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하지만 연결음이 길게 이어지도록 무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늦는가 보다 싶었지만, 열 시가 넘어가자 조금 초조해졌다. 열한 시가 될 무렵에는 이대로 날이 지나가 버릴 것 같아 속이 탔다. 하루를 삼십 여분 남겼을 무렵에 하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무경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린 게 다섯 번. 그사이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렀다. 마지막으로 생각하며 한 번 더 걸었을 때 비로소 통화가 연결되었다.
하윤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곧장 무경의 질타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통화가 연결된 것도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걸까 싶었으나 그러면 오늘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았다. 하윤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무경아, 생일 축하해.”
여전히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계를 돌아보았다.
이제 정말 오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괜히 온다고 말을 꺼내서 불편했겠다.”
본래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 오래 까먹고 있었다. 희원이 돌아와서 더는 예전같이 미움을 세우지도 못했을지도 몰랐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난 먼저 집에 가는 중이야. 내가 신경 쓰여서 못 오는 걸까 봐 전화 남긴 거야.”
집에 가는 중이라고 말했기에 하윤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혹여 무경이 금방 돌아와 버릴까 봐 초조해졌다.
“건강하게 잘 지내. 희원이한테도 안부 전해 줘. 이제 끊을게.”
인사를 남겼으나 하윤은 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혹 다른 소리가 들릴까 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별 소린 들리지 않았다. 무경은 실수로 전화를 받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작금의 제 꼴이 우스웠다.
하윤은 소리 없이 웃다가 전화를 끊었다.
‘두고 가면 분명 손도 안 대겠지.’
하윤은 차린 음식을 서둘러 정리했다. 다 버릴 것이라 큰 통에 대충 모으기만 하면 됐다. 다만 국이 문제였다.
하윤은 국을 분리해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숟갈 떠먹었다. 펄펄 끓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식으니 소금국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무슨 청승이냐.’
미역국 얻어먹었다고 모친에게 거짓말한 것도 웃기고, 마지막이랍시고 무경에게 생일 밥 차려주려던 것도 웃기고, 그 와중에 미역국에서 나는 해괴한 맛도 웃겼다. 거기다 퇴직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정작 퇴사일이 다가온 줄 모르고 있던 것도 웃기고, 급여일을 맞추기 위해 퇴직을 하루 미룬 것도 웃겼다.
‘뭐가 이렇게 죄다 얼렁뚱땅 넘어가냐.’
“진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냐……. 한심한 새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사람은 자신이 뭘 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자신이 무경의 생일상을 차렸는지 모를 것이고, 자신이 생일 다음 날 뭘 하려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기준에 맞춰 어영부영 일하는 줄도 몰라 비웃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 모르는 게 다행이지.’
하윤은 미련 없이 미역국을 개수대에 쏟아부었다. 건더기에 물기가 많아 한 번 더 짜서 버려야 했다. 그 탓에 손을 씻어도 씻어도 미역국 냄새가 났다.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몇 번이고 참으며 [문]을 통해 음식물을 버렸다.
정리를 다 마쳤을 땐 생일은 어제가 되어 버렸다.
빠진 게 없는지 냉장고를 열어 확인하던 하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케이크를 발견했다. 마저 버리려다가, 다시 냉장고 안에 넣었다.
선물을 사면 괜히 유품이 될 것 같아서 사려다 말았는데, 음식은 상관없겠다 싶었다. 무경이 꺼내 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집을 관리하는 도우미분이 냉장고를 정리해 주실 테니까.
하윤은 근처에 있는 메모장에 간단한 축하 메시지를 써서 케이크 상자에 꽂아 넣었다.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축하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냥 집에 갈걸. 마지막으로 부모님이나 뵐걸.”
하지만 시간을 돌리더라도 하윤은 모친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서였다. 이를 무경의 경우에 대입하자 아차 싶었다.
‘그래, 걔도 무슨 죄냐. 괜히 찝찝하게.’
아니, 자신은 어쩌면 무경이 찝찝하길 바랐을지도 몰랐다. 본래 자신은 이기적인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러게 제대로 좀 키우지.’
자신이 이기적으로 큰 것은 무경이 쌓은 업보였다. 간도 쓸개도 빼 줄 것 같이 키운 바람에 나약하기 짝이 없게 자란 것이다. 윽박도 좀 지르고 구박도 했으면 지금 같이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 잘됐다. 집에 안 와서 다행이지.’
집에 오지 않은 무경이가 맞았다. 하윤은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다가 주반 근처에 있던 [문]을 열었다.
물론 곧장 집으로 가는 문이 아니었다. 하윤은 수고를 감수하고서 몇 개의 문을 거쳐 흔적 없이 집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스물일곱이 된 밤치고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
저녁에 잠깐 졸 때마다 꿈을 이어 꿨던 것과 달리 밤엔 곱게 잠들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개운하게 잠을 깼다.
날 또한 어찌나 싱그럽고 좋던지. 하윤은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출근을 준비했다. 더는 쓸모없어진 옷가지들과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주변을 쓸고 닦았다.
그런 다음 회사에 출근해선 간단한 업무를 돕다가,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부터는 물건을 정리했다.
짐 정리만으로 끝날 줄 알았으나 퇴사 절차는 조금 더 남아 있었다.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 출입 카드를 반납하는 등, 별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들을 좀 더 한 뒤에야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 마지막 식사라도 하자며 권했지만 사양하고 회사를 벗어났다. 송별회는 박 대리와의 일을 어찌 풀어 주고 싶었던 주변의 성화에 미리 당겨서 했다. 이것 또한 얼렁뚱땅 넘어간 일 중 하나였다.
그것이 하윤의 삶에서 마지막 회식이었다. 더는 하고 싶지 않아 좋게 어르는 말에도 단호히 거절했다.
회사를 벗어나 집 근처로 곧장 이동한 하윤은 남은 쓰레기를 정리했다. 봉투를 묶어 밖에 내놓고 각종 요금을 정산하고 나자 그제야 좀 주변이 정리된 것 같았다.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별거 아니네.’
하윤은 긴 숨을 내쉬었다. 버겁게만 여겨지던 일이 조금씩이나마 착착 정리되자 마음이 좋았다. 하윤은 마지막으로 자주 가던 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속을 든든히 채우자 하나 남은 일도 잘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가 보자.’
하윤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어디로 할까?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서울을 벗어나기로 했다. 하윤이 걸음을 내딛자 서른네 개의 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길을 만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거리에서 사라진 하윤은 빠른 속도로 서울을 벗어났다.
서른네 개의 문을 지나자 파랗게 잎을 틔운 나무들이 하윤을 반겼다. 아직 여린 잎에 어린 햇살이 기분 좋게 하윤을 간지럽혔다.
‘일단은 곡옥이 그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할 텐데.’
김득철은 문지기들을 죽이고 곡옥을 빼앗아 팔찌를 만들었다. 김득철 본인이야 생사가 불분명하다지만 그와 한패였던 자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또한, 십여 년 전 못다 이룬 것을 다시 이루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하윤 본인의 곡옥이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또다시 괴상한 팔찌를 만들 수 있으니까.
하윤은 그 팔찌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문을 열지 못하면 닫을 수 없다.’
자신이 팔찌를 이용해 문을 ‘열었고’, 또 문을 ‘닫았다.’
팔찌는 문을 닫자마자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고 하윤의 곡옥도 부서져 더는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문지기가 많이 죽은 해에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생겨난다.”
그리고 십여 년 동안 하윤의 몸속에서 다시 짜 맞춰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반대로 강한 문지기가 죽으면 문지기가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그들은 강하지 않다.”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미 아는 내용을 말하는 것처럼 익숙하지만, 내용은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하윤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말하는 건 자신인데, 머릿속에선 서이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고갯짓을 따라 주변 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잘하게 퍼져 있을 땐 뭉쳐지지만, 뭉쳤다가 깨졌을 땐 자잘하게 흩어진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왼쪽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윤은 손목을 움켜쥐는 대신 고통을 내버려 두었다.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 서이주가 살아 있었을 때. 그녀는 어느 날 하윤에게 노란 부적이 붙은 목함을 건넸다. 당시에 하윤은 그 안에 심장이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그 안에는 곡옥이 들어 있었다.
‘문태강의 곡옥.’
서이주는 그것을 하윤에게 주려고 했었다.
‘다른 것도 있었는데 그건 뭐였지?’
그건 생각나지 않았다. 하윤은 타임캡슐 속에서 꺼냈던 목함을 떠올렸으나 그것은 또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선생님이 나한테 곡옥을 줬다는 게 중요하지.’
서이주는 하윤에게 문태강의 곡옥을 이미 줬고, 또 후에 자신의 곡옥을 줬다. 그러고는 김득철의 팔찌를 가진 하윤에게 말했다.
[열쇠를 완성하렴.]
서이주는 하윤이 열쇠, 수많은 곡옥을 한데 모아서 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실제로도 그랬었고.
하윤은 시선을 내려 아직도 고통스러운 왼쪽 손목을 노려보았다.
‘깨어졌던 곡옥들이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모였다.’
단순히 그날 깨어진 자신의 곡옥이 수복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지기가 많이 죽은 해에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생겨난다.’
생겨난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문지기 안으로 모여 거대해지는 것이다. 하윤은 서이주의 죽음을 떠올렸다. 김득철은 서이주를 이용해 서울 한복판에서 미궁의 [문]을 열려고 했었다.
하지만 서이주는 그들에게 곡옥을 빼앗기기 전에 도망쳤고 하윤을 만났다. 그리고 하윤의 공간에 들어가서 그에게 서이주 자신의 곡옥을 취하게 했다.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때 느꼈던 감촉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서이주의 곡옥은 팔찌에 꿰여 있던 곡옥 중 가장 컸었다.
“강한 문지기. 강한 문지기 서이주.”
‘그들이 가장 강한 문지기로 서이주를 꼽았다면?’
하윤은 서이주가 그에게 했듯 자신에게 질문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문지기 서이주가 죽었으니 새로 많은 문지기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을 거야. 문지기들은 주로 혈연을 통해 태어나니까 김희원의 씨를 받아서 문지기들이 태어날 기틀을 만든 거고. 그리고 그렇게 문지기들이 태어나면 최대한 많이 죽여서…….’
강한 문지기를 만들려 했을 것이다.
‘강한 문지기. 김득철이 만들려고 했던 새로운 초능력자.’
김득철이 성공했을는지 못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 계획에 변수가 생긴 것은 알았다. 조각들이 하윤의 안에서 뭉쳤기 때문에 새로운 문지기들이 태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곡옥이 이 땅에서 제일 큰 걸 수도 있겠는데.’
하윤은 희원이 있던 곳을 떠올렸다. 서이주가 관여했던 공간. 자신의 공간과 많이 닮았던 모양새.
‘혹시 선생님이 가두려고 했던 건 나였을지도?’
하윤은 자기 생각이 우스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김희원이 노리는 것도 나라고 하지.’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어제도 어렴풋이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서 담배 이야기를 한 건가?’
흡연이 정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하윤은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어떻게 죽어야 할지 가닥이 잡혔다.
‘산산조각 내야 해.’
감히 맞출 수 없도록.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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