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26화 (126/162)

126화

하윤이 자신의 난데없는 취업 소식을 들은 것은 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한 날이었다. 쉬는 날이었는지 무경은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찾았다. 그는 씻고 있던 하윤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으나 왜 그렇게 보는지에 관한 이유는 알려 주지 않았다.

하윤은 어색해서 TV만 바라보았지만, 무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짐에서 손톱 줄과 뚜껑에 스포이트가 달린 작은 병 몇 개를 꺼내더니 하윤의 손톱을 손질했다.

“내가 나중에 알아서 자를게.”

“그럴까 봐서 하는 거야.”

“…….”

“너 손톱 막 자르잖아. 그렇게 자르면 안 되는데.”

그러더니 무경은 손톱에 살이 찔리거나 거스러미를 잘못 떼면 염증이 생기는데 이게 얼마나 성가신 줄 아느냐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윤은 잔소리하는 무경을 낯설어하다가 이내 계속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무경은 손톱 줄로 하윤의 손톱 밑까지 꼼꼼하게 훑다가, 정말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취업 이야기를 꺼냈다.

“취업? 내가?”

“그럼 누가 해?”

“아니, 그게.”

“뭘 조사해야 할 것 같은지 내가 알겠다고 했잖아. 취업은 그것 때문이야.”

“……?”

“살아남은 게 모르긴 몰라도 너랑 김희원 둘뿐인데, 그중에 제일 의심스러운 건 김희원이잖아? 너야 능력을 잃었다는 공식 기록이라도 있지만, 걔는 아니거든. 못 쓴다고는 하는데, 문지기의 능력이 사실 확인이 쉬운 것도 아니고.”

무경은 혹시 틀리냐고 물었고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긴 했으나 여전히 무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김희원이 능력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의견이 많아.”

“그럼 내가 어떤 자리에 취직이 된 건데? 도대체 어디에 들어갔길래 김희원을 이야기하고 조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

“너는 네가 말하는 그 [문]에 관한 걸 우리한테 알려 주면 돼. 현재 기관에 남은 기록이 거의 없거든. 이관된 기록은 있는데 이관된 장소엔 자료가 없어. 더군다나 미궁관측연구소는 없어지기 전에 한번 연소된 적 있었거든.”

연소됐을 때 자료의 일부가 사라지고, 연구소가 없어지면서 자료를 이관하며 또 일부가 사라졌다. 책임자 없이 세월이 지나자 일부만 남아 있던 자료조차 없었다.

“나라에서 관리한 일인데 그렇게 얼렁뚱땅 흘러간다고?”

“세상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렁뚱땅하게 넘어가는 일도 많아. 생각보다 큰 건도 어영부영 넘어가고, 또 어쩔 땐 작은 일에도 세상 꼼꼼하게 넘어가고. 뭐,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

“미궁관측연구소가 없어지면서 담당자가 없던 게 컸지.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임시 담당자만 여럿 거쳐 가다가 어느 순간엔 배정 업무에서 아예 누락되었다고 해.”

공무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업무가 과중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물론 지금 와서 보자면 어떤 의도가 썩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게 뭔데?”

“꼬리를 자르셔야 했던 분들이 더러 있었거든. 생각보다 그 사건에 연루된 분들이 많더라고. 개중엔 좋은 사업으로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지?”

무경은 비속어를 쓰며 그들을 비웃었다. 하윤은 그 말에 느릿하게 눈을 껌뻑였다. 최근에 발견한 서이주의 유서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해?”

“어?”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냥.”

“그냥 뭐?”

무경은 반대편 자리로 옮겨 하윤의 다른 손을 가져가며 계속 말을 붙였다. 하윤은 수다스러운 그가 낯설었다. 오랜 시간 자신이 말만 하면 입 닥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자꾸 말을 하려니 목구멍에 턱이 생긴 것처럼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도 무경이 돌연 입을 막고 침대에 처박을 것만 같아서였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 생각해도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다.

‘입 닥치라고 할 때도 말은 잘만 나왔으면서.’

무경이 내내 바랐던 반응이 이제야 튀어나오는 게 우스웠다. 하윤은 짧은 한숨과 함께 무경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냥. 선생님이 남기셨던 말이 생각나서.”

“……?”

“나한테 괜한 생각 말라고 하셨는데, 그게 이것 때문인가 싶어서.”

서이주의 유서를 보면 복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처음 읽을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혹은 무력으로 너무나 강력한 존재들이라 바위에 달걀 던지듯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무경의 말을 듣고 있자면 복수를 할 마땅한 상대가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고위층에겐 피노키오의 연구가, 문지기들의 죽음으로 빚어질 [문]에 관한 실험이 그럴듯한 사업으로 보였다던 말이 그랬다.

하기야 사람들이 [문]을 제대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취할 이득이 많았다. 물류나 각종 편의, 미궁에 대비하는 일 또한.

‘세상일은 생각 외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많다.’

작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커지는 일도 있다. 당하는 사람이야 이게 이렇게 될 일이 아닌데 싶어 억울하기는 하지만.

“……부질없는 복수, 그런 거.”

관련인 모두에게 달려들기엔 수가 많고 발만 얕게 담근 자가 많았다. 그러나 또 깊이 담근 자들에게만 복수하자니 그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걸 가려서 하면 복순가 싶긴 하지만, 또 지성 없이 달려들 순 없는 일이었다.

감정도 한정된 자원이다. 이제 하윤은 복수에 태울 감정이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아 있는 모든 건 다른 일에 예비되어 있었다.

‘이건 차마 말할 수 없지.’

하윤은 자기 손톱 거스러미에 집중한 무경을 힐긋 바라보았다.

“부질없는 것 같으면 하지 마. 잠깐만 손에 힘 좀 빼 봐. 손 빼려고도 하지 말고. 틈만 나면 빼려고 하네. 아직 멀었으니까 가만있어.”

무경의 손에 계속 잡혀 있다 보니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사실 지금도 손을 빼고 싶었다. 무경이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통에 하윤은 손을 펴며 힘을 풀었다. 애써 긴장을 티 내지 않으려 마른 입술을 축이며 농담을 꺼냈다.

“넌 진짜 선생님 아들이다.”

“……?”

“너무 똑같잖아.”

무경은 하윤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하기야 우스운 일이었다. 서이주가 변덕을 부렸다면 다른 씨의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나, 서이주의 배를 타고났으니 서이주의 자식인 것은 확실했으니까.

‘진하 아저씨 죄송합니다.’

하윤은 자신이 속으로 생각한 말이 패륜적 농담은 아닌지 잠시 고민하다가, 무경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붙였다.

“그런데 거기 자료가 없어진 거랑 내 취직이랑 무슨 상관인데?”

“자료가 사라졌던 게 이제야 알려진 이유가 뭐겠어?”

“……얼렁뚱땅?”

“이제 찾아봤단 소리야. 필요해졌으니까.”

“…….”

“정확히는 이삼 년쯤 됐어. 비슷한 기관이 생기면서 이전에 이관한 자료를 다시 모으는 과정에서 발견됐지. 자료 소실량이 너무 많다 보니 이관할 때부터 자료가 없어졌던 것은 아니냐는 소리도 있고. 아예 어머니가 빼돌린 게 아니냐 하는 소리도 있고.”

“…….”

“또한 어머니는 미궁관측연구소 폐지 이전에 기밀자료를 작성하여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어. 그래 봤자 죽고 없으신데 말이야. 아마도 사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사망 추정을 했으니 사실은 살아 있는 거다, 뭐 그런 걸 노리는 모양이야.”

덤덤하게 모든 혐의를 밀어 넣는 중이라는 무경의 말에 하윤은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만있었다간 눈이 떨리는 것을 들킬 것 같았다.

“무슨 자료였는데?”

“몰라.”

“어?”

“아무도 몰라. 뭔갈 써서 반출한 흔적은 있는데, 그게 뭔지 아무도 몰라. 정식 문건이 아닌 것 정도만 알 뿐.”

“…….”

“이런 상황이니만큼 네 중요도가 올라갔단 소리야. 물론 능력을 잃어서, 아. 이건 그쪽 입장. 능력을 잃은 지 십 년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너라도 데리고 뭐라도 써야 한다는 거야. 딱히 네가 뭘 어떻게 구체적인 자료를 남기지 않아도 좋아. 그쪽도 기대 안 해. 뭘 남겨야 할지 너한테 업무 지시도 못 할걸.”

백지 주고 생각나는 걸 천천히 써 보라고 할 수도 있다는 소리에 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더불어 둘 중 하나인 김희원에 대한 취급도 조심스럽지. 수상쩍은 것도 수상한 데다 아기 공장의 유일한 생존자 겸 증인이야. 그가 처했던 상황, 그리고 닥칠 상황을 고려해서 보호하고 있어서 그에 대해 반출되는 자료가 거의 없어. 원래 없기도 했고.”

“…….”

“네가 취업해서 [문]에 관한 걸 얼렁뚱땅 쓰는 동안 김희원과 접촉할 가능성이 커. 김희원이 가끔 하는 수상한 행동에 관한 자문을 맡을 수 있겠지. 그럼 김희원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될 사람이 누구겠어?”

무경은 손톱 줄로 하윤의 손톱 끝을 톡톡 건드렸다. 하윤은 얼떨결에 고개를 돌렸다가 무경과 눈을 마주했다.

“원래는 가장 하기 싫어서 모른 척했던 건데, 가만 놔두면 다른 놈이 시키겠더라고. 그건 도저히 용납이 안 돼서.”

무경이 말하는 다른 놈이 누구일지 너무 쉽게 짐작 가는 바람에 식은땀이 났다. 사실 하윤은 김희원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까먹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무경의 몸속에 있는 괴물만이 중요했으니까.

무경을 긁어 볼 겸, 박건영 핑계를 대서 팔찌가 있을 만한 곳을 뒤져 보려고 했다.

‘[문]이 열릴 것이다.’

자신을 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괴물의 머리. 괴물은 머리를 찾으러 온다. 하윤은 자신이 아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문을 닫기 위해선 문을 열어야 했다. 이 전제를 두고 하윤은 자신이 문을 여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에 들던 힘을 고려하면 감히 누가 엄두를 내겠는가 싶어서. 심지어 지금은 문지기가 몇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윤이 아는 다른 문지기는 오직 하나. 김희원밖에 없었다. 다만 하윤은 김희원이 문을 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왜?’

왜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그거야 당연히 그럴 힘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생각날 듯 말 듯해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만약 김희원이 내가 아는 김희원이 아니라면?’

하윤은 제페토 김득철과 김희원을 재회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하윤은 김희원을 보자마자 십 년 전 당시 김득철의 목적을 떠올렸었다.

‘김득철은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미궁을 연구하던 연구소에 잠입하여 문지기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문지기들을 죽이고 곡옥을 빼앗았으며, 인형을 만들어 살인을 은닉하기도 했다.

그는 과연 새로운 초능력자를 만들어 냈을까?

만들어 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에 언뜻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