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50화 (150/162)

150화

윤일호의 본래 이름은 김구호로, 김득철을 본떠 만든 열세 개의 인형 중 아홉 번째로 이름을 받은 인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많던 김득철의 인형도 저 하나만 남았으니 이제 구호라는 이름도 마땅찮았다. 그리하여 잠깐 덮어쓰는 이름조차 유일의 존재를 본떠 일호라고 지었는데, 이제 곧 이 이름도 쓸 날이 머지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구호도, 일호도 아닌 김득철이란 이름을 계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윤일호는 자신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했다.

김득철의 최고의 정수를 물려받고, 그가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궁극의 목표에 다다를 사람. 본신을 뛰어넘는 최고의 창조물. 그러므로 자신이야말로 김득철에 어울리는 진짜의 자격을 가졌다. 본래는 가질 수조차 없었던 자격을 말이다.

이름의 본래 주인이었던 김득철은 모자란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운 좋게 그의 능력을 알아봐 준 사람들 덕에 후원자를 얻어 문지기 연구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운을 타기 이전의 그의 삶을 돌이켜보자면 무시당한 세월이 태반이었다.

김득철은 어려서부터 모난 성격이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는데, 기껏 다른 사람이 선한 마음을 내어 다가오더라도 그들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려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엔 따돌림도 당했는데, 워낙 꺼림칙해 보여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거나 말을 걸지 못했다. 어느 날은 그것이 너무 분해 화가 잔뜩 났는데, 화낼 대상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이를 대신할 인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인형을 두고 화내는 것은 너무 시시했다. 상대에게 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싫었다.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가 불행하길 바랐다. 그리하여 김득철은 인형으로 저주를 하고자 했다. 다만 저주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했으나, 아뿔싸.

저주하려고 저주의 대상의 물건을 훔쳐 만든 인형이 아주 잠깐이지만 주인처럼 말을 하고 걷게 된 것이다.

이능력의 개화. 김득철은 몹시 흥분하여 우쭐했다. 그는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였노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러니 오리들과 달라 배척당했구나. 김득철은 곧장 모친을 닦달해 검사 센터로 앞세웠다.

그러나 막 개화한, 저주에 가까운 술수는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웠다. 심지어 초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관에 들어갈 수준도 되지 않았다. 대신 함께 받은 정신 감정 때문에 정신과 내원을 권유받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병원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김득철은 몇 년을 더 괄시 속에서 살아갔다. 대신 중간중간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흘겨보는 동급생들의 물건을 훔쳐 인형을 만들다가 그 과정을 들켜 창피를 당하는 바람에 어느 날부터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혔다.

그는 집에서 여러 인형을 만들었다. 여러 해를 혼자서 만들다가, 어느 날 인터넷에서 그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김득철은 인형 관련 글을 올려 아주 작은 관심을 얻었다.

처음엔 제 나름의 미적 감각을 이용해 창작 인형을 만들어 올렸으나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대신 사람의 모양을 본떠 만들자 반응이 있었다. 다만 좋은 의미의 호응은 아니었고, 똑 닮았는데 이상하게 불쾌하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인터넷상에선 그런 것도 화제가 되므로, 멸칭 아닌 멸칭으로 유명해졌지만 김득철은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단해서 유명해야 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유가 아니라.

그래서 김득철은 처음 만들었던 물건처럼 말하고 걷는 인형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는데, 그건 재료에 대상의 생기가 스며 있어야 했다. 즉, 손때가 많이 묻은 물건일수록 좋았다.

그러나 남의 손때 많이 묻은 물건을 어디 쉽게 구할 수 있겠는가. 그의 실험 재료는 자연히 가족들에게 향했다. 김득철은 부모와 형제가 자주 쓰는 물건들로 인형을 만들었다. 다만 이것들은 주인같이 행세하므로 가족들이 돌아왔을 때 목 졸라 숨이 끊어지게 해야 했다.

그런 다음 실험 재료를 꺼내 다시 돌려놓았는데, 한번 쓴 것은 다시 인형의 재료로 삼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김득철은 인형에 무형의 소진 가능한 어떤 것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생기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손때를 입힌답시고 형의 방 침대 밑에 인형의 재료를 숨겨 두었는데, 그가 깜빡 잊는 바람에 여러 날이 지나고 말았다.

그 결과, 형이 쓰러지고 말았다.

부친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자 그와 고작 세 살 차이 나던 형이 고목같이 바짝 마르고 쭈그러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의 병명은 수많은 검사를 했음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김득철은 그제야 자기 부모를 돌아보았다. 새치 한두 가닥 있는 까만 머리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두 분 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젊은 김득철은 겁에 질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김득철은 곧장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형의 인형들과 인형을 촬영해 올렸던 인터넷 글들을 지웠다.

그러나 그날 새벽, 그의 형은 숨지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을 불에 태웠다는 말을 남기고서.

죽음을 앞에 두었기에 단순한 섬망 취급을 당했으나, 김득철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형을 죽인 것이 자신의 힘 때문이구나. 자신은 정말 무섭고 대단한 힘을 갖고 있었구나.

그의 깨달음과 별개로 형을 잃은 충격 때문일까. 부모님 또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손을 써 볼 생각도 하지 않기는 했지만, 손쓸 틈 없이 갔다는 말이 적당하게 두 분도 목숨을 잃었다.

양친이 죽자, 서른 줄에 들어서긴 했어도 제 손으로 돈 벌어 본 적 없는 김득철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나가서 돈을 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부모의 시신으로 인형을 만들어 돈을 벌러 나가게 하려 했으나, 부모의 유언으로 화장을 하는 바람에 시체를 빼돌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분신을 만들었다. 그것이 김득철 일호의 탄생이었다.

다만 김득철이 지레 겁을 먹은 탓에 생명력을 많이 나눠 주지 않았기에 그는 며칠 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김득철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초능력자들이 다수인 일반인의 편의를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의 편의에 따라 감히 초능력자들의 상하를 나누고 갈라치는데, 그 전에 유능과 무능을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능한 사람, 즉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착취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다수가 만들어 낸 사회가, 사회적인 위치가 힘을 가진 이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우리같이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이 벽을 깨 주지 않으면 이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리라고.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조금 높은 위치에 있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냥 순리상 어쩔 수 없는 이야기라고.

김득철은 이들의 이야기에 쉽게 매료되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가 본래 하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김득철이 그들의 패거리에 합류하자 그들은 김득철에게 수족같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을 붙여 주곤 조직명을 ‘피노키오’라고 칭했다. 그가 동화 속에 나오는 제페토처럼 살아 있는 인형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피노키오의 제페토가 된 김득철은 단순히 사람의 손때 묻은 물건이 아닌, 산 사람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인형은 생전 주인과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패거리는 어느 날 김득철에게 초능력자를 데려와 인형으로 만들어 주길 바랐다.

뜻을 같이하지 않는 형제를 계도하고, 그의 능력을 이로운 데 쓰기 위해.

많은 이들에게 불행하게도, 재주가 있었던 김득철은 초능력자들의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본래 미감이 좋지 않았던 만큼 닮긴 닮되 똑같지는 않았는데, 이는 어찌어찌 능력을 개발하여 무마했다. 대상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 한정으로 먹힐 뿐이었지만.

그렇게 김득철이 자기 능력에 한껏 취해 있던 어느 날, 그가 속한 단체의 간부가 고서(古書) 하나를 가져왔다. 문지기라는 능력을 탐했던 자가 남긴 기록이었는데, 문지기의 능력을 온전히 빼앗지는 못하고 잠시 잠깐 흉내 내는 방법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간부는 대단한 것을 가져온 양 매우 으스대었다.

문지기들은 땅과 하늘에 길을 열고 지나다닐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다만 이 길을 가기 위해서 문지기들은 [문]이라는 것을 열어야 했는데, 이 [문]이라는 것은 열 수 있는 자격이 필요했다. 이 자격은 [문]에서 부여하는 것으로 인간이 멋대로 흉내를 낼 수 없다고도 했다.

처음에 김득철은 이 능력에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못 가는 길을 오가는 것이 무어 그리 잘났다고. 점퍼라는 능력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그 점퍼라는 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해 신체 결손으로 죽는 이들이었다. 자기 능력에 심취해 있던 김득철에겐 문지기가 우습기만 한 능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고서를 가져온 간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문]의 능력은 인류의 과제라고도 여겨지는 미궁에 닿을 수 있고, 이 능력을 정복하면 미궁을 여닫는 것쯤은 우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불을 쓰고 물을 쓰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내리는 능력이 있어도 이 능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해마다 미궁에서 터져 나오는 괴수를 막고자 초능력자들이 수십, 수백씩 사라지는데 미궁의 문을 제어할 수 있다면? 아무리 날고 긴다는 초능력자들을 다 발밑에 둘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라를 들었다 놓을 힘이다.

간부는 이어 미궁에 다다를 수 없어도 사업적인 측면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노라고 밑밥을 깔았지만, 그런 얘기 따위는 김득철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 대단한 힘을 자기 능력으로 취할 수 있다면, 자신이야말로 신에 필적할 창조의 능력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김득철은 문지기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김득철의 인형 열두 개는 그 과정에서 제작되었다. 물론 전부 김득철이 만든 것은 아니고 열열한 개 중 셋은 인형들이 만들었다.

처음에는 본체인 김득철을 본떠 만들 줄만 알았던 인형은 점차 자신의 의지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갔다. 김득철은 이 점을 못 견뎌 했는데, 인형이 자신의 솜씨를 앞지를까 걱정한 탓이었다. 그래서 유독 잘 나온 인형은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폐기했다. 다만 이 과정에 참여했던 팔호가 폐기된 인형의 중요 부품을 챙겼고 김득철의 사후에 구호를 제작했다.

김득철의 죽음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간 인형들과 함께 그득 쌓았던 악명이 무색하게, 십 년 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직접 보러 갔다가 애송이 초능력자의 폭주에 휘말려 빈사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소생 가능성이 없어 그야말로 죽기만을 기다릴 때, 김득철의 인형들은 결단을 내렸다. 김득철의 시신으로 인형으로 만들어 김득철의 기억을, 그들의 연구 자료를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긁어 김득철을 인형으로 만들었다.

다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인형으로 만든 탓에 이전과 같은 재주는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죽을 때 무슨 짓을 했는지 그의 기억에 불순물이 끼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김득철이 아닌, 백무경이라는 꼬맹이인 줄 알았다.

김득철이 김득철이 아니라니.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도 아닌 종이호랑이만도 못했다. 김득철의 폐기를 결정한 뒤에 인형들 사이에선 암투가 벌어졌다. 내내 억눌려 있던 갈증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성을 되찾아 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진짜를 본떠 만들어진 가짜들의 숙명이었다. 그런 고로 그들의 갈증은 김득철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진 절대 해소될 수 없었다.

때마침 피노키오를 관리하던 단체에서 꼬리 자르기의 하나로 피노키오를 잘라 내려 했고, 팔호가 이를 이용하여 나머지 인형들을 정리했다.

마침내 팔호는 김득철이라는 이름을 얻어 냈으나, 자신이 진정으로 자격을 갖췄는지 의구심을 느꼈다. 그리하여 김득철의 연구를 이었는데, 김득철이 본래 인형 만드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기에 팔호 또한 인형을 잘 만들어 내고 싶어 했다.

김득철보다 더 나은 인형. 그가 다다르지 못했던 목표에 다다를 인형.

팔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정수를 쏟아부어 구호를 만들었다. 자기 생명력과 타인의 생명력, 혹은 신체 일부로 절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다던 문지기 자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김희원’은 그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였다. 예전에 잡아 둔 문지기 김희원과 본래 김득철로 만든 인형을 섞어 만들었다. 본래도 능력이 하찮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딘가 잘못되었는지 이놈 꼬마가 [문]을 통해 움직일 때마다 신체 결손이 발생했다. 장기의 일부일 때도 있었고 기억일 때도 있었다. 남아 있던 재료로 균형을 맞추자 그제야 본래 다니던 [문]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다만 정신이 좀 비틀려 버리고 말았다.

김득철의 목표에, 김득철의 머릿속에 있던 백무경의 기억이 일부 이식된 데다, 심장의 주인인 문지기 꼬마의 욕망을 가진 것이다. 문지기 꼬마는 다른 문지기인 김하윤이 되고 싶어 했는데, 아마 그가 자신이 생각한 우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김득철의 목표, 문지기를 만드는 것과 뒤엉겼고 김희원은 최고의 문지기를 만들려 했다. 다름 아닌 김희원의 우상이었던 김하윤이라는 꼬마를 재료로 한 문지기 말이다.

그러나 김하윤은 능력을 잃었고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그가 다니던 연구소의 자료를 탈취하여 실험해 봐도 유전으로 이어진 힘이 아닌 탓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결국 숱한 실패로 폐기가 결정되고 말았으나, 그놈에게 들어간 재료가 재료라 일단 목숨을 붙여 보존코자 했다. 앞선 실험으로 많은 데이터가 쌓인 탓에 본 실험은 무사히 진척되어 최종 실험만이 남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냄새 맡은 개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눈을 돌릴 뭔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먼지만 쌓여 가던 김희원이 쓸모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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