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첫 출근이라서 힘든 줄 알았는데, 그냥 출근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새삼스레 깨달은 하윤은 집에 돌아와 자신의 방문을 열면서 그곳에 새로 만든 [문]을 열었다. 단번에 자취방으로 넘어간 하윤은 욕실로 들어가 속을 게워 냈다. 퇴근할 무렵 별생각 없이 사무실에서 주워 먹은 간식이 문제였다.
속에 든 것을 죄다 게워 내고 나자 몸이 고단하게 느껴졌다.
원룸의 단점은 코딱지만 하다는 것에 있지만, 그것을 장점으로 치환하면 뭐든 손 닿을 거리에 있다는 소리였다. 몸을 돌리기만 해도 욕실에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하윤은 방바닥에 드러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온갖 소리가 쏟아졌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배달 오토바이가 골목을 부지런히 누비는 소리, 그리고 남들은 듣지 못할 [문]의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그래도 밤은 밤인지라 낮만큼 이 소음들이 소란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까. 휴대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무경이었다. 하윤은 받으려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무경의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자, 그가 조금 창백한 낯으로 하윤을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하윤의 방을 정신없이 훑어보다가, [문]이 있는 장소를 부근을 서성였다. 하윤은 뒤늦게 그의 손에 들린 휴대 전화를 발견했다. 자신이 없어진 것을 빠르게 눈치채고 위치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왜 그랬어?”
“……?”
하윤이 의아하게 바라보았으나 무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화를 삭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더 말을 하지 않았기에 하윤은 상황이 일단락된 것으로 여겼다.
하윤이 그날 잠자리에 든 것은 새벽 늦은 시간이었다. 주운 이면지에 알아낸 것들, 알아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당장 서이주의 컴퓨터를 열어 보고 싶었으나 집에 있는 무경도 무경이고 최현진으로부터 프로그램을 좀 배운 뒤에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친 몸을 누이고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주방에서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경이 뭔가를 하는가 보다 싶다가, 이상하리만치 그 소리가 거슬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무거운 눈을 부릅뜨고 샛길을 내어 주방을 살폈다. 그러자 가전제품의 희미한 불빛에 비친 무경이 보였다.
그는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중식도를 꺼내서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아래 자기 손을 놓고 있었다. 피가 튈 것을 걱정했던지 주변에 비닐을 깔아 뒀는데, 그것이 부스럭거리던 소리의 정체였다. 하윤은 무경의 손을 낚아채는 것과 동시에 무경이 내리치려는 곳 위에 작은 문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무경은 하윤의 말리든 말든 중식도를 아래로 내리찍었다. 원래라면 무경의 손을 잘라야 했을 칼이 주방 벽을 찧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윤은 무경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가 칼을 놓도록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무경은 허공에서 덜렁 튀어나와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힐끔 보다가, 벽에 반쯤 박힌 칼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곤 칼을 뽑더니, 하윤이 만든 문 크기를 가늠하듯 팔 주변을 휘휘 저었다. 하윤은 자신이 잡아당기든 말든 마음대로 움직이는 무경을 속으로 욕했다. 온갖 새끼를 다 부르고 있을 때 무경은 평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놔 봐.”
“너 미쳤어?! 왜 그러는 거야!”
“놓으라니까.”
“어떻게 놔!”
“그럼 계속 잡고 있든가.”
“왜, 왜 그러는 건데.”
“그냥, 보기 싫어서.”
어떤 미친 새끼가 자기 손 보기 싫다고 한밤에 비닐 깔고 잘라 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힘이 세서 말려지지도 않았다. 자신은 자신의 죽음을 막던 [문]처럼 반응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다시 안 그럴게. 다시 안 그럴 테니까 제발 그러지 마!”
“…….”
하윤은 무경이 주춤한 사이 그가 쥐고 있던 칼날에 손을 뻗었다. 놀란 무경이 칼날의 위치를 바꾸려고 손을 틀었을 때 그의 손목을 때려 칼을 놓게 했다. 하윤은 무경이 놓친 칼날이 바닥에 떨어질 위치에 [문]을 열어 자신의 방으로 떨어트렸다.
“씨발, 너 진짜.”
하윤은 곧장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무경에게 달려갔다. 무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비닐과 도마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윤은 입술을 깨문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정리를 마친 무경은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성낸 자신만 이상한 모양새였다. 하윤은 한참을 더 씩씩거리다가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들라치면 자꾸만 비닐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결국 견디다 못해 안방으로 향한 하윤은 누워 있는 무경을 노려보았다.
화가 난 거면 화를 내든가, 분풀이가 필요하면 예전처럼 하든가.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묻자 무경은 그냥 잠을 설쳤다고 대답했다. 그저 그뿐이라는 말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이내 홀로 화내는 자신의 꼴이 너무나 우스워서 그만두었다. 자신이 했던 일도 있었고.
다만 무경이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어서 홀로 둘 수 없었다.
◇◇◇
무경을 혼자 둘 수 없었으므로 하윤은 무경의 집 안방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본래 하려던 작업도 개시했다. 공간 속에 옮겨 두었던 서이주의 컴퓨터를 꺼내서 안에 깔린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무경은 하윤이 뭘 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난데없이 나타난 구형 컴퓨터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지레 찔린 하윤이 먼저 자수했다.
“선생님께서 남긴 컴퓨터야.”
무경은 그게 어쨌다는 눈으로 하윤을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물었다.
“안에 뭐가 있었는데?”
“그냥 뭐, 이것저것 [문]에 관한 거.”
“자료 반출을 하셨긴 하셨군.”
“그런 셈이지.”
“제출할 생각은?”
“없는 건 아닌데 좀 더 있다가. 꺼내 온 장소가 장소다 보니.”
“그게 어딘데?”
“김희원이 있던 건물 지하.”
“……?”
“왜?”
“김희원이 있던 지하가 그 건물의 최하층이니까. 숨겨진 층이 더 있었군.”
“애초에 구린 장소니 그 밑에 뭐가 더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는데?”
“어?”
하윤은 눈을 깜빡였다. 무경에게 내내 숨기고 있던 것을 털어놓았던 그날엔 울고 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뭘 더 말했는지, 뭘 덜 말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 전에 점 보러 갔었다고 말했던가?”
“……네가 점을 보러 갔었다고?”
“어어, 그거 말 안 했나 보네.”
“…….”
“얼마 전에 점집 현수막을 봤는데 이상한 게 있더라고. 그게 문지기나 문지기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 [문] 좌표였거든. 서울 바닥에 파악되는 문지기가 김희원 아니면 난데 그 표시가 뭐겠어.”
“그래서 거기를 혼자 갔다? 제정신이야?”
“뭐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냐? 그냥 문 안쪽에서 엿보려고 간 거야. 그때쯤에 부모님 집에 갔었고 비슷한 표식을 집 근처 점집 현수막에서도 발견했어. 궁금해져서 안 갈 수가 있어야지. 그러던 중에 엄마가 선생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어머니?”
“선생님이 생전에. 그러니까 그 일이 있기 전에 갔던 용한 점집이 있다고 하시더라고. 혹시 알아?”
하윤의 물음에 무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니까 신기하게도 너랑 같은 학교 다닐 때 그날의 징조를 알아차린 사람이 사는 곳이더라고.”
“뭐?”
“우리 학교 선배네 집이더라. 그러니까 신빙성이 확 오지? 아무튼 그날엔 만날 생각이 없었어. 그냥 이 동네에 그 짓거리 해 놓은 현수막이 얼마나 있을까 확인해 보려고 했던 거지. 그러고 그냥 길바닥에 있었는데 만나 버린 거야.”
“…….”
“그러곤 어찌어찌 점을 보게 됐는데 내 팔자가 사납다더라.”
“왜, 굿이라도 하래?”
“굿해서 나아질 팔자면 보증금이라도 빼서 했지. 근데 그런 거 말고 쪽지 하나를 주더라고.”
“쪽지?”
“예전에 선생님이 내게 하셨던 말을 섞어 둔 쪽지였는데, 보자마자 내내 까먹고 있던 게 생각나더라. 거기서 나온 거로 찾은 곳에 갔더니 이런 게 있더라.”
하윤은 컴퓨터를 톡톡 건드리다가, 드디어 켜진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로그인하는 부분에서 서이주가 자주 쓰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는데, 비밀번호가 맞지 않았다. 머뭇거리며 비밀번호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자 무경이 다가와 대신 입력했다.
입력 횟수 제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무경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로그인이 되어 화면이 넘어갔다. 업데이트하라는 창을 무시한 채 둘러보자, 디자인엔 눈물 한 방울만큼의 성의도 넣지 않은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창에 검은색 궁서체 글씨, 오래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해도 정도가 심했다.
‘대체 언제 적에 만든 거냐고.’
그래도 확인하기는 편했다. 하윤은 서이주의 컴퓨터로 원본을 확인하고, 파일을 복사한 자신의 컴퓨터에선 버전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려 했으나 이력이 남는다는 무경의 말에 그만두었다.
화면에는 제작자의 인사말, 길 등록명부의 도시별 입력자료, 대략적인 위치 사진, 각 지역의 설화가 붙어 있었다.
하윤은 가장 먼저 서해를 살폈다. 백진하가 남긴 사진들 속 바다가 나오는 곳은 서해였고, 서이주가 결혼기념일을 운운하며 말했던 곳도 서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문의 위치를 적어 둔 좌표가 많지 않았다. 혹시 몰라 다른 바다도 살펴봤지만 섬 주위론 많아도 바다 한가운데는 없다시피 했다.
표시를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갈 일이 없었던 건지.
‘바다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사진을 찍었을 장소도 염두에 둬야 할까? 아니, 일단 바다에 집중하자.’
하윤이 노트북 지도로 좌표의 위치를 확인할 때였다. 내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경이 돌연 입을 열었다.
“넌 나한테 미궁이 다시 열릴 것 같다고 했지. 십 년 전에 분명히 닫았고, 다시 닫을 수 있는 재료가 없는데도.”
“…….”
“모든 것까진 아니어도 이쪽 방면으론 유일하다시피 알고 있는 게 많은 사람이고, 능력도 돌아왔으니 상황 돌아가는 게 찜찜해서 가만 못 있겠는 거 알겠는데.”
“…….”
“너무 열심히 하지 마.”
하윤은 무경을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네가 나서면 내가 뒤집어엎을 거거든.”
무경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라도 마시려는지 주방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하윤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해 봐라. 그게 네 마음대로 되나.”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짓거리를 하는데. 하나도 모르면서. 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멈춘 손을 다시금 재촉했다.
‘그래, 몰라라. 아주 평생을 몰라라. 알 필요 하나도 없으니까.’
무사만 한다면, 살기만 한다면 괜찮을 일이니까.
다시금 방으로 돌아온 무경을 힐금 바라본 하윤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번 주 주말에 서해에 갈 건데 같이 갈래? 바쁘면 나 혼자 다녀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