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41화 (141/162)

141화

어둑한 저녁, 불어오는 바람에서 여름 냄새가 났다. 하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여름 저녁의 냄새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비록 여름과 관련된 추억은 묻혀 버린 지 오래였지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하윤은 가볍게 몸을 이완시키며 근처 편의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날이 더워진 탓인지 편의점 앞엔 야외 테이블을 설치해 뒀는데, 자리를 차지한 선객들이 한잔 걸치고 있었다. 지척에 다가가자 맥주 냄새와 안주인 냉동식품 냄새가 진동했다.

하윤은 웃고 떠들기 바쁜 그들을 지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인스턴트 죽 몇 개와 생수를 골라 들고 계산대에 다가가자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던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담배를 추가했다.

직원이 담배를 빼려 몸을 돌렸을 때, 무심결에 그가 들여다보던 휴대 전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뉴스 기사였는데, 무경이 동원되었던 지역의 괴수가 처리되었다는 내용과 무경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라니.

“봉투 유료인데 드릴까요?”

“아……. 예, 같이 주세요.”

짐을 들고 나오자 야외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길 건너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난을 쳤는지, 아니면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일어나는 게 민망해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냥 즐거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 기분의 정체를 알 수 없어 하윤은 멍하니 가만 서 있었다. 그러다가 휴대 전화를 꺼내 무경의 기사를 찾았다. 기사엔 출몰한 괴수를 처치하고 난 직후인지 얼굴을 찡그린 채 괴수의 피를 닦아 내는 무경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무너진 민간인 구출 작전에 동원된 듯한 기사가 추가로 올라오는 것을 보니 다행히도 부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찍힌 사진도 어딘가 아파 보이지는 않고 그냥 기분만 나빠 보였다.

‘아, 다행이다. 화는 좀 많이 나 보이는데.’

하지만 그것도 무경은 어지간해선 민간인에게 화내지 않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다.

하윤의 생각과 비슷한 댓글이 기사에도 달려 있었다. 하윤은 잠시 짐을 발 사이에 내려놓은 뒤,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왜 시비를 거냐는 대댓글을 달았다. 그러다 각종 인터넷 밈을 동원한 비꼼과 성인 방송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하는 답글이 달려 혼자 씩씩거렸다.

그러다가 백무경이 왜 해당 지역으로 차출되었는지 의문을 표하는 댓글을 발견했다. 그는 서울 인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백무경이 해당 지역에 출동한 것을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그 아래로 백무경이 사복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거나 인근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그를 봤다는 등의 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윤은 해명하려 댓글을 달려다가, 자신의 비루한 댓글 작문 실력에 실망하고 휴대 전화를 내려놓았다.

‘내가 해명해서 뭐 하게. 누군지도 모를 텐데. 그냥 집이나 가자.’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들자 처음 들 때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내려놓지 말걸. 하윤은 잠시 후회하다가, 자신이 하려는 일도 이와 비슷하겠다는 생각에 코웃음 쳤다.

“별생각을 다 하네.”

하등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아무 도움도 필요도 없는 그런. 하윤은 집으로 향하는 문을 어디쯤에 열까 생각하다가, 조금 전 술 취한 청년들이 사라졌던 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했던 기분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나는 걔네가 부러웠구나.’

하윤은 흥, 하고 자신을 가볍게 비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

집에 돌아와선 죽을 먹고 무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나처럼 답을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몇 번이나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 시간에 눈이라도 붙였으면 좋았으련만,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자정이 다 될 무렵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챙겼고, 라이터 챙겼고. 또 뭐 챙길 게 있나?’

“아.”

더 챙길 건 없고 놓고 갈 건 있었다. 하윤은 휴대 전화와 스마트워치를 풀어 거실에 탁자 위에 올렸다. 그대로 돌아서려다가 혹시나 싶어 휴대 전화 화면을 톡톡 건드려 확인했다. 역시나 연락이 온 건 없었다.

‘이제 진짜 가자.’

혹여 젖을까 봐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손전등은 지퍼백에 넣었다. 그랬더니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득 하윤은 홀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경이는 안 웃을 것 같긴 한데.’

다른 누군가였다면 하윤의 품에서 나는 비닐 소리를 듣고 웃었을 것이다. 하윤은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물이 그득 들어차 작은 암자로 가는 길이 사라졌고 그 위에는 남들 눈에 모이지 않을 [문]이 쌓아 올려지고 있었다. 파도 한 번에 몇 조각씩 밀려와 문에 붙었다.

문의 완성도는 암자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이라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기는 다 되어 가는구나, 여기는 아직 덜 채워졌구나. 하는 등의.

담배 연기와 한숨을 번갈아 쏟다 보니 어느새 때가 다 되었다.

바다 한가운데 [문]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

하윤은 막 불을 붙이려다 만 담배를 물고서 낮에 만들어 뒀던 샛길을 열었다.

문이 반쯤 허물어졌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위용이 느껴졌다.

문화재와 비슷한 모양새라 꼭 사극에 나오는 건물 같았다. 하윤은 그 앞에 서서 장난스레 [문]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리 오너라.”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이를 신호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양 [문]이 열렸다.

쿠쿠구구궁-!

진짜 문도 아닐 텐데 나무 문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너편의 바람이 훅 불어왔다. 고개를 든 순간, 하윤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문]은 통로가 매우 짧았다. 문지방을 아주 조금만 넘어가도 건너편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니 문만 열려도 건너편의 세찬 바람이 불어올 수밖에.

하윤은 발만 겨우 디딜 수 있는 통로에 서서 넘실거리는 검은 물을 응시했다. 겁이 덜컥 밀려왔다.

‘이건 좀 무서운데.’

낮에 왔을 땐 이렇진 않았다. 그저 파란 바다였는데, 주변에 샛길을 열려고 시도했던 흔적들만 잔뜩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숨어 있는 어떤 문을 열려 했을 것이다. 자격이 없어 찾지 못했을 문을.

“…….”

하윤은 자신의 발을 받치고 있는 턱을 내려다보았다. 문의 통로가,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이토록 짧은 이유가 있었다. 하윤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찌나 바람이 세찬지 담뱃불 하나 붙이기 어려웠다.

끙끙 애써서 담뱃불을 붙이고, 무서움을 흘려내듯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담배를 중간쯤 태웠을 때, 하윤은 스승 서이주가 남겨 둔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이 스스로를 공양하듯 바다로 뛰어내렸다.

혹시 아는가, 저를 가엾게 여긴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을 거대한 연꽃에 태워 지상으로, 나라님 앞으로 보내 줄지.

‘아,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첨벙 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에 짓눌리듯, 끌려가듯 아래로 내려갔다. 눈을 뜬다는 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머금고 있던 숨을 어쩔 수 없어 뱉어 냈을 때, 하윤은 거대한 문이 자신을 삼켰다는 것을 느꼈다.

물속에서 채로 훑어 내듯 하윤의 육신을 건지고, 또 다른 문이 하윤을 삼킨 문을 다시 삼키고, 그 문을 또 다른 문이 삼켰다. 수십, 수백 개의 문이 자신을 삼키고 또 삼키는 동안, 하윤은 허공에 떴다가, 바닥을 굴렀다가, 다시 물에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멈췄을 때는 물이끼 냄새가 진동하는 동굴 속에 있었다.

“켁, 커흡. 콜록.”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여태 잘 조절하던 숨이 엉켰다. 한바탕 요란하게 기침을 한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동굴 안은 그리 높진 않아서 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어갔을까. 하윤은 또 다른 문 앞에 다다랐다. 조금 전에 했던 것처럼 똑똑 문을 두드렸으나 이번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후…….”

가볍게 숨을 내쉰 뒤,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문을 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어째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열릴 것 같았다. 하윤은 아예 몸으로 들이박듯 문을 밀었다.

문은 그제야 조금씩 열려 마침내 간신히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

‘문 열다가 뒤지겠네.’

하윤은 틈새로 몸을 끼워 넣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고자 조금 서둘렀는데, 그 몸짓이 허탈하게도 문이 활짝 열렸다.

“……?”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의 왼쪽 손목이 빛나고 있었다.

‘대체 뭔지.’

어리둥절해하며 마냥 컴컴한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따듯한 바람이 훅 불어왔다. 하윤은 순간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다시 눈을 뜨자 봄을 맞은 들판과 작은 나무집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과 봄 냄새가 한데 뒤섞인 냄새. 계절을 기민하게 눈치챈 나무들이 사방에서 모양새 좋게 봄꽃을 틔운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 그냥 들판이 아니다. 저 나무집도 그냥 집이 아니야.’

누군가가 공을 들여 관리한 정원과 사당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할까. 답은 정원 한가운데 있는 사당이었다.

그때, 다시금 바람이 불어오고 먼 곳에서 얇은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꽃가지를 드리운 나뭇가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윤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이번에는 작은 옥 여러 개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하윤은 소리가 난 곳, 자신의 왼쪽 손목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서 다시 걸음을 내딛자 이번엔 짤랑거리는 소리가 좀 덜하게 들렸다. 대신 이상하게도 오른쪽 손목이 따끔거리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어.”

코피가 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정말로 코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조금 전보다 따듯한 바람이 불었다. 꽃가지를 드리웠던 나뭇가지들은 사라지고 가지엔 연둣빛 새순이 돋았다. 바닥을 그득 채운 풀도 아까보다 무성해졌다.

‘이건 마치.’

하윤은 지혈을 위해 코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그러나 길이 얼마나 남았나 싶어 고개를 들자, 어느덧 정원은 가을에 접어들었다. 자라나고 시듦을 확인할 새도 없이 눈을 깜빡인 순간 계절이 지나 있었다.

‘전래동화 속에 나오는 공간 같네.’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든, 혹은 서천 화원을 관리한다는 연이 도령이 튀어나오든.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윤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노려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분명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데도, 어떠한 전조 증상 없이 계절이 바뀌었다.

탐스러운 과실을 드리우고 있던 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하게 말랐고, 누렇게 물들어 있던 들판에는 어느새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하윤은 문득 현기증이 돌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에 파묻힌 채 숨만 겨우 내쉬었다. 오른쪽 손목은 이제 끊어질 것같이 아팠다.

“이……, 씨팔.”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추워서 몸을 벌벌 떠는 중인데도 식은땀이 줄줄 났다. 하윤은 피 맛이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코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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