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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110화 (110/162)

110화

“점은 왜 보려고?”

“그냥……. 올해 운수가 좀 안 좋잖아요? 가슴이 갑갑한 게 어디든 가서 물어보다 보면 낫겠다 싶어서요.”

하윤의 말에 모친은 한숨과 함께 혀를 찼다. 그녀가 봐도 하윤이 운수가 사나워 보였기 때문이리라.

“아까도 말했지만 용한 데를 가야 해. 괜히 이상한 데 가면 돈만 뜯겨.”

“뭐, 아는 곳 있으세요?”

“몇 군데 괜찮다고 들은 곳은 있는데…….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런 쪽은 잘 맞는 때가 따로 있다잖아.”

“…….”

“너야말로 없어? 동창 중에 그런 쪽도 몇 있었을 거 아냐. 그런 사람들이 진짜라고 하던데.”

“아…….”

하윤은 모친의 말에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모친의 말대로 예지 능력자들은 진짜라고 불렸다. 문제는 그들이 모친이 앞서 말했듯 잘 맞추는 때가 있어 능력을 잘 잃는 편이었으며, 꾸준히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국가에 소속되어 일반인의 점사를 보지 않았다.

그들은 진짜이기 때문에 예지한 뒤에는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것은 하윤도 예지 능력자가 아니라 알지 못했다.

“그쪽으론 따로 연락한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네. 근데 무경이는 알지도 모르겠다.”

“하윤아.”

“응?”

“……요즘도 무경이랑 잘 지내?”

“……?”

“이제 떨어져서 지내잖아. 아니야?”

또다시 신호에 걸렸다. 하윤은 가려던 마트의 심볼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쯤 되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모친이 일부러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목적이 지금의 대화라는 것 또한.

“요즘엔 뜸하죠. 뭐. 걔도 바쁘고 저도 바쁘고.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나쁘진 않아요. 전에도 미역국 얻어먹었고.”

“그거는!”

“……?”

모친이 바락 지른 소리에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거는 자기 생일 겸 끓였겠지.”

하윤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일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정말이에요. 예전보다는 나아요. 걱정하시는 일도 없고요.”

“…….”

“진짜 산에서 미끄러진 거예요. 맞은 게 아니라.”

하윤이 대답하기 무섭게 차는 아예 갓길에 섰다. 하윤이 바라보자 모친은 핸들을 꽉 쥔 채로 말을 이었다.

“정말 미끄러진 거야? 아니면 네가……. 네가.”

“…….”

“직접 뛴 거야?”

하윤은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문득 거짓말을 자주 해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미끄러진 거예요. 나쁜 마음 먹고 산에서 뛰어내렸으면 뼈 정도는 부러졌겠죠. 이것 봐요. 좀 긁히기만 했지, 멀쩡하잖아요. 이 정도는 뭐 이 차 높이 정도에서 미끄러지면 그냥 생기는 거고요.”

“……그럼 혹시 무경이가 미끄러지게 한 거 아니야? 걔 능력으로 그럴 수 있잖아. 너한테 직접적으로 들게 하는 건 안 되더라도 발치에 갖다 둬서 넘어지게 할 순 있는 거고.”

“엄마.”

“…….”

“엄마. 진짜 아니야. 걱정하지 마요. 진짜 그냥 운이 없어서 그랬어.”

하윤은 모친의 팔을 살짝 흔들며 달래려 애썼다. 모친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하윤을 보지 않았다. 이마를 짚은 채로 입술을 짓씹다가 눈을 질끈 감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여태 괜찮다고 한 게 괜찮은 적이 없었잖아!”

“…….”

“옛날에 멍 자국 남아서 왔을 때도 너 그거 무경이가 한 거 아니라고 그랬어. 무경이가 마음먹고 때리면 머리 터졌을 거라고. 근데 그거 무경이가 한 거 맞았잖아.”

“아, 엄마. 그건 진짜 옛날에…….”

“네가 그 뒤론 숨긴 거잖아. 그래서 집에 안 온 거잖아. 내 말 아니야?”

“…….”

“언제까지 거짓말할 건데. 언제까지 미안해해야 하는데. 걔는 대체 얼마나 해야지 성에 찰 건데? 다 잊었다면서. 그럼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다 잊었으면 억울한 것도 잊어야지. 엄마 아빠가 살아 있어서 그래? 자기는 부모님 다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다고 그래?”

“진짜 아니에요.”

“맨날 진짜 아니에요. 뭐가 아닌데. 대체 뭐가 아닌데 하윤아. 너 진짜 걔한테 해 줄 만큼 했어. 무경이 아직도 기억 못 하잖아. 십 년이야. 십 년. 그거 안 돌아와. 절대 안 돌아와. 못 돌아와. 어떻게 돌아와? 돌아온다 한들, 지가 여태 쌓은 게 있는데 그걸 다 감당이나 하겠어?”

하윤은 모친인 이인영이 무경과 서로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가시를 세울 줄 몰랐다. 이전에는 하윤이 학교와 직장을 핑계 삼아 얹혀사는 것이나 서이주 부부의 사망에 나름의 부채감을 느껴 챙겨 주려고도 했으니까.

“……산 사람이 살아야지. 죽지 않고 살았는데, 살아야지 그럼.”

죽지 못했으니 살아야지. 죽지 못하면 살아야지. 아직 머리에 들어찬 생각 때문에 도무지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윤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진짜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무경이가 괴롭혔으면 따로 나와서 산 지 몇 달 만에 그럴 필요가 있나. 같이 살 때 그랬겠지. 그리고 걔도 나이 먹어서 좀……. 좀, 뭐랄까. 점잖아졌어요. 맞아, 이제 좀 철든 것 같기도 하고.”

인영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화를 삭여 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나도 좀 들어야 하고.”

“……네가 뭐 어때서.”

“엄마 이렇게 속상해하는 거 보면 내가 철이 덜 든 거지, 뭐.”

“…….”

“괜찮아질 거예요. 어떻게 하든 이제 옛날보단 낫겠지. 안 그래요?”

“말이나 못하면.”

인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이내 하윤의 말이 맞노라고 말했다.

“그래, 괜찮을 거야. 그리고 일이 너무 안 풀린다고 걱정하지 마.”

인영은 걱정은 하면 할수록 복리 이자같이 늘어나서 나중에는 본래 걱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진다고 했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걱정했던 것보다 덜한 경우가 많고 꼭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 때도 많다고 했다. 밤을 새우면서 수만 가지의 상황을 생각하겠지만, 일이 일어났을 땐 그중 하나의 경우로만 나타날 뿐이라고.

물론 다른 일도 함께 몰려올 수 있지만, 어쨌든 걱정이든 돈이든 딱 빌린 만큼만 갚는 게 남는 장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이주 언니가 용한 곳이라고 알려 준 곳이 있었어. 그런데 거기가 진짜 용한 곳이라 내 운때가 맞아야 볼 수 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거기가 예약도 안 되고 하루에 한 명 볼 때도 있고 다섯 명 넘게 볼 때도 있다고 그랬거든.”

“……?”

“처음에 갔을 때 당연히 실패했지. 그런데 몇 번 더 가도 실패하는 거야. 갑갑한 일이 있어서 소개받은 거니까 얼마나 속이 탔겠어. 그래서 이주 언니한테 문 닫은 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건 또 아니래. 자신 며칠 전에도 만났대. 그러고선 하는 말이 오히려 그게 좋은 거라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나한테 닥칠 일이 그분 볼 정도는 아닌가 보다고 하더라고.”

“선생님이요?”

“그래. 언니가 그랬어. 그 정도 일이면 내가 알아서 해낼 거래. 일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괴롭고 힘든 건 내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래.”

“…….”

“하윤아, 나는 네가 너를 너무 안 괴롭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적당히 피하면서 살아. 철부터 들지 말고 요령 먼저 부려. 응?”

“…….”

“하윤아, 대답해야지.”

인영의 박력에 하윤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멈췄던 차는 다시 움직이고 어느새 마트 앞에 다다랐다. 하윤은 차에서 내리다 말고 인영에게 지금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엄마, 그런데 그 점집이 어디예요?”

◇◇◇

하윤은 마트에 들러 청소용품과 교체해야 할 안전 장비들과 구비 물품들을 샀다. 당장 구매하기 힘든 창틀이나 유리는 카탈로그를 받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친과 함께 기름칠을 해야 하는 곳은 기름칠하고 교체가 필요한 곳은 교체하는 등 전체적으로 손을 봤다.

그 외에도 더 사야 할 장비가 있다면 체크해 놓고 받아 온 카탈로그에서 괜찮은 제품을 추천했다. 만약 부모님이 구매를 꺼리신다면 그냥 하윤이 부담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아직은 쓸 만한데.”

“그냥 방한 방음이면 아직 쓸 만한데 이건 안전 때문에 그런 거니까요. 요 몇 년간 방호벽 내린 적도 없는 것 같고.”

“괜히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집 곧 재개발 들어가는데 베란다 창 갈면 돈 꽤 나올 텐데. 아깝기도 하고.”

복작거린 탓일까.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기준이 방에서 기어 나와 하윤과 부친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친도 기준의 말에 재개발 때까지 방호벽 내릴 일이 또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하윤은 흔치 않게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돈을 내겠다고 하자 부친은 허 참 허 참 거리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기왕 설치하는 것이니 제품을 더 고민해 보고 고르자고 했다. 하윤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집을 나오자마자 곧장 주문을 넣었다.

가장 빠른 일정으로 예약한 다음, 자취방에 들렀다.

자취방은 엉망이리라는 생각에 부합하는 꼴을 하고 있었다. 흙과 낙엽, 돌멩이가 널브러져 있고 핏자국이 흉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하윤은 사 온 청소 용구를 바닥에 던져 놓은 채 모친에게서 알아 온 점집 주소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아예 문을 나서진 않고 통로 속에서 문밖을 응시했다. 자신이 연 길을 가로지르는 길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하윤은 실소를 터트렸다.

‘02#16-15-571-34516정.’

02#16-15-571의 위치에서 정 씨가 열어 34,516번째로 미궁 관측연구소의 [길] 등록명부에 등록한 길이 향하던 곳.

“하, 씨발…….”

하윤은 표정을 굳힌 채 길 끝에 있는 집을 응시했다. 심지어 그곳은 하윤이 한 번 본 적 있는 집이라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기억을 더듬자 그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 탄 냄새.’

“……전치우의 집.”

진짜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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