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전치우와는 평소에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 학년도 달랐고 그저 학교 복도에서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는데, 그 찰나의 기억을 이토록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를 마주친 장소의 특성 때문이었다.
에스퍼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기관.
그곳은 일반적인 무당, 그러니까 신내림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초능력과는 궤가 달라 별도의 검증 과정과 신원 보증인이 필요했다. 무작정 입학생을 받아 국가 예산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일반적인 초능력도 초중등 교육기관에서 검증하에 올라오긴 하니까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게다가 능력 특성 자체가 일반인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능력을 가진 당사자들이 입학을 선호하지 않았다. 일반인과 비교적 잘 섞이기도 했고 오히려 대부분은 일반인보다 초능력자들을 꺼렸다.
‘기가 세서 힘들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 입학을 하여 삼 학년에 재학 중이라면 상당한 능력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기가 센 초능력자들 사이에 끼여도 아무렇지 않고, 삼 학년까지 재적당하지 않을 만큼의 힘을 증명했다는 것이니까.
‘어쩌면 무속인이라기 보단 예지 능력자일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하윤은 그녀와 마주치던 날을 떠올렸다. 십 년 전 그날. 하윤은 교육기관의 계단에서 그녀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탄 냄새가 난다고 하다가 돌연 코를 잡더니 이내 연기를 들이켠 것처럼 켁켁거렸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지나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하윤은 문을 열고 무속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녀의 집을 확인했었다. 문이 열린 틈 사이로 스미던 향냄새와 방울 소리로 자신의 예상을 확신했다.
다만 미숙해서 거기서 멈춰 버리고 말았다.
‘그때 만약에 내가 좀 더 똑똑하게 움직였더라면.’
그때 뭔갈 알았다고 하더라도 미궁의 문이 열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서이주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서이주의 몸속을 뒤적이던 느낌이 다시금 선명히 떠올랐다. 하윤은 손을 맞잡은 채 뒷걸음질 쳤다.
‘정신 차려. 문을 닫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어.’
더 깊이 생각하지 말자. 이미 지난 일을 곱씹어 봤자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윤은 자신을 다그치며 입술을 짓씹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점집 현수막에 왜 전치우 집으로 향하는 좌표가 적혔는지가 문제지.’
하지만 이미 가슴이 철렁한 뒤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윤은 제자리걸음 하며 억지로 생각을 이었다.
‘좌표를 적은 건 노골적으로 문지기를 찾는 거야.’
그렇다면 누가 문지기를 찾고 왜 이곳으로 부르는가.
같은 문지기일 수도 있고 다른 존재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문지기의 번식을 위해 김희원을 잡아 두고 있던 일당들이라거나.
‘길 등록명부에 올라가 있는 좌표라 관련 자료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렴풋하게나마 해석해서 위치를 짚을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면 문지기가 직접 알려 줬다거나.’
하윤은 문득 모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엄마가 점집에 가기 며칠 전에도 그 무속인을 만났었다.’
오랫동안 맞추지 못했던 퍼즐 조각을 이제야 주운 기분이 들었다. 오래되어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어 들고 있기엔 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분이 봐야 할 정도로 큰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무엇이었을지는 하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그것 때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으니까.
하윤은 전치우의 집으로 향하는 좌표가 이제는 다른 의미로 읽혔다.
‘이제 나를 부르는 구나.’
물론 처음 생각한 대로 그냥 누구든 문지기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김희원일수도, 아니면 이름도 모르고 존재하는 줄도 모르겠는 다른 문지기일 수도 있었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알아보지 못할 퍼즐 조각을 쥔 건 자신 하나뿐이었다.
‘나 또한 그분을 봐야 할 정도로 큰일을 앞두고 있기에.’
하윤은 최근에 꾼 꿈을 떠올렸다. 그날처럼 께름칙해서 잠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확실히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착각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착각이면 좋고 착각이 아니라면 위험하다.
그때처럼 문에 관련된 꿈이었으니까.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어. 내가 흩트려 놓은 길을 아는 것처럼.’
하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자신이 꾼 꿈이 그때처럼 미궁과 관련이 있다면 또다시 이 땅에서 미궁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미궁이 열리는 게 큰일이긴 해도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어쩐지 문밖에 있는 것이 낯설지 않았었는데.’
혹시 그놈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윤은 가설을 세웠으나 근거로 댈 만한 게 자신의 감뿐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놈을 다시 불러올 수가 있나? 이제 문지기라고 해 봤자 나랑 김희원밖에 없는데.’
[문]을 다시 열기 위해선 일단 그놈이 있는 세상과 이쪽 세상의 [문]이 겹쳐야 한다. 긴다리불가사리가 있던 세상같이 주기적으로 [문]이 겹치는 세상이 아니라면야 사실상 힘든 일이었다.
‘그런 놈이 있는 세상이 주기적으로 자주 겹쳤다간 세상이 망했어도 진즉 망했겠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좀처럼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긴다리불가사리가 있던 세상의 문이 열리다 못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리고 거기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도.
‘난 도대체 어디서 익숙함을 느낀 걸까. 뭔가가 가까워지면 떨쳐 내던 상황? 아니면 떨쳐 낸 존재?’
생각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일단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볼까? 점집이면 드나드는 손님 정도는 있을 거 아냐.’
일반 가정집을 엿보기엔 하윤의 아주 작은 양심이 그를 아프게 했다. 혹여 아주 개인적인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현관 정도만.’
사실 산당 안을 볼 배짱은 없었다. 어느 신을 모시든 사기꾼이 아닌 진짜들은 그들의 신을 모신 신당을 굉장히 신성시했다. 물론 사기꾼들이나 망상에 빠진 자들도 신당을 신성시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경외는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제대로 된 신자들의 경외는 신당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했다. 보통은 느끼기 힘드나 공간과 관련된 초능력자들 사이에서는 곧잘 나오는 소리였다. 왜, 있지 않은가. 들어가기만 해도 경건함이 밀려오는 곳. 삿된 것을 도무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곳.
이곳의 신당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열려면 열 수 있는데 주인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 괜히 눈치가 보였다.
‘뭐 어쨌든 선생님이 말했던 대로 대단한 집은 맞는가 본데.’
괜한 찝찝함에 현관을 확인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는 고로 아주 작은 틈을 내어 재빨리 현관만 훑었다. 분명 손님을 받는 곳일진대 현관에 신발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은은하게 향냄새는 났으나 이전엔 들었던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다.’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 내내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인지 뒤 목이 얼얼했다.
‘나도 아직은 만날 때가 아닌가 보다.’
하윤은 문을 닫은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씨발. 이 쫄보 새끼.’
하윤은 스스로가 비웃음을 토했다. 이대로 자취방에 돌아가 청소나 하자 싶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오늘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현수막에서도 좌표가 표시되어 있는지, 혹은 같은 곳을 가리키는지 등 비슷한 경우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처음 현수막이 걸렸던 구의 현수막 게시대를 확인했다. 서른여 곳의 게시대에 점집 광고가 걸린 곳은 그중 여덟 곳 정도였고, 그중에 표시가 있는 곳은 세 곳이었다. 두 번째로 발견된 곳의 구를 확인하자 이번엔 두 곳 정도로, 발견했던 것을 제외하면 한 곳이 더 있었던 셈이었다.
다른 구도 알아볼까 싶었으나, 조금 지친 나머지 조금 쉬기로 했다.
‘그럼 부모님 댁 근처에선 두 곳, 무경이 집 근처에선 여덟 곳인 셈인가. 무경이 집 근처에는 예전에 다른 부동산도 있는 걸 의식한 걸까? 선생님한테 정보를 받았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집 근처라고 하기엔 사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서울을 기준으로 두면 가까운 셈이었다.
‘정말 나를 찾는 것이라면 내가 보기 쉬운 곳에 게시했을 테니까. 그럼 자취방 근처도 찾아봐야 할까? 하지만 단순히 연락체계가 그쪽에 몰려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니면 일단 전치우 집 말고 표시가 있던 곳 중 한 곳에 들어가 볼까.’
전치우 집에 바로 가는 것은 아무래도 담력이 필요했다. 마침 쉬기로 결정한 곳이 마침 부모님 집 근처에서 발견한 표시가 있는 점집 중 한 곳과 가까웠다. 하윤은 뒤돌자마자 보이는 점집 간판을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한번 가 볼까?’
호기로운 생각과는 달리 하윤은 점집이 있는 건물 앞에서 얼쩡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건물에서 내려왔다.
하윤은 자신이 길을 막는 줄 알고 곧장 몸을 돌렸으나, 내려온 인물이 이를 말렸다.
“대낮에 달이 뜬 줄 알고 놀라서 내려왔는데. 손님이 있었네요.”
“……손님이요? 제가요?”
주름이 없어 사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싶었으나 목소리를 들으니 사십 대를 훌쩍 넘은 것 같았다. 머리는 서양식으로 올렸는데, 머리 장식은 자개나 칠보 등 전통 장식을 사용했다. 대신 옷은 또 꽃장식이 화려한 원피스였다.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데, 요 앞을 맴돌고 있으니까. 우리 쪽 용건인 줄 알았죠.”
“우리 쪽이요?”
“예. 저기 신당.”
중년인은 하윤이 심란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간판을 가리켰다. 이쯤 되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윤은 한숨을 삼키며 앞서가는 중년인을 따라갔다. 물론 중간에 걸음을 멈춰도 봤으나, 그럴 때마다 중년인이 돌아서서 그를 향해 은은한 웃음을 지었다.
중년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안은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신당이라는 이름보다는 사주 카페와 비슷해 보였다. 카운터에 커피머신과 간단히 타 먹을 수 있는 차 종류와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레이스 식탁보가 씌워진 테이블과 등받이 덮개를 씌운 의자가 있었다.
벽에는 가격표와 보는 점사의 종류가 쓰여 있었는데, 사주를 비롯하여 타로 카드도 봐 주고 있었다.
‘타로 카드……?’
벽보를 보고 하윤이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때,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안에 계신 장군님도 깜짝 놀라신 것 같아.”
“장군님…….”
“커피 마실래요? 믹스커피도 있고, 커피 머신도 있어. 젊은 애들은 아메리카노 먹던데.”
“아, 괜찮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아, 그럼 제가 그냥 마실게요.”
하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직접 물을 떴다. 목이 말랐던지 큰 종이컵을 한 잔 다 마시고도 반 잔을 더 마셨다.
다시 자리에 앉자 건물 안쪽 방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빙그레 웃다가 작게 손뼉을 쳤다.
“내 정신 좀 봐. 소개를 안 했네. 나는 김옥림이예요. 모시고 있는 분이 말씀하시면 간단히 사주도 좀 봐 주고 길일도 봐 주고. 피해야 하는 날도 좀 짚어 주고 그러는 사람이에요. 여기 왔으면 알겠지만.”
“…….”
“귀한 분이 뭔가 갑갑한 일이 있나 보지요?”
하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
“올해는 영 운이 없는 것 같아서 운세 좀 보려고요.”
“토정비결?”
하윤은 이번에도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옥림이라고 불린 중년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앞뒤로 휘청거렸다.
“안 돼. 지금은 그런 거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 그럴 수 없지.”
“왜 그렇습니까?”
“자네는 그런 걸 물을 사람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