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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117화 (117/162)

117화

정부의 공식 발표는 유례없는 폭우로 인한 수재와 더불어 댐 저수 속에서 단발성 게이트에서 출현한 수륙양형 괴수로 인한 피해라고 했다. 댐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방류한 순간을 노려 괴수가 탈출하였고 그 과정에서 댐 수문을 파손했다. 이것만으로 큰일인데 괴수는 물을 몰고 다녔다. 그 덕분에 땅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움직여 피해를 늘렸다.

아직 비가 그치지 않은 고로 전기나 화염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빙결 계열의 능력자를 급하게 수배하여 현장에 보냈으나, 그가 능력을 쓰기 전에 괴수의 물이 먼저 땅을 파고들었다. 땅째로 얼려야 하다 보니 범위 선정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방이라 수도권에 포진한 사설 헌터 길드의 협력을 얻어 내기 어려웠다. 전전긍긍하는 사이 괴수는 본격적으로 땅속을 휘젓고 다녔고, 이미 폭삭 내려앉은 집이 수십여 채에, 농작물이 심긴 밭은 그 피해 범위를 산출하기도 어려웠다.

정부는 실패한 조기 대응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한 해 농사를, 아니 언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땅을 두고 분노한 농민과 축산업 관계자, 참사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분노를 토했다.

안타까운 사연에 전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현장에 대한 정보 공개 제한, 통행 제한 등의 제재가 기름을 부었다. 이게 인재냐 천재지변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가 소속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꿰고 있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왜 이들을 동원하지 않았느냐며 이름난 초능력자들의 목록을 올렸다. 그중에는 얼굴이 제법 알려진 무경도 끼어 있던 탓에, 이번엔 그가 정신 오염을 이유로 벙커 시설에 자진 입원했다는 사실을 두고 또다시 논의가 불타올랐다.

자진 입소했을 정도면 상태가 괜찮은 것 아니냐부터 자기 아는 친척이 정신계 능력자라서 아는데 초능력자들이 보통 이유 없이 쉬고 싶을 때 격리용 벙커 시설로 입소한다더라 등의 갖은 뜬소문이 사실같이 퍼졌다.

이대로 대응하지 않고 사건이 종식될 때까지 수감되어 있다가 퇴소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떠한 방법을 택하더라도 그를 괘씸하게 여길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우선 퇴소할 수 있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고 뭐라 할 것이고, 진작 일을 이렇게 처리할 수 있었으면서 왜 피해를 늘렸느냐며 관련 기관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또 처리하지 못했을 시에는 늘 그렇듯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재산 피해와 목숨이 따르는 일에 호평을 받기란 늘 그렇듯 쉽지 않다.

그러던 중에 기관에서는 무경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정부는 대신 맞아 줄 샌드백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경은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경이 버텼더라도 입소해야 할 초능력자들이 많음에도 계급으로 특혜를 누리느니 어쩌니 하는 여론이 퍼졌을 것이다.

‘지금도 좀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무경은 무감한 눈으로 이동 중인 괴수를 바라보았다. 가끔 저수량이 많은 댐 속에 단발성 게이트가 열릴 때가 있다. 육지성 괴수가 나오게 될 때는 십중팔구는 사망하기 때문에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사체만 수거해 주면 된다. 물론 그 안에서 미궁이 열리면 강물이 죄다 빠져 버리는 참사가 일어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에서는 보고된 사례가 없었다.

대신 단발성 게이트에서 해수 괴수나 담수 괴수가 나올 때가 좀 귀찮아지는데, 이 경우 물만 잘 맞으면 게이트가 열린 곳에 정착해 버리는 게 문제였다. 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발견도 처리도 어렵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는 강과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여 복구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종의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괴수는 보고서 상으로는 저수지에서 몇 차례 관찰된 바 있는 철두갑동사리라고 되어 있었으나, 잡고 보니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철두갑동사리는 철두갑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단단하고 큰 머리가 특징인 어형 괴수인데 새로 나타난 괴수는 사람의 상반신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무경과 안면이 있었다.

“가관이군.”

정부가 현장 정보 공개를 꺼린 이유는 이번 괴수가 일반적인 괴수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꼴이 되었을까.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친 과학자에게 생체 실험이라도 당한 걸까. 그게 아니면 지금 보는 꼴을 증명할 수 있느냔 말이다.

[괴수가 포인트로 이동 중, 팔백 미터 전방! 깊이는…….]

열심히 철두갑동사리를 몰고 있는 부하들의 악쓰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무경도 숨을 죽였다. 그 애, 김하윤이 하던 식으로 작업해 둔 공간에 철두갑동사리가 들어온 순간, 무경은 공간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철두갑동사리가 공간을 탈출하려 물을 불러들이는 순간, 철침같이 날카롭게 만든 기운을 철두갑동사리의 머리와 몸통 사이로 밀어 넣었다.

“----------!!”

단번에 심장을 뚫다 못해 몸 밖으로 뜯어내자, 철두갑동사리의 사람 상반신이 몸을 뒤로 활짝 펼치며 비명을 질렀다. 아주 높은 소리라 귀가 찢어질 것같이 날카롭게 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뭍으로 건져진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완전히 뒤로 젖혀졌다. 그와 동시에 근처로 몰려들던 물도 갈 곳을 잃고 아래로 쏟아졌다. 무경은 근처 바위로 몸을 피했으나, 휘말린 부하들은 십수어 미터를 밀려났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진흙을 덮어써 꼴이 말이 아니었다.

“와이씨!”

부하 중 하나가 씩씩거리며 달려왔다. 이토록 자신을 고생하게 한 철두갑동사리의 사체에 기어코 주먹을 찔러 넣었다. 아직 신경이 살아 있었던지 그 충격에 철두갑동사리의 꼬리가 퍼덕였다. 주변에서 사색이 되어 난리를 피웠지만, 무경은 재차 철두갑동사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

무경은 그사이 무전으로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리고 미리 소지하고 있던 방수포로 괴수를 가렸다.

“이야, 이 자식 비린내가 무장 나네요. 피부에 진액도 장난 아니고. 박사들이 눈 뒤집고 서로 가져가려고 하겠습니다.”

“안다면 갖고 가고 싶겠지.”

무경은 방수포에 가려진 괴수의 이마에 붙어 있던 사람의 상반신을 생각했다. 그는 무경이, 더 정확히는 무경의 부친 백진하의 밑에 있었던 부하로 군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명절이면 이따금 집에 들러 무경과 하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었다.

백진하는 늘 그의 진급을 걱정했다. 군에 소속된 초능력자들의 계급이 물 진급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버티기만 하면 주어지는 것이라 해도 그 안에서도 순서가 갈리긴 했다. 강한 공격계 초능력자일수록 진급이 빨랐다. 그 말인즉 위에 암만 연차가 찬 선배가 있고 평가가 좋더라도 강한 초능력자가 후임으로 들어온 이상 그 후임을 최우선으로 진급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통솔 능력이 없고 조직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성이라면 이례적으로 진급을 누락시키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되는 경우보다 스스로 불나방 신세를 자초해 죽거나 군에서 나가 사설 헌터 길드로 이직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백진하의 부하는 물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이런 계열 능력자의 경우 능력의 평가 기준이 규모에 치중된 경우가 많았는데, 물이 특히 그랬다. 더 많은 물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자를 더 높게 치는 것이다.

그 부하는 그리 많은 물을 다루지는 못했다. 딱 자기 몸에 두를 수 있을 만큼이라고 했는데, 그게 물이 무서워서라고 했던 것 같았다.

“…….”

무경은 괴물에 박힌 상반신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 뻐끔거렸던 입 모양을 떠올렸다.

‘무서워, 무서워. 너무 무섭고 두려워. 무서워 무서워.’

그때 무전이 울렸다. 대답하지 않자 부하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그제야 상념을 끊은 무경은 현장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고는 기존에 없던 추가 일정에 대해 들었다. 피해 복구 현장을 도우라는 소리였다.

사실 말이 도우라는 말이지 그야말로 사진이나 좀 찍히러 가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현장에 있을 기자들이 몹시 거추장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자신을 두고 사진을 찍든 욕을 하든 뭘 하든. 어서 집에 보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서 김하윤을 보고 싶었다.

잔인한 김하윤, 야멸찬 김하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김하윤 곁으로.

“…….”

무경은 도저히 동감할 수 없는 생각에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

무경의 예상대로 피해 복구 현장에는 기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무경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일부러 자극하듯 요란하게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를 요청했다. 무경은 복구 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그들을 안전선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 다음 해가 저물고 다시 뜰 때까지 무너지고 떠내려간 건물을 현장 안전 요원의 지시대로 들었다가 내렸다가, 또 산산이 해체하곤 했다. 분명히 안전선 밖으로 내보냈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따라붙었다. 드론을 띄워 촬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민간인도 섞여 있었는데, 더럽게 말을 듣지 않았다.

덕분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초능력 서커스를 부린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무경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일이 고된 것이야 참으면 그만이고 화 풀 곳이 없어 제게 쏟아 내는 민간인이나 어떤 그림을 바라는 기자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김하윤을 보지 못하는 것, 딱 그거 하나가 너무 힘들었다.

그냥 걔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상처는 잘 낫고 있는지. 특히 감하윤의 손톱이 계속 생각났다. 이제 좀 자라 있을 텐데. 김하윤에게 맡겨 놓으면 그냥 짧게 썩둑 자를 게 분명했다. 자신이 관리해 줘야 하는데. 둥글게, 살을 찌르지 않게 자신이 조심스레 자르고 갈아 줘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가뜩이나 짧게 주어진 수면 시간을 더 짧게 보냈다. 이른 아침에 다시 작업하러 이동할 때, 김하윤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V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정말 쓸데없는 말이었으나 조금 우습게도, 아니 아주 우습게도 모나게 굳었던 마음이 녹았다.

‘아, 그래. 내가 아직 벙커에 입소한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연락을 않았구나.’

무경은 김하윤이 보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다만 답장이나 전화는 걸지 못했다.

이 또한 우습게도 답장이나 전화하려 하면 자신답지 않게 감정이 끓어올라서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넘쳐흐르면 도무지 돌이킬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무엇을 돌이키지 못하는지도 알 수 없었으면서도.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생각 모두 김하윤이 보고 싶었다.

정말로 사무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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