라 제 발만 아팠다. 계속해봤자 자기만 손해다. 지훈은 식식대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상기시켰다. 

감금.

박승혁에게 감금당했다. 설마 했지만 사실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건 무슨 좆같은 일인지. 지균에게 좆같은 말을 듣고, 팀장에게 준영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거기에 감금당한 좆같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훈은 핸드폰을 압수당하진 않았다. 그래서 더 의심하지 않았다. 별실로 모셔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명준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져도 의심 없이 그의 차에 타고, 이곳에 왔다.

바닥에 처량하게 엎어져 있는 핸드폰을 힐긋거렸다. 당장이라도 주워 신고할까, 당연히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신고할 수 없다. 내 입으로 왜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지 말해야 하니까. 그럼 대부업체 이사의 가면을 쓴 조폭과 어떤 관계인지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저를 감금할 생각이라면서 왜 무력을 써 핸드폰을 빼앗지 않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놔둬도 절대 신고하거나, 타인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사정을 드러내놓고 마음 편히 연락할 사람 하나 없다. 가족은 제 발로 연을 끊어버려서 불가능하다. 오히려 ‘내 사정’ 때문에 약점을 잡혀버렸다. 지금 있는 교통 범죄 조사팀에서는 스스로 거리를 두고 대했다.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연락할 수 있을 리 없다.

박승혁을 믿은 대가가 이거다. 의심 하나 없이 별실로 따라가고, 감금해도 연락할 곳 하나 없다.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늘만 몇 번째인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

단말마로 튀어나온 헛웃음은 연달아 이어지더니, 킥킥대는 웃음으로 변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하하, 하······ 씨발······”

지훈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주저앉았다. 쪼그려 앉아 바닥을 보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중간중간 욕설을 내뱉으며.

“씨발, 씨발······ 씨발······”

뒤로 갈수록 욕설이 불안정한 호흡으로 떨려 나왔다.

“하······”

준영의 사망에 박승혁이 관여한 게 맞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매끄럽게 설명되진 않는다. 모든 일이 맞물려 있긴 있는데, 서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돌려져 어긋난 톱니바퀴 같았다. 

지균이 다짜고짜 새벽에 전화한 것, 준영이 사망한 것이 어떻게 연결된 건지 모르겠다.

준영의 사망과 박승혁이 자신을 이곳에 감금시킨 것의 관계는 짐작 간다. 나 때문이다. 내가 준영과 만나서, 박승혁이 준영을 처리하기로 하고 지시한 거다.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라고. 협박해 친필로 유서를 쓰게 하고 목을 매게 했겠지.

준영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알았을까. 몇 달간 친형처럼 잘 따르고 동경하던 선배를 배신했다는 자책에 시달렸는데, 그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거기다 가족을 빌미로 협박했다면, 그 성격엔 불가능하진 않다고 본다. 결과를 수용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겠지. 그래서 유서에······

“욱.”

토기가 올라왔다.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는 유서. 그 다섯 글자가 머릿속을 쑤셨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죄송합니다. 흐윽······’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카페에서 흐느끼며 사과하던 목소리가 다섯 글자와 뒤섞여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푹 숙여 정수리만 보이는 얼굴 아래로 눈물방울이 떨어지던 모습. 그걸 보며, 고개를 들면 분명 잔뜩 일그러져서 못나졌을 얼굴을 생각했다.

친동생보다 더 친동생 같아 붙인 정이나 떨어지게 만들지. 마음껏 욕하고 미워하게. 이렇게 우니까 마음만 불편했다. 하필 저처럼 숫자 많은 가족의 가장 노릇까지 하는 놈이라 더. 

그때 자신은 입술 안쪽을 깨물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눈을 피해 서로 손도 안 댄 커피만 쳐다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찮다고, 하나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해야 했는데. 그랬다면 박승혁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과를 앞두고 그따위 유서는 쓰지 않았을까. 저항하다가 누가 봐도 타살한 것으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랬다면 수사라도 제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쪼그려 앉아있던 지훈은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변기에 얼굴을 박았다. 속에서 꾸역꾸역 올라온 내용물을 변기에 죄 쏟아냈다. 참고 참았던 게 올라오듯 토하고 또 토해서 토사물은 계속해서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속이 쓰리고, 나올 게 없어 올라온 위액에 입안이 쓰릴 정도로 지훈은 계속해서 게워냈다.

고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침을 뱉는 것을 마지막으로 변기를 잡고 일어났다. 한참 속을 게워낸 목구멍이 홧홧했다. 물을 내리고, 비틀거리며 세면대로 가 얼굴을 씻고 입을 헹궜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이미 죽어버린 준영은 다시 살아나지 않고, 지균이 한 말은 없던 게 되지 않는다.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신고하거나 팀장에게 전화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지훈은 욕실을 나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집었다. 흥분해 손끝이 노래질 정도로 움켜쥐어 올린 핸드폰은 액정 내부까지 손상되어 화면도 망가져 일부만 보였다. 급하게 주소록으로 들어가 화면을 위로 쓸어올렸다. 

김명준, 세 글자를 찾아 누르려는 순간 엄지손가락이 따가워 인상을 찌푸렸다. 확인해보니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깨진 액정에 손이 베였다.

“쯧.”

혀를 차고 김명준 세 글자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더니, 예상외로 얼마 안 가 전화를 받았다.

“네, 경위님.”

“박승혁 어디 있어.”

“······”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명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 지훈도 그 반응은 뭐냐고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럴 시간조차 지금은 사치였다.

“어디 있냐고.”

“지금 사무실로 가고 계십니다.”

“오고 있다고?”

“네. 곧 도착하실 겁니다. 도착하시면······ 그때 말씀 나누시면 됩니다. 차분하게, 격앙되지 마시고······”

“지랄하네.”

어딘가 낯이 익은 대화에 지훈이 조소를 지었다. 변했나 했더니, 결국 변한 건 없었다. 변했다고 느끼고 진전되었다고 느낀 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실상은 그보다 더 꼬이고 꼬여버렸다. 지훈이 대놓고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박승혁이 별실에 처넣으라고 하면서 핸드폰도 압수하라고 하진 않았나 보지?”

“경위님을 존중하셔서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좆같이 포장하지 마.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알아서잖아.”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는 게 좋은 거니까요.”

“하.”


그래. 이래야 김명준이지. 매끄러운 얼굴 속 무던한 인상에 조곤조곤하게 할 말 다 하는 놈. 빤히 보이는 거짓말하는 것보다야 낫다. 그동안 그를 보며 느낀 점은 박승혁이 단지 같이 보낸 세월 탓에 그를 오른팔로 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이런 점 덕분이겠지.

어쨌거나 자신은 명준이 아니라 박승혁과 대화해야 한다. 명준에게 뭘 지껄여봐야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박승혁은 언제 오는데.”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래도 급하게 출발하셨으니, 늦게 왔다고 너무 화내진 마십시오.”

“내가 알아서······”

철컥.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등을 곧추세웠다. 뒤를 돌아봤다. 사무실로 연결된 큰 문 너머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는 소리.

박승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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