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괴수는 사람의 형태를 흉내 내어 대피로에서 내려오려는 사람들을 꾀어내고 있었다. 사람의 정신 에너지를 기반으로 삼는 괴수답게 혼란을 조장해서 그 에너지를 흡수하려 했던 것이리라. 하윤은 곧장 괴수의 뒷덜미를 잡고 벽으로 붙였다.
출신은 정신체이나, 손에 닿는 육신을 구축한 만큼 체내에는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핵이 존재했다. 다만 인간 같은 몸을 갖추고 있어 그 크기가 몹시 작았다. 하윤은 핵을 가르는 문을 만드는 대신, 핵에 닿는 위치에 문을 열었다. 곧장 손을 뻗어 몸에서 핵을 빼내자 순식간에 괴수의 육신이 허물어졌다.
호두알보다 작은 핵을 바닥에 던지고 짓밟자 내려오기를 망설이던 사람들이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를 괴수로 착각한 양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설득하는 게 몹시 피곤하게 느껴졌다. 하윤은 인파 속에 낯익은 모습을 보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너, 기준이 친구지.”
“……네, 네?”
“우리 집에 왔었잖아.”
그는 쌍둥이들의 친구였다. 쌍둥이들과 셋이서 집 거실, 그러니까 하윤의 영역에서 게임을 하던 기억이 있었다. 어찌나 신나게 하던지. 동생들 뒤에서 기웃거리는 게 창피해서 친구가 돌아갈 때까지 집 근처를 산책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 기준이 형이야.”
“혀, 혀형이라고요?”
“그래. 혀혀형.”
동생 친구의 흉내를 낸 하윤은 이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친구가 근처에 있으니 기준도 있는가 싶어 훑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따로 온 친구인가. 동네가 동네인 만큼 그럴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문을 하나 열어 줄 건데. 그 밖으로 천천히 나가는 거야. 다만 여기서 좀 먼 곳일 수도 있어. 뭐,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을 거야. 이 근처는 안전하지 않거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군. 하윤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험하니까 한동안 이 근처로 돌아오지 말라는 거야. 그래, 주변에 대피소가 있으면 거기 들어가 있어도 좋겠다.”
하윤은 그의 어깨에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친구의 손을 올려 주었다. 그러고는 차단문 옆 벽에 [문]을 만들고 연 뒤 그를 인도해 주었다. 밖이 나올 때까지 뒤돌지 말고,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아, 그리고 기준이랑 친하게 지내라. 따돌리지 말고.”
걔가 말은 가끔 재수 없게 하는데 나쁜 애는 아니라고. 평소 하윤답지 않게 역성을 한번 든 다음 동생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따라가는 사람도 따라가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그의 정체와 힘을 의심하는 것이리라.
이름과 소속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군 소속인지 길드 소속인지, 그것도 아니면 프리랜서인지. 그러나 딱히 대답해 줄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하윤은 그들을 무시한 채 기준을 찾아 나섰다. 좀 더 고생시킨 다음에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건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동생 친구는 내보내 놓고 동생은 찾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마침내 동생 기준을 찾았을 땐 그는 탁자 밑에서 휴대 전화를 부여잡은 채 질질 짜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기준을 찾으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왜 형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화내고 나무라려 했던가, 아니면 형 된 도리로 동생의 당황과 눈물을 놀리려 했던가.
“기준아.”
다만 확실한 것은 기준을 보며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둘 다 사지에 있지만 하나는 돌려보낼 수 있고, 그 하나가 동생인 기준이라서. 물론 그에게 효도를 기대할 순 없지만 그건 지하가 도와줄 것이다. 물론 지하만 힘들어선 안 되겠지만. 뭐 어쨌든 본래 유지하고 있던 가족의 형태가 일그러지진 않을 테니까.
[문]을 열어 기준을 서울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래도 [문]과 연결된 곳이 수원이라 돌아올 때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수중에 차비는 있어야 하겠지만.
‘아, 돈 좀 줄 걸 그랬나.’
그러나 정작 하윤도 현금을 들고 있지는 않았다. 괜히 뒤늦게 품 한번 뒤적이며 홀로 키득거렸다. 그의 웃음에 맞춰 그가 있던 층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은 이미 손상을 입은 뒤라 정체불명의 힘이 더는 작용하지 않아도 위험했다.
안전장치가 잘 작동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으나, 앞서 봤던 것들을 생각하면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윤은 머리털이 바짝 서는 느낌에 고개를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불안이 더욱 거세졌다. 자꾸만 위를 바라보게 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보이는 게 없었다. 지독한 불안감이 그를 괴롭힐 뿐.
문득 피 맛과 함께 가벼운 현기증이 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코피가 쏟아졌다. 기준을 내보낼 때 자신의 인식 범위 내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느라 피로했던 모양이었다.
‘건물은 또 왜 이렇게 높고 넓은지. 그렇게 내보내도 또 위층이 있고 사람이 있네.’
숙박 시설이 함께 있는 곳이라 미처 대피소로 이동하지 못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바닷속에서 힘을 갖고 오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일단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을 테니까.’
살아 있는 건지, 사람이긴 한 건지 분간하기도 해야 했다. 인간의 공포가 어찌나 다양한지 괴물들이 별의별 모양으로 다 튀어나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내보내고 있는데도 괴수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래에서보다 많은 정신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가령 지금 하윤의 눈앞에 있는 전기 코드가 뽑힌 라디오처럼 말이다.
“씨발, 별…….”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했고, 병력을 투입하지 못해 피해가 확산되리라는 말이나 일대가 통제되었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말 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살려 달라는 사람들의 비명을 쏟아 내더니, 이름 복잡한 괴수가 접근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전기 코드가 뽑혔음에도 방송은 계속되었다. 하윤이 라디오를 바깥으로 집어 던지자, 이번엔 TV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공포에 질릴 만한 모습이었다. 개수작이라는 걸 아는 하윤도 깜짝 놀랄 소리와 영상이 튀어나왔다.
곳곳에 남은 사람들로 얼마나 많은 것을 쥐어짜 낼지, 혹은 이들로 만족하지 못해 다른 곳을 찾아갈지를 생각하자 불안이 밀려들었다. 이 일대는 두려움을 먹이로 삼는 이계의 괴수가 몸을 드리운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사건과 별개가 아닌 관련이 있다면.’
예전에 하윤은 그 괴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가 씨를 뿌렸던 초능력자들이 터지리라 예상했었다. 실제로 하나씩 터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터지는 대상이 단순히 초능력자들만이라고 국한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만일 지금의 현상이 당시 괴수의 힘의 영향이라면.’
당시 괴수의 힘에 노출된 일반인들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말 그대로 터져 죽고 말았다. 이후 괴수의 일부는 무경에게 봉인되었고 나머지는 이계로 쫓겨났다. 괴수의 능력을 모두 걷어 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혹 그게 남아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스몄다면?
‘그게 아주 미약해서 목숨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면? 그래서 다른 초능력자들에게서처럼 힘을 키우고 있었다면?’
그게 지금 터져 나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혹시 무경이 봉인한 괴수에게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영향을 끼친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하윤은 무경이 불길하게 느껴지던 순간, 무경의 봉인이 흔들리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도.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었지.’
[문] 바깥에 있던 괴수는 자신이 아무리 떨치고 문을 뒤섞어도 길을 아는 것처럼 다시금 찾아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경에게서 풀려난 자신의 힘이 본체를 끌어당긴 것 같았다. 자신의 예상이 맞아 지금의 혼란이 그 괴수의 힘이라면, 괴수가 뿌려 놓은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무경이 가둔 괴물의 일부에도 영향을 끼치리라.
괴수의 머리가 몸뚱어리를 불렀듯, 이 부스러기들이 머리를 깨울 테니까. 절차 없이 봉인이 깨지면 무경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그 괴수를 이 땅에 다시 들이게 될 것이다.
그간 세운 계획이란 계획은 죄다 실패했는데 이것마저 실패할 순 없었다.
아니, 이것만은 실패해선 안 된다.
‘문지기 선배님, 성찰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공부가 필요했잖아요.’
세상에 혼란을 주어 스스로 몸을 나누는 대단한 존재였다면 대단했던 힘의 지식도 남겨 놓고 가시지. 그럼 지금처럼 헤매진 않았을 텐데. 하윤은 혀를 차며 다시금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 [문]을 박차고 나섰다. 모든 것을 서둘러야 했다. 마음이 몹시 급했다.
◇◇◇
“세상에, 저걸 어쩌면 좋아.”
역사 안, 커다란 스크린에서 그랜드 파라디스가 붕괴 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시민들은 건물이 쪼개지고 떨어지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며 연신 탄식을 쏟았다. 다만 직접적인 영향권에선 벗어나 있고 중계 영상이었기 때문에 다소 남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자식이 저기 있다며 절규하는 부모의 뒷모습이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꾀죄죄한 꼴로 연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자식을 찾으러 나왔던 사람 중에 몇몇이 눈물의 상봉식을 맞았다. 리포터가 급히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 사람들은 연신 이곳이 어딘지 묻고 또 무너져 가는 그랜드 파라디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조금 전만 해도 그랜드 파라디스 안에 있었노라고 말하며 그곳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다만 겪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횡설수설했는데, 어느 정도 단서가 될 만한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사람들을 줄 세워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으로 가라고, 나간 뒤에도 대피소에 들어가서 상황이 일단락되기 전까진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뉴스가 나오자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이 붕괴 중인 그랜드 파라디스 안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서울 곳곳에서, 혹은 경기도에서도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 사실일까?
그리고 역사에 있던 어떤 사람 또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몹시 궁금해했다.
“어? 다 써 버린 줄 알았는데. 남아 있었네.”
방송에서 나오는 일을 하려면 그가 아는 한 어떤 능력자가 아니면 안 됐다. 윤일호라는 사내는 습관처럼 안경을 올리려다가 자신이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빈손으로 뻐근한 가슴께를 문지른 그는 역사 밖으로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가만히 서서 부서지고 있는 그랜드 파라디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윤일호는 그랜드 파라디스가 아닌, 연기가 솟구치고 있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문]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날에는 [문]이 잘 열렸다.
다름 아닌 [문]이 허락했으므로.
그는 오랜 염원을 중얼거렸다.
“……나는 진짜가 될 거야.”
나야말로 진짜가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선 꼭 필요한 증명 절차가 필요했다. 그는 완벽한 날을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모양이었다. 마침내 맞이한 때를 기뻐하며 그는 걸음을 내디뎠다.
눈 깜짝할 사이, 윤일호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